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 / 최종호
작년 3월, 23년 만에 새 아파트로 이사 가기로 마음먹고 계약했다. 10월에는 입주 시기를 1년 앞두고 집을 내놓았으나 보러 오기는커녕 전화조차 없어 애가 탔다. ‘집이 안 팔리면 어떻게 하지? 퇴직하고 집을 넓혀 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집 생각 때문에 마음이 복잡했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헤매던 시기라 그럴 만했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데다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4, 5개월 더 지나면 입주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2월 말에는 계약서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성사될 듯싶다가 무산되어 더 그랬다.
그런데 임자는 따로 있었는지 사겠다는 사람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아내도 그간 속을 끓였던지 우리가 착하게 살아온 덕분이라며 기뻐했다. 집이 나가 큰 시름은 덜었으나 작은아들 앞으로 된 오피스텔 잔금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청년전세자금대출’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작은아들은 계약서를 읽고 또 읽으며, 틈틈이 서류를 준비하고 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었다. 그러는 동안 진이 빠졌는지 웃음도 없고 낯빛도 어두웠다. 자초한 일이 아닌 데다 방사선사로 근무하면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당초에는 큰아들 신혼살림 집으로 생각해서 계약했는데 마음이 변해서 중간에 아파트를 분양받는 바람에 명의를 바꾸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약금은 고사하고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물어야 할 판이어서 궁여지책으로 벌인 일이었다.
이사 날짜를 우리 입맛에 맞출 수는 없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시기에 날을 잡다 보니 작은아들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짐은 이삿짐센터에 맡기고 당장 필요한 몇 가지만 들고 왔다. 그러다보니 미처 챙기지 못한 것도 많았다. 오피스텔인 데다 좁아서 살림을 꾸리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아들 집에서 더부살이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여름을 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베란다가 없고 위쪽 창문만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시원하게 통풍시킬 수 없다. 문을 열어도 고속도로와 가까워 무척 시끄럽다. 그러니 창문을 닫고 사는 것이 상책. 그렇다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고 살자니 마음이 불편하다. 방음도 문제다. 거실의 텔레비전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린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려면 집중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문을 자주 닫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티비와 함께 사는 아내를 타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타까운 점도 많다. 사방이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여 녹색 식물을 볼 수가 없다. 답답하거나 눈이 피곤하면 밖을 내다보고 싶은데 콘크리트뿐이라 삭막하다. 건물에 가려 햇빛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점도 문제다. 화분 하나 제대로 키울 수가 없다. 장마철 내내 빨래를 제대로 말릴 수 없어서 제습기와 선풍기를 활용하다가 중고 건조기를 장만할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건물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다. 그러니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보인다. 건설비용을 줄이려고 그랬겠지만 너무 심했다.
그래도 한 가지 숨 쉴 구멍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옥상에 보도블록을 깔고 잔디를 심어 놓아서 아침저녁으로 운동할 수 있다. 햇빛 가림막이 있는 탁자도 두세 군데 놓아두어서 하늘도 보고 바람도 쐴 수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재떨이도 준비해 두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반려견과 함께 올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끔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나 테이블 위에 마시고 버려둔 병이나 캔, 치우지 않은 강아지 똥을 보면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줄어든다.
이제 한 달 후면 새 아파트로 이사할 예정이다. 오늘, 기대와 우려를 안고 입주 사전 점검을 하러 갔다. 진입로 주변은 아직 정비 중이었고, 지하 주차장도 정리가 안 돼 어수선했다. 시공사에서 입주 예정 날짜에 공사를 마치려고 서두른 흔적이 역력했다.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지만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입주자 카톡방에서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 긴장했으나 걱정한 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작은 하자를 여러 개 찾아냈다. 지인의 말대로 완벽한 집이 어디 있겠는가! 위치와 내용을 자세하게 적어 접수하는 곳에 가져갔더니 아가씨가 “알 수 있게 잘 적었네요.”라고 하여 옆에 있던 아내가 웃었다.
앞으로 살아갈 곳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다. 이른바 숲세권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무등산이 가깝고 너릿재 옛길의 초입에 있어 등산과 산책 하기에 좋다. 무엇보다 큰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조용하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조경을 잘해 놓은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삶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이곳이 아마도 마지막 터전이 될 듯싶다. 오래된 아파트를 처분하고 마음을 크게 먹은지라 집 문제로 머리 아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큰아들 내외도 같은 단지 안에 있다. 새로운 터전에서의 생활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