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사무엘하19장11~23절
제목 : 누가 내 형제요 골육인가
압살롬의 죽음으로 반란은 제압되었지만 불란의 불씨는 모두 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위로 복귀하는 다윗에게 잘 보이기 위한 줄서기 경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어떻게 모셔 올 것인가를 의논합니다. 10절입니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배반하고 압살롬의 편에 적극 가담했던 유다 지파에 손을 내 밉니다.
왜냐하면 유다지파는 다윗이 속한 지파이며, 처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섬긴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 환궁을 위해 자신을 배신한 유다 족속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유다 족속의 영접으로 요단을 건너 다윗을 시바와 시무이가 맞으러 나옵니다.
1. 다윗의 환궁 준비(11~15절)
1) 왕이 복귀가 지연됨을 묻습니다(11절)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 이는 다윗 왕이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위해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두 제사장, 곧 사독과 아비아달을 교섭의 실무자(實務者)로 임명하는 장면입니다.
다윗 왕이 이처럼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시도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내에서 일어났던 다윗 왕의 복권 추진 움직임 때문이었습니다(9,10절).
즉 만일 이스라엘 지파들만이 다윗 왕을 지지하는 가운데 그가 꼭 복권된다면, 다윗 왕과 유다 지파 사이는 대단히 소원(疏遠)한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가 다윗 왕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다윗 왕을 복권시키겠다고 나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의 왕을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성읍으로 모실 위험성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 왕은 자기가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서만 복권될 경우,
자기의 통치력이 심히 약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왜하면 다윗 왕은 유다 지파출신으로서, 만일 타 지파에서 반란을 일으킬 경우 그를 지지할 지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 왕은 자신이 복권하는데 유다 지파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과거 압살롬의 반역을 주도했던 유다 지파의 죄를 용서하고,
온 나라의 총화 단결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입니다(Leon Wood).
유다 장로들. - 이들은 유다지파를 다윗 왕에게로 돌릴 수 있는 실제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이들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 다윗 왕이 복권된 후 자기들에게 미칠 후환(後患)을 우려하여 잠가자코 있었던 것입니다.
2) 다윗은 유다 지파에게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적극 협조를 요청합니다(12절).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 여기서 다윗 왕은 자기가 유다 지파 출신이므로 유다 지파 바로 그들이 자기의 복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갈은 다윗 왕의 말은 자기를 반역한 유다 지파에 대해 유화정책적(宥和政策的) 발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제안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즉 다윗 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다 지파 다윗 왕의 복권에 적극 앞장서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불평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입니다(40-43절).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세바(Sheba)의 난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골육'(骨肉)(`에쳄 우바사르')를 직역하면, `뼈와 살'(bone and flesh)이란 뜻입니다.
이는 곧 피를 나눈 친척이나, 또는 자기 신체의 일부라 할 정도로 가까운 인간관계를 멎고 있는 자에게 사용되는 히브리 문학의 한 표현입니다.
3) 아마사에게 회유의 메시지를 보냅니다(13절)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 압살롬의 군장(軍長)이었던 아마사(Amasa)는 실제로 다윗 왕의 조카였으며, 요압과는 사촌지간이었습니다(1717:25; 대상 22:16,17).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 여기서 다윗 왕은 요압을 축출하고 새로이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처럼 다윗 왕이 요압을 축출하려 한 이유는 요압에 대한 그의 좋지 못한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즉 요압은 다윗 왕이 죽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압살롬을 죽인 장본인이었으며(18:14),
또한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사납고 거친 비난을 서슴치 않았던 자였고(5-7절; Hertzberg),
그리고 요압은 다윗 왕의 집권 초기에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부당하게 죽인 난폭자였습니다(3:27, 39).
그러나 이러한 요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외에
또 다른 측면에서 다윗 왕은 아마사와의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즉 다윗 왕은 당시 반란군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모두 규합(糾合)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서, 다윗 왕은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반역했던 모든 압살롬의 추종자들에게 자기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했던것입니다(Payne).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아마사등용 정책은 불공평하고 현명치 못한 처사였습니다(Smith).
