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이명진의 문화여행
—《물색없는 사랑》의 경우
1. 들어가면서
인간은 어쩌면 미지의 세계를 끝없이 항해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는 세계, 미처 가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인간을 움직이어 끝없이 추구하는 삶을 요구하게 된다. 그 호기심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달려가게 하기에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역할도 하게 된다.
미지의 세계는 크게 두 영역으로 가름된다.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지 못하여 생긴 미지의 세계와 시간적인 제약을 뛰어넘지 못하여 생긴 미지의 세계가 그것이다. 이 두 세계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을 최대한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이 ‘옛날이야기’이다. 옛날이야기는 어느 것이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어느 두메산골에’로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우리가 접해보지 못한 시간적 미지의 세계이며, ‘어느 두메산골에’는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에 갈 수 없었던 공간적 미지의 세계이다. 이와 같이 옛날이야기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만들어진 재미난 이야기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여행은 어쩔 수 없이 이 두 영역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명진의 여행도 이 범주에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일반인들과 다른 점은 그가 작가라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일반인들은 여행하면서 자연 풍광에 시선을 빼앗긴다. 그리하여 수습하지 못하는 시선으로 철저한 관광객이 된다는 데 반해 작가는 그렇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보려 하고, 자신의 잣대로 그것들을 재려 한다.
국내이든 국외이든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여행의 기회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을 덜어내 주는 기회가 된다. 작가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극복하지 못하였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데에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러기에 외국여행의 경우에는 공간적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하고, 국내여행에서는 시간적 호기심이 더 관심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궁금해 하는 분야가 어느 분야이며,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세가 어떠하냐이다. 물론 자신의 궁금증을 독자들의 경우와 동일선상에 놓고 그것을 꼼꼼히 살펴서 속 시원히 독자들에게 제시하여야 한다는 것은 작가의 할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끝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늘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일상 속에서도 자신을 성찰하려 한다. 현상을 받아들이는 수용자세가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게 되면 자연히 겸허하게 된다. 여행을 하면서도 이러한 자세는 유지된다. 그래서 언제나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서는 물상들을 자신의 프리즘으로 통과시켜 읽으려 한다. 이런 경우에는 철저하게 자신의 삶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성찰의 유형에서는 작품 속에 작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하나의 경우는 작가의 시선이 사회 현상을 읽어내는 데에 있다. 자신의 시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기술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이 때에는 작가의 시선이 다양한 분야로 여행한다. 작가들의 관심사는 각양각색이기에 당연한 현상이다. 오직 문제는 얼마나 깊이 있게 정확히 사회 현상을 꿰뚫어 바라보고, 그 현상을 어떤 자세로 수용하느냐에 있다.
인간은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진 못한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군소리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성장에 필요한 것을 최대한 찾아내어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이 사람이다. 무소유는 물적 재화에 치중하게 되고, 정신적 재화까지 그렇게 한다면 나태한 삶으로 떨어지기 쉽다.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접하게 되는 것은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작가 이명진의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자세는 그의 수필 ‘길에서 길을 본다.’의 앞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어쩌면 이번 수필집을 엮게 되는 작가의 마음 자세를 한 마디로 말해주는 구절이 아닐까 한다. 늘 새로운 것 앞에서는 두렵고 긴장이 되어 피하고도 싶지만, 더러는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도 느끼게 된다. 그가 작가로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늘 두려움 속에서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떠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호기심에 새로운 길을 달려 보지만 내심 콩당콩당 가슴은 방망이질 친다. 혹, 이 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호기심은 어느 사이 두려움으로 변해 있다. 왜, 새로운 길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는 걸까. 그래서인지 나는 운전을 싫어한다. 하지만 필요에 의한 운전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일이 거듭 되고, 반복적인 일상은 나로 하여금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살게 한다. -<길에서 길을 본다>에서
그러면 수필집 《물색없는 사랑》의 경우를 살펴보자. 기술의 편리를 위해 몇몇 항목으로 나눈다.
