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시편45편1~17절
제목 : 왕의 혼인
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고라 자손의 한 사람으로 알면 되겠습니다.
저작 시기는 여기 국왕이 누구냐에 따라 정해지는데 학자들에 따라 몇 가지로 말하나 대다수의 학자들이 솔로몬 왕의 애굽 공주와의 혼인을 축하하는 것으로 봅니다.(왕상3:1)
*왕상3:1절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표제를 보면 “사랑의 노래”라고 하였는데,
“사랑의 노래”는 혼인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그 백성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말로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심에 대한 예표입니다.(엡5:25,29,32).
시편 45편은 메시아 시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상징한 것으로 봅니다.
히브리서1:8~9절은 시편45:6~7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소산님”은 “백합화들”이라는 뜻인데 시편69편과 80편 표제에도 있으며,
60편에서는 단수로 하여 “수산”으로 되어 있는데 곡명이라고 합니다.
1~8절은 왕에 대한 노래이고,
9~15절은 왕후에 대한 노래이며,
16~17절은 국왕에 대한 축원입니다.
Ⅰ. 왕에 대한 노래(1~8절)
1~2절에서는 왕의 인품에 대하여,
3~5절에서는 왕의 위엄에 대하여,
6~7절에서는 왕의 통치에 대하여,
8절에서는 왕의 영화에 대하여 노래합니다.
1. 왕의 인품(1~2절)
“[1]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 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2]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위대한 모습을 볼 때 샘물이 솟아 흘러나오듯 하는 시상이 끓어 넘쳐 흘러 나와서 작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혀는 글 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다”고 하였으니
읊으면서 기록하였다는 뜻이니 시가 되고 찬양하는 노래가 한꺼번에 된 것입니다.
왕은 백성들보다 아름다우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으로 은혜롭고 지혜로운 왕이 되었음을 인함입니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는 지혜로운 통치의 언어를 지칭하는 것으로,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시험하러 왔다가(왕상10:1)
도리어 굴복하고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을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10:8, 대하9:7)하고 항복하고 말았으니 알 만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라고 함은 솔로몬 왕이 이렇게 지혜로 선정을 베풀 수 있었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복을 주셨음을 인함인 것을 지칭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그 마음속에 있는 자는 증거와 찬송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넘쳐 나올 수 밖에 없은 것입니다.
“영원히”는 그 예표한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신 복은 또한 전세계에 영원히 미치는 복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하여 이루어졌고 완성될 것이니
이 말씀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2. 왕의 위엄(3~5절)
3절에서는 통치의 위엄에 대하여,
4~5절에서는 국방의 위엄에 대하여 말합니다.
1) 통치의 위엄(3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으로서의 위엄은 먼저 통치를 바로 잘하는 데서 나타나고,
그 다음으로는 국방력이 강해야 합니다.
국방력은 엄밀하게 하면 통치 잘하는 데 있지만,
외부로서의 침략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내정과 구별하여 양립시켰습니다.
먼저 통치력을 말하였으니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라고 하였습니다.
“차라”의 원어는 “카가르”라고 하는 말은 “허리에 두르다”, “허리에 매다”, “몸에 붙이다”의 뜻을 가진 말로서 칼일 때는 허리에 차다가 되겠지만,
영화와 위엄일 때에는 “입으소서”로 하였습니다.
“칼”은 통치권을 지칭함인데 그것을 허리에 찬다고 함은 통치권을 잡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 통치권을 가지고 있음이 왕의 영화와 위엄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한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이 칼을 가지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2) 국방의 위엄(4~5절)
① 위엄있게 승전하소서(4절)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또한 국방력의 위엄이 있어야 합니다.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는 군마와 병거를 타고 위풍 당당하게 출전하여 승전하라는 축원인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싸우는 싸움임을 전제하였으니
이것은 침략해온 적군을 맞아 싸우는 수비를 뜻합니다.
