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
허진호의 <암살자(들)>을 보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나에게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와 이창동의 <가능한 사랑>과 허진호의 <암살자(들)> 중에서 하나만 골라 달라고 한다면, 당신이 골라주는 그 한 편만 보겠다고 한다면 나는 <암살자(들)>을 선택하겠다.’ 오늘 나는 <암살자(들)>을 한 번 더 보았다. 여기에서 이 작품을 분석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알러지성 결막염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고, 내 몸을 장악한 항히스타민은 두뇌가 명민하게 작용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분석보다 더 급한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것을 몇 가지 적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영화를 보면서 맨 먼저 떠올랐던 것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1999년작 <썸머 오브 샘(Summer Of Sam)>이었다. <썸머 오브 샘(Summer Of Sam)>은 ‘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연쇄살인마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연쇄살인마 자체를 따라가기보다는 연쇄살인마가 나왔던 당시의 미국 사회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다룬다. 나는 허진호의 <암살자(들)>도 <썸머 오브 샘(Summer Of Sam)>과 문법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영화는 1974년 8월 15일에 일어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의 범인이 혹은 배후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감독이 육영수 여사의 암살 배후로 박정희를 연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특정 배우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하는 것은 나에겐 개그콘서트다.
박찬욱의 <어쩔 수가 없다>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그리고 이창동의 <가능한 사랑>은 영화라는 것을 알고 보는 작품이다. 허진호의 <암살자(들)>도 물론 영화다. 관객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암살자(들)>이 다른 세 작품과 다른 지점이 하나 있다면 영화를 보면서 하나씩 쌓아져 올라가는 관객의 감정선이 영화의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1974년 그때의 한국 사회가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정확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허술하다고 한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암살의 범인이나 배후가 누군지를 주장하려고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그러니 창작자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 시퀀스들을 편집했다고 해서 분노할 일이 아니다.
영화는 인간을 억압하는, 억압했던, 어쩌면 지금도 남아있는 억압의 기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좋았다. 육영수에게 총을 쏜 사람을 밝히는 영화도 재미있겠지만 말이다, 육영수 저격 사건이 정확한 해결 없이 어떻게 묻히게 되었는지, 왜 묻히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편이 훨씬 영화적이지 않은가? 그것이 창작자들이 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1974년에 있었던 영부인 암살 사건의 해결은 수사관이나 법에서 할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동아일보(영화에서는 동성 일보) 기자들의 피눈물 나는 자유 언론에 대한 갈망이 이 영화의 한 주축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70년대를 잘 모르는, 그러니까 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잘 모르는 한 20대는 왜 이 영화에 언론의 자유에 대한 부분이 크게 들어갔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당연하다. 20대들아, 니네 나라 역사 좀 공부해라!
이 영화의 문법에 대해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동성 일보 사회부 기자들이 모여 여권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김대명이 자신이 독일 유학을 갈 때 얼마나 여권을 만들기 힘들었는지 얘기하려 할 때 옆에서 다른 기자가 ‘여권 만들기가 힘들었다’는 한마디로 정리해버리는 장면이 있다. <암살자(들)>은 그렇게 편집되어 있다. 영화에 필요한 부분만 나온다. 대사들은 간결하고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만약 이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볼 마음이 있다면 몇 번이고 다시 봐야 한다. 대사와 대사, 장면과 장면이 찰떡으로 붙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관객의 감정선을 쌓아 올린다.
유해진이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 위해 멈춰서야 하는데도 멈춰서지 않고 고개를 갸웃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이 사회와 국가, 국가에 대한 애국심에 존재하는 틈을 알아버린 것이다. 예전에는 극장에서도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모두 일어서서 경건한 자세로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애국가를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해서 광주의 80년 오월을 알게 된 후부터였다. 나 역시 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틈을 알아버린 것이다. 물론 외국에 나가면 다르다. 혹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활약하여 국가가 흘러나올 때도 다르다. 하지만 인간은 어느 순간 자신이 속한 사회에 있는 틈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무척 혼란스러운 그 순간이 인간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허진호의 이 영화, <암살자(들)>이 누구에겐가는 그런 틈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영화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진짜 헉, 소리 나게 연기하여 영화를 빛나게 하였다. 그래서 나처럼 주연 배우 세 명(박해일, 유해진, 이민호)만 알고 누가 출연하였는지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보물찾기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놀란의 <오디세이>를 뛰어넘는 캐스팅이었다. 문태광(문세광)의 형 역으로 나오는 박해준이나 검사 역으로 나오는 박성훈 등을 비롯하여 단 한 장면을 위하여 보석 같은 배우들이 열연하였고, 주연급인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대단했다. 특별출연한 배우만 21명이라는데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왠지 알 것도 같다. 만약 장면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자유 언론을 외치며 구타당하는 동료들을 찍기 위해 책상으로 올라간 이민호가 사진기를 치켜든 순간 총소리 같은 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정지하는 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