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7년 남진원의 문학 일생사(一生事)
허명자조(虛明自照), 송백지상(松柏之像)
2017년 강원시조문학회 총회에서 남진원 부지회장에 선임.
2016. 12. - 2017, 1. 한국문인협회 강릉지부장 권한대행
2017년 강릉문인협회 수석 부회장 선임
2017년 강원도 문인협회 부지회장(아동문학분과회장) 선임
2015년- 2016 - 2017- 2018년 강원도 아동문학회 회장 (강원아동문학회)
2017년의 새 해
- 그 전날 12월 31일
2016년 12월 31일은 토요일이고 맑았다. 한 해를 성실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천금보다 더 좋은 날들이었다.
저녁에 강원아동문학회원들에게 총회 일자를 알리면서 신년 메시지를 함께 보냈다.
동요 관리를 하고 있는 서울의 이상록씨께서 택배로 귤 한상자를 보내주셨다. 후일 이 귤을 먹어 보았는데 귤 중에서 가장 맛이 있는 귤이었다. ‘참 고마웠다.’ 이 말로는 뜻을 다 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저렇게 2016년을 다 보내고 새로 2017년을 맞이하였구나.
2017년
1월 1일 일요일. 날씨가 맑았다.
문필봉에 눈이 쌓였다. 새해 첫 날,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 햇빛이 부시도록 싱그러웠다.
이곳에 들어온지 5년, 제일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한다. 고요롭고 정겹다. 내 마음에 큰 산 하나를 얻은 것 같았다.
감나무에는 감이 얼었지만 새들이 날아들었다. 이 겨울에 참 좋은 양식일 것이다. 새들이 이웃집을 찾아드는 아이들 같았다.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였다.
새해 첫날
앞산, 문필봉에 눈이 덮였다
밤새
하얀 그림을 그려놓았구나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답고 멋진 모습
꿈인냥 즐겁다
햇빛이 눈부시도록
쓰다듬듯
내리쬐니
雪山의 眞面目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제일 아름다운
아침
고요와 정겨움이 손을 잡고
내 마음에
큰 산 하나를 선물하였구나
새해 첫날.
1월 2일 월요일. 맑았다.
집 주인에게 부친의 묘 이장일을 알려드렸다. 7월 15일로 날이 잡혔다.
내일은 예총 각 지부장의 회의가 있다고 참석하라고 하였다. 오후 2시였다. 1시 버스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이광식 지부장이 자리를 내 놓고 내가 강릉문협 권한 대행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두 번 째 시해설 ‘밤으로 흐르는 강’은 박유석씨의 시집이었다. 해설을 써서 보냈다.
쑥물로 발을 씻었다. 난초 두 개의 분에 물도 주었다. 매일 내가 게으름을 떨기에 난초들은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고난의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았다.
어제는 문우들하고 진고개를 넘었다. 너무 오래 앉았기에 소화가 안 되었다.
2017년 1월 3일 화요일 맑음
새해 셋째 날이다. 예총지부장 회의에 유금숙 사무국장과 함께 참석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처음 가서 그냥 조용히 앉아 있다가 왔다.
2017년 1월 4일 수요일 맑음
오후 1시 버스로 내려갔다. 한울림문학 14집 정산서를 등기 우편물로 중앙동우체국에 가서 보냈다.
중앙시장의 2층 <고향먹거리>에서 완묵씨 부부, 김광자 시인과 돌솥밥을 먹고 헤어졌다.
2017년 1월 5일 목요일. 눈
아침 8시 30분에 함박함박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년 1월은 아주 마음에 든다.
함박눈
함박눈이
내린다
함박눈은 하늘 나라에서 피운 꽃잎인가
꽃잎을 뿌리는 듯
눈이 날린다
겨울 추위가
혹독해도
노래하듯 친구에게 눈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웃을 수 있는 건
함박
함박 내리는
하얀 꽃잎,
눈 덕분이지.
2017년 1월 6일 금요일. 맑음
강릉문인협회 권한 대행으로 강릉 지부장 선거 진행을 하였다. 심은섭씨가 당선되었다. 집에 있는 의사봉을 가지고 가서 두드렸다.
- 명심보감 ‘순명편’ - 에 있는 좋은 이야기를 알았다.
時來風送騰王閣 시래풍속등왕각
運退雷轟薦福碑 운퇴뢰굉천복비
때가 오니 바람이 등왕각으로 왕발을 보내고
운수가 물러가니 가난한 선비는 천복비에 벼락이 떨어졌다.
등왕각은 염백서가 세운 정자 이름이다. 동정호 부근에 왕발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왕발이 꿈을 꾸었는데 망당산 신령이 계시를 해주었다. 왕발은 신령의 도움을 받아 순풍속에 배를 타고 하룻 밤 사이에 남창 칠백리를 가서 등왕각 서문을 지어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송나라 때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은 어떤 부자가 말하길, 구양서가 쓴 천복비의 비문을 탁본해 오면 큰 돈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갖은 고생 끝에 천복비에 도착했다. 그러나 천복비가 벼락을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돈벌이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다.
인간세상사는 모두 그 운명이 결정 되어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운이 따르지 않으면 어떠랴, 오직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할 뿐이다.
대변을 3회나 보았다. 오후엔 변을 보는 데엔 좋지 않은 곶감 4개를 먹었다.
2017년 1월 7일 토요일. 맑음
기온은 영하 1도였다.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베개 2개를 바깥에서 9번을 흔들며 털었다. 마주 치는 소리가 산울림이 되어 소리를 내었다.
2017년 1월 8일 일요일.
어젯밤 1시에 누웠다.
박유석 씨 시 해설을 쓰는 일로 …
최종 시집 『하늘 가는 길』만 남겨놓은 채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났다.
4시간의 수면이었다.
2017년 1월 9일 월요일.
영하 3도였지만 춥지 않은 날이었다.
솔밭추어탕 집에서 임원회의가 있었다. 강릉 문협 사무인계 때문이었다.
방터골로 올라올 때 순두부와 크림빵을 사 가지고 왔다.
2017년 1월 10일 화. 맑음 영하 3도
박유석 연구를 마무리하여 메일로 보냈다.
내가 여태껏 쓴 글 중에서 가장 긴 평론이었다. 저녁에는 또순이 횟집에서 회를 먹었다. 최 선생차에 편승하여 왔다. 신완묵, 이광식 회장과 함께였다.
2017년 1월 11일 수, - 6도
바깥은 추운 날씨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어제는 대변을 두 번 씩이나 보았다.
곳곳에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세탁기 물이 얼지 않아서 빨래를 하였다.
2017년 1월 12일 목,
대변이 자꾸 나와서 효소액과 곶감 4개를 먹었다.
문학창작집 발간 지원 신청 내용을 알아보고 작성 중이다.
서울 문화재단 02-3290-7000
오랜만에 뜸을 떴다.
2017년 1월 13일
초당동 [소풍]에서 한울림문학 14집 출판기념 및 등단 축하식에서 격려사를 하였다.
2017년 1월 14일 맑음 토. - 6도
아침 6시 밖에 나가니 둥근 달이 훤히 서산 위에 앉았다.
욕실 물은 얼었다.
담벽 온도는 –8도였다.
다행이 주방 물은 얼지 않았다. 방안은 계속 보일러가 돌아갔다. 방안은 21도 바닥은 자글자글. 이곳에 와서 이처럼 따뜻하게 지낸 것이 몇 번 없는 것 같았다. 4일 정도면 기름이 다 떨어질 것 같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작은 나방이 날아다닌다. 방안이 따뜻하니…
아침 8시 30분 버스정류장 까지 가는 데 힘들었다. 영하 8도. 호흡곤란도 자주 있었다. 다행이 버스가 8시 25분에 왔다.
횡성 문화예술 소 공연장에서 강원문협총회가 있었다. 박유석 회장은 펜 총회에서 만났다. 집필 수고료 250만원을 받았다. 내 평생 글쓴 중에 최고의 원고료였다. 돈을 받기 위해 쓴 글은 아니었다. 저녁은 강릉 ‘주문진 순이네’에서 명태지리를 먹었다. 김기옥씨가 돈을 냈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들어오는데 정말 힘들었다. 날은 영하 7도. 숨이 가빴다. 버스 안에서는 일부 사물도 보이지 않았다. 뇌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이다.
2017년 1월 15일 일요일 맑음 –11도
가장 추운 아침이다. 지난 밤 꿈에 조무근씨가 내 요 위에 대변을 보았다. 처음엔 하얀 변을 보았다. 조금 있어 황금색이었다. 커다란 밥솥만큼 누었다. 놀랐다. 한꺼번에 저렇게 많은 변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맑음 –8도
가스 1통이 아침에 모두 떨어졌다.
2017년 1월 18일 맑고 포근 -3도
버스 타러 가다가 집에 다시 돌아왔다. 당선증과 회의용 방망이를 두고 나왔던 것이다.
10시에 김동명문학관에 도착하여 박유석, 이상배씨에게 과질을 선물로 보냈다.
이사회 서류를 잘 작성하였다. 점심은 솔밭추어탕에서 먹었다. 오후에 드리오리에서 저녁을 먹었다. 신완묵씨 차 안에서 왼쪽 손 마비 현상이 일어났다. 바늘로 곧바로 땄다. 사물에 대한 시야를 정확하게 보는 게 힘들었다.
2017년 1월 19일 목. 포근
난방유 31만원어치를 넣었다.
아들이 온다기에 농촌 식당에 모여 고모들, 이서방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 하슬라 커피숖에서 동생들과 커피를 마시고 올라왔다.
문학 창작집 발간 지원 신청 첨부파일을 다시 작성해 보내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데 택시 기사가 시속 38로 올라왔다. 왕짜증이 났다.
아랫집 아저씨네 길에서 내 집 들어오는데 눈이 30센티는 쌓였다. 성큼 성큼 하얀 눈길에 푹푹 발자국을 찍으며 올라오는 길이 신바람 났다. 아마 눈길 속에 길을 내며 온 것은 평생 처음인 것 같다.
저녁밥을 푸기 전 밥그릇을 깨뜨렸다. 금년에 큰 경사가 있을 조짐이 아닌가. 오늘 홈프러스에서 또 대변을 보았다. 2회였다. 속이 편안했다. 근래 들어 대변을 잘 보는 편이다. 지속된다면 피부도 더 고와질 것 같았다.
2017년 1월 21일 맑음. 토
시낭송, 솔바람 모두 참여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다.
지난 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
2017년 1월 22일 맑음 일요일 –7도
저녁 후 소화가 힘들어 밤 1시에야 잠이 들었다. 인문학 강의 준비를 하였다.
2017년 1월 23일 월. 맑음 –13도
가장 추운 아침으로 기온을 경신하였다. 난롯불을 피웠다.
어제도 아침 저녁 난로를 피웠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바깥은 추워도 방은 따뜻하였다.
봄동 배추를 씻어 약간 데쳐 아침에 먹었다.
2017년 1월 24일 화 맑음 –10도
골짜기 정자 밑 고인물이 약간 얼었다. 오봉댐도 들어오는 입구 쪽 물은 겉이 많이 얼었다.
2017년 1월 25일 수 맑음 -10도
오후는 날이 많이 풀렸다.
점심은 김미희씨와 또 친구 분 한사람, 셋이서 본터오리 집에서 백숙을 먹었다.
김과 복어 자른 것을 받았는데 최선생 오두막에서 막걸리 안주로 하였다.
오봉댐은 오늘처럼 눈이 약간 내렸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 점심 먹으며 역학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분이매우 눌러워하였다. 아래 층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건너편 땅을 세들어 짓는 사람을 만났다. 농사를 안 지으면 내가 하겠다고 하였다.
DSB 시 원고 24편을 안재동씨 메일로 보내고 돈 10만원을 보냈다.
2017년 1월 26일 목. 맑음 –7도
어제 새벽 2시에야 잤다.
11시경 동생들이 제사상 제물을 준비해왔다.
저녁 7시 넘어 TV를 기사들이 가져와 설치를 했다. 숙이 여동생이 준비해 준 것이었다.
커다란 화면에 영상이 또렷하였다. 방안의 세계가 달라진 분위기였다. 숙이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했다.
동생차로 시내에 가서 귤 1박스 씩 사 보냈다.
