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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와사바 경(D18) (*1) Janavasabha Sutta.
- 각묵스님옮김 『디가니까야』 제2권 347-376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나디까(*2)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세존께서는 까시와 꼬살라, 왓지와 말라, 쩨띠와 왐사, 꾸루와 빤짤라,
맛차와 수라세나와 같은 지역에서 신도들이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고, 이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5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9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 [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50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 [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2. 나디까의 신도들은 이와 같이 들었다.
"세존께서는 까시와 꼬살라, 왓지와 말라, 쩨띠와 왐사, 꾸루와 빤짤라,
맛차와 수라세나와 같은 지역에서 신도들이 임종한 뒤 태어난 곳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고, 이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5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9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 [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50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 [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래서 나디까의 신도들은 세존의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을 듣고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3. 아난다 존자는 이와 같이 들었다.
"세존께서는 까시와 꼬살라, 왓지와 말라, 쩨띠와 왐사, 꾸루와 빤짤라,
맛차와 수라세나와 같은 지역에서 신도들이 임종한 뒤 태어난 곳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고, 이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5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9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 [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50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 [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래서 나디까의 신도들은 세존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라고.
아난다 존자의 사색
4. 그러자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가다에 사는 많은 구참 신도들도 임종하였다.
마가다에 사는 이들 구참 신도들이 임종하니 앙가와 마가다는 마치 텅 빈 듯하구나.
그들도 부처님께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법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승가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계를 구족하였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들이 임종했는데도 아무런 설명이 없으시다.
그들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청정한 믿음을 가질 것이며 그래서 선서께로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마가다의 왕 세니야 빔비사라도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었으며
바라문과 장자들과 도시와 지방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처럼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고 임종하였다.
우리는 이처럼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신 그분의 통치 하에 편안하게 지냈다.'라고
칭송을 하면서 머문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께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법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승가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계를 구족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가다의 왕 세니야 빔비사라 왕은 임종할 때조차도
세존을 칭송하면서 임종하였다.'라고. 그는 이렇게 임종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으시다.
그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은 청정한 믿음을 가질 것이며 그래서 선서께로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깨달으셨다.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깨달으셨는데도 어떻게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했을 때
태어날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단 말인가?
만일 세존께서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한 뒤 태어날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다면,
마가다 신도들은 크게 상심할 것이다.
그들의 상심이 이렇게 큰데도 어째서 세존께서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했을 때
태어날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단 말인가?"
아난다 존자의 간청
5. 아난다 존자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 대해서 홀로 골똘히 생각한 뒤,
밤이 새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세존께로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까시와 꼬살라, 왓지와 말라, 쩨띠와 왐사, 꾸루와 빤짤라, 맛차와 수라세나와 같은
여러 지역에서는 신도들이 임종한 뒤에 태어난 곳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고, 이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5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다섯 가지의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었다.[不還者]
9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 [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500명이 넘는 나디까의 신도들은 임종하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라고.
그래서 나디까의 신도들은 세존의 설명을 듣고
마음이 흡족하고 환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6. "그런데 마가다에 사는 구참 신도들도 임종을 하였습니다.
마가다에 사는 구참 신도들이 임종하니 앙가와 마가다는 마치 텅 빈 듯합니다.
그들도 부처님께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법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승가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계를 구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들이 임종했을 때엔 아무런 설명이 없으십니다.
그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해주신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청정한 믿음을 가질 것이며 그래서 선서께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다의 왕 세니야 빔비사라도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었으며
바라문과 장자들과 도시와 지방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처럼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신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고 임종하셨다.
우리는 이처럼 정의로운 분이요 법다운 왕이신 그분의 통치 하에 편안하게 지냈다.'라고 칭
송을 하면서 머뭅니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께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법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승가에 청정한 믿음이 있었고 계를 구족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가다의 왕 세니야 빔비사라 왕은 임종할 때조차도 세존을 칭송하면서 임종하였다.'라고.
그는 이렇게 임종하였지만 세존께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으십니다.
그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해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청정한 믿음을 가질 것이며 그래서 선서께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깨달으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마가다에서 깨달으셨는데도 어떻게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했을 때
태어난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만일 세존께서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다면
마가다 신도들은 크게 상심할 것입니다.
그들의 상심이 이렇게 큰데도 어째서 세존께서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임종했을 때
태어난 곳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이와 같이 아난다 존자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 관해서 세존의 면전에서 말씀을 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 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나왔다.
