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외교
ASEAN의 외교양식과 교훈
앞에서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행동 외교 양식의 일면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외교 무대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일 때 보이는 행태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이야말로 국가와 인종과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이 상수인 공간이다. 국가 간 관계에서도 각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 차이는 서로 다른 국익과 선호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내는 공동의 가치도 몇 가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가치들은 공동의 이익과 외교 양식, 기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즉 ASEAN은 이러한 공동의 기대와 그에 따른 외교적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여러 개의 태양과 항해의 자유
우선, ASEAN 국가들은 되도록 많은 주변국을 자신들이 주최하는 외교의 장으로 초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앞 꼭지에서 다룬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의 외교 양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한데, 미얀마와 같이 오랫동안 고립 외교를 고수했던 나라들뿐 아니라 여타 회원국들 역시 외부인의 출입에 별다른 반감을 표출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ASEAN 수준에서는 말이다.
“태양이 여러 개일 때야말로 작은 행성들은 항해의 자유를 더 확보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전설적인 외교가였던 라자라트남 장관의 명언이다. 이 철학은 실제 ASEAN 외교의 핵심적인 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냉전이 끝나고 199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외교 무대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당시에는 소련이 사라지면서 이념적인 소모전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진 미국이 유이한 강대국으로 군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질 때였다. 동남아시아 지도자들은 거대한 패권의 일방적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과 1대 1로 직접 상대하기보다 외부의 영향력 있는 주요 국가들을 더 끌어들여 대화의 축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현재 ASEAN이 동남아시아 다자외교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작은 행성들의 재량을 늘리고 싶었던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호주 등 여러 주변국 지도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ASEAN은 정작 중대한 법 혹은 규칙을 만들거나 다자적 협상을 타결하는 데 매달리지 않는다. ASEAN이 초대한 외교 무대에서는 수십 개의 정상 또는 각료급 회의가 매년 개최되지만, 실제 결과물들을 들여다보면 재탕과 반복의 레토릭투성이다. 회원국이 20개가 넘는 아세안 안보포럼(ARF)에서는 오히려 기존 회원국 사이의 외교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고, 미국과 중국은 서로 친한 국가들과 담합해 서로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국제 행사에서는 서로 잘해보자고 다짐하고 대화로 풀기 위한 외교의 장을 기대하기 마련이지만, ASEAN은 정작 호스트로서 적극적인 중재를 시도하거나 문제해결에 앞장서지 않는다. 오히려 간섭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교의 기회만을 제공하는 듯하다. 주변국들끼리 싸우든, 화해하든, 우리 집에서 하면 된다는 태도 같기도 하다. 해결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똑같은 포맷의 회의가 내년에 또 ASEAN 도시에서 개최되니, 하던 논의를 계속하면 된다. ASEAN의 대외 외교는 지역 거버넌스를 위한 구체적인 결과를 달성하는 데 목표를 두기보다, 여러 역외세력이 동시에 동남아 지역정세에 관여하길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야 어느 일방의 강대국이 지역을 좌지우지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권력보다는 권위
두 번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위계적인 국제관계에서 리더 국가의 권위를 중요시한다. 리더 국가의 권위는 물리적 지배력이 아니라 그 리더십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즉, 리더를 따르는 추종 국가들의 적절한 동의에 기반한다. 국제정치는 법과 도덕의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물리적 힘의 논리가 관계를 좌우하기 쉽다. 그런 까닭에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은 강국과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규범과 법을 만들어 자기를 보호하고 강자의 횡포를 막으려고 한다. 국제기구의 무용과 불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만연하지만, 그럼에도 중견국과 약소국들이 국제법을 만들고 국제기구를 작동케 하는 데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새롭게 독립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세력 불균형은 늘 서로를 경계하고 관계의 긴장을 만드는 원인이었다. 냉전 시기 미국, 소련, 중국 등 덩치 큰 국가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역 내 국가들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다들 인정하고 있었지만, 동남아시아 내에서도 상대적인 힘의 차이는 문제가 되었다. 예를 들어, 거대한 땅과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지도자들에게는 견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 협력을 위해서는 이런 구조적인 긴장 관계를 누그러뜨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때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과 외교 관리들은 작은 이웃 국가들에 대한 자제(self-restraint) 외교를 채택했고, 이로부터 동남아시아에서도 역내 다자적 협의체의 역사가 시작된다. 