시내에서 완묵씨를 만나 식장에서 점심을 먹고 완묵씨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농산물시장에서 귤 1상자를 선물받았다. 집까지 태워주셨다.
집에 오니 김학주 씨가 사골 한 상자를 놓고 갔다. 명희씨가 전화가 와서 기뻤다.
2017년 1월 27일 섣달 그믐날 금요일 맑음
오늘 아침은 영상 1도씨였다.
2017년 1월 28일 설날 토요일
숙이와 매부가 같이 와서 서로 세배를 하였다.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TV도 동생이 새로 들여놓아주어 매일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하다.
2017년 1월 29일 일요일. 눈
경희와 매부가 올라와서 함께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누었다. 이서방이 들어오는 입구가 미끄럽다고 부직포를 가지고 와서 깔아주었다. 마음쓰는 게 참 아름다웠다.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눈이 또 내렸다.
오전에 난로를 피웠다. 어젯밤 잠을 설치고 9시까지 내리 자다가 깨다가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니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눈이 내려서 기분은 좋았다. 늦게 일어나서 아침은 먹지 않았다. 식사 준비는 아직도 어설프다.
시를 정리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내 인생과 삶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어서 보람과 기쁨이 있었다.
간밤에 아내를 만났는데 꿈속에서도 나중에 돌아간 것을 알고 낙심하기도 했다. 자주 아내를 만난다.
2시 35분
눈이 지금은 즐거운 듯 춤추는 듯 내린다. 이렇게 오는 모습이 제일 포근하고 아름답다.
정말 치열한 시는 언어와의 소통이 없인 안 되겠다.
2017년 1월 31일 화요일 맑고 청청하였다.
한 달이 가고 있다.
종일 시집 원고 컴퓨터 정리를 하다 보니 피곤하였다.
표현해 가는 것! 만들어가는 것! 인간의 차별화된 존재 근거였다.
2017년 2월 1일 수요일
11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소화가 잘 안 되어서이다.
다시 일어나 움직이다가 누웠다.
꿈을 꾸었다.
어둔 밤, 사람들이 절에서 나오고 있다. 동자승이 부처님을 모시고 다녀와야 했다. 어딘지는 모른다. 할머니 보살이 옆에 계셨다. 나는 동자스님으로부터 그 부처님을 받아야 했다. 얼마 후 동자승이 돌아왔다. 내게 부처님을 주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받았다. 부처님 몸은 광채가 나지 않고 숫돌같은 색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다. 오전 9시였다.
2016년 겨울에서 2017년 겨울이 가기 전까지 방을 자글자글 뜨겁게 해놓았다. 평생 이렇게 지낸 일은 드물었다.
오전 10시 무렵 어린이강원으로부터 연재동화 부탁을 받았다.
예총 이 취임식장에 끝까지 있었다.
끝 나고 이광식 위원을 만나 저녁을 함께 하고 올라왔다. 큰 고모님께 인사드리고 왔다. 지동이 엄마는 절에 갔다고 했다.
2017년 2월 2일 목요일
어제 강원아동문학 서류미비로 지원금을 못 받는 다는 연락을 받았다. 배국장 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광식 작가를 만나보고 올라왔다. 그러나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지난 밤 꿈을 꾸었다.
새로 이사를 했는데 아파트에 거주하였다. 집기류 중에 분해된 것을 맞추었다. 작은 가구를 엘리베에터로 옮기는 것 등
지금껏 아내와 꿈속에서도 부부로서의 생이 이어지고 있다. 아내 옷 입은 것이 추워 보여 툭툭하게 겉옷을 입으라는 말도 하였다.
2017년 2월 3일 금요일.
지혜롭게 사는 것은
이기는 게 아니라 지는 것이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다.
2017년 2월 4일 토요일 입춘날이다.
봄 냄새가 났다. 날씨는 포근하였다. 문협 총회를 횡성문화원에서 하였다. 김두수 회원이 나보고 얼굴이 좋아졌다고 하였다. 제일 듣기 좋은 말이었다.
아동문학회장 부회장 직을 맡았다.
2017년 2월 5일 일요일 맑음
조용히 글을 정리하며 지냈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엄장섭 선생이 시조 원고 3권을 써서 가져오셨다.
예향에서 점심을 하고 이광식 회장과 차를 마시고 올라왔다.
2017년 2월 6일 월요일 맑음 -2도
시내에 가서 붓을 샀다. 날씨가 별로 춥지 않았지만 매웠다. 뜸도 한 통 사오고 건보료와 전기세도 내고 올라왔다. 강원일보 안부장은 내일까지 동화 원고를 보내달라고 문자가 왔다.
2017년 2월 7일 화.
오늘도 맑았다. 어젠 연날리는 꿈을 꾸었다. 갑자기 맑은 밤, 연이 높이 날았다.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폭우가 내려 방에 들어가 안전하게 피했다.
저녁은 주문진순이네 가게에서 김광자, 완묵씨 부부와 ‘복어지리’를 먹었다.
2017년 2월 8일 수, -4도
2017년 2월8일 강릉예총 임시총회에 참석하였다. 여러 가지 사업내용이 있었다.
맑은 날이다. 예총 임시총회에 참석하였다가 오후 6시 30분 버스로 올라왔다.
2017년 2월 9일 목. -2도
아침이 눈발이 약간 날렸다. 버스로 내려오니 성산에는 눈이 날리지 않았다.
<보쌈 천국>에서 점심 겸 후조문학 발기인 모임을 위한 회의를 하였다. 맥주 2병으로 건배를 하였다. 4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
저녁에 후조문학회 영입 안내문을 써서 이광식 회장과 의논하였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행복하게 지냈다.
2017년 2월 10일
후조문학회 주소, 인원 정비를 하였다. 정관을 작성하였다.
내일이 보름이라고 아랫집 할머니께서 약밥을 가지고 왔다.
2017년 2월 11일 토요일
한 점 티끄로 없이 맑고 추운 냉냉한 아침이다.
영하 9도였다. 정원 대보름날 아침이다.
곶감을 2016, 2017년 들어 최고로 많이 먹은 것도 새로웠다.
어제 약밥을 하루 종일 먹어도 남았다. 최선생과 막걸리 한 통을 먹었다.
2017년 2월 12일 일요일
아침엔 추웠다. -9도
어제 받은 보름 약밥을 오늘 점심까지 먹었다.
2017년 2월 13일 월요일
강로시조문학사를 정리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
2017년 2월 14일 화요일. 금
밤 2시 30분까지 강호시조문학 정리를 했다. 날이 완연히 풀렸다.
한울림문학회 모임을 명주동 카페에서 2시에 하였다. 유지숙, 함경숙, 남진원, 한재성, 심재칠, 권오선 씨등이 참여하였다.
2017년 2월 15일 수. 맑음
날이 풀리고 강호시조문학사 정리를 끝냈다. 책을 박스에 담아 봉했다. 큰 일 하나를 한 셈이다.
바다시낭송회와 강릉문협 카페에 올렸다.
한울림 문학회 3월 9일 할 날을 임당문회센터 2층 동아리방에 예약을 했다.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김수임, 지은영 시인, 조옥수 시인과 점심을 같이 하였다.
강호시조문학회 사무 인수 인계로 …
강릉임당문화센터 2층 동아리방 구경 후 <농촌>에서 점심을 하였다. 유금숙, 완묵씨 부부와 …
저녁 7시 경에 집에 왔다. 얼려 놓은 지네를 완묵씨에게 드렸다.
2017년 2월 17일 금. 맑음
날이 포근하여 난로 연통 청소를 하였다.
청소 중에 연통을 떼어내다가 넷째 손가락 끝부분을 칼에 베이고 무릎이 깨져 약을 바르기도 하였다.
박준영씨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와서 부조금 5만원을 완묵씨 편으로 보냈다.
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우수
솔바람 모임에 참여 못했다. 조옥수 총무가 회보와 작곡된 동요 ‘꽃길 우리집’을 전해주었다. 320호에 동요‘봄이 봄이 옵니다’ 발표.
원주의 이미지 시인이 온다기에 터미널까지 나갔다. 박도사와 함께 <농촌>에서 점심을 했다.
박도사가 점심 중 몸이 안좋아 구토 증세를 보였다. 식습관이 일정하지 않았나 보다. 건강이 나 보다도 안 좋아 보였다.
2017년 2월 18일 바다시낭송회에서 김수임 총무는 2015, 2016 결산보고서를 돌렸다.
저녁에 바다시 낭송회에 참여하고 올라왔다. 김남권 시인이 평창, 영월 시인들과 함께 왔다.
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동계올림픽 페스티벌 예총 행사가 5시 30분에 끝났다. 임당예술센타에서 문협 회원을 만나 포남동 고깃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밤 8시 30분 버스였다.
임당예술문화센터에서 책 2권을 구할 수 있어 기뻤다. 상고사 연구와 문학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본국 검예1,2권]이었다. 날씨가 포근했다. 시내에서 호흡곤란이 와서 힘들기도 했다.
2017년 2월 20일 월. 맑음
10시 50분 버스로 시내에 가기로 했다. 가스불 점화가 안 되었다. 아마 건전지 약이 모두 달은 것 같았다.
이작가 소설집 3권을 오늘에야 다 찾았다. 책더미에서 책을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가노라면 왕산의 여러 산야를 구경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작은 즐거움에 들뜨곤 한다. 오늘이 그랬다. 지나는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적지 않았다.
2017년 2월 21일 화. 맑음
처음으로 밭 손질을 했다. 도라지 심었던 곳을 파헤치고 채소를 심기 좋게 둔덕을 만들어놓았다. 거름과 재를 섞었다.
저녁 먹을 생각이 없었다. 며칠 밤 과식으로 혼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완묵 시인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김광자 시인이 태백으로 내일 간다고 했던 것이다.
성산의 오리들깨탕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왔다. 밤에 잘 때 큰 부담이 없었다.
2017년 2월 22일 수.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9시 30분이었다.
오후엔 비가 뿌렸다.
여기저기 새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봄은 성큼 와 있음을 알았다.
멀리 산봉우리가 눈에 덮였기에 뿌옇게 보였다.
도깨비 프로젝트를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조문학정관도 마무리했다.
왼쪽 팔에 약간의 마비 전조 증상이 있었다.
2017년 2월 24일 금요일. 강호시조문학회 발표 시조
- 임당문화예술 회관 -
날씨는 맑았으나 영하 3도였다.
2시에야 잠이 들었다. 그러니 네다섯 시간을 잔 것이다.
아침에 방 정리를 좀 하였다. 샤워도 하고 …
김선화 작가가 서울에서 친구와 내려온다고 하였다.
11시 30분에 임당문화센타에서 강호시조모임을 한다. 시조 작품과 해설을 어젯밤에 썼다.
김선화 작가가 내려왔을 때 난설헌 기념관, 김시습 기념관을 둘러보고 주문진 회센터에 가서 식사 후 헤어졌다. 밤 8시 30분 버스로 올라왔다.
- 시조를 한 편 썼다
氣分
남진원
부재 중 전화 한 통. 나무패다 들어오니
왜일까 궁금타가 그냥 잊고 말았다.
나중엔 내가 전화 하니 이번엔 그녀, 부재다.
다시 전화 와 잽싸게 들어보니
동인지 속 내 시조 읽다가 전화 하고 싶더란다.
덕분에 나도 꺼내어 내 글 다시 읽어봤지.
전에도 가끔은 이런 일이 있었더랬다.
무심결에 듣던 소리, 내 시가 좋았다나!
그날은 참 묘하게도 꿀맛이었다, 내 기분.
[蛇足:]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는 체험의 산물일 때 값있다고 여겨진다. 왜냐?
생활은 존재 그 자체이고 존재의 가치성을 찾을 때 삶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생활의 체험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보물 들이다. 위장병에 고생하는 사람은 잘 먹고 소화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허리가 아픈 사람은 자유롭게 걷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일지 모른다. 또 호흡이 곤란한 사람은 편히 숨 쉬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모든 게 다 소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고 신나는 일이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새롭게 더 깊이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천하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 관중은 포숙아가 있었기에 천하를 둘 씩이나 얻었다. 하나는 세상이라는 천하이고 또 하나는 포숙아 라는 천하였다.
