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하반기 《시사사》신인추천작품상 당선작_ 서연우, 김도연
하늘은 도대체 몇 개의 물뿌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외2편)
서연우
여름은 재즈오케스트라 구름의 정기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재즈오케스트라 구름의 지휘자는 바람이다
나무는 죽음을 보는 고양이*의 울음을 가진 바이올린
비는 팀파니스트
닫힌 창문을 총 쏘듯 두드리며
피터와 늑대*의 사냥꾼 흉내를 내고 있다
총소리에 놀란 아래층 된장 끓는 냄새
하안거중인 물먹는 하마 입속으로 숨어든다
월영공원 벤치를 분양받은 추리닝 아저씨
상가 계단 밑에서 비를 관중으로 디디알 재즈댄스 춘다
바람의 지휘자 팀파니스트
새까맣게 탄 누룽지 같은 아스팔트를 깨트리고
벽을 뚫는다
무시무시한 물의 그늘 호른소리
닿을 수 없는 지옥의 음역 그림자 되어 다가온다
뜨거움을 잃은 여름은 수장되고, 아가미 없는 나는 기형어류처럼 땅으로부터 유배되었다
악보 없는 공연에 앙코르를 보내야 하는 것인가
땅의 숨소리, 매미밴드의 미니콘서트가 그리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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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승욱 감독의 영화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클래식 음악동화
슬픔증
나는, 두렵고 위험한 존재다
블랙홀로 가는 검고 붉은 공간의 입구에 서 있다
가랑비 울울하게 갈비뼈를 빗는다
울음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신다
억압된 말하기의 도구
한숨을 친구삼아 한 모금 연기를 뿜는다
근원 모를 불안에 대한 위로
원근감 잃어버린 말들 분사되어 흩어지고
텅 빈 바다에 낡은 돛배 한 척 흔들리고 있다
순간 덮치고 들어온 파도
육지에 가 닿지 못하는 사유를
갈기갈기 물어뜯는다
나는 비닐장막을 노크한다
깨끗이 빗은 갈비뼈,
야무진 가지 하나 뻗는다
붉은 꽃봉오리 부풀어 오른다
매트릭스다, 하얀집
차가운 수액은 따뜻한 수혈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동서병원* 간다
나는 초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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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에 있는 정신분열증, 조울증, 알콜중독, 치매 전문병원.
마음이 푸른 모든 이의 달
나는 치명적이다
홀로 쪼그려 앉은 베란다엔 바람 한 점 없는데
검은 바다에는 달빛파랑 일고
어둠이 머드팩처럼 마른다
얇은 잠, 얼굴 크기 추상화로 깨어나면
꿈꾸다 깬 사실조차 꿈이라는 이중구조
한 장롱에 다른 옷을 건다는 것이 무엇의 의미인지
일찍이 알아버린 방학도 퇴직도 없는 일생
흐르기를 반복하는 시간의 행위에 쓸려
아무리 팔을 휘둘러도 벗어나지 못하는 수렁 속
매일매일 흙빛으로 널뛰는 몸
달빛을 들으며 달빛을 보며 달빛을 마신다
지구는 딱 알맞은 힘으로 달을 끌어당기고
달빛은 어둠이 무서운 내 생명주기에 흔적지우기를 한다
야카모즈로 푸른 것들은 모두 무장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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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카모즈(터키어)는 ‘물속에 비치는 달빛’(the reflection of the moon in th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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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우(본명 서순득) / 1968년 경남 창원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재학. 현재 마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근무. 주소;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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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바코드 (외 2편)
김도연
오후 세 시가 지나가는 소파에 앉아
어항 속 금붕어와 수다를 떨고 있는 고양이를 본다
가슴에 구멍이 생기면 혼잣말이 많아지지
고양이가 창가 쪽으로 귀를 접어버린다
떠다니는 오후가 구름빵을 뜯는다 나는 고양이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준다 햇볕이 하얀 털을 쓸고 있다 시간의 부스러기가 크림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시계바늘은 거품 속으로 째깍째깍, 고양이가 빵을 물고 낮잠에 빠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의 층적운 속으로 뛰어든
고양이 울음, 야옹
잠시
내가 고양이의 고향인지, 고양이가 내 할머니인지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사물들의 오후가 떠다닌다
키치
인디언 나라에 배꼽이 깊고 푸른 달 떴다
세 마리 거위가 끄는 수레
찬드라의 눈부신 전언을 손끝으로 받아 적으면
아주 오래전
죽은 사내가 나타난다
달빛 지자 풀잎에 새겨진 수바시따 펼쳐진다
종착역에 닿기 전
경전 속에 갇힌 새들을 날려 보내야지
울지 못하는 새의 몸엔
산 자의 영혼이 깃들지 못한다
악귀가 창궐하는 깊은 계곡
바가바드기따의 눈 아픈 전언을 두 개의 무덤 속에 새겨 넣어야 한다
대지에 떠도는 용사의 귀환을 위해 세 마리 거위가 끄는 수레 아홉 번째 돌산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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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존재와 망각 사이의 환승역.