7.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가 나간 지 오래되지 않아서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나디까로 들어가셨다.
나디까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시고, 걸식에서 돌아와 발을 씻고 벽돌집에 들어가셔서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 대해 알고자 마음에 잡도리하시고 모든 마음을 다하여 몰두 하신 뒤
'그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그들의 태어날 곳과 향하는 곳에 대해서 알아보리라.'고
하시면서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셔서 벽돌집을 나와
승원의 그늘에 마련한 자리에 앉으셨다.
8.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고요하게 보이시고 안색은 빛이 나며 감관은 밝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오늘 [낮 동안의] 머무심을 편안하게 잘 보내셨습니까?"
자나와사바 약카
9. "아난다여, 그대가 나에게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게 관해서
면전에서 말을 한 뒤 자리에서 물러간 후에 나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걸식을 위해서 나디까로 들어갔다.
나디까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발을 씻고 벽돌집에 들어가서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 대해 알고자 마음에 잡도리하고 모든 마음을 다하여 몰두 한 뒤
'그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그들의 태어날 곳과 향하는 곳에 대해서 알아보리라.'고
하면서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아난다여, 거기서 나는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았다.
아난다여, 그때 눈에 보이지 않는 약카가 소리를 질렀다.
'세존이시여, 저는 자나와사바(*3)입니다. 선서시여, 저는 자나와사바입니다.'라고.
아난다여, 그대는 이전에 자나와사바라는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전에 자나와사바라는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자나와사바라는 이름을 듣자 저의 털이 곤두섭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제게 '자나와사바라는 이런 이름을 가진 자는
필시 범상한 약카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10. "아난다여, 그 소리를 들은 즉시에 크나큰 형상을 가진 약카가 나의 면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두 번째로 소리를 질렀다.
“‘세존이시여, 저는 빔비사라입니다. 선서시여, 저는 빔비사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일곱 번째로 저는 웻사와나 대천왕(*4)의 일원으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거기서 인간의 왕으로 죽어서 여기서 비인간의 왕인 신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일곱 번, 저기서 일곱 번, 모두 열네 번을 저는 윤회했습니다.
저는 제가 전에 살았던 거주지를 잘 기억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 악처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는 이제 예류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확고합니다.’
‘자나와사바 약카 존자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 참으로 경이롭구나.
자나와사바 약카 존자에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그대가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는 오랜 세월 악처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는 이제 예류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확고합니다.'라고 하니
무슨 인연으로 자나와사바 약카 존자는 이러한 광대하고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는가?’”
11. “‘세존이시여, 당신의 가르침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선서시여, 당신의 가르침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전일(全一)한 믿음을 가진 그때부터
오랜 세월 악처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저는 이제 예류자가 되고자 하는 소원이 확고합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저는 웻사와나 대천왕이 보내어 위룰하까 대천왕의 곁으로
어떤 용무 때문에 가는 도중에 벽돌집에 들어와서,
세존께서 마가다에 사는 신도들에 대해서 알고자 마음에 잡도리하고
모든 마음을 다하여 몰두하신 뒤 '그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
나는 그들의 태어날 곳과 향하는 곳에 대해 알아보리라.'고 하시면서
마련된 자리에 앉아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그들이 어디에 태어나고 어디로 향하는지
웻사와나 대천왕이 회합에서 말하는 것을 직접 대면하여 파악하였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제게 '나는 세존을 뵙고 이것에 대해서 세존께 여쭈어봐야겠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런 두 가지(*5) 이유 때문에
세존을 뵙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1) 본경은 「대반열반경」(D16)에 대한 보유(補遺)의 성격이 강한 경이다.
「대반열반경」의 §§2.6~2.9에 이미 나타났듯이, 세존께서 나디까 사부 대중들이 죽어서
성스러운 과위를 증득한 것을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과
마가다의 신도들이 임종 후에 태어날 곳[行處]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
세존께서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경이다.
빔비사라왕이 죽어서 ‘자나와사바’라는 사대천왕에 속하는 힘센 약카가 되어
세존께 와서 나누는 대화가 본경의 전체 구조이다.
그래서 경의 이름도 「자나와사바 경」이다.
(*2) 나디까는 꼬띠가마와 웨살리를 연결하는 대로변에 위치한 왓지(Vajjī)족의 마을이다.
