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와 代의 올바른 이해
세(世)와 대(代)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 성균관 홈페이지에서 시비가 많은 내용 하나를 택하라면 단연 世와 代에 관한 논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世’와 ‘代’는 같은 뜻으로 차례를 나타내는 ‘셈수의 단위’이고, 世나 代 다음에 손(孫)이나 조(祖)를 붙여 사용하는 것은 世와 代 사이의 간격을 나타내는 ‘셈수의 단위’이다. 그러므로 ‘세조(世祖)’와 ‘대조(代祖)’도 같은 의미이고, ‘세손(世孫)’과 ‘대손(代孫)’도 동일한 의미이다. 그러나 ‘世와 代’ 와 ‘世祖와 代祖’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고조부(高祖父)와 나를 기준으로 해서 예를 들어 보면 고조부는 나로부터 시작하여 5대가 되는 할아버지이며, 나는 고조부로부터 5대가 되는 손자가 된다. 이를 世(代)祖나 世(代)孫으로 말할 때는 고조부는 나의 4世(代)祖가 되며, 나는 고조부의 4世(代)孫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주자의 말을 중심으로 하여 위의 결론을 증명해 보고자 한다.
정자(程子)는 제사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선조(先祖)란 초조(初祖)를 뺀 고조(高祖) 윗대까지의 조상’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시조 아래의 <두 번째인> 제 2世 <조상>부터 자기 자신을 포함한 위로 제 6世인 조상까지 [自始祖下之 第二世 及 己身以上 第六世之祖]’라고 정의하였다. 즉, 高祖의 아버지를 第六世之祖라고 명명했으며, 명나라의 학자 구준(丘濬)은 좀 더 명확하게 ‘高祖의 아버지란 5世祖를 말한다’ 라고 주자의 말을 부연 설명하고 있다.
주자와 구준의 설이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주자가 말한 第六世之祖란 6世祖를 말한 것이므로 구준이 5世祖라고 정의한 것은 주자의 말과 상반되며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이들의 주장은 대략 ‘高祖의 아버지 = 6代= 6世 = 6世祖 = 6代祖’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모든 것을 그 잘못된 틀에 끼워 맞추는 과정에서 날조된 사견(私見)일 뿐인데, ‘상대하세(上代下世)’ ‘대불급신(代不及身)’ 등의 여러 가지 신조어(新造語)와 맞물려 중구난방으로 약간씩 다른 견해를 피력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이 잘못됐음은 다음의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인용한 주자와 제자가 문답(問答)한 두 문장을 살펴 보면 결론이 명확해진다.
① “소위 고조(高祖)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기를 “4世祖이다.”(所謂高祖者何也 曰四世祖也) ② 제자의 질문 : [맹자집주]의 주석에서 “태왕(太王)은 공유(公劉)의 9世孫이다”라고 말했고, [사기]에는 공유로부터 태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10世라고 되어 있다. [맹자집주]에서 착오로 ‘구(九)’자를 잘못 쓴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주자의 답 : 모두 셈할 때는 곧 자신까지 계산하지만 ‘할아버지[祖]’라 하고 ‘손자[孫]’라고 말할 때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아야만 한다.
대개 조손(祖孫)이라고 말한 것은 이는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기]와 [집전] 및 지금 사람들의 문장에 高祖의 아버지를 5世祖라고 한 곳이 매우 많으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通數卽計己身爲數 曰祖 曰孫 則不當計己身 蓋謂之祖孫 則是指它人而言矣 史傳及今人文字 以高祖之父 爲五世祖 甚多 無可疑也)
위에 예시한 주자 문답의 내용은 高祖는 4世祖임을 명시했고, 또한 동일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맹자]에서는 9世孫이라 하였고 [사기]에서는 10世라고 했는데 이는 기록의 오류인 것 같다는 제자의 질문에 주자는 9世孫과 10世는 같은 의미라고 전거(典據)에 의해 명확하게 말한 것이다.