침략전은 욕심으로 인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전쟁이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중의 하나입니다.(잠6:17)
진실 됨과 겸손한 정의 혹은 공평을 나타내는 전쟁이라면
국토를 방위하는 전쟁이지 잘살고 있는 나라를
까닭 없이 침략하여 자기 국토나 넓이는 그런 침략전일 수 없습니다.
또 이 진실됨과 겸손한 의는 내정 통치에도 필요합니다.
거짓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고(잠6:17), 마귀의 무기이니(요8:44)
통치자가 거짓 되어서 안되고,
교만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이고, 독재자의 무기이니 불가합니다.
공평도 거만으로 하면 불공평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아 왕국의 건설과 통치와 방비는 모두 진리와 겸손한 의이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오는 손이 구속의 놀라운 일로 이루어 주시고 진행시키시고 계시며, 앞으로 다시 오셔서 대심판의 놀라운 역사로 영원 천국의 메시아 왕국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② 날카로운 살로 원수를 정복함(5절)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무적의 전사로서 그의 세력을 당할 자 없음을 말합니다.
아브라함 때 언약하신 국토의 경계인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라고 하신 말씀이 솔로몬 왕 때에 비로소 이루어졌으니
그 정복함이 어떠하였음도 알 만합니다.
메시아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이길 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메시아의 살은 인심을 꿰뚫었으니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형제들아 우리는 어찌할꼬”(행2:37)하였고,
성도를 박해하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의 염통을 찔러 회개시켜 대사도로 만들어
기독교 선교의 효시뿐 아니고 땅 끝까지 이르는 역사를 실천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화살”은 심판의 진노를 상징함이니(시7:11~13)
마지막 그리스도의 대심판대 앞에서 성도 외에 견딜 자 과연 누구이겠습니까?(계20:11~15, 시130:3)
3. 왕의 통치(6~7절)
6절에서는 하나님께 위임받은 보좌에 대하여,
7절에서는 동류보다 승함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 하나님께 위임받은 보좌(6절)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보좌 곧 왕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영원하며
공평함을 말하였습니다.
왕을 하나님께서 세웠다는 것입니다.(단4:17, 롬13:1)
*단4:17절 “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
*롬13: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2) 동류보다 승함(7절)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기 때문에 통치는 공정하게 됩니다.
상선벌악이 공정하지 못하면 공평한 나라가 될 수 없고
동시에 이러한 나라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악인이 횡행하여(시12:8)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께서 진멸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으니
메시아 왕국은 온전히 정의의 나라요 악은 전연 용납되지 않습니다.
“즐거움의 기름”은 유대인들은 연회석에서 빈객에게 기름 붓는 습관이 있는데 시인이 왕의 혼인 연회석에서 왕에게 기름 부음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말씀도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응하였으니
그리스도라고 하는 말 자체가 “기름 부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셔서 메시아를 삼으셨음입니다.
“동류보다 승하게”는 다른 열방의 왕들보다 뛰어나게 하셨음을 뜻합니다.
주변 모든 왕들이 그에게 공물을 바치고(왕상4:21)
또 지혜를 들으려고 예물을 가져왔으니(왕상10:24~25, 대하9:23~24),
이 말씀도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응하였으니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로서(계17:14, 19:16),
빌2:9~10절 “[9]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하였고,
엡1:21~22절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늘에 있는 자들은 별세한 성도들과 천사들도 가리키고,
“통치,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는 천사의 직분적 명칭이니 천사들도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난 것으로 증거하였습니다(히1:9)
4. 왕의 영화(8절)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의 영화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부로 인하여 극치에 이르렀으니,
역사상 전무 후무한 영화로서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요(마6:29),
그 부력은 기울여 지은 궁궐이므로 스바 여왕이 이를 보고 정신이 황홀한 만도 하였습니다.
“몰략”은 아라비아에서 가져온 고귀한 향품이요 또한 방부제로서,
예수님 탄생 시에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예물 중에도 들어 있었고(마2:11)
니고데모가 예수님 장례시에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져다가 시체와 함께 세마포로 쌌었습니다.(요19:39).
