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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밤이면 춘앵과 동추을 데리고 매월이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지냈지만 외간 남자가 어찌 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하였겠습니까? 저로서는 천만뜻밖의 말씀입니다.”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백공이 듣고 저으기 마음이 놓이나, 일이 하도 고이하여 매월을 즉시 불러서 묻기를,
“네가 이즈음 아씨 방에 가서 자느냐?”
하니 매월이,
“요사이 소녀의 몸이 곤하여 낭자의 방에 가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매월의 대답을 듣고 백공은 더욱 수상히 여겨 매월을 꾸짖기를,
“정말 그게 사실이냐? 요사이 괴상한 일이 있어서 아씨에게 물은 즉 밤으로는 너와 함께 자며 수작하였다는데, 너는 아씨 방에 가지 않았다 하니 두 사람의 말이 서로 같지 않구나. 이는 필시 아씨가 외인과 사통한 것이 분명하다. 너는 앞으로 아씨의 동정을 살펴서, 아씨 방에 왕래하는 놈을 잡아서 알리라.”
하고 엄명을 내렸다. 매월이 명을 받고 아무리 주야로 살폈으나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니, 없는 도적을 어찌 잡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공연히 매월에게 간계를 꾸미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결과가 되었다. 매월이 생각하길,
“선군이 낭자와 작배(作配)한 뒤로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으니 어찌 애달프지 아니한가. 이번 기회에 낭자를 간통죄로 몰아서 나의 해묵은 원한을 풀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매월은 금은 수천 냥을 훔쳐서 동류(同類)들을 모아 의논하여 말했다.
“금은 수천 냥을 줄 것이니 누가 나를 위해서 묘계를 행해 주겠소?”
하고 꾀었다. 그중에 이름이 돌이라는 힘깨나 쓰고 성정이 흉완하고 호방한 놈이 매월의 말을 듣고 재물에 혹하여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매월은 기뻐서 돌이를 이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내 다른 사정이 아니라, 이 댁의 선군 서방님이 나를 소첩으로 삼고 전에는 정을 두텁게 대하더니, 낭자를 본실로 데려온 후에는 팔 년이 되도록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종년으로만 상대하니, 내 마음이 어찌 분하지 않으랴. 그래서 낭자를 음해해서 이 집에서 내쫓아 분풀이를 하려고 하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만 잘해라.”
하였다. 매월은 이날 밤에 돌이를 데리고 동별당 문밖에 와서,
“너는 여기 있거라. 그러면 내가 영감 처소에 가서 적당히 말하면, 영감이 격분하고서 네가 낭자의 간부(姦夫)인 줄 알고 잡으로 올 것이니, 너는 그때 쯤하여 영감이 보도록 낭자의 방에서 나오는 척하고 이 후원 문을 열고 나가되 부디 소홀히 하지 마라.”
하였다. 그리고 매월은 영감한테로 가서,
“상공께서 저더러 동별당 동정을 잘 살피라는 분부를 받고 밤마다 잠을 안 자고 지켰더니 과연 어떤 놈이 낭자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추잡한 희롱을 하고 있기에 제가 살짝 엿들으니 낭자가 그놈에게, ‘서방님이 오거든 죽여버리고 재물을 도적질해서 같이 도망쳐 살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허겁지겁 달려와 대감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백공이 이 말을 듣고 노기가 대발하여 칼을 빼들고 후원으로 달려가자, 과연 어떤 놈이 낭자의 방에서 문을 열고 나와 뛰어서 담장을 넘어 도망쳐버렸다. 백공이 잡지 못하고 분기만 간직한 채 다시 처소로 돌아와서 밤을 앉아 새워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가 되니, 비복들을 불러서 좌우에 세우고 차례로 엄중히 문초하였다. 백공이,
“내 집의 담이 높아 외인이 임의로 출입할 수 없는데 낭자방에 밤마다 수상한 놈이 자유로이 출입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너희들 중에 있으니 숨김없이 고하라.”