(*3) 원어 Janavasabha는 jana(사람, 백성) + vasabha(황소)의 합성어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 가운데서 황소와 같은 자란 의미이고
빔비사라 왕이 사대왕천에 태어나서 얻은 이름이다.
(*4) 웻사나와(Vesavaṇa)는 사대천왕의 한 신으로 북쪽을 관장하는 신이며
꾸웨라(Kuvera)라고도 이름하며 약카들의 왕이다.
(*5) 어떻게 하면 예류자가 될 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드리는 것과
삼십삼천의 신들의 회합에서 마가다의 신도들이 삼십삼천에 태어난 이야기를 하며
기뻐했던 소식을 알려드리는 두 가지 목적을 말한다.
신들의 회의
12. "세존이시여, 옛날, 아주 옛적부터 보름의 포살일에,
그 결제가 시작되는 보름날 밤에
삼십삼천의 신들이 모두 수담마 의회(*1)에 모여 앉았는데,
큰 하늘의 회중들이 모두 모여 앉았습니다.(*2)
사대왕천은 네 방위에 앉았습니다.
동쪽 방위에는 다따랏타 대천왕이 서쪽을 향하여 신들을 앞에 하고 앉습니다.
남쪽 방위에는 위룰하까 대천왕이 북쪽을 향해서 신들을 앞에 하고 앉습니다.
서쪽 방위에는 위루빡카 대천왕이 동쪽을 향해서 신들을 앞에 하고 앉습니다.
북쪽 방위에는 웻사와나 대천왕이 남쪽을 향하여 신들을 앞에 하고 앉습니다.
세존이시여, 삼십삼천의 신들이 수담마 의회에 모두 모여서
큰 하늘의 회중들이 모두 모여 앉았을 때 사대천왕들은 네 방위에 앉습니다.
그 다음이 그들의 자리입니다. 그 다음이 우리들 약카들의 자리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은 뒤 최근 삼십삼천에 태어난 신들은
다른 신들보다 용모와 명성이 훨씬 뛰어납니다. 그래서 삼십삼천의 신들은
‘참으로 하늘의 무리는 가득 차고 아수라(*3) 무리는 줄어든다.’고
마음으로 흡족해 하고 환희로워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1) 원어는 Sudhamma sabha이다. sudhamma는 '좋은 법'이란 뜻이며,
sabha는 현재 인도에서는 국회를 뜻하는 용어로 쓰이듯이 '의회, 회의, 회합'등을 뜻한다.
(*2) 신들은 다음의 네 가지 경우에 모인다고 주석서는 적고 있다.
“그들은 네 가지 경우에 모인다. ① 안거에 들어가는 회합을 위해서
② [안거를] 마치는 회합을 위해서 ③ 법을 듣기 위해서
④ [심십삼천에 있는] 산호나무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 이다.”(DA.ⅱ.639)
(*3) 아수라(asura)는 신(deva)들과 항상 싸우는 존재들로 『리그베다』에서부터 나타나며,
그 후 많은 인도의 고대신화에 등장한다.
전투의 신인 인드라(Indra, Sakka)는 그래서 아수라를 물리치는 왕으로 리그베다에서 아주 많이 묘사되고 있으며,
본서 「대회경」(D2) §12와 「제석문경」(D21) §2.7에서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아수라의 어원으로 보면 서아시아에서 유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에 나타나는
신이나 주(主)의 개념인 아후루(ahuru)를 나타낸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승불교에서는 아수라를 악도에 포함시키지 않고 인간보다도 수승한 존재로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서 제3권 「빠띠까경」(D24) §1.7에서처럼 저열한 아수라들은 신들과 버금가는 아수라는 아니다.
그래서 아비담마에서는 아수라를 악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5장 §4의 해설 4와 §11의 해설3 참조)
13. "세존이시여, 그러자 신들의 왕 삭까(인드라)가
삼십삼천의 신들이 청정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이런 게송으로 기쁘게 합니다.
'오, 참으로 삼십삼천의 신들은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여래와 좋은 가르침인 법에 귀의합니다.
용모를 갖추고 명성을 가진 새로운 신들을 보나니
그들은 선서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고 여기에 왔으며
용모와 명성에서 다른 자들을 크게 능가합니다.
광대한 통찰지를 가진 분의 제자들은
특별히 여기에 왔나니
이것을 보고서 삼십삼천의 신들은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즐거워합니다.
