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아이가 밤에 길을 걸을 때, 달이 자꾸 자기만 따라오는 것 같았다. "엄마, 달이 자꾸 나를 쫓아옵니다. 아무리 도망가도 달이 왜 계속 나만 따라올까요?"
엄마는 태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사람에게만 저렇게 달이 쫓아오는 거란다." 누구나 어릴 적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오래전 어느 동화책에서 읽었는데,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가끔 젊은 엄마가 많은 곳에서 법문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미국인 잭 웰치(Jack Welch,1935~)는 성공한 실업가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경영 방식이 좋은 이미지만은 아니지만 전설적인 경영 방식과 리더십으로 미국 젊은이들의 지남이 되고 있다.
어느 잡지에서는 그를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잭 웰치가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을까? 독자들은 잠시 상상을 해보았으면 한다.
그는 어렸을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고 똑똑한 아이는 아니였다고 한다. 이런 잭 웰치의 부족함을 극복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들이 말을 더듬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해주었다.
"얘야 네가 말을 더듬는 것은 너의 혀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네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란다." 말을 더듬게 되면 위축되어 소심한 성격이 될 수도 있고, 또래 친구들의 놀림감으로 자신감을 잃는다. 말더듬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을 심어주고, 용기를 주어 기적을 불러온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정반대인 단어가 있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말인데 몇 년전부터 사회에 통용되는 단어이다. "엄마 친구 아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도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컸기 때문에 무언지 모를 쓰라린 느낌이다. '엄친아'라는 말속에 아이들은 기가 죽어 무력해지고, 미래의 자신감마저 잃게 된다.
솔직히 나는 승려로서 자식을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사찰 법회나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만나왔다. 학생들의 과제물이나 행동에서 지나칠 만큼 칭찬도 하지만 조금 문제점이 있는 학생에게는 용납하지 못하는 모순점이 있다. 또 '재는 과제물을 잘했는데 너는 왜 못했니?'라며 비교 평가한 일도 많은데,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어랜애가 아니다. 학생들 과제물을 읽다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할 때가 있다. 40~50대보다 더 확고한 인생철학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곤 한다. 철이 없을 것 같은데도 인생의 깊이와 인간미를 가진 학생도 많다. 분명히 그들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건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훌륭한 아이들이고, 학생들이다. 천재성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자생력이 당장 눈앞에서 드러나지 않는다고 다른 아이들과 상대적인 비교평가는 금해야 할 것이다. 기다리는 것도 부모와 선생으로서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기름에 성냥만 그어주면 불이 활활타오르는 것처럼 잠재적인 성향을 갖추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사랑 받으면 사랑을 받은 만큼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자신감을 갖게 된다. 사람마다 그사람만의 진정한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모든 아이들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아이만의 특별함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별나라에 사는
왕자(엄친아)와 비교하지 말자.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비교할 수도 없는 최고의 나의 아들(딸)'이라고 바꿔보자.
2012. 3. 2.
정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