하였다. 비복들이 묵묵부답하자 급기야는 낭자를 잡아 오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매월이 제일 먼저 올커니 생각하고 동별당으로 뛰어가 문을 열고 소리를 크게 지르며,
“아씨는 무슨 잠을 이렇게 태평하게 자고 있어요. 지금 상공께서 아씨를 잡아오라 하시니 빨리 가시지요.”
하였다. 낭자가 깜짝 놀라면서,
“이 밤중에 무슨 일로 집안이 이리 요란스러우냐?”
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보니, 비복들이 문밖에 가득하였다. 낭자가 다시 묻기를,
“너희들 무슨 일이냐?”
하니 한 노복이 대답하기를,
“아씨는 어떤 놈과 간통하다가 공연히 애매한 우리들만 경을 치게 합니까? 죄 없는 우리들을 더이상 경치게 하지 마시고 어서 가서 바른대로 말하시오.”
하고 구박이 자심하였다. 낭자는 천만 몽배 밖의 모욕을 종놈들에게 당하고 넋이 빠진 듯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낭자에게 재촉이 성화같았다. 낭자가 곧 상공 앞에 나아가 엎드려,
“제가 무슨 죄가 있기에 밤중에 이런 꾸중으로 부르셨습니까?”
하고 여쭈였다. 그러자 백공이 크게 노하여,
“수일 전부터 너에게 수상한 일이 있기에 너에게 물었더니 네 말이 선군이 떠난 후 적막하여 매월과 함께 얘기를 나눴다고 하길래 믿겨지지가 않아서 매월을 불러서 힐문하니까 매월이는 요사이 일체 네 방에 가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는 일일 것같아 여러 날을 잘 살펴온즉 분명 어떤 놈이 네 방에 출입하는 것이 틀림없거늘 네 무슨 얼굴을 들고 변명하려 드느냐?”
하였다. 그러자 낭자가 울면서 변명하니 백공이 크게 꾸짖어 말했다.
“닥쳐라! 내 귀로 직접 듣고 내 눈으로 직접 본 일인데, 네가 끝끝내 나를 속이려고 하니 어찌 통해(痛駭)치 아니하랴. 양반의 집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기는 드문 법,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네가 상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는 시아버지의 호령이 서릿발 같았다. 그러나 낭자는 오히려 낭낭하게,
“아무리 시부모님 간택으로 육례를 이루지 못한 며느리라 할지라도 어찌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억울한 누명을 발명(發明)하기도 창피하오나, 아버님께서 자세히 조사해 보십시오. 이 몸이 지금 비록 인간으로 있사오나, 저의 빙옥(氷玉) 같은 정절(貞節)로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듣겠습니까?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들으면서도 영천수[潁川水_중국의 은사(隱士) 허유(許由)가 요(堯)나라 임금으로부터 양위(讓位)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를 씻었다는 전설의 강물.]가 멀어서 귀를 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다만 죽어 모르고자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시아버지 백공이 비복을 호령하여 낭자를 결박하라고 명하니, 비복들이 일시에 달려들어서, 머리를 산발하여 층계 아래 꿇어 앉혔다. 낭자의 이런 몰골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가련하였다. 백공이 크게 노하여,
“네 죄상은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으니, 너와 사통한 놈의 성명을 빨리 대라.”
하고 다그치며 매질을 하니 낭자의 백옥같은 귀밑에 흐르는 것은 눈물이요, 옥같이 흰 살결은 유혈이 낭자하였다. 낭자는 악형의 고통을 참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저번에 낭군이 길 떠난 밤과 이튿날 밤 두 번, 겨우 삼십 리쯤 가다가 숙소를 정하였으나, 저를 잊지 못해 밤중에 집으로 몰래 돌아왔기에, 제가 한사코 잘 말해서 도로 보낸 일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으나 제 어린 소견으로는 시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 겁을 내어 지금까지 고하지 않고 있었더니, 조물(造物)이 그것을 밉게 여기시고 귀신이 그것을 시기해서, 이런 씻지 못할 누명을 입은 듯하옵니다. 지금에 와서는 어찌 해명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밝은 명천은 소소히 살펴아시오니 아버님께서는 그런 사실과 저의 정상을 살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백공은 점점 더 노하여 매를 든 비복을 독려해서 헤아려가며 혹독한 매질을 가하였다. 낭자가 하는 수 없이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아아, 공명한 창천이여! 무죄한 이내 마음을 굽어살피소서. 오월비상지원(五月飛霜之怨)과 십년불우지원(十年不雨之怨)을 뉘라서 풀어 주겠습니까?”
