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
희정 지음, 반올림 기획, 오월의봄 2022.
용어 설명, 그리고 나가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직업병 취재를 한 초창기, 이런 글을 썼다.
“노동은 그런 것인가.”
목만 움직이는 인형처럼 마트로 들어가는 고객들에게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던 서비스업 노동자를 본 후 쓴 글이었다. 사람들이 벌을 받듯 일을 했다. “성격이 나쁜 건 아닌데, 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대기업 부장부터 노년의 마트 문지기까지, 자신의 것이 아닌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노동에 관해 많은 말을 했다. 숱한 말들이 시간과 함께 흘러간 지금, 더는 ‘노동이 그런 것인가’ 묻지 않는다.
내가 사는 사회는 노동을 구분했다. 어떤 노동은 자꾸만 애정이라 불렀다(“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부불노동이라 말한다”). 어떤 노동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격’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노동은 자꾸만 쪼갰다(긱노동, 마이크로 워크 등). 이 모든 것이 이윤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이 노동이라고 말하는 세계에서는 이윤을 만들어야 하기에 노동이어서는 안 되는 노동이 생겨났다. 그리고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몸도 발명됐다.
기이한 현실에서 ‘노동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작은 집에서 혼자 늙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취약한’ 몸으로 쪼개기 일자리에 만족하며 그곳에서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픈 자녀가 ‘노동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 세계의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된 사람들의 걱정과 우울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도 노동이다.”
취약하게 살아가는 일 자체가 노동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는 호소가 아니다. 2002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자체들이 도입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장애-인권 활동의 오랜 요구이자 결실이었다. ‘비장애인’ 중심의 일의 세계에서 장애를 지닌 이들은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거나 재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이들에게 생산성 중심의 일자리가 아니라 권익 옹호(시위, 퍼포먼스 등), 문화예술(창작 활동), 인식 개선(교육⋅강의 등)과 같은 활동에도 노동이란 이름을 붙여 노동권을 보장하고 대가를 지급한다.
노동이라 여겨지지 않는 일을 노동이라 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그 존재 자체로 ‘무엇이 노동인지’를 제기하는 질문이 된다. 이윤을 생산하는 것이 (가치 있는) 노동이라 말하는 사회에서 자꾸 다른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권리중심노동을 두고 내가 살아갈 권리를 만드는 노동이라 불렀다. 생소해 보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런 노동을 하고 있다. 내가 ‘노동이 그런 것인지’ 더는 묻지 않게 된 이유는, 노동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이 무엇인지 안다. “살아가고 의미 있게 존재”하기 위해 애를 써왔고, 그 애씀의 대부분이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연결된 거대한 협업을 통해 재생산된다.” 노동은 의존이자 관계이다. 노동을 통해 생산되는 것은 결국 삶이다.
정상가족
국내 비친족 가구는 2000년 15만 9,000가구에서 2017년 30만 9,000가구로 증가했다. ‘곰 세 마리’ 동요가 무색하게도 2020년 평균 가구원 수는 2.3명이다. 가족의 형태는 변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2019년 흥미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산재보상유족급여)는 다양한 가족을 포함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연구보고서는 이리 말하고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목적 중 하나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 ‘공정한 보상’이란 당연히 반차별적인 보상도 포함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남성 생계부양자와 피부양 가족 모델을 기초로 한 제도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데, 기존의 협소한 가족 틀에 맞춰 “실제 생계를 같이해온 사람의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차별적인 보상이라는 말이다.
산재 제도를 두고 모순과 차별과 불합리를 말하기 시작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주렁주렁 달려온다. 그 많은 문제를 제치고 ‘정상가족’ 중심의 산재보험보상보험법의 한계를 언급하는 이유는,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은 (피가 섞인) 가족이라는 관념이 오히려 당사자들의 삶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이 해체된 당사자들이 있다. 그리고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당사자들이 있다. 가족이 없기에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일마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들도 있다.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돌봄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쉬이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막연히 생각한다. 정상가족, 그다음에 올 것을.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을 대신해 오는 것이 상품화된 돌봄서비스나 대리 가족이 아니었으면 한다. 정상가족의 다음에 올 것은 새로운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재생산권과 돌봄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좋아하는 문구가 있다.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라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말자’라고 받아치면 안 된다. 사회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벌주듯이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 누구도 그런 존재가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재산도, 전리품도, 보상도, 대가도 아니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동시에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나의 성적 권리와 타인의 의료 지원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그의 나의, 우리의 모든 선택이 자기결정권에 기반하길 원한다. 그래서 재생산권(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이라는 말을 곱씹는다.