2. 이명진의 시간여행
대부분 국내여행에서 보이는 현상이지만, 작가 이명진에게 있어서 미지의 세계 한 축은 시간적 제약에서 비롯되고 있다.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현상을 떠올리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사물 인식의 시도로 볼 수 있다. 그 과거는 현재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생경한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현재를 올바로 인식하게 하는 근본이 되기도 한다. 과거는 현재가 존재하게 되는 뿌리이기도 하고, 상호 비교함으로써 두 시대의 차이를 올바로 읽어낼 수도 있다. 또 현재의 현상에 대해 풀리지 않는 것들을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당시 문민정치를 부르짖던 정조대왕이 화성을 쌓을 때 노임을 지급했더니 수원으로 벌 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때 두어 달 노임을 모으면 조그만 밭이 딸린 집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수도 이전 지역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할 수 있지 않은가. 투기꾼이라는 상술이 판을 치고 있어 성실하게 노력하며 생계를 위해 돈을 벌려고 했던 옛 시절과는 상이하다고 볼 일이다.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이 생계유지가 아닌 재산 축적의 정서로 바뀌어 버렸으니 아쉽기만 하다. 물론 시대상에 따른 국민 소득의 차이도 있겠지만 왠지 궁궐 지붕 위에 버티고 있는 어처군이 남달라 보임을 숨길 수 없다. 성과 궁을 지으면서도 왕의 위용과 화와 안위를 위해 부조물 하나까지 세심한 신경을 썼던 왕권의 흔적이 복원바람을 타고 처마에 걸린다.
-<행궁, 영원한 흔적들>에서
작가는 정조대왕 시절과 오늘의 현상을 대비시키고 있다. 화성에 성과 궁을 지으면서 노임을 지급하자 생계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일꾼들이 몰려들었던 현상과 오늘날 행정수도 이전으로 몰려든 투기꾼들을 비교하고 있다. 과거에는 건전한 사고로 사람들이 모였다면 지금은 노임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일확천금을 꿈꾸며 투기하려는 사람만이 모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의 상황만을 기술했다면 독자에게 주는 감동은 적을 것이다. 과거의 현상과 현재의 현상을 대비시킴으로써 현재의 부끄러운 얼굴을 질타하기에 용이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현재 인구의 10배가 넘는 인구가 강화도에 살았다고 한다. 작은 섬의 위용이 지리적 여건에 걸맞게 대단했음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아닌가. 물이 흔해 논농사도 지을 수 있었으며, 산을 끼고 있어 밭농사도 가능했고, 바다가 둘러쳐져 있어 어업이 발달했다. 오곡백과 풍부하고, 자급자족이 자유로웠으니 외세의 침입에 시달려야 했음은 당연지사다. 조선시대 인조는 왕이 행차 시 머물 수 있는 행궁을 건립하고 강화 유수부, 규장외각 등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함락되었으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완전 소실되는 등 수난의 흔적이 아픈 상처로 남았다. 고려시대의 궁궐터라고 하기엔 왜소해 보여도 아기자기한 지세의 아름다움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조들 지혜와 어울려 역사를 곱씹게 만든다. -<심도 길을 가다>에서
심도는 강화도의 옛 지명이다. 제목에서 ‘강화도 길을 가다’로 하지 않고 ‘심도 길을 가다’로 한 이유를 우리는 쉽게 간취할 수 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위한 배려이다. 현재의 강화 모습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과거의 호화로웠던 시절의 역사를 올바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구는 물론 당시의 지리적 여건과 산업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의 강화도의 위치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배려는 현재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의 현상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이 일어나게 하고 그를 토대로 현재의 모습을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시간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독자를 끌고 가는 마력을 갖게 한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독자들을 과거로 인도하여 궁금증을 자극하여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게 하려는 것이다.
