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과 기름 장수
한석봉이 어려서 글씨 공부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한석봉의 결심과 노력도 훌륭하지만, 그 어머니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더욱 거룩하기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감동을 준다.
한석봉이 어머니 덕분으로 꾸준히 공부하여 처음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어느 날의 일이다.
이날 한석봉은 큰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느 기름가게 앞을 막 지나려는데 기름병을 든 한 소년이,
"참기름 닷돈어치만 주세요!'하고 외쳤다.
한석봉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기름을 사려면 으레 가게 안에 들어가야 할텐데, 소년은 밖에서 기름집 높은 다락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락 창문이 열리더니, 주인의 얼굴이 쑥 나타났다.
지금 바쁘니까 거기서 받으라면서 말이다.
기름집 주인은 커다란 기름 항아리를, 바깥 쪽으로 번쩍 쳐들었다.
'대체, 어쩔 셈일까.‘
한석봉은 호기심이 일어나 길에 선 소년과 다락 위의 주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윽고 주인이 항아리를 기울이자, 소년은 기름병을 떠 받쳤다.
다음 순간,
세상에서 보기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높이가 3길이나 되는 다락 위 항아리 주둥이에서 흘러 나오는 기름이, 마치 한 올의 실처럼 되어 곧장 기름병 좁다란 주둥이 속에 빨려가듯이 들어가는 것이다.
또, 기름병에 거의 찼을 무렵, 그것이 가위로 잘리 듯이 뚝 끊어졌는데도 놀랍게도 기름은 한 방울도 땅에 흘러 떨어지지 않았다.
위에서 주인이, "이제 됐다. 가거라."
아래서는 소년이
"기름 값은 외상이어요." 하더니 쪼르르 달려갔다.
한석봉은 눈이 휘둥그래진 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요술이라도 구경한 듯한 기분이었다.
"허 참! 놀라운 솜씨다.
그 높은 곳에서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기름병에 넣다니, 많은 연습이 없고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렇다면 저 주인에 비해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한석봉은 똑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한낱 기름장수의 일이지만 이 정도로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하고,
자신의 글씨 솜씨가 새삼 부족한 것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날부터 한석봉은 문을 닫고 들어앉아, 다시 글씨 공부를 열심히 시작했다.
소년 시절보다 몇 곱절 되는 결심과 노력이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을 무심코 보아 넘기지 않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것을 거울삼아 노력한 한석봉은 지금도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