하고 호소하면서 엎어져서 기절하고 말았다. 시어머니가 그 며느리의 참상을 보고 울면서 영감에게,
“옛말에 이르기를 엎지른 물은 그릇에 다시 담지 못한다하오니, 영감은 자세히 모르시고 백옥같이 티 없는 정절한 며느리를 억울하게 음행(淫行)의 죄로 포박(捕迫)하시니, 며느리의 무죄가 밝혀졌을 때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없겠습니까?”
하고 뜰 아래로 뛰어 내려가서 낭자를 안고 대성통곡하였다.
“너의 송백 같은 절개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오늘 이런 변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니 어찌 지극히 통탄치 않으랴.”
하니 낭자가 말하기를,
“옛말에도 음행의 소문은 씻기 어렵다 하오니, 동해의 물로도 씻지 못할 이런 누명을 쓰고 제가 어찌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
하고 통곡하였다. 시어머니 정씨가 낭자를 가엾게 여기고 만단으로 위로하고 타일렀으나, 낭자는 끝내 듣지 않고 문득 옥잠(玉簪)을 빼어 들고 하늘을 향하여 절하고 빌었다.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황천(皇天)은 굽어살피소서. 제가 만일 외간 남자와 간통한 일이 있거든, 이 옥잠이 제 가슴에 박히게 하시고, 만일 애매한 누명이거든 이 옥잠이 저 섬돌에 박히도록 하십시오.”
하고 옥비녀를 공중으로 높이 던지고 땅에 엎드렸다. 이윽고 그 옥잠이 떨어지면서 섬돌에 깊이 박혔다. 그제서야 하늘이 심판한 기적을 보고 대번에 상하 모든 이가 대경실색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낭자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알게 되었다. 백공이 뜰로 내려가서 낭자의 손을 잡고 빌어 말했다.
“늙으니 주착이어서 착한 며느리의 정절을 모르고 망령된 일을 저질렀으니, 내 허물은 만 번 죽어도 죄를 씻지 못하리라. 바라건대 너는 나의 용렬함을 용서하고 안심하라.”
낭자는 슬피 통곡하면서,
“제가 이런 누명을 씻고 세상에 머물러 쓸 데 없사오니 다만 빨리 죽어서 아황여영[娥皇女英_중국 태고 때의 성제(聖帝) 요(堯)의 딸. 둘이 함게 순(舜)에게 시집가고, 순이 죽은 뒤에 상강(湘江)에 빠져 죽었다 함.]의 자취를 좇으려 합니다.”
하였다. 백공이 위로하여 말했다.
“자고로 현인군자도 혹 참소를 당하며, 숙녀 현부도 혹 누명을 얻는 법이다. 너도 일시의 액운을 만났던 것으로 알아 너무 고집하지 말고 노부(老父)의 부끄러워함을 돌이켜 생각하라.”
하였다. 시어머니 정씨도 낭자를 부축해서 동별당으로 데리고 가 위로하였다. 낭자는 눈물을 흘리며 한숨만 짓다가 시어머니 정씨에게,
“저 같은 계집이라도, 악명이 세상에 퍼졌는데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낭군이 돌아오면 서로 대할 낯이 없습니다. 다만 죽음으로써 세상을 잊고자 합니다.”
하고 진주 같은 눈물이 옷깃을 적시거늘 시어머니 정씨가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네가 만일 죽는다면, 선군도 결단코 너를 따라 자결할 것이니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또 있겠니.”