1979년 UN총회에서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을 공식 채택하면서부터 재생산권이 등장했다. 이후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의 여부와 시기 및 빈도와 관련한 개념뿐만 아니라 성관계의 여부와 시기 및 대상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결정권을 의미하는 성 건강 및 권리 개념”(1996년 제4차 세계여성회의, 베이징)으로 확장된다.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정. 장애인 커플이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선택한 것이, 동성 애인이 있는 이가 비혼을 선택한 것이, HIV 감염인이 임신중지를 선택한 것이 자유롭기만 한 결정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많은 선택도 그러하다. 주변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어떤 제도와 지원이 마련되어 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정을 하게 된다.
다른 결정이란 배제와 인정(누가 어떤 권리로부터 배제당하는가)의 문제이고, 이때 배제와 포섭의 잣대를 가르는 것은 국가(라는 이름의 사회)이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할 때, 권리의 명명은 많은 것들을 소환한다. 인정, 지원, 책임. 이 모든 문제를 쥐고 소환되는 것은 공동체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 살 수 없음’을 깨닫는 일이다. 하지만 이 사실−‘개인’이 수많은 관계의 자장 속에 존재하고, 그 사이로 숱한 의존과 돌봄이 오고 간다는 것−은 근대가 발명한 오롯한 ‘개인’이라는 두터운 장막에 의해 쉽게 가려진다.
직업병 당사자들이 있다. 취약하고, 공동체에서 고립되었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들. 가족의 돌봄에 의존하거나 가족의 해체를 겪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으로 명명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취약해지는(당연히도 나이가 들어가니까) 우리의 삶도 불행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경유하여 넓어진 상상력과 서로에게 기대어 끌어올린 사유로부터, 일하다 아픈 사람들의 자리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체가 길을 넓히는 일이 될 테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는 “인간의 취약함을 사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시작 지점에 있다.
에필로그
반올림에서 반도체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다룰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는 기록할 생각 없이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연구자, 의료⋅법률 종사자, 그리고 활동가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세미나를 했다. 국내 자료가 부족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기초⋅실태조사 등을 차근차근 진행해온 연구자들이 있었다. 보고서, 논문 등으로 발표된 자료들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
책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어느 날 반올림 권영은 활동가가 연략을 해왔다. 피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다며 두꺼운 제본집을 건네주었다. 그 제본집에는 그간 반올림이 산재 신청을 지원해온 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반올림 활동가들과 노노무(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소속 김유경 노무사가 품을 내어 기록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다.
“나 때문에 우리 애들이 아픈가봐.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이런 거 몰랐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어. 이 말을 보고,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가 ‘나의 잘못’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직업병 관련 회의, 세미나, 토론회 등에 참관했다. 그러면서 제주의료원 사건 이전부터 국내 여성 노동자들의 무월경 증상 등 문제를 발견하고 연구하고 싸운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싸움이었다. 시민사회대책위와 노동조합들의 크고 작은 싸움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올 수 없었다. 반올림이 2세 질환 산재 신청을 준비하던 과정은 지금도 인상 깊다. 이 사안을 지원하는 노무사⋅변호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설득력 있는 근거 자료를 만들기 위해 숱한 회의를 했다. 산재 신청 당일까지 ‘초안, 수정1, 수정2, 최종’ 등의 파일명이 붙은 각종 서류가 단체 메신저 방에 분주히 올라왔다. 지금까지 직업병 인정 싸움마다 이런 애씀이 있었을 거였다.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문제를 문제로 알리는 사회적 언어를 만들어야 했다. 그 언어를 획득하기 위해 반올림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노동안전보건 분야 단체들은 물론, ‘정상성’에 대항하는 장애인 권리 운동, 재생산권 정의 운동 영역의 단체들과 교류했다. 각국의 상황과 위치를 이해하는 가운데 협조를 아끼지 않는 국제 연대를 지켜보는 일도 나의 시야를 넓혔다.
그런데도 늘 ‘구체’가 아쉬웠다. 실제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조건에서 갈등과 협상을 반복하는지, 이 현실을 공공운수노조(제주의료원 사건)를 비롯해 노동조합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사안을 말하는 것만으로 버거웠을 텐데, 십수 년 전 반도체 일터의 풍경을 애써 떠올려준 인터뷰이-당사자들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들이 인터뷰 때마다 이야기한 “나와 같은 일을 다른 사람은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책에 제대로 담겼는지, 책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걱정으로 남는다. 책에 많은 것을 담지 못했다. 고마움도, 변화의 근거도, 우리가 동의하는 미래도, 그것은 책 밖에서, 이 책을 만들어준 이들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
2022년 9월
기록노동자 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