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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 단 2:1-13, 롬 14:14-18
시드니 올림픽이 오늘 막을 내린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 가운데는 어려운 환경을 꿋꿋이 딛고 일어선 선수들이 많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메달을 안겨준 사격의 강초현 선수(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 남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의 장용호 선수는 가난으로 인해 부모 모두 가출했다. 그래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국 선수의 예다. 여자 조정선수인 미국의 멜리사 라이언은 동생에게 신장 하나를 떼어주고 경기에 출전하여 동메달을, 남자 조정 무타포에서 5연패를 달성한 영국의 스트븐 레드그레이브는 당뇨병으로 4년 동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던 환자, 사람들은 ‘이제 레드그레이브의 선수 생명은 끝났다’고 말했으나 그는 보란 듯이 재기했다. 싸이클의 암스트롱은 암환자이지만 동메달을, 미 육상선수는 맹인이지만 여자 1500m 결선까지 진출. 남자 수영에서 2연패를 한 미국의 톰 돌런은 작년에 무릎 연골수술을 받음. 또한 어릴 적부터 괴롭혀 온 기관지천식 때문에 시합전 산소탱크를 사용하는 환자, 강초현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딴 미국의 낸시 존슨은 신경계 질환을 앓아왔다. 그녀는 의사로부터 ‘운동을 계속하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금메달을 땄다. 남자 공기소총 금메달 수상자인 프랑스의 프랑크 뒤물랭은 교통사고를 당해 1년 전만 하더라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던 장애인이었다. 그는 주위에서 ‘재기불능선수’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자 다이빙에서 우승한 미국의 로라 윌킨슨은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당한 것은 지난 3월, 코치는 윌킨슨에게 올림픽 출전 불가를 선언, 그녀는 빌 4:13절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묵상하며 힘과 용기를 얻었다. 올림픽에서 우승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성구 하나가 추락직전의 운동선수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았다. 육상 여자 800m의 우승자인 모잠비크의 무토라, 전쟁 중인 나라에서 성장, 마땅한 놀이가 없어 남자들과 추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냄. 그녀는 굶주림과 고독을 재료로 삼아 세계 최고의 육상선스로 우뚝 섰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낸 선수들을 보면 무언가 해보겠다는 의지와 꿈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된다.
오늘 본문인 단 2장은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느브갓네살왕 2년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이 꿈으로 인해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할만큼 깊은 고민에 빠진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고통스러운 꿈이었다면 아마도 단순한 악몽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느브갓네살왕은 자기가 꾼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더 미칠 지경이었을 것이다. 느브갓네살왕은 꿈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꿈이 어쩐지 불길하기만 하고, 괴롭기만 하고, 잊어버리지 못하는 이상스런 번민 속에 빠지게 되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다니엘서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을 들으면, 아주 굉장한 역사적 사건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는 일개 개인의 꿈에도 작용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에만 간섭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난 밤 여러분이 꾼 꿈도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가? 그렇다고 또 매번 꿈 꿀 때마다 ‘이것은 무슨 꿈일까?’라면서 너무 지나치게 자기의 모든 꿈을 하나님의 사역과 연관시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나 본문의 경우 느브갓네살왕이 꾼 고통스러운 꿈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만약 하나님의 주권과 관련이 없다면 왜 왕은 쉽게 그 꿈을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는 꿈 때문에 번민하고 마침내 점쟁이와 박수와 술객들을 볼러서 그가 꾼 꿈을 설명하게 했다. 우리 갈보리교회 성도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 점쟁이를 찾아간다. 그들이 왕 앞에 섰을 때 느브갓네살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꿈을 꾸고 마음이 번민하도다.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구나.’ 그러자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방언으로 말한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이에 대해 왕은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내게 말하라’라고 대답한다. 곧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과거 역사 역시 알아 맞춰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점쟁이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점쟁이가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사도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점쟁이가 신통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왕이 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대충 엎어치거나 둘러치며 해석하면 되는데, 꿈 내용까지도 알아내라고 하니까 박수와 술객들은 당연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왕은 계속하여 말한다.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느브갓네살왕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꿈의 내용과 해석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대답은 이러했다. ‘원하건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그러자 왕이 소리를 친다.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지연하려 함이로다.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하더라.’ 느브갓네살왕 꾼 꿈에는 일상적인 꿈 이상의 의미, 곧 마침내 이 꿈을 통하여 다니엘을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생각하고 본문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한심한 박수나 갈대아 술사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한 사람도 없으므로, 어떤 크고 권력 있는 왕이라도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인들에게 물은 자가 없었나이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이 말을 줄여서 쉽게 말하면 이렇다. ‘옛날 왕 가운데는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사람이 만고 역사에 하나도 없었나이다. 어떻게 신이 아니고서야 당신이 꾼 꿈의 내용까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해석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느브갓네살왕은 너무나도 화가 나서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평범한 꿈이라면 그것을 가지고 이렇게 진노하고 통분하여 모든 박사들을 다 죽이라고까지 명령할 수 있겠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이 느브갓네살왕의 꿈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박사들은 곧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되었다. 