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루투갈 리스본 대지진
1755년 11월 1일,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 리스본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이후 이어진 여진과 쓰나미와 화재로 인해 포르투갈 타 지역,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 큰 피해를 입혔던 대지진.
아조레스-지브롤터 단층이 이 지진과 1969년 포르투갈 대지진의 원인이다.
포르투갈의 경제사학자 아우베이루 상투스 피이히이라는 200,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리스본 인구 중 30,000~40,000명, 모로코 해안 등지에서 10,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지진과 이어진 여진, 쓰나미 및 화재로 인해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를 종합하면 40,000명에서 50,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산 피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으나 리스본 시에서만 대략 1만 채의 건축물들이 붕괴되었는데, 이는 리스본의 건물 중 8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왕궁은 물론 약 7만 권의 장서와 티치아노, 루벤스, 카라바조 등의 작품을 소장한 도서관도 함께 붕괴되면서 많은 자료가 유실되었다.
이러한 피해를 입힌 리스본 지진의 의미는 상당하다.
지진이 발생한 18세기 중반은 포르투갈, 스페인과 같은 이베리아반도의 해외 식민 제국 선두 주자들의 위세가 한풀 꺾인 시기였다.
하지만 대항해시대와 근대를 시작하며 이루어낸 세계화라는 역사적 과정을 열어 젖힌 해상 왕국 포르투갈의 심장인 리스본은 그 상징적 중요성과 내부적 영화로 여전히 위세가 높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역사적인 의미가 깊고, 문화 유산과 부로 휘황찬란했던 도시가, 지진에 큰 피해를 입었다
정도가 아닌, 알파마 지구 등 몇몇 구역을 제외한 대부분이 문자 그대로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니 물리적 피해를 넘어 정신적 충격이 엄청났던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종말을 방불케하는 재난이 지나간 후 포르투갈 가톨릭, 영국 성공회, 영국 개신교(성공회 제외) 성직자 생존자들은 평소 서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으르렁대던 원수 지간이었는데도 서로 함께 기도하며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1755년 11월 1일 만성절 오전 9시 40분,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최초의 진동은 약 5분간 지속되어, 전술한 대로 리스본의 건물 85%를 파괴했다.
축일을 맞아 초만원이었던 성당 안의 신자들이 일차적으로 참사를 당했으나, 포르투갈 왕실은 개인적인 일로 리스본을 잠시 비운 상황이었고, 귀족들은 관례적으로 약간 늦게 미사에 참례했기에 도착이 늦어져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의 상황은 끔찍했다.
지진이 닥치기 전까지 리스본은 교회의 행사와 사람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그들이 곧 대재앙을 맞이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축제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지진이 강타하자 축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반전이 되어 공포와 비명으로 변했고,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깨짐과 동시에 촛대들이 넘어지면서 곳곳에 화재가 일어났다.
거의 모든 건물들이 붕괴하는 아비규환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화재를 피해 건물이 없는 탁 트인 곳이 안전할 것이라 판단하고 부두와 강 등 물가로 몰려갔다.
그러나 이런 희망을 품고 모여든 그들을 맞이한 것은 수평선에서부터 몰려오는 해일이었다.
지진 발생 약 40분 후, 이미 해저가 드러날 정도로 물이 후퇴한 바다에서 거대한 해일이 밀려와 타구스 강과 부두, 도심지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뒤늦게 항구에서 멀어지고자 도망쳤으나 쓰나미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바닷물이 덮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로 인해 간신히 살아남았던 대다수의 생존자들이 사망했으며 현대의 지진학자들은 당시 지진이 리히터 8.5~9.0(보통 리히터 8.7) 정도에 달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다.
해일의 근원지는 320km 떨어진 대서양의 카보베르데 제도 해저였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그 뒤 해일이 2번 더 왔고, 이 파도들은 대서양과 마주한 유럽 해안 전체에 퍼져 아일랜드의 골웨이와 잉글랜드 대부분의 해안에도 영향을 주었다.
해일이 덮치지 않은 곳에서는 화재가 일어나 5일 밤낮으로 타올랐고, 지진으로 인한 건물 파손과 잇따른 화재는 도시의 중심지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당시 생존자들이거나 리스본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에 몰려온 강도와 범죄자들이 넘쳐나 한때 아름다웠던 수도 리스본은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의 도가니 자체로 변해버렸다.
국왕은 이 소식을 듣고 귀족들과 함께 서둘러 귀환했다.
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이미 폐허로 변한 리스본이었다.
전쟁이 났더라도 이정도의 폐허는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파괴된 수도의 모습에 왕이나 귀족들도 경악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수도의 핵심 장소인 왕궁에 보관되던 행정 체계와 신대륙에서 목숨 걸고 탐험한 모험가들이 그린 지도, 각종 유서 깊은 기록들까지 불타 버려 문제가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