낙루의 DNA
최초의 울음은 에덴에서 왔다
내 전생은 먼 좀생이별에서 왔을 것이다
높이로만 가늠되는 슬픔의 성분들
억수의 빗줄기로 뛰어내린다
신성한 것은 원시적인 것
좀생이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나선의 물이랑을 지우며
연잎 위로 뛰어든 빗방울
둥근 흔적으로 몰려다닌다
그 방향을 따라가 보면
흔적 없는 흔적들
찾아갈 주소가 없다
연꽃들은 저들끼리 수런거리며
몸을 납작 기울인다
분간 없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좀생이별을 찾아 나선 길
젖은 것들이 길을 떠메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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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연 / 1969년 충남 연기 출생. 주소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전동.
【심사평】---------------------------------------------------------------------------
이번 《시사사》 신인추천작품상 하반기 공모에서는 이전 공모에 비해 많은 수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시사사》의 신인 공모에 가지는 응모자들의 관심을 헤아릴 수 있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전달된 작품은 20여 명이었다. 이 중 최종으로 김도연의 「독백, 바코드」외 9편, 민경란의 「바가지 연대기」외 9편, 서연우의 「하늘은 도대체 몇 개의 물뿌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외 9편, 황은설의 「뚝섬유원지」외 9편의 작품을 가지고 논의를 이어나갔다.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서연우와 김도연을 시단에 소개하기로 하였다.
서연우의 시는 자연을 매개로 자신의 정서를 이리저리 감각적으로 궁굴린다. 대상을 어떻게 선취하고 이를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을 자신의 정서와 같은 맥락으로 드러냄으로써 결국 ‘지금 여기’의 ‘나’를 보여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당선작인 「하늘은 도대체 몇 개의 물뿌리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는 모든 자연의 대상물이 의인화되어 시인의 감각 속에서 춤을 춘다. ‘구름’과 ‘바람’이 지휘를 하고, 음악 소리가 총소리와 겹치면서 다양한 감각의 일탈을 보여준다. 시인이 더듬어내는 감각의 촉수는 ‘된장 끓는 냄새’와 ‘물 먹는 하마’와 벤치에 있는 ‘추리닝 아저씨’까지 다다른다. 이런 장면들 속에서 시적 자아는 ‘아가미 없는 나’로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고 있다. 서연우의 화자는 늘 자신의 존재증명에 시달린다. “나는, 두렵고 위험한 존재”(「슬픔증」)이며 “나는 치명적이”(「마음이 푸른 모든 이의 달」)라고 말한다. 서연우의 시는 ‘땅의 숨소리’를 그리워하고 ‘근원 모를 불안’과 매트릭스의 혼돈 속에서 ‘꿈꾸다 깬 사실조차 꿈’일 수밖에 없는 언어의 틈바구니를 이리저리 헤집고 있다. 앞으로 더 활달하게 펼쳐질 언어의 유랑이 기다려진다. (이재훈)
김도연의 시는 “거품”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독백, 바코드」는 “고양이”의 “낮잠”을 고려하면 하품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거품이 잉여이고, 하품이 소비이다. 합하면 잉여의 소비이다. 잉여의 소비가 ‘제한 경제’로서 예술이 거기에 포함된다. 특히 시(詩)가 포함된다. 시는, 거품-잉여를 말함으로써, 거품-잉여를 하품-소비한다. 시는 절대소비 행위이다. 그것도 잉여소비 행위이다. 시인이 벽돌 한 장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그 벽돌로 집을 짓는 것이 아니고, 시인이 ‘집을 짓고 남은 벽돌’로 시를 짓는 것이다. 시인-시는 집에 있는 사랑채 같은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그래도 상관없는, 사랑채 같은 것이다. 절대소비 행위로서 시는 그래서 절대생산 행위와 대립한다. 사랑채는 부엌과 대립하고, 침실과 대립한다. 사랑채-시는 먹는 것과 대립하고, 잠자는 것과 대립한다. “극도의 자아빈곤”(프로이트)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멜랑콜리 증상이다. 절대생산 행위와 대립하는 점에서 시는, 크게 말하면, 자본주의 생활양식과 대립한다. 또 다른 작품 「키치」는 시가 “오래전 죽은 사내”와 같다. 시는 오래전 죽은 사내로써, 그 부재로써, 현존과 대립한다. ‘죽은 사내’는 멜랑콜리커이다. 자본주의가 죽은 사내를 가슴에 합체(Inkorporation) 시킨 시인 또한 멜랑콜리커이다. 자본주의가 죽은 사내를 가슴에 품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쓸모없는 것을 품지 않는다. 극도의 자아빈곤 증상으로서 멜랑콜리커는 현존 자본주의와 대립한다. “경전 속에 갇힌 새”, “울지 못하는 새”가 표상하는 것 또한 ‘극도의 자아빈곤’이다. 멜랑콜리커에게 “영혼이 깃들지 못한다”. 멜랑콜리커에게 영혼도 없다. 영혼 부재를 통해 영혼과 대립한다? 자본주의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자본주의 영혼과 대립한다. “찾아갈 주소가 없다”(「낙루의 DNA」)라고 말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멜랑콜리커이다. 김도연이 시-시인이고 멜랑콜리커이다. 멜랑콜리커로서 비멜랑콜리커-자본주의와 대립한다. (박찬일)
본지에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기회에 다시 뵙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 원구식, 박찬일, 이재훈
—《시사사》2012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