위의 주자 말에 모순점이 있다면 중국의 예학자(禮學者)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퇴계(이황)・율곡(이이)・사계(김장생)・시남(유계)・도암(이재) 등등의 쟁쟁한 예학자들이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代孫과 世孫이 같은 말이며, 代祖와 世祖가 같은 말이다. 그리고 5世와 5代가 같고, 5世祖와 5代祖가 같고, 5世孫과 5代孫이 같다. 그러나 5世(5代)와 5世祖(5代祖)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그냥 5代 또는 5世라 말할 때는 高祖를 가리키는 경우이겠으나, 5代祖 또는 5世祖는 高祖의 아버지인 천조(天祖)를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高祖는 자신으로부터 4代祖(4世祖)이고, 증손(曾孫)은 3代孫(3世孫)이다.
동시에 高祖는 자신으로부터 5代(5世)이며, 曾孫은 4代(4世)이다.
世와 代가 같은 의미로 통용되게 된 것은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때문이다.
처음에는 世를 썼으나 황제 이름 字에 대해 국휘(國諱 : 황제이름 字의 금기) 영(令)을 내리고 世와 뜻이 같은 ‘代’字만 쓰게 하고 이를 어기면 엄벌에 처했다.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것은 왕조시대의 상식이므로 ‘世’라는 글자를 피휘(避諱)하여 ‘代’라는 글자로 바꾸어서 사용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즉, 당나라 시대에 작성된 문서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世’라는 글자 자체를 족보나 축문이나 문장 등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세(世)’자를 사용해야 할 곳에는 부득이 ‘대(代)’자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당 태종이 서거한 후 그 규제가 풀려서 오늘에 이르러 世와 代를 혼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世와 代가 같은 의미로 사용하게 된 이유이다.
이번에는 문헌・성균관・왕실세보・거유・유명성씨시보・실생활의 용어 등으로 世와 代가 동의(同意)라는 실증적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해 본다.
(1) 관찬(官撰) 삼국사기(三國史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에도 ‘世와 代는 同意’ (2) 고려왕실세보(高麗王室世譜), 조선왕실세보(朝鮮王室世譜)에도 ‘世와 代는 同意’ (3) 시보(始譜)에 ‘代’를 쓴 전주이씨(全州李氏)・문화류씨(文化柳氏)・진성이씨(眞城李氏)・광주이씨(廣州李氏)・벽진이씨(碧珍李氏)・경주이씨(慶州李氏)・영일정씨(迎日鄭氏)・함안조씨(咸安趙氏)・진양하씨(晉陽河氏)・청주정씨(淸州鄭氏)는 代를 世로 바꿔 1代를 1世로 쓰고 있다. (4) 김종직(金宗直)・이황(李滉)・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허목(許穆)・기대승(奇大升)・조식(曺植)・윤증(尹拯) 등 거유(巨儒)들이 찬(讚)한 비문에도 ‘世와 代는 同意’ (5) 韓・中・日의 한자사전(漢字辭典)과 국어사전에도 ‘世와 代는 同意’ ‘世 代也’로 되어 있다. (6)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도 ‘世와 代는 同意’ ①왕선겸(王先謙) 『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 ②주자가례(朱子家禮) ③중국거유(中國巨儒)인 한유(韓愈)・소식(蘇軾)・주희(朱熹) 등이 쓴 비문에도 ‘世와 代는 同意’ ④일본 구황실전범(舊皇室典範)에도 황현손(皇玄孫)을 4世孫이라 하였다. (7) 실생활에도 ‘世와 代는 同意’로 쓰고 있다. 三世 = 三代, 삼세동당(三世同堂) = 삼대동당(三代同堂), 자손만대(子孫萬代) = 자손만세(子孫萬世), 후대(後代)=후세(後世). (8) ‘世와 代를 이의(異意)’라 하면 시조가 시조 자신의 1世孫(자손), 내가 나의 1世祖(조상)가 되고, 계대(系代)에 차질이 생겨 호칭의 망발이 일어난다.
