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뀌어서 유배 온 왕비와 부용산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의 부용산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 ‘부용산(芙蓉山)’이 있다.
부용산은 “산이 푸르고 강물이 맑아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보는 것 같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에는 청계산(淸溪山)과 형제봉(兄弟峯) 등이 있으며, 산이 낮아서 누구나 쉽게 등산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부용산 정상에서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양평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 부용산에는 방귀 뀌어서 유배 온 왕비가 살았다는 설화가 전한다.
고려시대 무렵이다.
한 왕비가 결혼 한 첫날 밤에 왕 앞에서 소리를 내어 방귀를 뀌었다.
물론 왕비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왕비 스스로도 모르게 긴장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방귀를 뀐 왕비에게 왕은 크게 화를 내어 그 다음날 바로 양평의 부용산으로 귀양을 보냈다.
결혼 첫날밤에 방귀 뀌어 쫓겨 난 왕비는 서러움을 견디며 부용산에서 살았다.
그런데 왕비가 쫓겨날 때 이미 뱃속에 왕자를 잉태하고 있었다.
왕자는 부용산에서 달을 채우고 태어났다.
왕자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총명하였다.
시간이 흘러 왕자는 소년이 되었고, 마을 또래 아이들은 그 소년에게 ‘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놀렸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소년은 어머니를 찾아가 “저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물었고, 왕비는 아들이 장성하였기에 이제 알려주기로 했다.
“너의 아버지는 이 나라의 왕이시다. 그리고 너는 이 나라의 왕자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소년은 아버지가 있는 도성으로 들어갔다.
도성에 간 소년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아다니며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는 오이씨를 사시오!”하며 외치고 다녔다.
처음 며칠 동안은 도성 사람들이 “미친 놈 아니야.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 먹는 오이가 어디 있어?” 했으나, 소년이 매일 같이 외치고 다니는데다, 소년이 생김새도 범상치 않아서 그 연유가 점차 궁금해졌다.
도성 안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왕에게도 그 소문이 들어갔다.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해서 그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다.
왕 앞에 불려 온 소년은 왕에게 “분명 이 오이씨는 저녁에 심었다가 아침에 따먹는 오이입니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조건을 꼭 지켜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것이 무엇이냐?” 물었고, 소년은 “그 조건이란 다름이 아니라 밤새 아무도 방귀를 뀌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소년의 말을 들은 왕은 과거 왕비가 방귀를 뀌어 쫓아낸 일이 생각이 났다.
왕은 소년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이내 소년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왕은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묻고, 왕비를 다시 궁궐로 데려오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왕비는 궁궐로 돌아가지 않고 부용산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위의 설화는 결혼 첫날밤에 방귀 뀌어 쫓겨난 왕비와 지혜로 자신의 신분을 밝힌 왕자에 얽힌 이야기다.
‘아침에 심어 저녁에 따 먹는 오이’라는 민담이 전설로 전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부용산 정상을 양평군 사람들은 ‘부인당’이라 부른다.
부용산에서 죽은 왕비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부용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었을 정도로 신성하게 여겼다.
특히 산에서 땔감을 하거나, 우물을 발견하면 목숨을 잃는다는 설화도 함께 전해진다.
곧 방귀를 뀌어 쫓겨난 왕비의 억울함을 양평군 사람들은 산신으로 보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