인도네시아와 같이 큰 나라가 작은 나라와 외교를 할 때에는 작은 나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방식이었다. 즉, 일방적으로 군림하는 대신 작은 국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시그널을 반복적으로 보냄으로써 동남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힘(power)보다 권위(authority)의 논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오늘날의 ASEAN 탄생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냉전이 끝나고 국제지형이 변해가는 동안, ASEAN은 외교의 외연을 확장해야 했고 권위의 논리 역시 확장시키고자 했다. 본격적으로 동남아 외부 주변국들을 초대하면서도, 이들과의 힘의 불균형이 가지는 위협성을 줄이기 위해 리더의 ‘권위’를 강조했다. 강대국의 입장에서 힘에 의존한 일방적 리더십은 장기적으로 불리하며, 힘이 강해진다고 저절로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걸 주지시키기 위해 ASEAN 기구를 키워 협상에 밀리지 않고자 했다. 작은 나라를 무시하거나 자제하지 않는 강대국을 직접적으로 응징할 역량이 없다 해도, 상황을 체념하며 받아들이는 소극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동아시아 지역 질서 규칙은 우리도 만든다
세 번째 특징이라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특정한 주제에서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기능적 협력 대신 외교 관계의 큰 틀을 구성하는 규범과 원칙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외교 역량과 자원에 제한적인 중견국과 약소국들은 많은 경우 자국의 강점을 활용해 특정 주제에 기여하는 틈새 외교를 추구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ASEAN이라는 연합체로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좀 다르다. 앞에서 언급한 특징들과 연결해본다면 쉽게 이해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동남아시아는 외부 강대국들을 다자외교의 장으로 적극 초대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협상은 ASEAN 외교의 핵심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고유의 규범과 규칙은 강대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수 있다. 이 구역의 행동 규범이 이미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경제력과 군사력에 기대어 독단적으로 행동하려 하는 외세의 출현을 적절히 막아내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외교 양식으로 ‘ASEAN 방식(ASEAN Way)’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ASEAN 방식은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운영 규범이기도 하지만, 이 동네를 방문하는 외부 세력들에게 행동 매뉴얼로 요구하는 지침이기도 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작은 나라든 큰 나라든, 동남아시아에 오면 다수결이나 가중투표가 아닌 합의와 상의에 기반해 결과를 도출하고, 법적인 강제성보다 점진적이고 느린 외교 방식을 따르라는 것이다. 타국 내정간섭을 강하게 금지하고 주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조항도 외교 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주권이나 내정간섭 원칙은 유럽의 30년 전쟁을 종결하며 체결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근대 외교의 근간이기에, 이 지역의 독특한 외교 문화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수준에서 이들 규범이 조금씩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외를 남기고 싶어 한다. 힘 있는 외부 세력을 그들 구역에 계속 초대하고 이들의 권위를 시험할 수 있으려면, ASEAN 회원국 모두가 힘을 합해 강하게 지지할 수 있는 규범적 토대가 필요하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역내 규범을 설파하고 강화하는데 외교 에너지를 집중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ASEAN 방식이 느린 합의를 고수하고 강제력이 약한 탓에 개혁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안팎에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동남아 지도자들이 이런 지역 규칙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물리력이 좌우하는 국제정치에서 국가 자율성과 정치적 생존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일 터이다.
동남아 10개 국가가 ASEAN에 가입하고 ASEAN 외교에 공을 들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위에서 논한 대외적 외교력, 특히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지역 질서를 형성하고 주체성을 잃지 않고 싶어 하는 바람은 가장 뚜렷한 공동의 목표라고 볼 수 있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ASEAN은 더 단결하고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주변 강대국들이 이들의 초대를 계속 반기고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2021년 미얀마의 위기는 ASEAN의 위기이기도 하다. ASEAN이 역내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적 발전에 기여하는 모습을 선제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들이 바라던 국제사회와 자본의 관심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들이 주창하는 중소국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역할론에 대한 냉소는 또 한번 커질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ASEAN 방식이 작동하며 강대국이 함부로 굴지 못하는 동남아를 만들기 위해서 ASEAN 국가들 사이의 외교 방식에 대단한 변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322~330)
〔출처〕 키워드 동남아
강희정·김종호 외 지음, 한겨레출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