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버릇 개 못준다
옛날에 경상도 거창 땅에 '정원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정원용은 어려서부터 도량과 지모가 어른 못지않게 뛰어나서 동리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그의 나이 열 대여섯 살이 되는 어느 해, 그는 건너마을에 사는 한 규수와 혼인을 맺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내될 신부의 성질이 몹시 사납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정원용은 마음 속으로 큰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약혼을 한 처지에 가문을 생각해서라도 파혼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끙끙 가슴앓이를 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월은 막을 수가 없어서 언약한 결혼 날이 박두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정원용은 밥상을 물리고 나서 쓴 입맛을 다시며 신부에 대해 이리 궁리, 저리 궁리 답답한 심정을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있던 차에 좋은 꾀가 퍼뜩 생각났다.
"그렇지, 왜 진작 그런 꾀를 생각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정원용은 무릎을 탁 치고는 만면에 희색을 띠우고 눈을 지긋이 감으며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약정한 결혼날이 다가와 초례를 치루었다.
정원용은 시치미를 딱 떼고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며 대취하고 말았다.
물론 이것도 그의 계략의 하나였다.
밤이 이슥하여 친구들을 작별하고 비실거리는 발걸음으로 아담하게 꾸민 신방을 찾아들자 그대로 옷을 입은 채로 쓰러져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이꼴을 당한 신부는 분하고 원통한 생각이 가슴을 뒤흔들고 사지가 사시나무 떨리듯 했다.
그러나 어쩌랴, 신혼 초야에 쪽도리도 벗겨 주지 않고 옷도 벗겨 주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 자기 혼자만 술이 만취되어 쓰러져 잔다고 앙탈을 하고 싸울 수도 없는 신부의 몸이라 그저 속만 태웠다.
밤은 이미 깊어 사방은 괴괴히 인적도 없이 삼라만상이 잠이 들었는데, 촛불만이 너울너울 춤을 추는 속에 그저 신랑의 코 고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칠 뿐이었다.
신부는 답답하고 초조했다. 후회가 막심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할 수없이 신부는 자기 손으로 쪽도리를 벗고 부화가 치미는 대로 옷을 아무렇게나 훌훌 벗어 던지고 신랑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만 자릿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신혼의 황홀한 꿈도 잊은 채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며칠간을 긴장 속에 보낸 신부는 금새 분한 생각도 잊고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 밤중이 되자 정원용은 조갈을 느끼며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자기가 처음 생각한 대로 똥을 누어서 신부가 싼 것처럼 신부의 속옷 속에다 발라서 뭉게 놓고 냉수를 한 그릇 꿀꺽꿀꺽 마시고 다시 자리에 들어 잠이 들었다.
신부는 그런것도 모르고 며칠을 긴장과 화려한 꿈에 잠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던 터라, 잠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깊은 잠에 취해 동창이 밝는 줄도 모르고 자다가 놀래서 깨어보니, 날은 훤히 밝아 오는데 어디선가 향기롭지 못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다.
황급히 주변을 살펴보니, 신랑은 원래대로 골아 떨어져 코를 골며 깊은 잠에 취해 있고 별 이상이 없는데, 황급히 몸을 뒤치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악취는 바로 자기의 몸에서 풍겨오는 것이었다. 놀라서 벌떡 일어나 살펴보니 말이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은 불을 끼얹은 듯 화끈화끈 달아와서 신부는 몸둘 곳을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신랑은 천연덕스럽게 눈을 뜨고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 왜 그러시우?"
이 지경이 되고보니 신부는 울고만 싶었다. 그렇다고 울 수도 없고,..
그래서 대답도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데,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냄새요?"
하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랑이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이다.
신부는 쥐구멍을 찾아 들어갈 수도 없고 그저 죽고만 싶었다.
그제서야 신랑은 짐짓 능청을 부리며,
"아마 너무 긴장을 해서 그랬나 보오. 피로할 때에는 그런 실수 할 수도 있으니, 너무 부끄러워 말구려!~ "
하고 짐짓 위로를 했다.
신부는 울고싶도록 신랑의 아량에 감사를 했다.
이로부터 신부는 신랑의 말이라면 무엇이고 불평 한 마디 없이 척척 들었다.
만약에 신랑이 첫날밤의 그 꼴을 이야기 한다면,..
그저 부인은 말없는 남편이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였다.
이 후, 정원용은 벼슬도 하고 환갑이 지나 칠십여 세까지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 살았다.
하루는 정씨가 생각하기를, 이제는 부인에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관계치 않겠지 생각하고,
"내 이제는 무어 숨길 필요가 없겠기에 지나간 이야기를 하리다."
하고 잘 기른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평생에 당신에게 한 가지 죄를 진 적이 있소."
"무엇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정원용은 혼인 초야의 사실을 상세히 얘기해 주었다.
이 말을 다 들은 부인은 분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원통하고 분해서 죽겠네. 그런 것을 나는 정말로 내가 저지른 줄만 알고 한 평생을 기가 죽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살았다니,.."
"다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오."
"무엇이 어째고 저째요?"
부인은 화를 불같이 내어 남편이 쓰다듬고 있던 수염을 나꿔채어 부인 손아귀에는 정원용의 수염이 모조리 뽑혀서 들려져 있었다.
이때부터 정원용의 턱에는 수염이 없었다.
이래서 <제 버릇 개 못준다.>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