나는 글을 쓰기에 몇 번씩이고 천하를 얻는 기쁨에 들뜬다. 이만하면 얼마나 넓고 큰 세상을 周遊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2017년 2월 25일 토. 맑음
아침 9시 30분에 일어났다. 작품 정리를 하였다.
2017년 2월 26일 일. 맑음
작품 정리를 하였다. 호흡 때문에 힘들었다. 밤 늦게 잤다. 아침 10시에 일어났다.
2017년 2월 27일 월. 맑음 - 3도
아침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밭 위에 지푸라기들이 하얗다.
『대관령 시인들』 스캔 작업을 어제 저녁부터 했다. 오늘 마무리 해야 하는데 …. 문학사 정리도 하였다.
2017년 2월 28일 맑음
아침 8시 50분에 마당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겨울철엔 10시가 되어야 해가 들었다. 놀랍다.
개스와 난방유 2드럼을 주문해 놓았다.
오전 내내 주방, 방 정리를 했다. 오늘부터 부모님 계시던 윗방에서 잠을 자려고 한다.
2017년 3월 1일 수. 흐림
종일 문서 정리를 했다.
대변을 아주 잘 보았다. 요 근래 대변을 잘 보기는 평생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호흡곤란은 자주 있었다. 컴퓨터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난방유 2드럼(30만원)을 넣었다.
--------
2018년 3월 1일 목. 흐리고 맑음
아침에 보니 마당에 1센티 눈이 깔렸다. 간밤에 내린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후조 문학회 편집을 하였다. 벌써 20여일 째 지속되었다. 회원들이 작품을 찔끔찔끔 보내주고 또 독려를 해야 보내가 때문이었다. 눈이 침침해지고 힘들었다.
요즘 컨디션이 별로 이다.
-----------------------------
2017년 3월 2일 후조문학회 창립일 3월 8일로 정하여 육개본가에서 하기로 했다.
11시 버스로 내려갔다.
난방유와 개스 대금(35,000원)을 이체하였다. 전기세도 내고 휴대폰 요금 67000원 대금도 냈다.
용강동 추어탕 집에서 김광자, 신완묵씨 부부에게 점심을 사드렸다. 6천원 하던 추어탕이 7천원이 되었다. 속으로 놀랐다.
완묵씨는 지난 24일 강호시조문학 모임 후 진부쪽으로 가다가 가벼운 교통사고를 맞았다. 뒷 차가 와서 부딪쳤다고 하였다.
평생교육 정보관에 들러 후조문학 정관 20부를 복사하였다.
옛날 같지 않다. 행복한 시 읽기 공개 모집에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맹자의 인의 보다는 현실적인 이익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된 것 같았다.
* 인문학 아카데미 전통문화, 도깨비와 아동문학의 만남
( 도깨비에 대한 자료 및 연구를 하였다. )
2017 문학특별기금 사업신청서를 작성하였는데 보류하였다.
--------
2018년 3월 2일 금요일. 정월대보름. 맑음
오전 11시 내려갔다. 이광식, 엄장섭 선생과 함께 신완묵씨 댁에 들어서니 이종태 김우경씨 등이 먼저 오셨다.
대보름 약밥을 먹으러 오라 하여 모인 것이다. 12분 정도 모여 식사를 하였다. 끝나고 나오다가 이광식 회장과 시청 로비에서 문화예술 담당 하시는 분을 만나 심연수 기념 사업과 후조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관동대학교 심은섭 교수 연구실에 가서 강릉문학과 강릉문학사를 구해 동아장에서 잤다. 내일 아침 원주 강원시조문학회에 가야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은 포남동 어림지에서 뼈해장국을 대접하고 김광자 신완묵씨등과 함께 하고 헤어졌다. 부인이 매우 피곤해 보였고 짜증을 조금씩 내어 불편하였다. 될 수 있으면 그 차를 함께 이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밤에 필요할 것 같아 홈프러스에서 후레쉬와 그에 필요한 약을 샀다.
밤에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지만 남대천 공원 걷기 5바퀴를 하고 대변을 본 후에 동아장에 들어갔다.
강원시조문학 입회에 완묵씨나 김광자씨 모두 부정적이었다. 문학에 대한 입장이 매우 소극적이었지만 이해가 되기도하였다.
----------------
2017년 3월 3일 금. 맑음
<주문진 순이네>집에서 이연희, 배정순, 유지숙씨와 점심을 함께 하였다. 고구마 있던 것을 모아 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배정순 시인은 잣을 선물해 주었다.
2018년 3월 3일 토요일 맑음
날씨는 완연한 봄날씨였다. 찜질방은 기온이 알맞아서인지 잠은 잘 잤다. 샤워를 하고 해장국집에서 식사후 책 한 봉투를 맡기고 원주에 다녀왔다. 터미널에 가기 전에 신군선씨 집에 들러 원고가 든 유에스비를 돌려드리고 올라갔다.
그곳에는 박봄심, 최복형,채윤병, 허대영 씨 등이 와 계셨다. 모두 강릉에서 간 3명을 합하여 19명이었다.
내년 회장 선임을 현 회장이 강릉에서 해야 한다고 거론하기도 하였다. 내가 유력한 후보로 말하였다. 36년 만에 회장직을 맡게 될 것 같았다. 총회가 끝나고 회장과 김성수씨등과 원주 세브란스 병원 앞 부근의 숨 카페에 들러 차를 함께 마신 후 돌아왔다.
원주는 전 보다 시간이 조금 단축되었다.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강릉으로 온 후 천진동해장국에서 뼈해장국을 먹은 후 보관했던 책을 찾아가지고 시내로 들어왔다.
남대천을 걷고 대변을 본 후에 홈프러스 짐 보관 창고문을 열고 짐을 찾아 6시 30분 버스로 올라왔다. 남대천을 걸을 때엔 잠바를 홈프러스 짐 넣는 곳에 두고 나와 걸었다.
집에 오니 옆집 할머니가 대보름 약밥을 가져다 놓고 가셨다.
밤 12시에 일부를 먹었다.
-----------------------
2017년 3월 4일 경칩. 토. 맑음
아침 기온은 0도였다. 약하게 서리가 내렸다.
1시 이후에 출발하여 횡성에 3시 도착하였다. 강원 문협 총회 및 이사회에 참석하였다.
중앙시장에서 칼국수를 사 먹고 들어왔다.
홈프러스에서 웃옷과 낵타이 등 17만원 어치 옷을 사서 올라왔다.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썼던 것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2018년 3월 4일 일요일. 낮엔 흐리고 밤부터 비 쏟아졌다
아침에는 방문 앞 복도 정리를 하였다.
오후에는 아랫방 책 정리를 하였다. 방이 조금 안정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은 책 맨 위에 모셔놓았다. 아주 보기에 좋았다.
아침 저녁 난롯불을 피웠다.
눈이 오면 술을 한잔 하겠다고 연희씨에게 이야기했는데 비가 왔지만 정종 한잔을 하였다.
강원도 시조에 신경을 쓰며 문학사 정리를 하기로 하였다.
---------------
2017년 3월 5일 일요일. 맑고 흐림
최씨가 오후에 들러 전에 준 칡술 한잔 씩 하고 내려갔다.
들어오는 문에 써 붙인 시 ‘평범한 미소’를 읽고 달관한 시 같다고 말했다. 문학 정리를 종일 하고 밭도 일구었다.
2017년 3월 5일 월요일 눈
자고 일어나니(8시) 창밖이 환하였다. 나뭇가지마다 눈이 덮여 아름다웠다. 세상이 하얀 눈 궁궐을 이루었다. 참으로 얼마만인가? 한 2년은 된 것 같았다.
이연희 시인께 눈 풍경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월간태백 구독을 중지하는 서한문을 써서 내일 등기 우편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권칠성씨 구좌도 알아서 땅 대금 50만원도 보내야겠다.
-------------------
2017년 3월 6일 맑음.
월요일이다. 아침 기온 0도이다. 아침에 난롯불을 피웠다.
대변은 4일 만에 보았지만 똥이 굳지 않았다.
아침에는 시레기를 끓여 먹었다.
아침 식사후 커피 한 잔을 하였다. 10시 50분에 또 한 잔을 하였다.
이서방 아들 혼인날을 받아 문자로 보내주었다.
5월 27일 토요일 10시에서 1시 사이.
이성관 시인이 보내준 동시집, 『거미줄 소리』와 최영재 시백이 보내준 동시집 『개의 고민』을 읽고 감사 편지를 보냈다.
쑥물을 끓여 엉덩이를 씻었다.
2017년 3월 6일 화요일 흐리고 쌀쌀
<행복한 시읽기>에 예상대로 6명이 왔다. 확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나온 사람 생각해서 그만 마음을 앉혔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점심은 갈비탕이 좋다고 이연희 샘이 샀다. 그것도 1만원 짜리 식사였다. 좀 과분하였다.
우체국에 가서 월간태백 보류 등기를 보냈다.
명주예술마당 교실 예약도 촉박해서 힘들었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살기로 했다. 노아게스토우에서 차를 마시고 홈프러스 앞에서 헤어졌다. 4시 20분 버스를 탔다가 도로 내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았는데 서 있으니 호흡곤란이 왔던 것이다. 행복한 시 읽기 현수막을 주문하였다. 귤을 사 가지고 6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 일문사 보낸 원고 확인도 하였다.
사실 오늘 오지 않은 사람들은 이 모임이 없으면 더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한 달 동안 이런 인원이면 내 스스로 선언하여 폐강할 것이다. 차라리 집에서 원고 쓰고 공부하는 것이 훨씬 여러 사람을 위해 유익하기 때문이다.
오후 농협 구좌로 땅 임대료 50만원을 권사장께 보냈다.
-------------
2017년 3월 7일 화요일. 날씨는 매우 추웠다.
매웠다. 마치 겨울이 다시 언 것 같았다.
강릉교육문화관에서 행복한 시읽기를 하였다. 참석 회원은 남진원, 엄장섭, 김순덕, 김기옥, 이서진, 정현교, 조옥수, 김혜령, 이종태, 임춘자 등 10여명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도 반가웠다.
점심은 엄선생님이 내셨는데, 성산 오리탕집에서 먹었다.
정민의 [한시미학 산책]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 빛깔’에 대해 공부했다. 이미 시쓰기에서 조선시대 연암의 의식이 얼마나 현대화된 의식인지 탄복이 나왔다. 고정된 인식은 시에선 반위(위암)처럼 무참하다. 시냇물의 물소리를 ‘졸졸졸’로만 듣는 상식적인 것이 그예이다. 천자문에서 하늘이 검은 하늘이라는 이유를 모르기에 서당을 안 다니겠다는 아이의 이탈 또한 매우 획기적인 비판이 아닌가. 그것도 어린 아이의 생각이 그러니 더욱 기특하다. 이미 그 옛날 우리의 시는 현대시였다. 생의나 생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걸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정영애의 ‘길밖에서’를 소개하였다. 매우 뛰어난 시여서 모두 놀랐다. 평범한 일이 비범함임을 말하고 있다. 생활을 들여다보는 일상에서의 시덥잖은 일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값진 것임을 알게 하고 생활의 미의식을 감동적으로 표현하는 정시인의 표현에 큰 박수를 보냈다.
이밖에 엄장섭 시인의 자작시조 두 편 ‘선잠 깬 개구리’, ‘혼수’ 를 들었다. 점심은 성산 오리탕집에서 먹었다. 엄장섭 선생님이 점심을 내셨다. 모두들 감사한 마음을 갖았다.
강의초록, [고전주의를 돌아보다]라는 제목으로 고전주의 강의를 하였다.
평생학습과와 문헌정보과 모두 2층으로 사무실 이전을 하여 어수선하였다.
후조 문학 모임 안내 문자를 보냈다.
2017년 3월 7일 수요일 맑음
다행히 7시에 일어났다. 8시 30분 버스를 타기까지 1시간 30분이란 시간여유가 있었다. 씻고 식사하고 그래도 설거지는 다 못한 채로 나갔다. 후조문학회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204호 예약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사람들이 10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이광식 씨는 조바심이 났다. 끝판에 모두 10명이 되었다. 맹자 읽기는 모두들 흥미를 잃고 있었다. 포남동 어림지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새로 온 이문자씨가 식사비를 냈다. 나는 국이 남아 다른 사람의 밥까지 넣어 먹고 나중에 소화가 안 되어 집에서 애를 먹었다.
