1. 사회사업 글쓰기
(p, 3) 기록은 우리 사회사업 현장 미래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기록이 없다면 여러 사회사업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깨우침은 복원될 길 없이 흩어지고, 우리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우리 현장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각자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이 바로 기록입니다.
(p, 44) 사람이 보이지 않는 기록: 사회사업 현장 상황은 '맥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사업 일지는 맥락을 서술하는 과정입니다. 당사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사회사업 일지'가 숫자가 놓치는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침묵도 대화이고 기다림도 과정입니다. 때로는 표정과 몸짓이 더 많은 걸 말해줍니다. 서술식 기록만이 이러한 인간적인 순간들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습니다.
(p, 64)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말하는 사회사업가의 기록: 그 기록을 쓰는 사회사업가 자신이 먼저 변하고, 그 진심이 당사자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나를 믿고 응원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변화는 시작됩니다. 이같은 긍정의 기록이 사람을 살아가게 합니다.
(p, 109) 다산 정약용은 '둔필승총' 즉 '둔한 붓이 총명함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총명한 머리만 믿기보다 기록이 더디더라도 꾸준히 써서 남기는 그 성실함이 결국 천재성을 이길 수 있습니다.
(p, 125) 기록은 종이 위 글자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삶을 다루는 행위입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한 줄이 당사자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게 합니다. 이를 잊지 않습니다. '이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도 괜찮은가? 누가 이 기록을 본다면 당사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위험 속에서 사회사업가가 붙잡아야 할 두 가지 원칙은 '정보최소화의 원칙'과 '자기정보결정의 원칙'입니다.
2. 헥사곤 프로젝트
(p, 9)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농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을 함께하니 마을 사람들이 소통할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옆집 가서 뭐 얻어오거나 가져다주거나 도와주거나 도움받고 자연스럽게 소통상관했을 것이다. 마을 안에 사는 사람은 사정을 다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소통상관이 많을수록 옆집 아무개의 정신장애는 큰 문제나 장애로 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따돌림이 있었을지라도 정신장애인을 격리 배제하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어떻게든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11) 사회사업가는 장애인을 잘 돕기 위해 먼저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고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이미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이기에 내가 가진 편견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당사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습관, 도덕관, 가치관, 성장과정,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 변화에 대한 태도, 편견과 고정관념을 살펴보면 내가 어떤 사고 틀을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다. 차별하지 않음은 차별하고 있음을 알아채는 순간에서부터 출발할지도 모른다.
(p, 15) 편견 있는 사회사업가에서 편견을 인식한 사회사업가로 바뀌니 많은 게 달라졌다.
(p, 24) 복지제도 바깥의 일을 제안하는 이유는 사회사업 철학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울 때 보편적이게 하고 싶다, 보편적이게 함은 여느 사람이 이용하는 일반수단을 약자도 이용하게 돕는 것이다, 자꾸 이렇게 도와야 사회가 약자를 배제하지 않게 되고 약자인 당사자가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지지 않게 된다.
(p, 25) 사회사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한사람을 변하게 도우면서 동시에 지역사회가 변하게 돕기 때문이다.
* '사회사업 글쓰기' 책을 두 번째 읽을 때는 유독 '기록'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입주자의 삶을 도우면서 사회사업 철학을 바탕으로 희망을 바라보며 일합니다. 희망을 떠올리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있다는 뜻일 겁니다.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사회사업 바르게, 잘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따뜻한 시선으로 돕다 보면 사람이 변하고 지역사회가 변하는 기적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헥사곤 프로젝트 가장 먼저 수록된 강민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방학이면 각지의 사촌들이 외할머니 댁에 모여 여름을 나고 겨울을 보냈습니다. 외가는 시골이어서 이웃과의 왕래가 잦았습니다. 외할머니 댁과 마주한 집에 장애인 부부가 살았습니다. 그분들은 언어장애가 있었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길렀습니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그들은 선남선녀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부부를 떠올리면 아름다운 사람들로 기억됩니다. 그렇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거나 비하하지 않았고, 그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발벗고 나서서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때도 그랬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랬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한가족이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시설에서 사는 분들은 예전과 같은 삶을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사회사업가가 이웃과의 소통상관을 생각하며 지원해야만 이웃과의 '인정'을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추억으로 지금의 사회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향 선생님, 성실히 공부하고 성실히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공부가 재미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