또한 성균관대학교 이우성(李佑成) 교수, 성균관 전의(典儀) 이주엽(李柱燁) 선생, 한국고전번역교육원 성백효(成百曉) 교수, 가산재(佳山齋) 설종윤(薛宗潤) 선생, 안동 권씨 태현(兌鉉) 선생 등 여러 인사가 이 논제(論題)에 대하여 다각도로 조사한 바, 우리의 선조들은 高祖의 父를 6世祖, 玄孫의 子를 6世孫이라 한 적이 없었음을 입증(立證)하였다.
世와 代가 다른 것이 아니라 世와 世孫, 代와 代祖가 다른 것이다. 世와 代는 혈통의 차례이고, 世孫(代孫)과 代祖(世祖)는 선조와 후계간의 관계이고, 호칭(呼稱)이고, 호칭(互稱)이다. 世와 代는 같은 것이고, 世孫・世祖・代孫・代祖 이럴 때는 祖와 孫이 붙으면 기준이 되는 世(代)를 포함시키지 않아야 한다. 즉, 자신을 계산하지 않은 代數・世數를 써야 한다.
다음은 앞에서 언급된 상대하세(上代下世)와 대불급신(代不及身) 등의 新造語에 대하여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上代下世는 자신의 위로는 代로 표시하고 자신의 아래는 世로 표시한다는 것이고, 代不及身은 代를 셈할 때는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代는 특정 후손을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의 윗대 조상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쓰고, 世는 특정 선조를 기준으로 해서 후세의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쓴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또한 계산에서 기준인을 포함하면 世이고, 제외하면 代라는 견해 역시 잘못된 것이다. 世와 代에 孫이나 祖를 붙여 사용하는 용어, 즉 世(代)孫이나 世(代)祖로 지칭할 때는 불급신(不及身)하여 世(代)數에서 1을 뺀 수로 칭하여야 한다.
한국전통상학회 회장이자 경기대학교 경영학과에 재직 중인 이훈섭 교수는 1994년 3월 한국전통상학회에서 발행한 ‘한국전통상학연구’ 제7집에 게재된 특별기고인 <한국의 先正들께서 쓰신 ‘世 와 代’의 진의>에 크게 위배되는 허무맹랑한 논리로서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기고문은 당시 성균관 전의인 청운 이주엽 선생께서 각 성씨의 비명을 비롯한 시장(諡狀)과 행장(行狀), 그리고 각 문중의 실제 족보에 표기된 인물 계대를 대조 검증한 실증적 분석 논문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의 先正들은 ‘世와 代’를 한결같이 주격을 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世에는 주격을 넣고 代에는 주격을 뺀다’는 식의 해석에 집착하게 되면 계대에 차질이 생겨 ‘아버지가 할아버지로, 혹은 할아버지가 아버지로 둔갑되는 망발(妄發)’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거유(巨儒) 先正이 작성한 수많은 비석문과 금석문이 등재된 문헌을 일시에 폐기해야 하는 일까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제시한 여러 가지 정황(情況)으로 미루어 볼 때 ‘世와 代’는 같은 뜻으로 계산에서 세대수 모두를 포함하며, ‘代祖(世祖)나 代孫(世孫)’은 주격을 빼고, 즉 世와 代의 수(數)에서 ‘1’을 빼고 계산하면 된다. 그리고 ‘世와 代’는 선・후대에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후손을 주격으로 삼았을 때는 ‘世祖(代祖)’, 윗대 조상을 주격으로 삼았을 때는 ‘世孫(代孫)’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구분하면 될 것 같다.
다만 우리 신안주씨 대동보에는 예로부터 上代下世의 원칙에 따라 윗 조상을 칭할 때는 몇 代祖로, 아랫대를 칭할 때는 몇 世로만 칭하였으며,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 본 내용은 성균관 홈페이지와 ‘우리 성씨와 족보 이야기’(박홍갑 지음, 도서출판 산처럼, 2014.8.25), 신안주씨대종보 ‘경(敬)’지(2015.12.1.) 등을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