즉 다윗은 화합이라는 대전제 아래 무모한 관용과 앞뒤를 가늠하지 않은 결단함으로써 재난의 불씨를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20:10).
특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4:14, 15)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요압은 반란군 진압의 공헌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요압을 제쳐놓고 반역의 최일선에 섰던 자를 군대의 통솔자로 삼은 것은 다윗의 실수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즉 그때 다윗은 공의로운 통치 원리보다 인간의 이해를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거나 실수를 범하게 마련입니다(마 26:69-75).
결국 이러한 다윗의 처사에 앙심을 품은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점(20:8-13)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의 다윗의 처사는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판단됩니다.
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부하들과 함께 돌아오라 합니다(14절)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 여기서 `돌리게 하매'의 주체는 아마사나 대제사장들 (사독과콰 아비아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왕입니다.
즉, 본 구절에서 저자는 유다 지파에 대한 다윗 왕의 지혜로운 정책(11,12절)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묘사하고있습니다(Keil, Lange).
5)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옵니다(15절)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급히 요단 강을 건널 때(17:22)와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권속과 승전한 군대를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요단강에 이르렀습니다(F.R fay).
요단을 건 네려하여. - 이는 `다윗 왕을 호위하여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하기 위하여'란 뜻입니다(Keil).
길갈 엘리사의 길갈(왕하 2:1-4),
갈릴리에 있는 길갈(수12:23),
유다의 경계 지역에 있는 길갈(수 15:7),
에발 산 근처에 있는 길갈(신 11:30) 등이 있으나,
여기의 길갈은 여리고 근처, 곧 요단강가의 길갈을 의미 합니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넌 후 진을 치고 12지파의 기념비를 세운 곳입니다(수 4:19, 20절).
한편 이곳은 바로 요단 강가에 위치했으므로,
유다의 장로들이 다윗 왕을 맞이하는 이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2.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선처(16~23절)
1)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옵니다(16절)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바후림 - 베냐민 지파의 성읍입니다(16:5).
게라의 아들 시므이 - 시므이는(Shimei)는 베냐민 사람이며,
자기 지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자입니다.
또한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압살롬 난을 피하여 도망갈 때 왕에게 돌던지며 혹독하게 저주했던 사람입니다. 16:5-8부분의 주석 참조.
2) 베냐민 사람 천 여명과 사울의 집안 종들도 함께 나옵니다(17절).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그와 함께하고.`길갈'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지역이었습니다(수 4:19).
그리고 예루살렘 성(城)또한 이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습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왕을 영접하기 위해 성의를 보였던 것입니다(Hertzbrg).
그러나 다윗 왕을 마중나온 일천 명의 사람들은 시므이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데리고 온 자들이었습니다(Schmid, Payne).
즉, 지난번의 큰 과오(16:5-8)를 용서해 달라는 표시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왕의 환궁(還宮)을 환영함으로써 왕에게 아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베냐민 지파 내에서의 시므이의 실권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능히 동원할 수 있는 지파 내의 실력자였던 것입니다(Smith).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 시바(Ziba)는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으로서, 사울의 유산을 관리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난을 피하여 도망 할 때에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착복한 자였습니다(16:3, 4).
그런데 이제 다윗 왕이 복권하여 다시 돌아오자.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윗 왕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마중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시바가 자기의 여러 식솔들을 데리고 온 것은 다윗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첨의 행동이었습니다.
요단 강을 밟고 건너. - 여기서 `밟고 건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찰레아흐'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듯 `급히 임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삼상 10:6; 삿 14:19; 15:14).
따라서 이 말은 시므이와 시바가 요단강을 급히 건너 요단 동편에 있는 왕 앞에 당도한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Lange).
이처럼 저들이 다윗 왕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자 애쓴 까닭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면해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의 조류에 재빠르게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두 인물을 봅니다.
즉 이들은 이제 정국이 다시 다윗의 시대로 복귀되자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지극히 겸손한 가세로 다윗을 맞으러 발벗고 나섰던 것입니다.
