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글쓰기 - 느티나무 수피(樹皮)
수피라고 쓰고 보니 격세지감이다. 나무껍질이라고 했던 적이 가물가물하다.
숲해설가 동기 이영철 샘과 고양시 보호수를 보러 다닌 적이 있었다. 600년가량 된 느티나무 앞에 섰는데 문득 소유욕이 발동했다. 고령의 수피를 모셔두고 있으면 장수할 수 있으려나.
신령스러운 수피를 만지며 힘을 주었다. 한 조각이 툭 손에 잡혔다.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잔잔한 호통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내 몸뚱이에 손을 대다니, 오래 살지 못할 거야. 얼른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데 붙질 않았다. 땅속으로 가는 길목에 수피 조각을 놓고 잠시 두 손을 모았다. 잘못했습니다.
장소를 옮겨 역시 600년가량 된 느티나무 앞에 섰다. 허리를 숙여 떨어진 조각을 주웠다. 집에 돌아와 케이에프씨에서 남겨온 냅킨에 올려놓았다. 노트북 앞에 두고 시시때때로 보고 있다.
물관 세포와 체관 세포가 세포 분열을 하면서 부피 생장을 하는 나무의 라이프사이클 가운데 크게 관심이 가는 부분은 모두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생장 과정에서 중심도 죽고 바깥도 죽고 바깥 안쪽 10퍼센트만 살아서 생명을 이어간다고 하는데, 이게 오랜 생명줄의 근원인 것 같다. 부분으로 전체를 사는 모듈 시스템과 무한 반복하는 콜로니 개념이 나무 생장의 핵심 포인트 같기는 한데 좀 어렵다.
여러 달 느티나무 수피를 보고 있어도 포커페이스 같은 무변화 때문에 딱히 어떤 느낌은 오지 않는다. 그저 칙칙하고 오톨도톨하고 하얀 가루가 조금씩 번질 뿐 장수의 생명력은 전해져오지 않는다. 나무 전문 지식이 풍부하면 멋지게 진술할 텐데 불가능할 뿐이다. 검색으로 몇 개 가져올 수 있지만 곧 잊을 것 쓰고 나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당장 해야 할 것은 벚나무 수피와 느티나무 수피라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여전히 어렵다.
나무껍질이 수피로 다가와 언어로 상호작용하는 이 순간, 또 하나의 연결에 감사드린다. 나는 스러지지만 언젠가 너에게서 싹이 날지도 모르는 벅찬 상상을 한다. 멋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