3. 이명진의 공간여행
대개의 경우 여행은 공간의 이동으로 이루어진다. 국내여행이든 국외여행이든 그것은 당연하다. 기행수필은 여행을 할 때는 내가 살지 않는 곳의 문물을 접하면서 견문을 적기 마련이다. 단순한 여정이나 체험만을 적는다면 그것은 수필이 될 수 없다. 반드시 하나의 주제를 정해 놓고 그것과 관련된 것만을 가지고 글을 구성해야 한다. 여행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줄글로 적어 놓고 그것을 수필이라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록은 어떠한 수용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현저한 내용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헉헉대며 오른 1,860m의 연화봉에서부터 볼 수 있는 진풍경은 기암괴석의 절경과 함께 바위 돌에 못 박혀 있는 연심쇄(連心鎖 : 쇠줄에 자물쇠를 잠궈 매달아 놓은 모양)였다. 또한 천길 낭떠러지 곳곳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난간 철책마다 수없이 채워져 있는 자물쇠들. 각자 이름이 새겨진 자물쇠들을 보는 순간, 계단을 오를 때보다 더 강한 숨 가쁨이 턱 목을 매게 했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서로의 마음이 변심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는 수만 수천 낭떠러지로 던져버린다니. 그들의 아찔한 행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단어는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인가. 둘만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정상에서부터 구불구불 까마득한 협곡의 난간마다 자물쇠를 굳게 걸어 놓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던 중국 연인들. 그들의 애절함이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온 외국인의 마음을 휘젓고 있지 않은가. 연심쇄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에 앞서 어이없는 상상에 빠져 들었다. -<물색없는 사랑 ․ 2>에서
중국 황산을 여행한 이야기다. 연화봉을 오르면서 작가는 당혹한다. 돌층계를 오르면서 중국인들이 계단을 만든 공정에 놀라고, 기암괴석에 못 박혀 있는 연심쇄에 놀란다. 연심쇄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서로의 마음이 변심하지 말자고 약속한 증표이다. 자물쇠에 각자의 이름을 새겨놓고 철책에 걸어 잠근 다음 열쇠를 수만 수천 낭떠러지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한없이 아름답고 부드러워야 할 사랑의 약속을 하는 그들의 의식이 먼 나라에서 온 사람에게는 생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전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는 그들의 발칙한 사랑 행위에 여행객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어떤 삶의 형태가 찾아온 여행객의 시선을 움켜잡는 것이다.
이런 문화의 접촉은 공간적 이동에서 얻어지는 것들이다.
학교에 입학시키던 첫날. 학교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콘돔 자판기를 보며 우리 모녀는 아연실색 마주 섰다. 순간, 열린 마음을 딸아이에게 보여 주어야 되겠다는 치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얘, 너 이게 뭔지 아니?”
“콘돔 자판기!”
“세상에 Good! 이다. 얘, 이 자판기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복도에 설치되어 있으면 어땠을까?”
“학부형들이 뒤집어졌겠지요.”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심 엄마의 정곡이 찔린 듯했지만, 태연한 척 사설을 늘어놓았다.
“혹시 남자 친구가 생겨서 잠자리를 하게 된다면 꼭 콘돔을 써라. 중절 수술이 허용되지 않는 이곳에서 엄마도 없는데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너 혼자 너무 당혹스럽지 않겠니?”
“당연하지요.”
알고 하는 대답인지 모르고 하는 대답인지, 아이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렇지. 젊은 청춘들에게 무조건 ‘안 된다’, ‘하지 말아’ 보다 콘돔 사용법을 강조하는 편이 현실적인 성교육 아닐까. -<고슴도치 사랑>에서
캐나다 고등학교에 딸아이를 입학시키던 날, 복도에서 처음 목격한 콘돔 자판기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의 경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모녀가 대처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유교적 분위기에서 윤리와 도덕을 익힌 사람이 개방적 사회에 임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태연한 척하며,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겨 잠자리를 하게 되면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라고 당부하는 어머니나 당연하다고 받아 넘기는 딸이나 어설프기는 매일반이다. 새로운 환경에 임하는 두근거림 속에서 딴에는 현명하다고 내린 결론을 주고받는 모습이 다분히 희극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간적 이동을 해 왔을 때,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느껴야 하는 감정들이다. 여행은 공간여행을 하게 마련이고, 그로 인하여 많은 이질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그때에 느껴야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여행객의 기호가 다 다르기에 관심 분야에 차가 날 수밖에 없다.
작가 이명진은 어느 때, 어느 곳을 가든 그의 시선은 문화에 맞춰져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접해 온 문화와의 차이를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수필집 《물색없는 사랑》에는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접했던 다양한 문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가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문화와 차별화되는 것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지의 세계에서 접하게 되는 새로운 문화의 형태는 작가의 시선을 움켜잡았을 것이 뻔하다.