“침향”은“알로에”(요19:39)로 하였는데, 나무라고 한 것으로 보아(민24:6) 우리가 알고 있는 화장품에 이용하고 또 성인병에 좋다고 선전하는 “알로에”와는 다른 식물인 것 같고 나무나 껍질이 향기가 있는 나무인 것 같습니다.
인도산으로 값비싼 향료라고 합니다.
“육계”도 인도산으로 향기가 있는 껍질을 벗겨 가루를 만들어 향료로 사용하였가고 합니다.
욥의 둘째 딸의 이름이 이름으로 하여 “긋시아”라고 하였습니다.(욥42:14).
이는 예수님의 고귀하신 인격을 예표한 것으로, 그의 쏟은 피는 만민을 구원하는 향기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고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하셨습니다(눅2:52)
“상아궁”은 궁전을 상아로 장식한 것이니 영화의 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아는 3년에 일차씩 다시스에서 금과 은과 함께 수입한 것으로 귀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대단히 값비싼 것입니다.
그런데 또 거기서 흘러 나오는 현악이 왕을 즐겁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 현악기들이 천하에 휘귀한 오빌에서 보석과 함께 운반하여 온 백단목으로 만든 것으로서 이 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스바왕이 왔을 때까지도 없었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희귀목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무로 만든 현악기들(수금,비파)의 음악 소리가 솔로몬을 더욱 기쁘게 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서 기쁨과 영광을 누리시는 복된 환경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보다도 대심판 후 영원 천국에서의 영광이 더 크실 것입니다.
Ⅱ. 왕후에 대한 노래(9~15절)
9절에서는 왕후의 단장과 지위에 대하여,
10~11절에서는 친정을 잊고 왕을 섬기라고 함에 대하여,
12~15절에서는 왕후의 영화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왕후의 단장과 지위(9절)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 왕들의 딸이 있다고 하였으니 애굽 공주 바로의 딸도 포함될 것이고, 그 외에도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을 많은 이방 여인 중에서 언급할 때는 아마 왕들의 딸일 수 있겠고,
그 후비가 700이요 빈장이 300이라고 하였으니(왕상11:3)
그 후비 중에 또 더 있을 수도 있을 줄 암니다.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라고 하였는데 혼인식을 성대히 올리고(왕상3:1) 왕후의 궁을 지어 준 것으로 보아 바로의 딸을 가리킴이겠고,
바로도 딸을 위하여 게셀을 처서 탈취한 다음에 딸에게 예물로 주었으므로 솔로몬이 축성하였습니다.
왕비의 수가 많은 것이 자랑거리가 이니고 그것은 교회를 비유함이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의 의로 단장합니다.
오빌의 금은 가장 순수한 금인고로 그리스도의 의를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이 의를 입어 그리스도의 권위로 천국에 들어가 서게 됩니다.
2. 친정을 잊고 왕을 섬길 것(10~11절)
10절에서는 친정을 잊어라 하였고,
11절에서는 왕을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1) 친정을 잊어라(10절)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리라”고 함은 이 이방 여인들에게 온전히 유대풍속에 동화되어 유대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언어, 풍습, 옷, 구미까지도 남편과 조화되어야 그 평생 생활에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에게는 종교 의식이 제일 큰 문제이니,
친정 본국에서 이방 신 우상 섬기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유대인 사회에 싸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 때문에 이방혼인을 금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후비들이 이를 잘 이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솔로몬의 말년에 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자신들의 신들을 섬겨 왕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기 전 세상 풍습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주를 섬기고 순종하게 함의 상징이니 세상을 사랑함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약4: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고 하신 것도 구습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잘 섬기게 하려 함이었으니(사51:1~2) 그 후손 된 이스라엘이,
또 세상에 속한 것, 전에 섬기던 사신 우상 할 것 없이 일체를 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주만 전심으로 섬겨야 합니다(삼상7:3).
2) 왕을 섬길 것(11절)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은 자기 백성과 아비 집을 잊고 왕만 잘 섬기는 그 일을 지칭함입니다.
이러한 자를 왕께서 “사모하실”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사모한다”는 말은 이곳에서 “좋아하실지라”로 하면 되겠습니다.