하고 탄식하며 침소로 돌아갔다. 이때 춘앵이 모친의 슬퍼하는 형상을 보고 울면서,
“어머니, 죽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돌아오시거든 원통한 사정이나 알려드리고 죽든지 살든지 하세요. 만일 이제 어머니가 죽으면 동춘이는 어떻게 하며 저는 누구를 믿고 살라고 그러세요?”
하고 모친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들어갔다. 낭자는 마지 못하여 방으로 들어가서 춘앵을 옆에 앉히고 동춘에게 젖을 먹인 뒤에 채복(彩服)을 꺼내서 입었다. 낭자는 슬퍼하면서 춘앵에게,
“춘앵아, 나는 죽으련다. 네 아버지가 천리 밖에 있어서 내가 죽는 줄도 모르니 죽는 내 마음도 의지할 곳이 없구나. 춘앵아, 이 백학선(白鶴扇)은 천하의 보배다. 추울 때 부치면 더운 기운이 나고 더울 때 부치면 찬바람이 난다. 잘 간직하였다가, 네 동생 동춘이 자라거든 주어라. 아아 슬프다. 흥진비래[興盡悲來_흥이 다 되면 슬픔이 이름.]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세상의 상사(常事)라 하지만, 이 어미의 팔자가 기험하여 천만뜻밖에 누명을 쓰고 너의 부친을 다시 보지 못하고 황천객이 되니, 어찌 편하게 눈을 감겠느냐. 하물며 너희 남매를 두고 어찌 죽겠느냐. 가련한 춘앵아, 나 죽은 후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동생 동춘이를 보호하여 잘 있거라.”
하고 유언하는 낭자는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춘앵이 모친을 붙들고,
“어머니, 우지 마세요. 어머니가 우는 소리에 제 간장이 끊어지는 듯하니 제발 우지 마세요.”
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다가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어버렸다. 낭자는 지극히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분함이 가슴에 가득히 맺혀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죽어서 누명을 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또 애들이 깨어나면 분명히 죽지 못하게 말리리라 생각하여 가만히 동춘을 어루만지며,
“불쌍한 춘앵 남매야. 나를 그리워하여 너희들은 어찌 살랴? 가련타 춘앵아. 너희 남매를 두고 어이가리. 애달프다. 이제 나에게 십대왕(十大王)이나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소서.”
하고
“춘앵아, 동춘아, 잘 있거라.”
하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원앙침을 돋우 베고 섬섬옥수로 비수를 들어 가슴을 찔러 죽었다. 그러자 문득 태양도 빛을 잃고 천지가 어두워지고, 천둥소리가 진동하였다. 춘앵이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모친이 가슴에 칼을 꽂고 누워 있었다. 소스라쳐 놀라 모친의 가슴에 꽃힌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다. 그러나 칼이 빠지지 않으므로 춘앵이 모친의 얼굴을 부벼대면서,
“아이고 어머니, 일어나오. 이것이 웬일입니까. 불쌍한 우리 어머니, 우리 남매를 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우리 남매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가란 말입니까. 어린 동춘이가 어머니를 찾고 울면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머니가 차마 어찌 이런 일을 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고 호천곡지(號天哭地)하며 망극 애통해하니, 그 비참한 정상에는 철석같은 간장이라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고, 토목심정(土木心情)이라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공 부부와 비복들이 놀라서 들어와 보니, 낭자가 가슴에 꽂고 누었거늘 창황망조[蒼黃罔措_너무 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하여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끝끝내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쩌지를 못하고 모두들 곡소리만 하였다. 이때 철모르는 동춘은 모친이 죽은 줄도 모르고 젖만 먹으려고 죽은 모친의 몸을 흔들며 울기만 하였다. 춘앵이 달래며 밥을 주어도 동춘은 먹지 않고 젖만 먹으려 하거늘 춘앵이 동춘을 안고 울면서,
“동춘아, 우리 남매도 차라리 어머니를 따라 죽어 지하에 가자.”