3)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립니다(18절)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여기서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베아브로 바야르덴'을 직역하면 `그가 요단을 건넜을 때에'(as he crossed the Jordan)이란 뜻으로, 사실상 주어가 구체적로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다윗 왕으로 봅니다(Keil, Bunsen).
그리하여 `다윗 왕이 건넜을 때에'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시므이와 시바일행이 황급히 요단강을 건넜다고 한 17절의 기록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주어는 시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는 황급히 다윗 왕에게 사과하는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시므이가 요단을 거너자마자 곧(as soon as) 왕의 앞에 엎드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 왕이 아직 요단 동편에 있을 때에 시므이가 황급히 요단강을 건넜고, 또한 요단강을 건넘과 동시에 왕 앞에 무릎 꿇는 시므이의 즉각적(卽刻的)인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므이가 왕 앞에서 즉각적인 굴복과 사죄의 행동을 취한 것은 지난날 그가 다윗 왕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던 큰 과오(16:5-8) 때문이었습니다.
4)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말아다라라 하십니다(19절).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이는 시므이가 구차하게 자기의 지난 날의 과오를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아울러 용서를 구하는 시기도 매우 시의(時宜) 적절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자기의 죄를 참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자신이 무사하기만을 위해 빌었던 것입니다(Keil, Fay).
5) 내가 범죄한 줄 알기에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한다고 말합니다(20절).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 와서. - 여기서 `요셉의 온 족속'은 다윗이 속해 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셉 족속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를 의미합니다(삿 1:22, 35; 시 78:67).
즉 에브라임 지파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 지파에 대한 지배권(支配權)을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지파였기 때문에, 흔히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여기서도 요셉의 온 족속이란 말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총칭하는 말입니다(왕상 11:28; 대상 5:1,2; 암 5:6).
이렇게 볼 때 베냐민 지파 소속인(4절) 시므이의 이와 같은 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자기가 제일 먼저 요단강을 건너 왕을 영접 한다는 아부의 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온 지파의 `첫 사람'(The first Israelite)이라고 자처하면서 왕 앞에 절함으로써, 이제 온 이스라엘이 왕의 지배권 하에 있게 됐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시므이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다윗 왕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순간에 사죄함으로써 왕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던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므이의 처신은 비록 교활하고 가증스럽기는 했으나,
또 한편 으로는 매우 대담하면서도 지혜로운 처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므이의 이러한 처신 속에는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왕상 2:46).
6) 아비새가 시므이가 죽어야 마땅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21절)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일찍이 아비새는 시므이가 피난중의 다윗 왕을 저주할 당시에도 의분을 터뜨리고 그를 죽이려 했었습니다(16:9).
지금 아비새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다시금 시므이를 죽일 것을 주장합니다.
사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한 자는 마땅히 처형시켜야 한다는 아비새의 말은 옳습니다(출 22:28).
그리고 다윗도 아비새의 말에 감정적으로는 동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막 피난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아비새의 진언을 거절하고 시므이의 사면(辭免)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즉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인식에 근거, 삼상 26:9-11)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민심 수습)로 그를 당장에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끝내는 처형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왕상 2:8,9).
인간이 범하는 실수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주권적 사역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멸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7) 다윗이 시므이를 용서합니다(22절)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 다윗 왕은 지금 왕위(王位)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온 나라는 새로운 태평시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마당에 선왕(先王)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실권자 시므이를 죽이는 처사는 아직껏 사울 왕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베냐민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로서, 곧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고 마는 치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시므이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를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자로 규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정을 내다보는 다윗 왕의 폭넓은 지도력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여기서 다윗왕이 아비새를 가리켜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plural)로 칭한 것에 대해 반드시 아비새의형 요압이 아비새의 주장에 협조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Smith), 다만 아비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리 경고를 주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로 통칭 표현하며 책망할 듯합니다.
