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소떼는 낮에 초원에서 풀을 열심히 배불리 뜯어 먹고 나서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안전한 저녁 시간에 반추위나 벌집위까지 내려갔던 내용물을 다시 끄집어내어 되새김질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존재의 이유나 삶의 목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상황은 등 따습고 배부른 상태에서일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생존 투쟁의 와중에서, 혹은 극도로 굶주린 상태에서는 인생의 목적이니 뭐니 하는 반추적인 생각이 떠오를 여유가 없다. 예를 들면 탈북민들이 전하는 필사적인 탈북 과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의 본능과 의식은 오로지 생존 자체에 집중되었음이 분명하다. 다른 생각이 얼씬거릴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배불리 먹고 난 후에 반추하는 게 아니라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을 겪고 난 직후나 인생 여정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좌절이나 허무감에 사로잡힌 순간뿐만 아니라 풍요와 안락으로 인한 권태의 순간에도 삶의 의미에 대해 머릿속에서 되짚어보는 경향이 있다.
2025년 11월 6일 패션 잡지 『보그』 12월호 커버스토리에 미국의 신세대 인기 영화배우 티모시 살라메(Timothée Hal Chalamet, 1995-)가 “번식이 우리의 존재 이유”라고 호기롭게 주장했다가—만약 그렇다면 탁월한 번식력으로 수억 년에 걸쳐 번성해온 바퀴벌레나 열악한 사회적 조건에서도 번식에 충실하여 세계 최대 인구 국가를 이룬 인도 사람들이 가장 모범적인 존재인가라고 누군가 반문할 것이다—여론의 매를 좀 맞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에 대한 선택은 개인의 자유인데, 니가 뭔데 아이 낳는 게 인간의 보편적 존재 이유라고 함부로 떠벌리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티모시와 같은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인생의 근본 목적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지 못할 때 혹은 거기에 답이 없는 게 확실하다고 느껴질 때 번식 말고 또 뭐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티모시와는 좀 다른 입장에서 흔히 사람들은 인생의 근본 목적이 자아실현을 통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하다는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어떤 경험이나 느낌이 행복인지 모호하다. 지금까지 많은 현인들이 삶의 목적으로서의 행복에 대해 나름대로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선 MBN의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무늬만’ 자연인들은 한결같이 산속에서 생활하는 지금이 최고 행복한 상태라고 말한다. 세상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숲과 계절의 리듬에 동화되어 텃밭에 직접 경작한 몇 가지 야채와 산에서 채취한 야생 버섯이나 더덕을 요리하여 맛있게 먹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좋은 공기와 좋은 물 마시며,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지금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분들의 사연을 좀더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도시에서 돈 벌려고 과하게 욕심을 부리다가 사업에 망했거나 보증을 잘못 서주어서 파산하여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가정도 돈도 건강도 잃고, 어쩔 수 없이 산으로 들어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하고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분들의 그러한 인생관에 나는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분들이 정말 자연인인가? 그러한 생활이 우리 모두가 받아들일 만한 진정 행복한 상태인가?
MBN의 자연인들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자연인으로서 월든 호숫가 숲속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시도했던 소로우는 자신이 자연 속으로, 숲속으로 들어가 살게 된 목적을 “삶의 골수를 빼먹기” 위한 것이며 삶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 그 결과”를, 그게 비천한 것으로 판명되든 숭고한 것으로 판명되든,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인생이 악마의 것인지 혹은 신의 것인지 확신을 갖지도 못한 상태에서” 삶의 주요 목적을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기쁨을 얻는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의 책 『월든』을 아무리 꼼꼼하게 들여다보아도 그가 권고하는 방식의 삶이 어떤 목적을 갖는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초월주의자로서 소로우는 그러한 삶에서 얻는 최고의 희열을 자신과 자연이 하나 되는 어떤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그러한 느낌의 일례로 별빛 가득한 여름 밤하늘 아래 호수에서 밤낚시를 하면서 낚싯줄을 공중으로 휘감아 돌릴 때 그 낚싯줄이 밤하늘 별빛 속으로 던져지는 것인지 검푸른 호수로 던져지는 것인지, 그것이 천상의 경험인지 지상의 경험인지 분간할 없는 희열을 느낀 순간에 대해 언급한다. 하지만 실제로 소로우는 그런 생활을 딱 2년 2개월 이틀 동안만 하고 인간 사회로 복귀했다.
소로우의 자연 사상과 그가 제시한 간소한 삶의 방식을 높이 칭송했던 법정 스님은 행복이 절대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법정은 “누구보다 더 잘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들 …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양, 행복인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양, 불행인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은 우리가 과도한 생존경쟁으로 인해 좌절이나 괴로움에 빠졌을 때 우리에게 위로와 치유를 주는 말씀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 나에게는 액면 그대로 실천하기에 어려운 권고이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행복이 목표지향적인 활동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만약 네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인생을 어떤 목표에 매어 두라. 사람들이나 사물에 묵어 두지 말고.”라고 조언한다. 아인슈타인의 충고에 따르면 가수 조용필이나 야구선수 오타니, 아마도 극작가 셰익스피어 등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 인간 사회에 크게 기여한 위인들이며, 목표지향적인 활동을 통해서 최고의 행복을 성취한 사람들의 본보기일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고 체력도 부실한 사람이 그런 큰 꿈을 좇다가는 그걸 실현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골로 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장수 인생의 롤 모델인 106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김형석, 백년의 유산』이나 『백년을 살아보니』 등 백년 시리즈로 기염을 토한다. 기네스가 공식 인증한 ‘세계 최고령 작가’인 김형석 교수는 “60세에서 75세가 자신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늘 해맑게 웃으며 회고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씀에도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그분은 운이 좋아서 그런 복록을 누리는 0,000001%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나처럼 비겁한 회의주의자가 헛된 꿈을 꾸다가 허망한 결말을 맞지 않도록 해주려고 지혜로운 많은 작가들이 소소한 행복에 관한 훌륭한 가르침을 글로 써서 깨우쳐주려 애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위 ‘소확행’을 주장하는 책들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잭 캔필드(Jack Canfield)와 마크 핸슨(Mark Victor Hansen)이 펴낸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Chicken Soup for the Soul: 101 Stories)와 그것의 수많은 후속작들이다. 하지만 그런 책들이 제공하는 따뜻한 스프들도 여전히 나의 공허한 마음속을 지속적으로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 효험은 일시적이다. 결국 지금까지 내가 경험을 통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얻은 깨달음은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행복에 대해 얻은 답은 행복이란 추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정성껏’ 열심히, 될수록 평정심을 잃지 말고 살아가야지 하고 다짐한다. 지금 되돌아보면 중학교 입학하기 이전까지 산과 들에서 혹은 마을길에서 철없이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 연애할 때 특히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던 순간들, 그리고 살아오면서 몇 가지 소소한 성취를 이루었을 때 잠시 동안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행복한 기억을 최근에 뒤늦게 되찾았다.
지난여름 어느 날 어둠이 내려깔리기 시작하는 초저녁 아파트 뒤쪽 주차장 터에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빠가 손을 잡고 나란히 외발과 오른발로 번갈아 발맞춰 깡충깡충 뛰어가며 터뜨리는 스타카토 웃음소리가 어둑어둑한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젊은 아빠와 어린 딸아이의 인생에서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따로 또 얼마나 있을까? 나에게도 저런 희열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인 것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첫댓글 그렇지요, 우리에게 짧은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순간, 순간들… 행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