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과 11월 CGN-TV 제작팀과 교회사 탐사를 위해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다.
인상 깊은 것 중 그들과의 대화였는데 동행인들이 정기적으로 교회당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긴 하는데
등록하지 않은 채로 이 교회 저 교회 다닌다고 들었다. 스스로 가나안 성도라고 소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가나안 성도라는 용어 뜻이 뭣인지 몰랐다. 가나안?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
등록하지 않은 자? 이런 뜻으로 인지했다. 그런 후 1년 정도 지났을 때 비로소 유튜브를 통해 마침내
그 의미를 알게 됐다. 가나안 성도란 안나가 성도, 교회당에 안 나가는 성도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난 어처구니가 없구나라고 여겼다. 교회 안 다니면, 안 다니는 것이지 안 나가? 이것을 역으로 가나안?
본인 처지에서 교회당에 안 나가는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할 수 있지만, 나로서 교회당에서 출교당하는 자,
즉 교회에서 안 나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교회당에서 정말 안 나가? 아니면,
교회당에 정말 안 나가! 의미는 다르다.
한국교회의 성도 수는 거품이다! 지금부터 40년 전부터 오순절 운동의 분위기에 휩싸여 수적 성장에
불길을 타올랐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적 성장이 곧 교회 성장으로 인식됐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도 수적 성장에 목을 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후 20여 년 전 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한국교회는 수적 성장이 멈춘 것을 느꼈다. 정말 많은 교회당을 방문하며 강의하면서 느낀 것은 속이
텅 비었다는 사실이었다. 교회당마다 각종 이단의 스며 들어오는 끄나풀들로 인해 힘들어했다.
굳이 무슨 방어책도 없는 체 그저 들어오지 말라는 경구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이미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거짓 교회가 돼 버린 한국교회들이기 때문이었다.
교회론의 부족이라고 쉽게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근본은 교회론에 관한 지식보다 교회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참여하는 자나 설립한 자나 한결같이 교회도 아니고 교인도 아니었다.
그러니 참된 교회에 관한 기본 개념이나 자세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역사적으로 해결점 모색 태도를 가질 수도 없다.
교회가 아닌데 어떻게 진정한 교회 회복을 꿈꿀 수 있을까? 교인이 아닌데 교회에 관해 관심이 있을까?
이념인지, 개념인지, 신념인지도 모른 채로 자신을 위한 이기적 신념을 이루려고 교회당을 찾는다.
이것은 불도가 복 받으려고 절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복을 받으려고 지극 정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열심이지만 교회를 삼키는 가족, 가정, 꿈, 행복 등을 위해 교회당을 찾는다. 이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교회당원, 즉 교인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은 자이다. 그분을 위한 인생관을 확립한 자이다. 왜 사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 것인지는 분명하다. 그 분의 삶을 자신의 삶에 이루는 데 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이고, 말씀 그 자체이다.
그분을 닮기 위해 진리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한다. 이런 사모는 그분의 순종을 나의 순종이 되는 것으로 향한다.
그분을 위한 삶이 궁극적 선이고, 그 선이 자신에게 놀라운 위로와 보람 및 행복 그 자체이다.
이런 신앙관은 그분이 창조자며 구속자라는 고백을 전제한다. 그분은 영원한 야훼이고,
우리는 그분께 속한 자이다.
그분은 우리 하나님이고,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 그분의 보호와 배려 및 보존을 받는다.
당연히 그분을 위한 삶이 나의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