2시 30분 버스를 타고 올라올 수 있었다. 맹자 책 2권을 가방에 넣었는데 아주 무거웠다. 엄장섭 선생님 모습을 표지 사진으로 심재칠 교장이 찍느라 아주 고생을 하셨다.
-----------------
2017년 3월 8일 수요일 맑음
조옥수 솔바람 총무에게 동요를 보냈다.
꽃피는 봄날
남진원
꽃피는 봄날엔 진달래 꽃 보러 길 떠나보세요.
꽃피는 봄날엔 보리밭 종달새 따라 길 떠나보세요
꽃피는 봄날에는
하늘하늘 나비 날고
꽃피는 봄날에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꽃피는 봄, 꽃피는 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어요.
꽃피는 봄, 꽃피는 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부풀어요
봄은 다홍빛 귀여운 모습
봄은 연두색 수줍은 모습
환한 미소 지으며 기쁨에 잠겨요.
환한 미소 지으며 즐거움에 들떠요.
(2017년 3월 8일 동요 보냄- 조옥수 시인 메일로)
⬘ 후조문학회 창립회를 열었다.
성남동 중앙시장 2층 육개본가(12시 – 오후 1시 30분)에서 18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카페 개설을 하기로 하였다.
독서 시간을 갖기로 했다. 책은 ‘맹자’
매월 수요일 첫주와 셋째주 2시에서 4시까지.
명주예술마당에 204호실. (전화: 033-647-6803)
4월 5일 수요일, 4월 19일 수요일 오후 2시- 4시.
회장: 이광식(소설가)
부회장: 강수근(시인), 주재남(시인), 김광자(시조시인)
감사: 임춘자(시인), 홍문식(시인,아동문학가)
사무국장: 남진원(문학평론가)
간사:이연희(시인, 가수)
이사는 추후 지정.
참여한 문인:
홍문식, 심재칠, 주재남, 강수근, 김영규, 최상필, 이광식, 엄장섭, 임춘자, 이연희, 김기옥, 전수자, 한재성, 남진원, 송금주, 배주선, 박복금, 유지숙
(이상 18명)
참석은 못 했지만 연락 주신 분
심은섭(문협지부장), 신완묵(시조시인), 유금숙(시인), 홍송부(시인), 김광자(시조시인), 김학주(시인), 정은율(시인, 시낭송가), 배정순(아동문학가), 정계원(시인, 문협 사무국장) . 이상 9명
합 27명.
2018년 3월 8일 목요일 흐리고 오전에 눈
시내에는 비가 내렸다.
8시 30분 버스로 내려가 동아장에서 샤워를 하였다.
신협에 들러 조합비 1만원을 내고 시조 한수를 썼다. 「설국」이란 작품이었다.
雪國
남진원
눈송이로 나무마다 피워낸 모습 보소
집도 들도 물소리도 모두 꽃이 되었소야
깊고도 깊은 이 산중에도 환희심이 저리 폈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하니 …
육사의 시 한 소절 고즈넉이 다가오는 즈음
매화 향 그 보다 진한 이 마음속 봄의 향기
- 2018. 3. 8. 신협 창가에서 -
시간이 촉박하여 택시를 타고 내려갔다. 차에서 내리니 장소를 찾기 힘들었다. 강고 쪽으로 한참 내려가니 바로 맞은 편이었다. 몇 번 왔지만 눈여겨 보지 않았다.
12시 초당의 「소풍」 식당에서 이광식, 홍승자, 김경미씨와 식사를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가에서 말하는 분별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이야기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분별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일문사에서 엄선생님 시조집 발간 경비를 결정지었다. 500권에 300만원으로 옆에 이광식 회장이 있었다.
저녁엔 두루치기로 식사 완묵씨에게 식사대접을 하고 함께 먹고 올라왔다. 강릉여고 맞은 편 겉보기엔 허술한 감자탕 집이었다.
완묵씨 승용차는 들어오는 입구까지만 오고 내려보냈다. 눈이 길을 덮어 좀 미끄러웠기 때문이었다.
-----------------
2017년 3월 9일 목. 맑음
한울림 문학 2017년 3월 9일 목요일 문학 강좌 모임 . 임당문화센터. 끝나고 회원 6명이 남밭에서 막국수와 커피를 마셨다.
봄날의 아지랑이
겨울이 만물을 움츠러들게 하는 계절이기에 겨울을 보내고 맞는 봄은 싱그러움과 설렘, 희망을 노래하는 듯합니다.
식물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고 사람들의 마음도 그런 생명의 숨결을 틔우고 있는 느낌에 빠집니다.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모습을 보면 즐겁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봄날 문득 봄 들판에 나가 봅니다.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아지랑이 사이로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그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시를 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생깁니다.
봄은 생일날
남진원
새잎이 돋고
뾰족뾰족 꽃망울이 솟으면
꽃잎 인 냥 허공을 나는 나비
활짝 핀 꽃 속을 드나드는
갖가지 벌들
화난 사람도,
봄날엔 잔뜩 부풀어 미소 짓겠다.
봄날엔 나비처럼 춤추겠구나.
봄은 모두의 생일날.
봄비가 오고…
봄비가 가만히 내립니다. 아침 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봄비 소리입니다. 실컷 자고 누워있는데 문득 들리는 봄비 소리.. 기지개도 크게 한 번 켜고 나니, 문득 나무의 잎이 텄는지 궁금합니다. 궁금한 것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봉오리 맺은 산수유의 꽃망울은 어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그냥 즐겁고 행복합니다.
기지개 한 번 켜고 나니
늦잠꾸러기가 되었다.
봄 때문이다.
누워 뒤채는데 빗소리가 들린다.
기지개 한번 켜고 나니
밖을 보고 싶다.
산수유 꽃망울 하마 눈 떴을까
새 잎은 얼마나 자랐을까
온통 나를 설레게 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봄비,
오늘만은 널 제일 친한 친구로 대할게.
봄 산
봄비가 지나갔습니다.
연두색 잎이 짙어지더니
어느새 산 벚꽃
군데군데 궁궐처럼 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산 둘레둘레
자부룩이
연한 안개가 감돌고
온통 봄날 하루가 얇은 졸음에 들었습니다.
봄날 하루가
산
중턱 이곳 저곳
누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웃고 있습니다.
연한 안개는
얇고 부드러운 천으로 봄을 감싸 안았습니다.
날아다니는 새소리들
만지면
연두색 물감이 마구 묻어날 같습니다.
봄날 하루가
꿈같은 세상입니다.
----------------------------------
∙밤 늦게 김진광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솔바람 영입에 관한 일이었다. 매우 상기되고 조급한 목소리였다.
정영애 시인을 나인 커피숖에서 만났다. 한재성씨가 트럭으로 집 부근까지 태워주었다. 올라올 때 성산마트에서 두부 한 모와 요쿠르트를 사 가지고 왔다.
집에 와서 밭 갈고 냉이를 캤다. 지난 번 캔 냉이는 오늘 모두 씻어 널었다. 꽤 많았다.
이야기 삼국유사를 모두 스캔하고 묶어놓았다.
‘탄핵정국’으로 마음도 어수선하다.
요즘은 TV에서 허준을 다시 보는 재미로 지낸다.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박대통령, 촛불의 세력에 의해 탄핵되었다. 여기저기 떼거리 외침이 세상을 몰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농경사회에서는 주먹과 무력이 사회 변동의 중심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칼과 총이 권력의 중심에 섰다.
정보통신사회에서는 집단적 이기주의와 세력의 결집이 힘을 얻는 걸 보았다. 특히 정보사회에서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 앞에서는 도덕, 윤리, 법도 무색해지는 꼴을 많이 보게 된다. 편파적인 언론 보도도 문제이다.
2017년 3월 11일 토.
종일 밭에서 흙과 더불어 지냈다.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현대시조에 엄장섭 선생의 작품울 보냈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진실은 후일 밝혀질 것이라고 하였다.
2017년 3월 13일 월요일 흐림
아침 6시에 밭에 나가 정리를 하였다.
요즘 너무 눈과 비가 내리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옥계 산계리에서 산불이 났다.
2017년 3월 14일 흐리고 함박눈 펑펑
교육뮨화관에서 ‘행복한 시 읽기’ 중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아기 주먹만한 눈송이였다. 2009년 11월 2일 아침에 이안아파트에서 보던 그 눈보다 컸다. 사천 꼬세에서 차를 마시고 올라왔다.
권칠선씨에게 50만원 농사 대금을 보냈다.
2017년 3월 15일 수. 맑음
오전은 영하 3도였다. 난로를 피웠다. 자료 정리를 하였다.
2017년 3월 16일 목. 맑음 –1도
박명자 시인 작고, 초당동 미사 집전에 참여하고 올라왔다.
내려 갈 때 도라지 캔 것을 한 봉지 이연희씨에게 드렸다.
오후에 김씨에게 퇴비 92000원을 주었다.
2017년 3월 17일 금. 맑음 –1도
강릉교차로에 원고 1-7회분을 보냈다. 6월 말경에 다시 보내면 될 것 같았다.
오늘 오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한번도 호흡곤란이 앖었다. 농사일을 한 덕분인 것 같았다.
2017년 3월 18일 토. 맑음
오전에 냉이를 캤다. 저녁에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저녁에 바다시낭송회에 참여하였다.
시낭송 끝나고 다리에 모여 막걸리를 먹고 택시를 타고 올라왔다. 택시비가 2만원 들었다.
장소는 임당예술문화센터였다.
2017년 3월 19일 일요일 맑음
오늘도 밭에서 냉이를 캐어 씻어 널었다.
아침 저녁 난로 불 한 번 씩 피우면 힘이 솟았다.
뒷산에서 썩은 나뭇가지들을 주어왔다.
2017년 3월 20일 흐림
동쪽 텃밭에 잎이 돋은 고구마를 모아 심었다. 다 심은 후 말뚝을 박고 줄을 쳐놓았다.
그저께는 겨울 파를 서쪽 밭에 옮겨심었다.
윗방 정리를 하다가 독벌레에게 물렸다. 부어 오르고 독이 퍼졌다. 콜밴을 불러 병원에 다녀오려고 내려갔다. 피부과에 들리기 전 팔을 보니 사그라들었다. 면역력이 강해진 것 같았다. 4시 30분 버스로 올라왔다.
묵은 고구마를 모두 정리하니 개운하였다. 고구마 정리하는 데 하루종일 시간이 걸렸다. 밭에 있는 냉이를 캐지 못한 게 아쉬웠다.
2017년 3월 21일 화. 맑음
대파 1판을 8000원 주고 사 왔다. 행복한 시 읽기를 하고 올라왔다. 오후에 밭에 말뚝을 박고 바깥쪽으로는 돼지 감자를 심었다. 딸기 한 박스를 만원 주고 샀다.
경포중학교 교장실로 달려가 심교장을 만났다. 후조문학회 카페 만드는 일에 대해 조언을 들었다. 가까스로 차 시간에 맞추어 올라왔다.
2017년 3월 22일 수. 맑음
어제 오후 3시 30분과 4시 사이에 빵 3개를 먹고 저녁을 못 먹었다. 밤 10시까지 소화가 힘들었다.
밭 옆에 길을 내고 풀을 뽑았다. 오랜만에 검정 쇠솥에 물을 끓였다.
아침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아침 8시에 배정순 시인과 통화했다. 총회 건이었다.
박종현 선생과 통화하였다. 유지숙씨 동시 작품과 임춘자씨 부군 동화 유고작 보내는 일 때문이었다.
노란 띠줄 옆으로 길을 내었다. 물을 끓여 시맨트 사이 풀을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금방 식어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2017년 3월 23일 목. 흐림
늘 소화가 잘 안 된다. 먹는 것은 탐이나 많이 먹는다.
꿈을 꾸었다. 주인인 집을 홀랑 갈아엎어 터만 남았다. 가재 도구는 잘 정리하여 몇 개 갈무리해 놓았다. 죽는 꿈인가? 새로 시작하는 꿈인가?
2017년 3월 23일 목요일
와송을 모두 캐어 본 밭에 옮겨 심었다. 보행길을 내었다. 딸기를 산밑 쪽으로 옮겨심었다.
