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2일(월) 광주일보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절대적인 문제다. 그리고 죽음의 경계는 사후 세계라는 미지의 영역을 만들어 수많은 종교의 가장 강력한 논리로 사용되어 왔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삶의 종결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를 찾아올지 모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히어애프터’는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 대한 영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조지(맷 데이먼)는 사후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원치 않았던 능력 때문에 사랑하던 여인마저 떠나보낸 채 남모를 고통을 겪는다.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갑작스런 쓰나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한 마리(세실 드 프랑스)는 그 후 사후세계를 파헤치며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던 기자로서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한편, 런던의 소년 마커스(조지 맥라렌/프랭키 맥라렌)는 사고로 자신의 반쪽과 같은 쌍둥이 형을 잃고 삶 저편 세계에 대한 해답을 간절히 찾아 헤맨다.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접한 세 명의 인물을 한꺼번에 만나게 한 다음, 이들로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영화적 주제를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극을 진행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친절하게 삶의 진실을 가르쳐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삶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고 잔잔하게 풀어내는 솜씨는 그가 왜 헐리우드에서도 작가주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지는 보여준다.
영화를 보다보면 의외로 영상과 잘 어울어지는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이 와닿는다. 특히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오르면서 시작되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율은 영화가 보내주는 메시지와 더불어 관객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은 1899년부터 1901년 사이에 작곡한 작품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대표곡임은 물론 수많은 고전 영화에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매우 대중적인 멜로디를 가진 곡이다. 재미있게도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자작자연 녹음(naxos)도 남아있다. 음질은 열악하지만 작곡가 자신의 해석을 직접 듣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함께 협연한 데카 음반은 이 곡의 대표적인 명연으로 손꼽힌다. 이 곡이 가진 낭만성을 극대화시킨 연주로 아주 달콤하고 섬세하며 아름답게 연주한다. 최근에는 <레전드>시리즈라는 고음질 리마스터링 음반으로 재발매 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음반은 레이프 오베 안즈네스의 음반(EMI)이다. 안토니오 파파노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반주로 녹음되었는데, 첫 음부터 마지막 코다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확신에 가득 찬 연주다.
리히터의 강인함, 루빈슈타인의 영롱함, 아쉬케나지의 서정미, 침머만의 테크닉을 모두 합쳐놓은 듯한 대단한 연주다. 특히 2악장의 유장한 협연을 듣고있노라면 삶은 결국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나지막히 말하는 영화의 메시지와 함께 가슴 한 켠을 저릿하게 울려온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의한 녹음입니다. naxos음반은 단 돈 몇천원으로 이런 작곡가의 자작자연을 소장할 수 있느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복각도 잘 이루어져 들을만 합니다.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와 키릴 콘드라신의 협연반입니다. 처음 LP로 출반되었을 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명반입니다. 새로운 시리즈로 재발매되면서 24/192Khz로 리마스터링 되어 음질이 오히려 요즘의 디지털 녹음보다 더욱 좋은 느낌입니다. 꼭 한 번 들어보셔야 할 음반입니다. 젊은 아쉬케나지의 기백과 정열이 담긴 연주
강력 추천하는 레이프 오베 안즈네즈와 안토니오 파파노의 협연입니다. 안즈네즈는 화려하게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마이너 레이블에서부터 녹음을 해오고 리사이틀 등을 통해 아주 단단하고 다부지게 커온 연주자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져진 기본기가 오늘날에는 엄청난 실력으로 폭발하고 있는 듯 합니다. 파파노의 베를린 필 반주도 너무나 멋집니다.
추가로 한 장 더 소개해 드리자면 러시아의 거장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의 이 음반도 과거에 아주 유명했습니다. 리히터가 바르샤바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는게 흥미로운데요. 강렬한 터치의 리히터 연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리히터는 이 곡의 녹음을 아주 여러번 했는데 카라얀과의 협연도 있습니다.음... 개인적으로 카라얀과의 협연반도 괜찮습니다만, 리히터의 피아노 소리는 이 연주가 좀 더 강인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안즈네즈가 현재까지 제 귀엔 최고입니다.ㅋㅋ
끝으로 한 장 더! 흔히 말하는 요즘 대세들의 만남입니다. 피아니스트 랑랑과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협연입니다. 랑랑이 독주회 음반들을 들어보면 압도적으로 건반을 두들겨 대는데, 참 재밌게도 게르기예프 앞에서는 자기 주장을 감춘 채 다소 얌전하게 연주하는 느낌입니다. 가장 최근 발매된 음반으로 게르기예프는 예프게니 키신과도 협연반을 내놓은바 있는데... 개인적으론 키신보다는 랑랑과의 연주가 보다 조화로운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