하고 뒹굴며 통곡하는 정상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삼사 일이 지난 후에 시부모가 서로 의논하기를,
“며느리가 이렇게 참혹하게 자결하였으니, 선군이 과거를 보고 돌아와서 며느리의 가슴에 칼이 꽂힌 것을 보면, 우리가 모해하여 죽인 줄로 오해하고 저도 또한 죽으려 할 것이니, 선군이 오기 전에 낭자의 시체를 빨리 장사지내는 것이 좋을까 하오.”
하고, 며느리의 방에 들어가서 시체의 염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체가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서 움직여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으나 역시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결국 백공은 이것이 무슨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초조하게 번민할 따름이었다.
이즈음에 선군은 낭자의 충고로 겨우 마음을 돌려먹고 상경하여 여관을 정하고 과거날을 기다렸다. 그날이 되자 팔도에서 선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선군이 시지(試紙)를 옆에 기고 춘당대(春塘臺)에 가서 현제판(懸題板)을 바라보니 ‘선제편배’라 되어 있었다. 선군이 한 번 보더니 일필휘지(一筆揮之)로 글을 지어서 맨 먼저 상감께 올렸다. 상감께서 무수한 글을 보시다가 선군의 글을 보시고는 칭찬하시면서,
“훌륭하도다, 이 사람의 글은 그야말로 이태백의 문체요, 조맹부의 필법이도다.”
하시고 글의 한 자 한 자 비점(批點)과 관주(貫珠)를 주시고 장원을 시킨 후에 성명의 비봉(秘封)을 떼어 보니, 경상도 안동에 사는 백선군으로 나타났다. 상감이 선군을 불러서 승정원 주서의 벼슬을 내렸다. 선군은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승정원에 입작(入爵)하였다. 이때 이 기쁜 소식을 시골에 전하는 것은 물론 낭자와 이별한 지 오래되어 회포가 간절하였다. 선군은 노비를 시켜 노부모와 낭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부친이 황급히 뜯어 보니,
“소자 다행히 천은을 입어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승정원 주서를 하여 방금 입작(入爵)하였사오니, 감축무지(感祝無地) 하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뵈올 일자는 금월 보름께나 될 것이오니 그리 아옵소서.”
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이미 죽은 낭자에게 온 편지를 시어머니 정씨가 받아들고 울면서,
“춘앵아, 동춘아, 이 편지는 네 아비가 네 어미에게 보낸 편지니 잘 간수하여라.”
하고 방성통곡하며 주었다. 춘앵이 편지를 가지고 모친 빈소에 들어가서 모친 시신을 흔들면서 편지를 펴 들고 울었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님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장원급제하여 승정원 주서가 되었다 하는데 어머니는 왜 일어나서 기뻐하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아버님 소식을 몰라서 주야로 걱정하시더니 오늘 이 편지가 왔는데 왜 반겨주지 않습니까. 나는 아직 글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읽어 드리지도 못하니 답답하옵니다.”
하고 울던 춘앵은, 할머니를 끌며,
“할머니 이 편지를 어머니 앞에서 읽어 드리면, 어머니 혼령이라도 감동할 것 같습니다.”
하고 애원하였다. 조모 정씨가 마지 못하여 낭자의 빈소에 가서 편지를 읽었다.