낮에 빗방울이 약간 내렸다. 방에 난롯불을 한번 피웠다.
포행길을 만들고 20바퀴를 돌았다.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흐림
영상 4도
지난 밤 꿈:
고향집에 가족들이 짐을 지고 가는 꿈을 꾸었다.
집에는 눈이 있었는데 짐을 놓을 넓은 공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어서 기뻤다.
앞으로 정선의 고향집에 남진원 문학기념관 예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 밭에 버려진 듯 자라는 짧은 파를 캐어 집 서쪽 옆 밭에 가지런히 심었다.
앞 밭의 풀과 냉이를 모두 캤다.
홍씨 부부가 왔다. 떡을 주어서 점심과 저녁 대용으로 했다.
저녁엔 난로를 피우고 전기 매트를 깔고 자 보기로 했다.
2017년 3월 27일 월요일. 맑음 1도씨
오전 방안 16도. 난롯불을 피웠다. 저녁에도 난롯불을 피웠다.
낮엔 동쪽 밭에 감자를 놓고 서쪽 밭엔 대파를 심었다.
어제 오늘은 소변이 탁하지 않았다. 위장 장애도 없었다.
2017년 3월 28일 화요일 맑음
오전에 행복한 시읽기 ‘ 낭만주의’ 강의를 끝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땅콩씨와 콩씨를 받았다. 포트에 넣을 흙도 사왔다. 완묵씨 차로 올라왔다.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오후엔 뒷산에 있는 폐목, 나뭇가지 등을 모았다. 저녁엔 난로를 피웠다.
아침 농협 로비에서 엄장섭 선생께서 내가 쓴 ‘시조로 만나는 한시 기행’을 책으로 묶어서 재미있게 읽는 다고 하였다. 가장 재미있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런 말씀이 고맙고 감사하였다.
밤에 또 난로를 피웠다.
2017년 3월 29일 수. 맑음
오전에도 난로를 피웠다. 오전에 머리가 이상해져서 바늘로 손가락 끝 두 곳을 땄다.
냉이 캔지 3일 째 그냥 둔 것을 씻어 채집방에 넣어 말렸다. 그러나 성공적이지 못했다.
엊저녁 단 과자를 먹었다. 좋지 않은 버릇이다.
고구마와 콩을 심었던 곳의 비닐을 모두 수거하여 길목 옆에 모아 놓았다. 하루 종일 일했다.
2017년 3월 30일 목. 맑음
영상 4도
어젯밤 12시 이후 불을 피우고 2시에 잤다.
어제 저녁 식사후 또 컵라면을 먹었다. 제일 따뜻한 날씨이다.
내복을 벗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일했다.
서쪽 밭 두릅나무 밭 가장자리, 드릅나무 주위를 정리하였다.
아침 식사는 밭에서 뽑아 씻은 나물로 반찬을 하여 먹었다.
동쪽 밭가의 돌을 정리하여 탑을 쌓았다. 낮엔 최상구씨 비닐하우스에서 막걸리를 먹었다.
2017년 3월 31일 금요일 비
봄비가 내렸다. 그래도 아침에는 쌀쌀하여 난로를 피웠다.
3월 25일 행한 강원아동문학 총회 결과 보고를 카페에 공지하였다.
2017년 3월 12일 일요일
현대시조에 원고를 보냈다.
- 시조로 만나보는 한시 기행8.
시조 2편
엄장섭시인 시조 두 편과 각각의 사진 첨부하였다.
2017년 3월 14일 화요일
아침에 버스를 탈 때에는 날이 그냥 흐려 있었다. 교육문화관 시읽기 동아리 2주째이다. 세탁소에서 와이셔츠 및 넥타이 모두를 찾아들고 엄장섭시인, 김혜령씨와 택시를 타고 교육문화관에 왔다. 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에 대해 말했다. ‘허공에 길을 내다’ 정민의 한시 산책 읽기, 시 ‘구겨진 몸’ 등의 작품 읽기를 하였다. 공부하는 도중 창밖엔 함박눈이 펄펄 휘날렸다. 2009년 11월 2일 아내가 아산병원에서 아침에 전화를 하여 이안 아파트 창밖에 날리던 눈이었다. 아이의 주먹만한 실한 눈송이들이 날렸다. 그윽하였다. 내 평생에 두 번째 만나는 아름담고 탐스러운 눈이었다. 이 모습은 꿈이 아닌 실제 사건이었다. 3월2일자 어린이강원에 ‘아귀와 저울’ 동화, 3월 9일 ‘구지봉 이야기’가 실렸다.
2017년 3월 15일 수요일 맑음
어제 저녁 만두를 끓여 먹었더니 속이 계속 더부룩하였다. 오늘 아침에도 만두를 먹었다. 준비하기 간단했기 때문이다. 점심에는 어제 산 순두부에 냉이를 널어 먹을 참이다.
박명자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이었다. 1940년 생이니 78살이다. 옛날 같으면 아주 오래 장수한 나이다. 열심히 시를 쓰고 생을 마감했으니 후회는 없을 분 같았다. 홀로 경포 호수를 걸으며 운동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엄기원 선생님의 추천으로 ‘푸른 문학’ 여름호에 게재할 동시 두 편을 보냈다.
2017년 3월 15일 남진원의 동시 작품 「푸른 문학」 송고
소나기
비가 쏟아졌다.
방터골이 잠시 어리둥절해지는 순간,
불어난
소리만큼
골짜기가
상큼상큼
맑은 초록으로 움 돋았다.
움 돋은
색깔만큼
출렁출렁 …
계곡이
눈부셔졌다.
(*방터골: 강릉시 왕산면 방터길 골짜기)
풀잎과 새잎
땅위에서는 풀잎이
나무에서는 새 잎들이
팔랑 팔랑 팔랑…
바람 불 때마다 몸을 뒤챈다.
연두색 아우성 ……
하늘과 땅이
만들어낸
예쁜 말들이다
2017년 3월 17일 바다시 낭송 작품 [봄이 오니 참 좋다]를 <바다시 낭송>카페에 올렸다.
시
봄이 오니 참 좋다
남진원
봄이 오니 참 좋다.
물끄러미 산과 들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봄이 다가와 등 떠민다.
못이기는 체하며 들길을 걸어가 보면
봄이
속삭인다.
봄이
노랑 빨강 하양
색색의 꽃으로 속삭인다.
봄이
노래한다.
하양 빨강 노랑
색색의 향기로 노래한다.
사람들 말은 마음에 상처내기 쉬운데,
봄이 되니
참 좋다.
2017년 3월 18일 김재용 시인께 작가탐구용 자료를 메일로 보내고 소포로 작품집을 보내기로 하였다.
- 톨스토이 태교동시
- 무소유의 냄새
- 남진원 동시선집
- 하늘에 기댄 아내
- 2016년 강원아동문학집 41집
- 아동문예 2016년 5,6월호 ‘남진원의 삶과 문학’
- 산골에서 보내온 동시
2017년 3월 2일 강릉교육문화관행복한 시읽기 위촉장 받음, 위촉계약서 작성.
2017년 3월 18일 저녁 7시 바다시 낭송회 참석(임당예술문화센터)
호암시조비 건립 추닞 3차 회의 , 춘천 별당막국수 (오후 1시) 최복형 자문위원 대리 참석함.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낮에 강릉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강호시조문학회 모임을 갖었다. 이곳에서 회원들의 시조 낭독이 있었다.
임춘자 ‘다시 봄’, 김기옥 ‘매화는’, 신완묵 ‘이상동몽’, 김광자 ‘인연인가’, ‘난향의 그리움’, 조옥수 ‘내 사랑 김치찌개’ 등의 작품을 읽었다.
나는 시조 ‘65세의 봄날’을 낭독하였다.
2017년 3월 25일 강원아동문학회 총회 황성에서 주재하였음. 위임한 자들을 제외하고 19명이 참석하였음.
2017년 4월 5일 수요일 후조문학회 첫 공식모임을 가졌다. 강릉의 <명주예술마당>2층 강의실에서 오후 2시 – 4시까지 이어졌다. 내용은 주로 「맹자」 읽기와 작품 낭독이었다.
회원들은 많이 참삭하였다.
이광식, 유금숙, 엄장섭, 남진원, 김기옥, 손수자, 김광자, 임춘자, 최상필, 강수근, 홍송부, 한재성, 신완묵, 배주선 (무순)
김기옥 시인이 처음 주자로 『맹자』 양혜왕 편, [1-1.이익보다는 의리를 1-2.즐거움은 백성과 함께.]를 읽고 모두들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이광식 회장께서 첨가하여 글의 원문을 직접 읽으며 설명하였기에 더욱 이해가 빠르고 재미를 더했다.
시낭독도 이어졌는데,
임춘자 시조, 「목련이 지다」, 김광자 시조 「술잔이 차고 넘쳐」
남진원 백거이의 한시 「대림사 도화」, 「부득고원초송별」한시를 읽었다.
끝나고 강릉세무서에 가서 후조문학회 고유번호증 접수를 마쳤다.
끝나고 <드리오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집에 와서 빵을 더 먹고 밤에 소화불량으로 잠을 거의 설쳤다.
2017년 4월 11일 화요일 행복한 시읽기 시간을 가졌다. 3월부터 배주 화요일마다 하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좀 특이하였다. 정영애 시인을 초빙하여 강의를 들었다. 남밭에서 나인카페를 하는 정영애씨는 보기 드물게 시를 잘 쓰는 시인이다. 회원들이 모여 먹는 점심값은 내가 계산하였다.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한울림문학회 모임이 있었다.
시 한편을 가지고 가서 읽었다.
총 다섯 분이 모였다. 임춘자, 유지숙, 황명남, 남진원, 함경숙 총무 등이었다. 인원이 적어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문학의 정취에 취할 수 있었다. 끝나고 가까운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비싸기만하고 맛은 별로 였다. 유명하다고 하여 갔는데 이런데 속을 일이 아니었다. 종업원들도 퉁명스러웠다.
2017년 4월 15일 허난설헌 백일장 심사를 하였다. 유금옥, 심은섭, 유금숙 정계원 등이었다. 산문부 글들을 모두 읽었다. 일반부와 중학생의 글이 좋았다. 백일장 과정에서 본부 측과 잘 안 맞아 수상 인원 선정에서 골탕을 먹었다.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었다. 백일장 장소에서 유금옥과 심은섭의 다툼이 있었다.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최갑규 수필가가 돌아가셔서 동인병원에 문상을 다녀왔다. 94살의 나이로 영면하였다. 8년 동안은 집에서 누워 앓으셨다고 한다. 가족들과 본인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사는 게 중요하지만 죽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는 늘 죽음에 대해 준비하셨는데 하루 만에 그것도 몇 시간 만에 누워 돌아가셨다. 80세였다. 할머니의 이대한 점은 많지만 이 점도 남들이 흉내 못할 위대함이었다.
2017년 4월 19일 후조문학회 모임을 가졌다. 10여명이 모였다. 회원들은 내심 ‘맹자를 읽어 뭘하나?’ 하는 생각으로 참여가 저조한 것 같았다.
2017년 4월 21일 어머님 기일이었다. 동생들이 제사 준비를 하여 가지고 왔다. 내년부턴 아버지 기일에 함께 지낸다고 하였다.
2017년 4월 22일 토요일 강릉문협에서 문학 행사를 하였다. 유안진 시인을 초청하여 김동명문학관에서 특강을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부지부장을 맡아 일부러 참여하였다.
2017년 4월 25일 화요일 행복한 시읽기를 하였다. 조옥수 시인이 충무를 맡고부터 매우 활동적이었다. 일찍 나와 여러 준비를 하였다. 김기옥 시인은 할머니이야기 시간 때문에 못 나오고 신완묵씨 부부는 집 짓는 일로 나오지 못한다. 김광자 시인은 태백에 계시기에 못 나온다. 겨우 8-9명의 인원이 모여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5월 2일 아동문예사로부터 5,6월 합본호 10권을 보내왔다. 내용을 보니 4월에 보냈던 원고내용이 다 들어 있다.
