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볼때,
지구 위에 존재한 모든 인류의 종족들은 그 나름대로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며
그것은 믿음이나 종교를 통한 신앙으로 표현되어 진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주된 이념과 정서 즉,그 민족의 주체적인 정신으로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리고 그 민족 정신이나 신앙의 대상을 최고의 가치 이념으로 정하고 그 정신과 이념이
후세에 길이 계승 발전되어지기를 갈망하여 가르치고 익히며 실천하면서 구전을 통해서나
또는 경전이나 역사의 기록등 다양한 방법으로 후대에 전하여 진다.
그리고 민족 문화와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리고 그 공통된 정서는 또 다른 표현체인 종교화 되어지기도 한다.
그 정신이나 이념을 전해 내려오는 한 방법으로 경전을 만들고 때로는 노래로 만들어 지기도 한다.
그리스도교에 성경과 찬송가가 있고 불교에 많은 경전이 있듯이 말이다.
우리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로 밝달의 때로 부터 한울소리 "천부경"을 모태로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어 왔다 할 수 있겠다.
아마 우리의 천부경 한울 소리는 신지녹도 문자의 역사로 볼때 인류 최초의 경전이 아닌가 싶다.
그리스도교에는 성경과 더불어 찬송가가 함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밝달정신에는 한울소리와 더불어 카톨릭의 찬송가처럼 밝달의 노래인 밝달가(한울가)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하다. 그리스도교 찬송가의 가사 내용은 모두가 여호와를 찬양하거나 성경의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도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밝달가(한울노래) 또한 그런 내용일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해 낸 것이 고운선생의 81자 시첩이었고 아리랑이었다.
81자 시첩이야 당연히 떠 올릴 수 있는 일이겠으나 아리랑은 좀 생소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찬송가가 여러 가지의 노래로 만들어져 온 것에 착안해 본다면 우리의 아리랑 또한 그 종류가 600여 종의 노래에
주된 내용이나 후렴구로 들어 있음을 볼 때 충분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
더구나 아리랑의 뜻은 고운 선생의 81자 시첩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 점을 필자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리고 81자 시첩의 내용은 천부경의 내용을 예찬하여 적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구길수 선생님이 이미 밝히어 내셔서
발표하신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이다.
필자가 생각컨데 아리랑의 뜻은 남녀상열지사에 얽힌 슬픈 정서의 노래라거나 인간사의 이별을 표현한 노래라 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필자가 아리랑은 고운선생의 81자 시첩의 내용을 요약한 말이라는 논리(천부경 연구마당 34번 글 참조)에 대한
또 한 가지 근거를 그리스도교의 찬송가와 비교하여 설명해 보기로 한다.그 이유는 너무나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첫째, 그리스도교의 찬송가 내용은 모두가 성경의 내용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리랑이 천부경 내용으로 만들어 진 것과 같다.
둘째,찬송가의 정서가 우리의 아리랑처럼 때로는 가슴이 아리도록 너무 슬프고 때로는 신나서 흥에겨움이 똑같다.
셋째,찬송가의 내용 중에 신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에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똑같다.
넷째,그 내용에 나오는 흠모의 대상만 바꾸어 생각하면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 노래가 되어 버리는 것이 똑같다.
다섯째, 한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데 필수의 노래이며 하나의 끈으로 이어주는데 최상의 내용이라는 점이 똑같다.
여섯째,슬픔의 장소에서나 축하의 장소등 어느 곳에서나 어색하지 않고 분위기에 맞도록 불릴 수 있다는 점이 똑같다.
이 외에도 닮은 점이 많다.
그러면 실제로 그런가에 대해서 살펴 보자.
우선은 필자가 알고 있는 찬송가 하나를 예로 들어 본다.(아..띠..중요한 대목에서 제목은 생각이 안나네?)
이 찬송가는 아리랑처럼 3/4박자의 노래로 좀 애틋한 정서를 가진 노래이며 그리스도교의 신자라면 모두 아는 노래일 것이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제 한 연씩 끊어서 생각해 보자.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내 알을 일구어 이루려함은
아리랑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열을 이루려 짐을 진 것은 고생이지만
아리랑 고개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찬양)하면서
내 일생 소원은 늘 일구어 나아가면서
아리리요
주께로(더) 나아가기 원합니다.
열을 이루어 나아가기 원합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그 음률과 박자는 비록 느리고 애절한지만 그 속의 뜻은 고난을 이기고 자신을 구도하여
신의 뜻으로 헤치고 나아가기를 열망하는 강한 의지를 담은 역설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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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알을 일구며 알을 일구며 알을 열고 나아간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알을 일구는 고난을 헤치며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알(울,알)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열어 나아가지도 못하고 밝달병인 밝병(얼,울,알)병이 난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아리랑은 인간사의 슬픈 노래가 결코 아니다
카페 천부인과 천부경의 비밀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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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대응하는 점>
*하느님..............................여호와.....................................석가모니(붓다)
*아리랑 고개.......................십자가 짐(원죄).......................번뇌
*아라리요...........................할렐루야,아멘..........................나무아미타불,나무석가모니불
*81자 시첩.........................누가 복음등등의 전서................불교경전들
*밝달가(각종 아리랑)........ .찬송가.....................................찬불가
*천부경(한울소리)..............성경........................................ 불경
*하느님..............................여호와.....................................석가모니(붓다)
어쨋던 아리랑 고개는 우리 겨레가 모두 함께 넘어야 할 고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힘차게 외쳐 봅니다. (((아라리요!!))))))))
첫댓글 ㅇ.ㄹ이랑 ㅇ.ㄹ이랑 ㅇ.ㄹ아리오 ㅇ.ㄹ이랑 고개를 너머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 얼이랑이 알이랑, 아리랑으로 바뀐 것 아닐까요
이 글을 읽기 전에 같은 방의 34번 글을 참조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교회의 찬송가가 캐돌릭 성가에도 있던가여? 성당에는 다녔던게 워낙 까마득해서리... 글구 '태산을 넘어...' 곡의 맨 마지막은 '영원히 주를 찬송(양?)하리'일꺼에여. 쨌든 참 흥미로운 찬송가와 아리랑의 대조인데여. 실은 저도 위와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스끄레 하게 그와 같은 걸 혼자서 시도해본 적이 있걸랑여...
악~!..또 걸릿다...............=3=3=33....수정 들어 갑니다.(카톨릭--->그리스도교)흑흑~
그랴면 이제 기독교 함부로 욕하면 안되겠지요.? 알고보니 교인이 많으셨네. 이거 또 죄송하다고 말슴드려야것네. 본의아니게 인기에 영합하려 기독교 욕한거 죄송.함다.
꿰맞추어보면 그럴듯하지만 문자에 빠질 염려가 지극합니다.
전번에 문자의 설명으로 부족한 점을 음악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막연히 말씀하시지 말고 이곳은 연구를 위한 방이니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문자에 빠진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지적해 주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하나님에 대한 것을 모르고 사는데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는 염원내지는 원망이 담긴 노래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국가로 아리랑을 택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하나님말씀(천부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면 아리랑의 의미를 쉼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그 느낌을 느낄수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