왕이 왕후에게 매력 되면 그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르므로 잘못되기 쉽기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노경에 후비들의 소원을 따르다 잘못되지 않았는가(왕상11:4~9).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 경배한다는 말은 “절한다”말로서 성경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경배하다”(출33:10, 신26:10)로 번역하였지만 사람에 대하여는 “절하다”(출11:8)로 왕일지라도 “절하다”(삼하16:4)로 번역되었고, 이방인이나 우상에게도“절하다” 또는 “숭배하다”로 번역하였지 “경배하다”로는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솔로몬 왕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경배하다”로 번역함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마4:10, 눅4:8, 계19:10).
그러나 이것이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대한 것이 될 때에는 진정 경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예표보다는 그대로 예언으로 보았다면 경배로 번역함이 적합하다고 봅니다.
원문에서는 “네 아름다움”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라는 말 사이에 이유 접속사가 있어서 주 됨이 신부를 사랑하는 이유 설명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너는 그를 존경(공경)해야 된다는 이유도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엡5:28), 또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엡5:25).
그러므로 주된 왕으로서는 왕만 위하는 왕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왕후로서는 또한 자기를 제 몸같이 사랑하여 주는 왕을 공경하여 절대 복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엡5:22~24).
그러므로 그를 공경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그 신부 교회와의 사이를 예표함이니,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여 속죄하신 것만큼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절대 복종하고 경배하여야 합니다.
3. 왕후의 영화(12~15절)
12절에서는 이방이 예물 드림에 대하여,
13절에서는 왕후가 영화를 누림에 대하여,
14~15절에서는 왕께 인도됨에 대하여 말합니다.
1) 이방이 예물을 드림(12절)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본절은 이방들이 공물 바치는 것이 왕후에게도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을 지칭함입니다.
“두로의 딸”은 두로를 가리킴이니 그 백성까지 다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거기 거하는 거민을 가리켜 “예루살렘의 딸”(눅23:28, 슥9:9)
혹은 “시온은 딸”(요12:15, 슥2:10)이라고 함과 같습니다.
“예물을 드리고”는 주변에 있는 열방이 다 조공을 바친 것같이(왕상4:21, 시72:10) 두로도 그중 하나이겠으니,
유브라데 강으로부터 지중해까지(시72:8~9)
또 애굽 강까지(왕상4:21) 다 정복하고 다스리므로 열방이 다 굴복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시72:11, 왕상4:21).
그러므로 후비 중 왕의 딸들이 있었는데(9절, 왕상11:1),
시돈이 그중에 하나였으니 시돈은 두로와 같은 뵈니게 지방의 항구 도시여서 두로도 솔로몬의 다스림을 받는 도시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백성 중 부한 자”는 두로를 거듭 언급함이니 무역으로 크게 부요한 도시로 알려진 곳입니다.
시돈도 이 부한 자 중에 포함될 수 있으니 두로와 같이 무역으로 부요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둘을 항상 묶어서 함께 언급하신 것으로 보아서도 같은 조건 아래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성도가 미덕을 나타내고 성결함을 드러내면 불신자까지도 칭찬하고 회개하며 그 미덕에 끌려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벧전2:12,19~21).
“네 은혜를 구하리로다”는 원문이 “네 얼굴을 구하리라”이니,
은총 입기를 구함이요, “잘 봐 달라”, 혹은 “잘부탁한다”는 뜻이겠습니다.
2) 영화를 누림(13절)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딸”은 애굽 왕 바로의 딸을 가리킴이니 곧 왕후(9절)를 말합니다.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린다고 하였는데 왕후가 왕의 영화를 함께 누림입니다.