임춘자 시인의 작고한 부군 김용성 동화작가의 동시와 동화, 임춘자씨의 남편에 대한 글, 내 평론이 ‘숨은 작가 돌아보기’ 난으로 나왔다. 내 동시 작품 ‘비 온후 비갠 후’와 ‘매미’ 동시 두 편이 실렸다. 또 유지숙씨의 추천동시 4편이 나오고 내가 쓴 심사평이 실렸다.
2017년 5월 10일 제26회 강원여성문예경연대회 수필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2017년 5월 17일 후조문학회 모임을 했다. ‘맹자 읽기’
2017년 5월 18일 밤 ‘명주 산책’ 원고 ‘아동문학가 남진원 선생님이 즐려주시는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강릉문화재단에 보냈다.
2017년 5월 20일 김증일 시인 모친 장례식에 다녀왔다.(영안실: 동인병원)
동일, 저녁 7시 바다시낭송회에 참여하였다. 낭송시: ‘우리 집’
2017년 7월 10일 월요일 아침이다.
비가 자주 오니 풀이 세발 장대다. 서리태와 참깨를 심어 놓았더니 그 옆을 풀 더미가 뒤덮었다. 어제는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안 되어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 2시 30분에 일어났다. 3시에 밭에 나가 풀을 매었다. 극심한 일이 병도 고치고 의지도 키우고 풀밭은 밭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날은 아침 식사 후, 맛있게 커피를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8시 30분에 전화가 왔다. 박두순 형이었다. 원고 마감이 지났기에 독촉용 전화였다. 죄송하였다. 곧바로 동시 한 편을 써서 전에 쓴 1편과 같이 메일로 보냈다. 시원(詩苑)에 발표한 동시 ‘초석잠 이사하는 날’ 과 ‘풀’이었다.
2017년 7월 16일 새벽에 들깨 모종을 이장한 곳에 심은 후 오전에 강원펜문학 이갑창 회장과 평창문협 조영웅 지부장에게 청탁 원고 시를 보냈다.
2017년 9월 9일 「네이버 tv. 초등교과서 음악」에 동요 ‘꾸러기 삼총사’ 동영상 수록. 이곳에는 교과서에 수록된 음악 및 인기 동요 동영상을 수록하였다.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흐렸다.
갑자기 추워졌다. 고구마와 땅콩을 캐려고 한다. 고구마도 땅콩도 캐는 시기가 좀 늦었다.
1973년엔 첫 발령을 받고 교직에 나간 날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44년이 지났다. 밤이었지만 발령을 받은 기쁨에 차서 설렘으로 학교를 찾아 들어갔다. 교실에 조개탄이 벌겋게 타오르고 학교 아저씨 김씨가 숙직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인사를 나누고 소주를 함께 마셨다.
첫 발령지 화전은 문학의 시발점이다.
내일은 강원아동문학 42집 출판기념회가 횡성에서 열린다. 3년째로 마지막 임기다. 보람도 있고 최선을 다해 기쁘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맑고 차가운 날이었다.
어제 찜질방에서 잤다. 전에는 편했는데 잠을 설쳤다. 어제 명희씨가 정미씨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고 함께 송정 식당에서 만났다. 김효정, 지은영씨도 왔다. 저녁 후 사진도 함께 찍었다.
아침 일찍 광덕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노동부에 모여 회원들과 함께 출발하였다. 모든 행사가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박유석 선생 격려사는 예상처럼 지루하고 길었다.
횡성에서 돌아온 후 명동의류에서 추리닝 1벌 셔츠 하나 모자와 운동화도 사서 신고 남대천을 걸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전쟁터에서 승라하고 돌아온 장군의 심정 같았다.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새벽 5시 50분, 어두워 바깥의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고구마를 모두 캤다. 오래 되어서인지 잔털이 많이 나 있었다. 땅콩도 캤지만 실하지 못하였다. 고구마나 땅콩 농사는 실패였다. 저녁에는 문학회 회원들에게 감사 문자를 넣었다.
2017년 10월 16일 맑음
대추도 땄지만 실하지 못했다. 내년에는 더 일찍 따야겠다. 내일 백교문학상에 참여하자는 글을 후조문학회 카페에 올렸다.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흐리다가 개다가…
8시 30분 버스로 내려갔다. 10시에는 행복한 시 읽기 공부를 하였다. 점심은 조옥수씨가 냈다. 남문동 한식 뷔페식당이었는데 맛은 별로였다. 오후 2시 강릉명주예술마당에 갔다. 정현교씨 백교문학상 수상을 축하하였다.
5시 30분에는 강릉문학사 회의를 하고 김양수 회장이 문협 회원 식사할 식당을 알아봐 달라고 하여 이한길 교수와 선교ᄌᆞᆼ 부근의 식당을 알아 주선해 주고 올라왔다. 이교수가 태워주었다.
전에 거만 떨고 안하무인으로 굴던 나이도 젊은 거만한 여자를 백교문학상 수상식장에서 만나 불쾌하였다.
2017년 10.18. 수. 흐리고 가끔 비가 내렸다.
후조문학회 모임을 한 후 예향에서 식사를 하였다. 정현교 선생께서 식사비를 내셨다. 오전 11시에는 교육문화관에서 자체평가 위원회가 열렸다.
다음 주 토요일엔 모루에서 내가 「길위의 인문학」강의를 하기로 하였다. 그날 정선에서 또 문학강의가 있어 무척 시간이 촉박하게 되었다.
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흐렸다.
집에서 밭일을 종일 했다. 일이라야 정리하는 것이었다. 파가 노란 가루가 묻는 병이 들었다. 소주에 식초를 타서 배추, 무 등에 뿌렸다. 와송도 따서 물에 씻어 말렸다.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맑고 화창하였다.
아침 일찍 내려갔다. 오늘은 고성에서 실시하는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하는 「관동별곡 백일장」 심사를 위해 가기로 하였다. 노동부에 가니 이연희, 이광식, 정현교 씨등이 먼저 기다리고 계셨다. 간식 약간을 사갔지만 이년희씨가 더 좋은 간식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가는 중에 중간에서 잠깐 바닷가 부근에서 쉬고 갔다.
고성은 처음 가 보았다. 담백 청아 맑고 깨긋한 게 기분을 좋게 하였다. 빙 둘러싼 산들은 높고 낮은 게 높은 성을 연상하는 것 같이 고적한 기분이 들었다. 맑고 아름다웠다. 심사장에는 춘천의 최종남 작가도 왔다. 암에 걸려 얼굴이 많이 상하여서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옛날의 기백은 온데 간데 없고 늙은 노인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박유석 선생이 교장 시절, 학교 여선생과 동거를 할 때 문단에 나쁜 소문을 내어 문단적 지위를 약화시키는데 일조한 사람이었다. 백일장 심사를 할 때 호흡곤란이 와서 매우 힘들었다.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맑음
율곡백일장이 오전 11시에 시작되어 11시 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오죽헌 부근 ‘꿈의 두부’에서 식사를 하는데도 힘들었다.
저녁에는 신완묵씨 집에서 바다시 낭송을 하는데 참석하였다. 벌써 163회였다. 완묵씨 승용차로 올라왔다.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이다. 날씨가 흐리더니 두어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난롯불을 피웠다. 들깨를 털려고 했지만 비 때문에 그만 두었다. 감기기운이 있고 호흡곤란으로 머리는 맑지 못한 상태였다.
아 침 식후 맛있는 커피를 먹고 11시에 또 커피를 마셨다. 이런 커피 마시기는 매일 이루어진다.
새로 산 노트북 연결 부스를 찾지 못해 전에 쓰던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2017년 10월 23일 월. 흐림
묘를 이장해 간 곳에 농사가 잘 될 것 같아 깨 모종을 했자. 그러나 늦게 심은 것, 토양에 양분이 없는 것 등이 실패한 요인이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맑은 날이나 추웠다.
대관령은 영하이고 얼음이 얼었다고 했다. 아침에 근대를 뜯었더니 손이 엄청 시려웠다.
이광식 회장과 점심 약속이 있어 동아리 회원과는 식사를 못할 것 같았다.
오후 4시에 임당동 예술문화센터에서 강릉문학사 회의가 있었다.
밤 10시에는 관동문학, 강릉문협, 후조문학에 연간집 원고를 카페에 올렸다.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맑음
들깨를 털었더니 한말이 나왔다. 감기가 심해서 물을 끓여 먹었다. 배에다가 꿀을 섞어 냉장실에 넣어두었다.
강릉문학 편집회의를 한다고 문자를 넣었다. 편집회의에 각자의 개인 일 때문에 잘 모이지 않았다. 돈 되는 일이 아니니 모두 적극적이지 아니었다. 마음이 안 좋았지만 잘 삭혀야 했다.
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맑음
편집회의를 마치고 식사하러 가는 길에 박성동이를 만났다. 그간 교통사고를 당해 죽다가 살았다고 하였다. 농촌에 데리고 가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점심은 내가 지불하였다.
밤에는 현대시조사에 원고를 보냈다.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맑음
강호시조모임을 한재성 시인집에서 했다. 그냥 점심을 먹은 일이었다. 감기에 걸려 가는 것이 귀찮았지만 할 수 없이 참석하였다.
올라올 때에는 찹쌀 풀을 사가지고 왔다. 밤에는 교차로에도 원고를 보냈다. 참 바쁜 나날이다.
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맑음
강원문인대회 참석을 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나갔다가 밤 9시에야 들어왔다. 누가 칭찬해주는 것도 아닌데, 피곤한 하루였다. 친하지 않은 감기는 계속 붙어다녔다.
2017년 10월 29일 일요일 맑음
밤엔 예상대로였다. 빗줄기가 세어졌다 가늘어졌다 하였다. 내가 감기 걸렸다고 하니 경희가 이서방과 같이 올라왔다. 숙이도 왔는데 먹을 것을 많이 챙겨왔다. 용돈도 주고 갔다. 내 말년이 이렇게 행복해 질 수 있다니, 동생들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는 말도 안 나온다.
아이들에게 줄게 없어 캔 고구마를 나누어 주었다.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맑았다.
간밤에 내린 비가 내려 아침은 청명하였다. 들깨를 털었다. 땅콩 껍질에는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다. 햇볕에 땅콩을 널었다.
감기 때문에 위로받고 싶다고 했더니 유지숙씨가 식료품을 한 차 싣고 와 내려놓고 갔다. 요즘은 소화가 잘 안 되어 잠을 충분히 자지도 못한다.
아랫집 할머니는 콩을 꺾었다. 딸은 할머니에게 무슨 심통이 났는지 마구 악다구니를 써댔다. 못된 년이다.
아랫집 박씨는 들어오는 입구에 화목을 내려놓겠다고 하여 허락해 주었다. 변소의 똥을 차가와서 펐다.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완묵씨 부부가 위촌리 처남 아들이 하는 식당에 점심 초대를 하였다. 어죽인데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음식이었다. 손님들이 하나도 없었다. 행복한 시읽기 10월의 끝 날이었다.
요즘은 아버지 계시던 방에서 잔다. 얇은 요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차니 지네 걱정이 없어서 좋았다.
지난 밤 꿈엔 연희씨가 두 번씩이나 보였다. 오늘 저녁은 교육문화관에서 시낭송이 있다. 진행은 연희씨가 한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맑음
눈을 뜨니 문필봉 위로 구름이 한가로웠다. 엷은 몇 줄기 구름과 하늘색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
어젯밤 저녁 세탁한 빨래는 아침에야 널었다. 들어오는 입구에 조망하기 위해 갖다놓은 탁자와 의자를 모두 치웠다. 만들어놓고 한번도 앉아서 저녁 노을을 볼 기회가 없었다. 깨끗이 치우니 주위가 탁 트였다. 바람은 또 강하게 불었다.
5시30분 버스로 내려갔다. 김광자 시인과 해스롤에서 식사를 하였다.
7시 교육문화관 시낭송을 관람하였다. 낭송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하니 아주 편안하였다. 밤 8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
2017년 11월 2일 목. 흐림
참 뜻깊은 날이다. 2009년 11월 2일 아내가 병원에서 눈이 온다고 전화를 했던 날이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바로 그 11월 2일이다. 벌써 7년이나 지났구나.
겨울에 땔 나무를 정리하고 팼다.
낮에는 건너 비닐 하우스 집 최상구씨가 와서 건너가 막걸리를 먹었다. 술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역시 몸에 맞지 않는 걸 알았다.