여래와 좋은 가르침인 법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삼십삼천의 천신들은 '참으로 하늘의 무리는 가득 차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어든다.'고 더욱더 마음으로 흡족해 하고 환희로워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14. “세존이시여, 그러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수담마 의회에 모여 앉아
그들이 모이게 된 안건을 심사숙고하고 그 안건을 토의합니다.
그리고 논의하여 결정된 것은 사대천왕들에게 각각 통보하고 하달됩니다.
그러면 사대천왕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선 채로 움직이지 않고 그 안건을 통보받고 하달 받습니다.
그 왕들은 결정된 대로 따르는 자들이어서
명령된 것을 수지하나니
밝고 고요한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범천 사낭꾸마라 일화
15. “세존이시여, 그러자 북쪽 방향에 광대한 빛이 인식되면서 광명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신들의 광채를 능가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신들의 왕인 삭까가 삼십삼천의 신들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존자들이여, 저런 표상이 보이고 저런 광명이 생기고 저런 빛이 드러나는 징후가 보이면
그것은 범천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광명이 생기고 빛이 드러나는 징후가 보이면
그것은 범천이 출현하는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표상이 보이기 때문에 범천이 출현할 것이니
범천에게는 풍부하고 큰 빛이라는 전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16. “세존이시여, 그러자 삼십삼천의 신들은 ‘우리는 이 광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아야겠다.
그것이 눈앞에 가시화되면 그때 그에게 다가가야겠다.’라고 하면서 모두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뒤 삼십삼천의 신들은 모두 '우리는 이 광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아야겠다.
그것이 눈앞에 가시화되면 그때 그에게 다가가야겠다.'라고 하나로 동의했습니다.”
17.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4)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할 때는
거친 자기 모습을 창조한 뒤에 출현합니다. 세존이시여, 범천의 본래 모습은
삼십삼천의 신들의 눈의 영역으로는 체험하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할 때에
그는 용모와 명성에서 다른 신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황금으로 만든 형상이 인간의 형상을 훨씬 능가하듯이,
범천 사낭꾸마라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할 때에
그는 용모와 명성에서 다른 신들을 훨씬 능가합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할 때
그 회중의 어느 한 신도 절을 하거나 일어서거나 자리를 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 '이제 범천 사낭꾸마라께서는 그가 원하는 신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다.'라고
여기면서 침묵한 채로 합장하고 가부좌하고 앉아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앉는 자리를 가진 그 신은 크나큰 만족과 크나큰 기쁨을 얻게 됩니다.
마치 방금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이 그의 왕실에서 엄청난 감격과 엄청난 기쁨을 얻는 것처럼,
범천 사낭꾸마라가 앉는 자리를 가진 그 신은 엄청난 감격과 엄청난 기쁨을 얻게 됩니다."
(*4) 원어는 Sanaṅkumāra인데 문자적으로는 ‘항상(sanaṃ) 동자(kumāra, 소년)인 자’라는 뜻이다.
18. "세존이시여, 그러면 범천 사낭꾸마라는 거친 자기 모습을 창조하여
빤짜시카(*5) 동자의 용모를 하고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출현합니다.
그는 공중으로 올라가 허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잘 덮인 좌상이나 고른 땅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 것처럼
그와 같이 범천 사낭꾸마라는 공중으로 올라가 허공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뒤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청정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서 이런 게송으로 기쁘게 합니다.
‘오, 참으로 삼십삼천의 신들은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여래와 좋은 가르침인 법에 귀의합니다.
용모를 갖추고 명성을 가진 새로운 신들을 보나니
그들은 선서의 문하에서
청정범행을 닦고 여기에 왔으며
용모와 명성에서 다른 자들을 크게 능가합니다.
광대한 통찰지를 가진 분의 제자들은
특별히 여기에 왔나니
이것을 보고서 삼십삼천의 신들은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즐거워합니다.
여래와 좋은 가르침인 법에 귀의합니다.’ 라고”
(*5) “빤짜시카 간답바 신의 아들은 모든 신들이 아주 좋아하는 모습(atta-bhāva)이다.
그래서 범천도 그와 같은 자기 모습을 창조한 뒤에 나타난다.”(DA.ⅱ.640)
19.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는 이런 뜻을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이런 뜻을 말한 그 목소리는 여덟 가지 특질을 구족합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고, 선율이 있으며,
관심을 끌고, 함축적이고, 늘어지지 않고, 깊고, 낭랑합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의 목소리는 회중에게만 들렸고
회중 밖으로는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이와 같이 여덟 가지 특질을 구족한 목소리를 범천의 목소리라 부릅니다."