그들의 삶에 위기가 왔다. 그들은 당시 학문 연구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이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위험이란 말과 기회란 말이 합쳐져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험한 순간을 단순히 위함한 순간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뜻밖에도 놀라운 선물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다’라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된 것 같다. 이 말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역경이나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기회라는 뜻이다. 사실상 사람들은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역경에 부딪혀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지혜를 구하며 그분을 신뢰한다. 그럴 때 하나님은 평소와는 다른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간섭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셔서 우리들의 삶 속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단 1:17절을 보면 다니엘은 놀라운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다. 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모든 이상과 꿈을 해석하고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허락해 주셨다. 1:20절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이러한 축복을 받은 다니엘은 새로운 위기가 닥친다. 이제 다니엘의 목숨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그는 이제 죽음이 행령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2:13절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이것이 다니엘에게 찾아든 위기이다.
자기가 죽게 된 상황에서 만일 다니엘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당장 ‘이젠 끝장이로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온 위험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있었다.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들은 다니엘은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슬기로운 말로 이렇게 물어본다. ‘왜 왕이 그런 엄청난 명령을 내렸습니까? 왕의 명령이 어찌 이리 급하지요? 왜 이렇게 왕이 서두르십니까?’ 그래서 아리옥이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다니엘에게 알려준다. 이에 다니엘은 왕께 나아가 왕의 꿈을 해석하도록 기한을 얻어낸다.히 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보여지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믿는 것이다. 내 눈에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어도 나타나게 해 주실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한다.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믿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인가? ‘믿으라. 그러면 보여주리라.’ 하나님의 공식과 사람의 공식은 이렇게 다르다. 구약성서 중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는 해석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다. 더구나 본문은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가 꿈을 꾸어 본 경험이 있으므로 그리 낯설지는 않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 꿈을 사용하신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종종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그것에 반응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우리가 잠자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에 대해, 우리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두 요셉의 에를 들어보자. 하나는 구약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꿈을 들 수 있다. 그는 꿈으로 인해 꿈꾸는 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 하나는 신약 마태복음에 나오는 것으로서,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믿고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아기 예수는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꿈은 오늘 우리의 인간 상황에 있어서도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느브갓네살왕에게 있어서 그가 꾼 꿈은 악몽이었고,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의 통치자가 꿈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꿈이 초자연적이고 그 내용이 장래를 계시하는 것이며, 자신의 미래와 관련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반응을 보면 공포감과 죄절감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꾼 꿈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 꿈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심한 충격과 함께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 내용을 잘 기억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인생의 절정기에 부러울 것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장래와 관련된 꿈을 꾸었다. 이 꿈은 바벨론 술사들이 믿는 이방신을 통해서는 결코 알아맞힐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다.
이 꿈은 우리에게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1) 당시 전 세계를 재패한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왕에게 큰 신상에 관한 꿈을 주셨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권세자라 할지라도 결국 우주와 역사이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바벨론 제국 안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라 할 수 있는 바벨론 왕실의 술사들이 느브갓네살왕의 꿈을 전혀 해석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세계와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당신의 고유 권한 아래 있는 미래의 역사에 대한 계시를 주신다. 또한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는 한 그 어떤 존재도 그 계시를 깨달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직접적인 어떤 잘못을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형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예기치 못한 환난과 박해를 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때라도 실망하고 좌절해서는 안된다. 그 속에는 분명 선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다. 그러므로 인내하고 기도하므로 환난 중에 더욱 신앙이 성숙해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