밤에 명주산책 원고 청탁 전화를 받았다.
2017년 11월 3일. 금요일. 흐림
콩을 오후에 꺾었다. 시내에 가서 찰떡을 사가지고 올라왔다.
1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권오선씨에게 빌린 돈 100만원을 구좌로 송금하였다. 마침 소설집을 낸다기에 보태 쓰시라고 핑계를 대었다. 늘 마음이 무거웠는데 개운하였다.
내일 정선에 함께 가기로 하였는데, 눈이 온다고 하는 TV보도를 보았다. 이연희씨에게 전화를 하였다. 미리 오전에 스노우타이어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내일 아침 차를 몰고 집에까지 오라고 하였다.
간강보험료 10월분, 스마트폰, 전기세 등 지난달 공과금을 냈다.
엊저녁에도 소화가 잘 안되어 잠도 잘 못자고 힘들었다.
2017년 11월 4일 토. 희리고 맑음
오전 9시에 출발하였다. 정선에 갔다가 바로 내려와서 모루에서 또 문학 강연이 있기 때문이다.
삽당령을 넘으니 눈이 하얗게 깔려 설국에 온 듯 하였다.
차에서 내려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출판기념장소는 정선버스터미널 지하였다. 그곳에서 정선의 문인들을 만났다. 문학
강연을 마치고 곧바로 강릉으로 내려갔다. 할머니추어탕 집에서 점심을 부랴부랴 먹었다. 모루에는 40여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모였다. 문학강연을 하고 삼산감자탕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연희시인께 큰 은혜를 입었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맑음
날이 매우 추워졌다.
바깥 물에 소변통을 씻으니 손이 시려웠다. 난로를 정비할 때라는 걸 알았다.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맑음
‘ 발’을 펼쳐놓고 그위에 올망졸망한 호박을 썰어 펼쳐놓았다. 물러진 호박이 많았다. 너무 늦게 땄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아 빨래를 하여 널었다. 아침에 추웠으나 낮엔 더웠다.
강릉문학사 정리에 힘을 기울였다.
내일 시 읽기 준비를 끝내고 나니 밤 10시였다.
이익이 없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 이제 사람 모이게 하는 일도 힘들다. 공자와 맹자가 그리도 인의를 부르짖고 왕도정치를 외쳤지만 그 누가 귀를 기울였던가. 공자는 10년을 주유했지만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맹자 또한 부르짖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자와 맹자의 적적함을 알만하다. 내일은 몇 사람이나 나올지 모르겠다.
2017년 11월 7일 화. 맑음
명주산책 책을 찾아 행복한 시읽기 회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남대천 강변의 운동공원에는 낙엽들이 덮여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색에 잠시 잠기기도 하였다. 모처럼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버스 타기전 홈프러스에서 커피 한잔을 사서 정류장에서 먹었다. 그곳에서 명주학교 다닐 때의 학부모인 종은이 엄마를 만났다. 심장병이 있어 얼굴이 좋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오후 2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 집에 오니 우편물이 와 있었다. 민병도 선생의 현대시조 100인 선집과 시조 무크지,일어 번역본『개화』를 보내왔다.
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맑음
일찍 일어나 상추를 땄다. 이광식 회장께 갖다 드렸다. 후조문학 모임을 하였다. 연간집 발간 회의를 하였다. 춘하추동에서 식사를 하고 올라왔다. 정현교, 이광식, 엄장섭, 남진원 등이었다. 시간이 남아 농협 마트에서 배추 김치 재료와 도구들을 사 가지고 밤 버스로 올라왔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맑음
배추 10포기를 절였다. 돼지감자를 2/3정도 파서 두 그릇에 담았다.
2017년 11월 10일 금. 맑음
강릉문학사 원고 집필을 하였다.
아침 날씨는 쌀쌀하고 낮은 더웠다.
김치 열 포기를 담그었다.
2017년 11월 11일 토. 맑음
폭풍급 바람이 불었다. 둥근 고무 다라가 날아가 감나무 사이에 끼었다.
2017년 11월 12일 일. 맑음
마당에 하얀 승용차가 올라와서 섰다. 동생들이 왔던 것이다. 돼지 감자, 고춧가루 쌈 배추 등을 뽑아 주었다.
2017년 11월 13일 월. 맑음
떨어진 감을 주웠다.
바람에 콩 단이 흩어져 있었다. 밭에 세워 두웠던 콩 무더기를 마당가에 세워 놓았다.
배정순 시인이 가을여성문학 회장에 선임되었기에 축하 전화를 해 주었다.
2017년 11월 14일 화. 맑음
행복한 시 읽기를 하고 식사는 회산에서 된장국(소고기)을 먹었다. 오후 2시에는 강릉문학사 회의에 참석하였다.
오후 4시에는 모루에서 <가족신문> 심사를 하였다. 그곳에는 김경미, 홍승자씨가 왔다.
2017년 11월 15일 수. 맑음
시네에 내려가서 생필품을 샀다. 제일막국수에서 만둣국을 먹었다. 신완묵, 김광자시인 등과 함께 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2017년 11월 16일 목. 맑음
시내로 내려가서 명주예술마당에 들렀다가 모루로 갔다. 가족신문 심사평 자료를 더 구하기 위해서였다. 12시에는 한울림문학회 모임을 하였다. 그곳에서 이상국 시인 시집을 읽었다. 시들이 긴밀하였다.
쥐들이 너무 많아 골칫거리다. 어제 한 마리를 잡았는데 또 한 마리가 끈끈이에 붙었다. 주방엔 쥐똥 냄새와 쥐 냄새가 나서 안 좋다. 문득 1960년대 쥐잡기 운동을 벌이던 일이 떠올랐다.
2017년 11월 17일 금요일.
오전에 아들을 만났다. 사기열전 1권을 주었다. 점심은 고성생선찜을 먹었다. 주문진 시장에는 양미리가 나오지 않았다. 218쪽이나 되는 강릉문학사를 교육문화관에서 복사를 하였다. 철제 공이와 절구를 6만원에 샀다.
2017년 11월 18일 토. 매우 냉냉한 날씨
모루에서 가족신문 시상식을 하였다. 그곳에서 내가 심사평을 하였다.
식이 끝나고 초당의 식당 소풍에서 김경미, 홍승자씨를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였다.
2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바다시 낭송 때문이다.
홈프러스에서 빵모자 3개와 커피 한 박스를 사기자고 올라왔다.
2017년 11월 19일. 일. 맑음
아주 추운 날이다. 현관 온도가 1도였다.
어제부터 조금씩 난로를 피웠다. 홍씨는 이 추운 날 콩을 털려고 올라왔다.
2017년 11월 20일 월. 건조
관동문학상 심사를 위해 저녁에 동해관으로 갔다. 김진광 시인도 왔다. 조관선 소설쓰는 사람이 선정되었다.
2017년 11월 21일 화.맑음
다음 주면 시읽기 동아리 활동은 종료된다.
동아리 활동후 점심을 함께 하였는데 임춘자 시인이 샀다. 제일식당에서 만두국을 먹었다.
김수정 시인이 말한 축협에 가 보았지만 시 낭송 장소로 마땅치가 않았다.
밤 11시에 명주산책 원고를 보냈다.
밤 10시에 대변을 보았는데 배가 살살 아프더니 묽은 변이었다.
일 년에 한 두어 번 이런 변을 본다.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흐림
계절로는 소설(小雪)이지만 눈은 하나도 내리지 않았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같다.
할 일은 많지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편하지 못한 때문일까.
2017년 11월 23일 목. 맑음
희곡 부분의 문학사까지 집필하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24일에도 문학사 집필에 매달렸다.
2017년 11월 25일 토. 흐림
이유진, 장이제 시인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권오선 시인 소설집 관계로…
저 녁에는 권오선 소설집 출판기념회가 래미안에서 있었다. 격려사를 더듬거리며 끝냈다. 기념 사진도 찍었다.
사 진 속의 내 모습을 보니 많이 늙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말 하기가 힘들었다. 소설은 두 권이나 냈는데 많은 돈을 들였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 완성도를 생각햐 보았다.
2017년 11월 27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권오선 씨로부터 점심식사 전화가 왔다.
예향에서 심은섭 지부장과 식사를 하였다. 커피 가게에서 유지숙씨가 김수정씨와 통화가 되어 함께 만났다. 포남동 한 식당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날 송암문학상 제정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상금은 김수정 시인이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저녁엔 현숙이가 내려왔다고 연락을 받았다. 내일 만나기로 하였다.
어젯밤에 침대에 누워 아파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가 꿈에 나올 때에는 꿈속의 모습이 밝지 못하였다. 고향 마을 강둑으로 문이 있었는데 모두 새롭게 단장을 하는 꿈도 꾸었다.
2017년 11월 27일 월. 맑음
신년 연하장 카드를 샀다.
자동차 검사를 하라고 시청에서 연락이 왔지만 대포차를 어떻게 검사할 수 있느냐고 까닭을 시청 직원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직원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현숙이와 동생들이랑 이서방과 같이 전에 초당에서 먹던 식당에서 한우 고기를 먹었다. 1인분이 3만원이었다. 내 혼자선 평생 안 갈 집이었다.
2017년 11월 28일 . 화요일
종강을 하였다. 11시 30분에 유지숙씨 새로 이사한 아파트 풍림으로 갔다.
내부가 왕궁같았다. 내 생일겸 미역국을 끓였는데 맛있었다.
2017년 11월 29일 수. 맑음
어제 심교수 연구실에서 아동문학사 감수본 원고를 가져왔다. 고칠 부분이 너무 많았다. 김병호씨에게는 비료 대금 33만 6천원을 입금하였다.
2017년 11월 30일 목. 맑음
11월이 다 가는 날이다.
절친한 친구의 아들 선고가 있는 날이다. 1년 4월에 추징금 2천만원이었다. 변호사나 검사, 판사가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확연히 깨달았다.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맑음
저녁 예총 송년의 밤에 갔다. 무대도 그렇고 식사도 찬밥에 엉망이었다.
박성규씨가 예술인상을 받았기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2017년 12월 2일 토. 맑음
지난 밤에도 소화가 안되어 자다가 깨어났다. 집주인을 오후에 만나기로 하였다. 아침에 난롯불을 한 번 피우고 밥을 먹었다. 주문진에서 회를 떠서 라카이에서 먹었다. 나는 함께 복어회를 먹은 후 올라왔다. 동생 숙이 신랑이 방을 구해주어서 주인 집 부부가 편히 주무시게 하였다. 동생이 참으로 고마웠다. 객실료와 다음 날 아침 식사비도 김서방이 미리 내주었다.
독감에 걸린지 오래인데 낫지 않는다. 이한길씨가 강릉문학사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해서 자료를 정리하여 메일로 보냈다.
2017년 12월 3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난로에 거푸집 같은 것과 종이류, 들깨 마른 가지를 넣어 불을 피웠다. 연통이 막혀 방안에 연기가 자욱하였다.
저녁에 라면과 빵을 먹어 더 소화가 힘들었다. 명치 및 주위가 쓰리고 아팠다. ‘동계올림픽과 강릉문학 발전 방안’ 원고를 쓰느라 진을 뺐다.
밤 12시에 잤는데 아침 7시에 일어났다.
2017년 12월 4일 월요일
매우 바쁜 아침이다. 어린이강원에 난설헌 마지막 동화 2회분을 보내고 명주산책 원고도 보냈다.
낮엔 예향에서 이광식 회장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해외에 다녀오시느라 한동안 뵙지 못하였다.
내려간 김에 벽시계 한 개를 사서 아버지 계시던 방에 걸어놓았다.
11시 버스로 내려가서 후조문학 현수막을 맞추었다.
2017년 12월 5일 화요일 맑음
가장 추운 아침이다. 그러나 가장 큰 기쁨이 있었다. 『문학세계 12월호』권두시에 내 시가 실렸다. 그 시는 내가 정말 공들여 쓴 시이고 좋아하는 시였다. 내 60년 인생의 무게가 담긴 시였던 것이다. 마음이 통하고 작품에 대한 공감이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학세계 편집장에게 전화를 하여 책 20권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20만원 책값을 보내드렸다.
10시부터 정산출판사에서 강릉문학 교정을 보았다.