한편, 본절에서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하는 다윗의 말 속에 `오늘'이라는 말이 세번씩이나 반복 언급되는 것은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에 `모든 지파의 화합'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깃들어 있음을 은연중 시사합니다(F.R. Fay).
8)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합니다(23절)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 다윗 왕이 시므이를 사면(赦免)해준 것은 주로 정치적인 의도에서였습니다.
즉 다윗은 반대파인 시므이를 사면해 줌으로써. 이스라엘지파 특히 베냐민 지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고 온 지파의 화합을 도모하려 했던 것입니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한 다윗의 맹세는 온 나라의 화합을 추진하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에게 자연히 보여주는 일종의 제스쳐였습니다.
그러나 후일 다윗 왕은 그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도록 명하였습니다(왕상 2:8, 9).
그리고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좇아 결국 시므이를 처형시켰습니다(왕상 2:46).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있습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은 셈입니다(Keil).
즉 다윗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수를 하고 만것입니다. `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시 15:4)고 읊은 사람은 바로 누구였던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롤 처벌하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의 맹세와 모순되지 아니합니다(Lange).
즉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 맹세는 자신의 집권 당대에만 유효한 것일 뿐, 이후의 왕에 대해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 치세 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암적 존재요 상습적 모반자인 시므이를 경계. 처벌토록 부탁했던 것으로, 오히려 현명한 조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압살롬의 반란이란 큰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란이란 큰 분열의 불은 껏지만 골육과 혈연이란 작은 불씨를 짚임으로 인해서 또 다른 큰 불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혈연과 학연 지연과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 넘는,
하나님 나라의 견본주택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 어떤 편애와 분열로 올바르지 않으면 우리는 이것을 용납하지 말고 뛰어 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형제와 자매로 삼아 주셨습니다.
마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누구든지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내 형제요 내 자매라. 그래서 완전한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은 사람답게 더 이상 어떠한 인간의 조건으로도 편애하거나 분열하지 말고 서로를 진심으로 용납하므로, 평안한 가정과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크던 작던 모든 일속에서 주님의 뜻을 묻고 행하는 그러한 삶을 사라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이해관계로 얽힌 형제와 골육은 없습니다(11~13절).
다윗은 유다 백성과 아마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형제와 골육’의 수사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라 하던 이스라엘 지파를 부끄럽게 하는 처사입니다(5:1).
서로 필요할 때 혈육을 강조하는 관계는 가짜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의 가족은 모든 이해관계와 혈연관계를 뛰어넘습니다.
형제자매 됨을 ‘강조하기’보다 ‘보여주기’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2)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의 재 옹립을 논의할 동안, 다윗은 오히려 유다백성들이 그의 환궁에 주도권을 잡도록 정치적 수완을 발휘합니다(11~15절).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통해 장로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절한 아마사를 새 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
압살롬 세력들의 염려를 종식시킵니다.
“모든 유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같이”모았으나 그로 인해,
요압의 마음은 멀어집니다.
거래로 얻은 마음은 곧 나를 배신합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마음은 하나인 듯 보이나 여러 갈래입니다.
우리 공동체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 하나 같이 모여 있습니까?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기울어지게 하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3) 환궁하는 다윗을 맞으러 시바와 시므이가 급히 왕 앞으로 나옵니다(16~20절).
“사악한 자여 가거라”라고 저주하던 시므이가 이제는 “내 주 왕을 영접”합니다.
말의 허물을 덮으려 더 많은 말로 치장합니다.
내뱉은 말은 아무리 “급히”담으려해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금새 후회할 말을 너무 쉽게 하지는 않습니까?
4) 다윗은 시므이를 다시 용서하지만, 용서의 이유는 이전과 다릅니다(21~23절).
하나님의 왕 되심으로 인해 용서했던 그가(16:10~11),
*16:10~11 “[10]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11]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이제는 자신의 왕 됨을 인해 용서합니다.
복수나 징벌을 뒤로 미루는 용서는 더 이상 용서가 아닙니다(왕상2:9).
*왕상2:9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용서는 나의 너그러움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너그러움을 전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을 때, 용서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은혜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