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하다가 결국 망해가는 나라 : http://cafe.daum.net/agora0/ljGC/14422
2017년, 해제된 CIA의 1949년 기밀문서에서 충격적인 김일성의 정체가 밝혀진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의 정체는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김성주였다. 소련의 눈에 들어온 그를 한국을 집어삼킬 완벽한 도구로 개조시키기 위해 한국전쟁 이전에 실종된 독립운동가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이용했다.
최초에 기사가 난 것은 미국의 voa 뉴스였고 조선일보가 이를 인용해 기사를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얼마 전 2020년 1월,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기사가 작성된다.
"내 친척 할머니가 김일성 젖물려 키워… 두 아들이 공산당에 죽자 통탄"
[2020 신년특집] [백선엽과 김형석, 文武 100년의 대화]
[1] 이광수, 김일성 그리고 이병철
金 "어릴 때 옆 동네 살던 김성주가 김일성 장군이라고 해 놀라"
白 "김일성 평양 환영회 갔는데 군중들이 말도 안된다며 비웃어"
金 "친일파라는 춘원 없인 독립 못했을 것… 그 덕에 민족의식 키워"
白 "당시 최선 다해 실력 키우려 노력, 일본서 배울 건 배워야 했다"
金 "한국만큼 교육에 열정 쏟은 나라 없어… 그게 발전 거름 됐다
이병철, 사람 키우면 삼성 떠나도 한국에 남을 거니 괜찮다고 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3&aid=000349751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2/2020010200287.html
보도내용 중 발췌
「◇고향, 김성주 그리고 김일성
두 사람은 중학교 졸업 때까지 주로 평양과 그 인근에 살았다. 백 장군은 평남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평양으로 이사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만경대에서 1㎞ 떨어진 송산리에서 자랐다.
김―백 장군 태어나신 마을의 강서약수터가 아주 유명했다. 우리 집에서 40리 정도였는데 걷기도 하고, 때론 자전거를 타고 물을 뜨러 자주 다녔다.
백―저도 몇 번 그 약수터에 가본 적 있다. 우린 참 인연이 많다.
두 사람은 "몇 해 전 김동길 교수가 만든 '장수클럽'에서 처음 만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어렸을 때 약수터에서, 혹은 평양 길거리에서 여러 차례 스쳤을 수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학교 졸업 후 김 교수는 평양에서 숭실중·제3공립중, 백 장군은 평양사범을 다녔다.
―여덟 살 위 김일성이 옆 동네 산 셈이다.
김―해방 직후, 이웃 동네 김씨네 할아버지가 손자 김성주가 만주에서 돌아왔다고 인근 어르신들을 초대했다. 20여명이 갔는데, 대학 나온 사람이 저뿐이라며 같이 가자고 해서 갔다. 김성주는 창덕소학교 선배지만 그때 처음 봤다. 그 자리에서 김성주는 친일파 숙청, 모든 국토 국유화, 지주·자본가 숙청 등 여섯 가지를 얘기했다. '이 사람 공산주의자구나' 생각했다. 얼마 후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김일성 장군 환영회'가 열렸다. 그곳에 다녀온 동네 어른들이 '김일성 장군이 성주야, 성주' 그러더라.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김일성 장군이 너무 젊어 보여 가까이 가보니, 아, 우리 앞 동네 성주더라고' 했다.
백―저도 그 환영회에 갔다. 소련군 장성이 단상의 청년을 가리키며 '항일 전투의 영웅 김일성 장군'이라고 소개했다. 군중이 웃으며 말도 안 된다고 수군거리던 장면이 선명하다. 해방 직후 고당 조만식 선생 비서로 일할 때도 두세 번 사무실에 찾아온 그를 봤다. 다소 거만하게 보이는 미소를 띠며 말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5년 후, 백 장군과 김일성은 6·25전쟁 때 한민족의 운명을 놓고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펼치게 된다.
김―김일성이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의 외숙모가 3개월 동안 젖을 먹여 키웠다. 그 할머니와 김일성 어머니는 같은 강씨였고, 같은 마을 출신이다. 비슷한 시기에 친정에서 출산했고, 김일성 어머니가 젖이 안 나와 그 친척 할머니가 대신 젖을 물려줬다. 나중에 그 할머니의 아들 3명 중 2명이 북한 공산당에 죽었다. 그 할머니는 "그놈(김일성) 젖 먹일 때 코를 콱 막아 죽였어야 했다"며 원통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