저녁 7시에는 쌍마문학회에서 시낭송이 있었다. 단오문화관에서 하였다. 이연희씨가 내 작품 ‘첫눈과 찻잔’이라는 시를 낭송하였다. 저녁엔 동생들이 오빠 생일이라고 <농촌>한정식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동아장 찜질방에서 잤다.
2017년 12월 6일 수요일 맑음
후조문학 모임을 하였다.
정현교. 김광자, 강수근, 신완묵, 엄장섭, 이광식, 김수임, 남진원, 정원교, 임춘자, 홍문식 시인 등이 참석하였다.
『제일강릉』12월호에 나의 시 ‘겨울, 난설헌 고택’이 수록되어 회원들에게 나누어드렸다.
홍문식 선생께서 참석하셔서 죽음의 철학적 접근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썼다.
유금옥씨 때문에 한참 시끄러웠다. 한울림 문학사에 이름이 언급된 것 때문이었다.
강릉문학 편집을 위해 정계원 사무국장에게 개인저서와 수상 소식등을 넣어 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하였다.
2017년 12월 7일 목요일 맑음
또 아침 버스로 내려갔다.
강릉교육문화관에서 자체위원 회의가 있었다. 참, 소용없는 일에 매우 시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오후엔 미성디자인과 일문사에 들렀다. 현수막과 리플렛 때문이었다.
2017년 12월 8일 금.
강릉문학 최종 편집 교정을 봤다. 교정을 보는데 유금옥씨가 왕산 집에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문사에 들러 9일 행사 및 인쇄물을 찾았다. 이연희 시인이 베너를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집에 올라와 유금옥씨 부탁대로 관계된 문건을 모두 삭제하여 주었다.
2017년 12월 9일 토. 맑음
김동명문학관에서 오전 11시에 개최한 ‘동계올림픽과 강릉문학 발전 방안’ 좌담회는 성공리에 끝났다.
나는 진행을 하면서 느꼈다. 좌담자들이 그렇게 잘 할 줄은 몰랐다. 점심은 솔밭 추어탕에서 먹었다. 점심후 이광식 회장과 송정 노아게스트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올라왔다.
2017년 12월 10일 일요일. 흐림
난롯불을 피웠다. 아동문예에 청탁 동시 2편을 보냈다. 녹차 한 잔을 마시고 동시 한 편을 쓰고 한 편은 추고하였다.
피곤이 쌓였다. 잠을 푹 잤다.
2017년 12월 11일, 12일, 13일 모두 추웠다. 이틀간 강릉아동문학사 정리에 빠졌다. 12일 밤 10시에 메일로 보냈다. 내일 오전은 평론, 희곡을 보낸다고 하였다.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계속 하다보니 허리가 굽어 허파가 조여 호흡곤란이 계속 왔다.
밤중에 아동문학사 원고를 보냈다.
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아침에는 평론사와 희곡사를 보냈다. 3일 동안 머리가 지끈거리고 아팠다. 이런 일은 글 쓰는 40년 동안 처음 일어난 일이었다.
메일로 보내고 나니 신춘문예 당선 된 만큼이나 기쁘기도 하였다.
한재성 시인과 교육문화관 과장과 함께 구정 장현 저수지 추어탕 집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유명하다고 했는데 맛이 하나도 없었다. 양도 부족했다. 점심 내내 한재성 시인은 자식이야기만 했다. 점심시간이 엄청 지루하였다.
홈프러스에 들러 먹을 거리를 사 가지고 올라왔다.
2017년 12월 15일 금. 맑음
집에서 작품 정리를 하였다. 강릉문화재단에 후조문학 좌담 발제문, 사진을 보냈다.
심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릉문학 2017년 이광식 수상 작품에 대한 작품해설 부분을 뺀다고 하였다. 엄창섭 교수 이연희 작품 평설 부문도 뺀다고 하였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강릉문학이 뭐 그리 대단한 책인가, 글이 더 대단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지웠다. 심선생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한다고 하여 전화했다지만 …
2017년 12월 16일 토. 맑음
조용히 작품 정리를 하였다. 동해안은 계속 건조하다. 눈이나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난리는 이게 난리다.
현대시조에 보낼 원고를 준비하였다.
2017년 12월 17일 일. 맑음
밤에 소화가 안 되어 잠이 늦어졌다. 현대시조 집필을 완료하여 밤에 보내었다.
최인숙씨 부군이 돌아가셔서 이광식 작가와 아산병원 장례식에 갔다. 점심 식사에서 심지부장이 행사비 돈이 100만원 모자란다고 하였다. 내가 발전기금 100만원을 내놓겠다고 하였다. 문상후 노아게스트 가서 차를 마시고 올라왔다.
2017년 12월 18일 월. 흐림
관동문학 춢판기념회 참가차 3시 버스로 내려갔다.
돈 100만원을 문협 구좌로 보냈다. 마음이 후련하였다. 관동문학 출판기념회는 쓸쓸하였다. 김진광 선생과 옆에 앉아 함께 소주를 마셨다. 행사가 끝나고 이복재씨가 총회를 한다고 돌출발언을 하였다. 본인은 미리 생각했겠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의아해하였다. 연임이 되었다.
시간이 늦어서 동아장에 가서 잤다.
2017년 12월 19일 화. 맑음
동아장 찜질방에서 선병규씨를 만났다. 박성동 이야기를 잠깐 했다.
10시 20분 버스로 올라왔다. 난로를 피우니 연기가 너무 많이 났다. 연통 청소를 언제 해야 하는데…
내일 강릉문학 출판기념회에 입고 갈 옷, 내빈 소개 준비로 바빴다. 후조문학 모임 메시지도 보냈다. 어제 월화거리에서 산 부침개는 점심에 데워서 소주 한잔과 같이 맛있게 먹었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후조문학 모임에 주대중, 김수임, 신완묵, 이광식, 엄장섭, 김기옥, 김광자, 임춘자 신민숙 남진원 등이 참석하였다. 나중에 강수근씨가 참석하였다. 주대중 선생께서 매실 한 병을 가져오셨다. 정이라 여기고 받았다.
강릉문학상 수상자 3분이 모두 후조문학 회원이었다. 꽃다발 3만원 짜리 3개를 준비하였다.
강릉문학 출판기념회가 래미안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나는 내빈소개를 하였다.
(기존의 형식을 탈피하고 일반 내빈 소개 후 우리 문학회 동인들을 소개하였다.)
「 ...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언어를 창조하는 감동이란 문학의 권력은 문인여러분으로부터 나옵니다. 강릉문학의 태산이 되어 참 문학을 이끌어가는 동인들의 단체 수장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열린시문학회 장호진 회장, 솔바람동요문학회 김종영 회장, 우림문학회 정호동 회장, 깅호시조문학회 조옥수 회장, 청송문학회 주재남 회장, 백교문학회 박성규 회장, 후조문학회 이광식 회장, 강릉사랑문인회 제갈정우 회장, 강릉여성문학인회 김령숙 회장, 영동수필문학회 김학순 회장, 관동문학회 이복재 회장, 강원현대시문학회 배주선 회장, 생활문학회 강원도지회 홍문식 회장 등이었다. 이어서 시 낭송회장도 소개하였다. 해람시낭송회 이종경 회장, 바다시낭송회 유지숙 회장, 쌍마시낭송회 임영진 회장, 헌난설헌 낭송회 홍승자 회장, 재능시 낭송회 홍성삼 회장 등이었다.
이제 오늘의 보배 같은 내빈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회원 여러분들입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위해 힘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 올림픽 해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2017년 12월 21일 목. 맑음
엊저녁 심교장 승용차로 편안하게 올라왔다. 오후에 난로 청소를 하려는데 두 분 할머니가 놀러 오셨다. 어디 갈데가 없으신 모양이었다. 맥주와 과즐을 대접하였다. 연통청소는 마무리하지 못했다. 바깥은 밤이 되니 무척 추웠다.
2017년 12월 22일 금 동짓날이다. 맑음
매년 집에서 동지 팥죽을 쑤었는데 올해는 신와묵씬에 집에서 한다기에 그리 하시라고 하였다. 오후에는 난방유 2드럼을 넣었다. 지난 번 동생이 지불한 대금에 만원을 더 주었다.
낮에 동지 팥죽을 먹었다. 신완묵씨는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식후에 노아게스트에서 커피를 마시고 올라왔다.
방터에서 내리니 스마트폰이 없었다. 다시 내려오는 버스를 세우고 시내에 가서 찾아보려고 했다.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말씀드렸더니 자신의 휴대폰으로 내 번호에 신호를 보냈다. 차 안에서 소리가 났다. 다행이었다. 시내에 내려가지 않고 스마트 폰을 찾았기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주머니에서 버스 좌석 창가 아래쪽으로 아래로 떨어진 것이었다.
2017년 12월 23일 토., 맑음
콩을 1/3 털었다. 세숫대야로 하나 가득이었다. 보일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고장이 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12월 24일 일. 흐리다 비 조금
아침에 서울 고모님으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 보일러를 열고 화염감지 코드를 빼어 닦아 넣었더니 괜찮았다.
아침에 가스 레인지 불이 갔다. 새로 가스통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연희씨에게 축하 문자를 넣었다.
요즘은 잡다한 일이 많아서 시를 쓰지 못했다.
201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맑음
난로 청소 후 저녁에 난롯불을 피웠다. 연기가 나지 않고 방안이 따뜻하였다.
2017년 12월 26일 화. 맑음
김광자 시인이 점심을 먹자고 하여 연곡 꾹저구탕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신완묵씨 승용차에 타고 함께 갔다. 집에 올라와서 땅콩을 기옥씨 등 3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2017년 12월 27일 수. 맑음
90만원을 주고 보일러를 교체하였다.
콜밴을 불러 시내로 갔다. 11시에 강릉문학사 최종회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촌한정식에서 하였다.
대관령은 영하 14도 우리집 현관은 영하 4도였다. 에스키모 옷을 꺼내 입고 내려갔다. 2시 버스로 올라왔다.
2017년 12월 28일 목,
오전 4시에 일어났다. 소화가 안 되어 일어난 것이다. 날이 추우니 이연희씨 카톡이 왔다. 추위에 옷 따뜻이 입고 지내라고…
문학사 정리를 끝내니 방정리를 할 기분이 났다. 시민가스 아저씨가 오후에 가스를 넣고 내려갔다.
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맑음
후조문학회에 발전기금 50만원을 구좌로 송금했다.
오봉 호수 가장자리가 얇게 얼었다. 얼음의 두께는 약 1mm 정도였다.
오전 버스로 내려가서 두부와 순두부를 사가지고 올라왔다. 제일은행에 들러 통장 교체를 하였다. 전기세 공과금도 은행에 납부하였다.
돈이 없어도 천하 부자는 남진원이다! 오늘에야 알았다!
2017년 12월 30일 토. 흐림
나무를 모두 정리하였다. 어제 뒷산에서 간벌해 놓은 자투리 나무들을 모았다.
날씨가 포근하여 난롯불을 피우지 않았다. 오후엔 최선생이 막걸리를 들고 찾아왔다. 오늘밤에 눈이나 비가 온다고 했다. 아직 8시까진 오지 않았다. 2017년도 하루를 남겨놓았다. 금년도 행복한 하루해를 보냈다.
2017년 12월 31일, 2017년의 끝에 섰다. 한 편의 시로 마무리했다.
시
2017년을 보내며
남진원
65년의 삶,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일
그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띵 해지고
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늘어난 것만을 뜻하는 걸까
그렇다 해도,
시간은 은혜롭고 자비롭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들,
그리고 고향에서 지냈던 많은 일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처럼
친구를, 꽃과 나무를,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신혼의 세월
아내와 아이들과 지냈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 모두가 아름다운 전생이 된
어제의 울음과 웃음, 눈물과 미소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
오늘 12월 31일을
따스하게 한다.
2018년의 기다림을 꿈꾸게 한다.
( 「남진원의 시 모든 작품」, 2018. 1. 28.)
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서울에서 많은 인파가 내려오고 있다. 내일 해맞이를 하기 위해서다. 몇 년 전부터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내일도 내겐 평범한 일상이며 환희의 날이다.
밤에는 1년 한해를 조용히 차를 마시며 돌아보았다.
2017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그 삶을 실천하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