20. “세존이시여, 그러면 범천 사낭꾸마라는 서른세 가지로 자기의 모습을 창조한 뒤
삼십삼천의 신들의 각각의 자리에 가부좌하고 앉아 삼심삼천의 신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삼십삼천의 신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존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도를 닦으셨습니다.
존자들이여, 누구든지 부처님을 의지처로 하고, 법을 의지처로 하고, 승가를 의지처로 하고,
계를 잘 지니는 자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어떤 자들은 타화자재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어떤 자들은 화락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어떤 자들은 도솔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어떤 자들은 야마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어떤 자들은 삼십삼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어떤 자들은 사대왕천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가장 낮은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간답바의 무리에는 태어납니다.”(*6)
(*6) 불·법·승을 믿고 계를 지니는 불자들은 여섯 가지 욕계천상[六欲天]에 태어난다는 말이다.
21.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는 이런 뜻을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범천 사낭꾸마라가 이런 뜻을 말한 그 목소리를 두고
신들은 ‘이분은 나의 자리에 앉아 오직 나에게만 설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이 설하면 모든 창조된 분들도 [동시에] 설하며
한 분이 침묵하면 그들 모두는 침묵한다.
그러면 삼십삼천의 신들은
그들의 우두머리와 함께 생각하기를
이분은 나의 자리에 앉아
오직 나에게만 설하신다고 한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닦음
22. “세존이시여, 그러면 범천 사낭꾸마라는 자기 모습을 하나로 만듭니다.
자기 모습을 하나로 만든 뒤 신들의 왕 삭까의 자리에 앉아 삼십삼천의 신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삼십삼천의 신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7)을 천명하셨고,
또 그 성취수단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들어 행하고,
어떻게 변환시키는가도 천명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그 넷인가요?
존자들이여, 여기 비구는
열의를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8) 성취수단을 닦습니다.
정진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습니다.
마음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습니다.
검증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을 닦습니다.
존자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서는
이러한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천명하셨고, 어떻게 성취수단을 가능하게 하고,
어떻게 성취수단을 받들어 행하고, 어떻게 성취수단을 변환시키는가도 천명하셨습니다.
존자들이여, 과거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여러 가지로 성취수단을 체득했던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입니다.
존자들이여, 미래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여러 가지로 성취수단을 체득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입니다.
존자들이여, 지금의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여러 가지로 성취수단을 체득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입니다.
삼십삼천의 신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이러한 성취수단을 체득한 것을 봅니까?’
‘그렇습니다, 대범천이시여.’
‘존자들이여, 나도 이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닦고 많이 [공부]지었기 때문에
이처럼 큰 신통을 가지고 큰 위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7) "완성한다는 뜻에서, 성취한다는 뜻에서, 이것을 통해 중생들이 성공하고, 성장하고, 증진하기 때문에
성취(신통, iddhi)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신통지(초월지, 최상의 지혜, abhiñña)의 마음과 관련된
열의 [등을] 주로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가 얻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삼매와 의도적 행위의 토대(adhiṭṭhāna)라는 의미에서 수단(pāda, 기초)이라 한다.
여기서 수단(기초)이란 나머지 마음과 마음부수의 더미라는 뜻이다." (DA.ii.641 ; 청정도론 XII.52)
주석서는 덧붙이기를 "그리고 근접삼매는 수단(기초)이고 초선은 성취이다.
근접삼매를 가진 초선이 수단이고 제2선은 성취이다.
이와 같이 이전의 단계는 수단(pāda)이고 뒤의 단계는 성취(iddhi)이다. 이와 같이 그 뜻을 알아야 한다.(DA.ii.641)
한 마디로 말하면 성취수단이란 삼매라는 성취를 얻는 수단을 말한다.
즉 열의, 정진, 마음, 검증의 네 가지를 통해서 이러한 수단과 성취를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삼매를 닦음으로 해서 신통지(최상의 지혜, 초월지)가 생기고 높은 천상에 태어난다.
그래서 범천은 이러한 삼매의 성취수단을 칭송하는 것이다.
(*8) 원문은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라는 긴 합성어이다.
주석서는 이를 chandasamādhinā ca padhānasaṅkhārena ca samannāgataṃ으로 일차적으로 분석한다. (DA.ⅱ.641)
그래서 역자는 ‘열의를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saṅkhāra, 行]를 갖춘’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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