“주서(主書) 백선군은 한 장 글월을 낭자에게 부치나니, 그 사이에 두 분 부모님 모시고 평안하며 춘앵 동춘 남매도 잘 있는지요? 나는 다행히 용문[龍門_등용문(登龍門). 뜻을 이루어 크게 영달함.]에 올라 벼슬길에 들었으니 천은이 망극하오. 다만 그대와 이별하고 천리 밖에 있으매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오. 그대의 용모가 눈에 암암하고 그대 음성이 귀에 쟁쟁하오. 달빛이 뜰에 가득하고 두견새가 슬피 울 적에 문밖에 나가 고향을 바라보니, 운산(雲山)은 만중(萬重)이요, 녹수(綠水)는 천리로다. 새벽달 찬바람에 외기러기 울고 갈 제 반가운 낭자의 소식을 기다렸더니, 창망한 구름밖에 소슬한 풍경뿐이로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귀뚜라미 소리가 산란하니 운우양대[雲雨陽臺_초왕(楚王)이 무산녀(巫山女)와 교정(交情)한 언덕. 무산녀(巫山女)는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내린다고 하였다. 여기서 신녀(神女)의 미칭(美稱)으로, 또 남녀(男女)의 교정(交情)을 가리키는 말로 운우(雲雨)가 쓰이게 되었다.]에 초목들 바람 소리도 쓸쓸하구나. 아아, 슬프다. 흥진비래는 고금상사라, 낭자가 준 화상이 요새 날로 변색하니 필경 무슨 연고가 있을 것 같아서 식불감미(食不甘味)하고 침불안석(寢不安席)하니, 일각이 삼추(三秋)같이나, 벼슬에 매인 몸이라 뜻대로 곧 달려가지 못하오. 비장방[費長房_후한(後漢) 사람으로 호중선(壺中仙)에게서 부(符)를 받아 귀신을 채찍으로 부리는 능력을 얻었으나, 부(符)를 잃은 뒤 귀신에게 살해되었다.]의 선죽장[仙竹杖_비장방(費長房)이 귀신을 마음대로 부리던 채찍 지팡이.]을 얻었으면, 조석으로 왕래하련마는, 그 또한 극히 어려운 일이라 어쩔 수 없소. 바라노니 낭자도 독수공방을 설워 말고 기다리면 머지않아서 서로 만나 반가운 정회를 위로할 것이오. 녹양 춘풍에 뜬 해는 어디로 가느뇨. 오직 내 몸에 날개 없어서 빨리 못 가는 것이 한스럽소. 할 말은 무궁하나 편지 한 통에 다 쓸 수 없어 이만 줄이오.”
정씨가 편지를 다 읽고서 손주 딸 춘앵을 어루만지며 통곡하여 하는 말이,
“슬프다. 네 어미를 잃고 어찌 살꼬. 죽은 네 어미의 영혼이라도 너를 애처롭게 여길 것이다.”
하였다. 춘앵이 울면서,
“아이고 어머니, 아버님 편지 사연을 들으시고도 왜 아무 말도 없으십니까? 우리 남매는 어머니 없이는 살기 싫사오니, 어서 어머니 계신 곳으로 데려가소서.”
하고 슬퍼했다.
이때 백공 부부는 머지않아 선군이 올 것을 생각하고 상의하기를,
“선군이 내려오면 필경 죽은 아내를 따라서 죽으려 할 테니,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탄식했다. 이때 선군은 시종하는 노복(奴僕)이 백공 부부의 기색을 알아채고 여쭙기를,
“전번에 소상공(小相公)을 모시고 용궁으로 가실 때에, 풍산 땅에 다다르매 주루화각(朱樓畵閣)에 채운(彩雲)이 영롱하고 연못에 연꽃이 만발하고, 동산에 모란꽃이 피어 춘색을 자랑하는 곳에서, 어떤 미인이 백학(白鶴)과 더불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리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임진사(林進士) 댁의 규수라 하였습니다. 소상공께서 그 미인을 한 번 바라보시고 흠모하고 배회 주저하시다가 돌아오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으로는 그 임진사 댁의 규수와 성혼하시면 소상공이 기뻐하시고 필연코 숙영낭자를 잊으시지 않을까 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백공이 크게 기뻐하고,
“네 말이 옳다. 임진사는 나와 친한 사이니까 내 말을 괄시하지 않을 것이고, 선군이 이미 입신양명하였으니 그 댁에 구혼하기도 쉽게 되었다.”
하고, 곧 백공은 길을 떠나 임진사 집을 찾아가니 임진사가 반갑게 맞았다. 서로 인사가 끝난 뒤에 임진사는 백공의 아들 선군이 득의(得意)한 경사를 치하하고, 주과를 내어 손님 대접을 극진히 하였다. 임진사가 백공에게,
“백형이 이처럼 누지(陋地)에 왕림하시니 감사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