노경에 후비들의 이방 신들을 위한 신상이나 신당을 만들어 줌에 있어서 시돈, 암몬, 모압 등은 언급하였어도(왕상11:5~8),
제일 크고 국력도 강한 애굽을 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왕후는 후비들같이 굴지 않고 자기 백성과 친정 일들을 다 잊고 왕만 잘 공경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돌아갈 영광도 컸으니 그 몸 단장을 온전히 오빌의 구ㅚ한 금으로 꾸밀 뿐 아니고(9절) 그 옷을 금으로 수놓아 입었으니 금에 싸인 휘황찬란한 영광이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만 섬기면 그리스도의 천국 영광을 다 함께 누리고 함께 왕누릇 할 것이니(딤후2:12)
세세토록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한다고 하였습니다.(롬5:17, 계20:4)
솔로몬의 왕후는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었지만,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로 수놓은 맑고 빛나는 세마포를 입고(계19:8),
의의 면류관(딤후4:8), 생명의 면류관(약1:12, 계2:10)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고전9:25)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벧전5:4)
온갖 보석으로 꾸민성에서 맑은 유리 같은 정금 길을(21:18~21) 다니며,
온갖 영광 다 누릴 것입니다.
3) 왕께 인도됨(14~15절)
“[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15]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수 놓은 옷을 입은 자”는 왕후이니(13절)
그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음”은 왕의 총애 입는 자리 곧 왕궁을 뜻합니다(15절)
아가서 1:4절에 보면 술람미 여인(아6:13)을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라고 하였는데 침궁은 주인 외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인 왕후를 위하여는 왕후의 궁을 별도로 지었고(왕상7:8)
왕후를 그리로 들게 하였으니(왕상9:24, 대하8:11)
이 궁이 왕후가 사는 궁이요 또 침궁일 것입니다.
“인도하다”는 말에는 종국적으로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섭리와 은혜의 수단과 도움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므로 이는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예표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어 누리는 영광의 경험은 둘의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밀접한 관계이므로 그 기쁨과 즐거움은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어 들어가는 왕궁은 영원 천국이니 그 기쁨을 필설로 표현함은 불가능합니다.
Ⅲ. 국왕에 대한 축원(16~17절)
16절에서는 왕의 계대에 대한 축원이요,
17절에서는 왕의 이름이 만세에 기억되리라는 축원입니다.
1. 왕의 계대(16절)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후손이 계승하여 끊임없이 왕위가 계속될 것을 축원함입니다.
자손의 번영 자체가 복된 것일진대, 왕위를 지켜 나간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일 것입니다.
사울은 1대로 마감했고,
다윗 왕통은 하나님의 언약대로(삼하7:13~14) 바벨론 포로시까지 다윗 자손으로 대를 이어 왕이 되었고 다른 자손들이 찬탈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 자손들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그 왕통은 계속되었을 것인데 그 죄 때문에 혈육의 자손들이 대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표한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계대하셨으니 하나님의 언약은 폐하여진 것이 아닙니다(롬9:6).
신자의 영적 자손들은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계 승승 더욱 왕성하여 땅을 차지할 것이니 그리스도는 온 땅의 왕 곧 만왕의 왕이신 것입니다.(계17:14,19:16)
“계승한다”는 말은 원문에서는 “밑에”, “아래에”, “대신에”의 뜻을 가진 말로서 조상들을 대신한다는 뜻이니 곧 그 왕위를 계승한 다는 뜻입니다.
본절를 원문대로 옮겨 보면 “ 네 자손들이 네 조상들을 대신하리니 네가 그들을 온 땅 안에 왕들로 만들리라”입니다.
2. 왕의 이름이 만세에 기억됨(17절)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데 그 이름이 만세에 기억된다는 것도 귀한 복입니다.
솔로몬 왕의 이름은 온 땅에,
또 이 세상 끝날까지 믿는 자뿐 아니고 불신자들에게 까지도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 시인이 “내가 기억하게 하리니”라고 말함은
자신의 기록 곧 본편 시가 그렇게 오래 널리 전파될 것을 확신함이니
오늘도 아니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그대로 남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는 이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이 세세 무궁토록 영영히 잊어버려지지 않을 것과 그 복음의 전달을 예표 함이니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복음은 끊임없이 땅 끝까지(행1:8) 전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민이 그 이름을 찬송하게 됩니다(빌2:11)
박윤성 목사는 “예수님의 이름은 늘 불러도 염증이 아니 생기고 늘 달다”라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