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하나로 / 이임순
체육대회가 끝나고 우승을 자축하는 뒤풀이 자리다. 배구에서 강한 공을 상대방이 받지 못해 점수를 얻었을 때의 함성과 이어달리기에서 우리 선수가 골인 지점을 1등으로 통과했을 때의 응원 소리 못지않게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경기장에서는 상대 팀을 의식해 기쁨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는데 우리 회원만 있으니 그때 지르지 못한 함성이 마음껏 터져 나온다.
한바탕 소리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더니 하나둘씩 일어나 분위기를 잡는다. 끼가 시동을 건다. 몸으로 끼를 발산하는 세대와 눈요기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이리 꼬고 저리 비틀어도 웃음이 쏟아진다. 풍선 분 것을 등과 가슴에 넣어 절뚝거리며 춤을 춰 배꼽을 잡게 하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옹알거리며 벙어리 시늉이다. 갑자기 떠들석하다. 각설이가 나타나 엿을 50원에 판다. 100원에 한 봉지만 달라고 해도 안 주고 50원짜리 동전을 가진 사람에게만 돈과 바꾼다. 회원은 많은데 엿은 좀체 팔리지 않고 가위소리만 요란하다.
묵직한 음성이 사방에서 데굴거리는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노래 경연이 펼쳐진 것이다. 대개 춤 잘 추는 사람은 노래 실력도 있다. 그런 그들이 부럽다.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 흥이 오른 회원이 팔을 잡아당긴다. 일어서서 쭈빗거리다 뒤로 돌아와 다시 자리에 앉는다.
노는 것도 때가 있나 보다. 젊은 회원들은 패기가 넘치는데 연륜이 있는 사람의 흔들거림은 눈에 까칠거린다. 젊음도 한때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닌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텐데 누구나 피해 가지 못하는 것 또한 나이가 아닌가 싶다. 세상사 이치대로 사는데 그것이 따라붙으니 동행할 수밖에 떼어낼 방법이 없다.
즐기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힘들이지 않고 보면서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끼와 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남에게 보여줄 것은 없으나 즐길 줄은 안다. 웃기는 모습이나 슬픈 연기에 도취 되어 질금거리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한바탕 웃거나 눈물샘을 자극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기준이 같을 수는 없으나 희노애락의 감정은 비슷한가 보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음정 박자가 따로 논다. 이런 내 실력을 알기에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를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할 경우는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춤은 몸을 좌우로 흔들며 분위기를 따라가겠는데 노래는 젬병인데 어쩌다 노래방에 갈 기회가 생기면 분위기 봐서 빠져나와 먼저 집에 오거나 대기실에서 실없이 고역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다고 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하는 양을 보고 분위기에 젓기도 한다. 노래는 못 불러도 끈기는 있다. 마음을 흔드는 호소력이 없는 대신 일하다 중간에 그만둔 적은 없다. 아무리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도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하고야 마는 인내심이 있다. 이것이 나의 버팀목이다.
지인이 내게 그랬다. 일에 도취하듯 노래도 배워보라고. 나도 한가지 정도는 못하는 것이 있어야 세상이 공평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헛웃음을 날렸다. 무엇이든지 기회가 있으면 배우려고 애쓴다. 그런데 노래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듣는 것까지 싫어하지 않는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있으면 ‘섬집 아기’나 ‘오빠 생각’을 들으며 달뜬 가슴을 가라앉힌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지난여름에는 보드게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즈음은 캘리그라피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렇다고 잘 쓰는 것은 아니다. 한 글자를 이렇게도 쓰고 저렇게도 그려보면서 변화를 시도한다. 오늘은 ‘봄’이란 글자에 매화와 개나리를 그려 넣는다. 연둣빛 새싹이 꿈틀거리기도 하고 물로 조정하여 진하고 연하게 주변도 나타낸다. 붓 놀림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새로운 변화가 계절을 등에 업는다. 그 매력에 빠져 한 장만 더 써야지 하고선 먹물이 동이 나면 보충해 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의욕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그 반대다.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것이 두 손의 손가락을 꼽을 정도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섣불리 시작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하면 당분간은 밤을 새우기 일쑤기 때문이다. 하룻밤에 숄을 뜨개질하여 지인에게 주기도 했다. 함께 가서 실을 골랐는데 다음날 가방이며 숄을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소질은 없으나 한지공예와 기본기를 익힌 오카리나도 더 배우고 싶다. 남은 생 내 하고 싶은 일 하며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주변 여건이 내 발목을 잡는다. 직장생활을 쉽사리 접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동심의 세계에서 지내는 것이 재미있어서다. 그래도 끈기는 변함이 없다.
첫댓글 선생님이야말로 만능 재주꾼이시네요. 대단하세요.
고맙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즐기면서 채워가는 중입니다.
아휴, 선생님 열정을 누가 말리겠어요. 다들 하다가 중단하기 일쑤인데 배울점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재주가 없으니 열심히 배워가는 중입니다.
호기심과 하고 싶은 일이 많으면 청춘입니다.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재주는 없습니다. 그저 좋아서 이것저것 합니다.
그 열정 제가 반만 가지고 가도 될까요? 대단한 과수원지기 선생님 함께해서 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원하면 언제든 드리겠습니다. 마음대로 가져가셔도 되구요.
존경합니다. 선생님! 저도 닮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하고자하는 의욕입니다.
선생님의 열정하나는 언제나 배우고 싶은 저랍니다. 숨어 있는 재주들이 하나, 둘 나타나 선생님의 끈기에 두 손 들거같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열정은 선생님이 저 보다 고단수지요. 노력하며 살려고 애 쓸따름입니다.
저도 마이크가 진짜 무섭습니다. 하하.
제 마음 같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은 이 마음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