4. 이명진의 문화여행
이명진의 수필집 《물색없는 사랑》은 한 마디로 문화 여행 수필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여행이든 국외여행이든 시간여행이든 공간여행이든 모두 문화에 그 핀이 맞춰져 있다. 세계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작가의 시선은 문화에다가 맞추고 그 차이점과 또 가치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수용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제 나라 것과 남의 나라 것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하고 우리가 고쳐야 할 것에 대하여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물색없는 사랑》 전편에 걸쳐 드러나고 있다.
이명진의 여행은 모두 여정을 가지고 움직인 경우는 아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우야 여정에 따라 움직였다고 하나, 캐나다의 경우는 딸아이의 유학을 돕기 위해 현지에서 수개월 함께 체류하며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까 캐나다 편은 여행기보다는 체류기에 해당한다. 이때에는 근본부터 다르다. 당연히 문화 답사기가 될 공산이 크다. 글감을 여정을 따라 적으면 공간 이동에 맞춰 기술하는 기행 위주의 수필이 될 수도 있겠으나, 여행 중의 견문 중에서 글감을 선택하여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뒤의 경우에는 여정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도 허용하지 않게 된다. 일상 속에서 글감을 선택하듯 자신의 견문 중에서 선택하여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작가 자신의 성찰에 충실하게 된다. 철저한 개인 성찰의 수필이 된다.
하지만 장기간 체류하면서 글을 쓰게 되면 사회 현상에 시선이 머물기 쉽고, 또 문화라든지, 생활상이라든지, 의식구조라든지 하는 면으로 방향이 잡히기 마련이다. 이명진의 수필집 《물색없는 사랑》이 문화기행수필이 된 점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랬겠지, 홈스테이 부부가 맞벌이였으니 오죽했으랴! 아침도 자기 스스로 차려 먹어야 했으니 부실했을 일이다. 더구나 점심 도시락을 혼자 준비해 가야 하는 일은 익숙하지도 않았을 테고, 귀찮기도 했겠지. 캐나다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상급학년만 되면, 스스로 아침과 도시락을 준비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전혀 생소한 일상이었을 터다. 과보호라 하더라도, 아이의 말을 듣고 도시락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싶은 엄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캐나다에 머무르는 동안이라도 한국식 도시락을 싸주고 싶다. 유독 한국 김치 냄새를 싫어했던 캐나디언 홈스테이 식구들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보내 준 반찬 냄새가 싫다며 아이에게 김치를 먹으려면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차별을 당하는 듯해 아이는 아예 김치를 먹지 않고 버렸다고 한다. 어느 사이 한국의 대표 식품이면서 한국의 냄새인 김치를 아이는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책에서나 읽었던 눈물을 자아내던 도시락 사연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물색없는 사랑 ․ 3>에서
캐나다와 우리나라의 식문화의 차이점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초등학교 상급학년이 되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등교하지만 한국에서는 급식이기에 도시락을 싼 경험이 없다. 그런 딸아이가 도시락 준비로 어려웠을 것을 추측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최대한 한국식으로 도시락을 정성껏 싸 주려 한다. 또 한국의 김치 냄새를 싫어해서 캐나다에서는 집안에서 먹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 보내준 김치를 먹지 못하고 버렸다는 소리에 부모 된 작가는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국의 맛 김치를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의식주 문화 중 생명 연장과 건강에 관여하게 되는 식문화의 차이점을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작가의 시각이 두 문화의 차이에 머물고 있다. 하고 많은 다른 점 중에서도 먹을거리 문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딸에 대한 애정이 밑에 깔려 있음이 드러난다.
좌회전에서는 언제나 직진 차가 우선이다. 비보호 좌회전이 많다보니 교차로에서는 순발력이 필요하다. 직진 차들이 가고 난 후 눈치껏 좌회전을 해야 하니 어렵고 답답하다. 신호등에 의존하고, 신호등이 최고인 줄 알고 운전 하던 내겐 여러 경우의 현장 경험으로 깨달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언제나 신호등을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라 자처했다. 캐나다에서는 신호등보다 비보호 좌회전을 잘 하는 운전자가 최고라 대접받을지도 모른다. -<태양을 향해 달린다>에서
교통문화에 대한 지적이다. 나라마다 교통신호 체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직진 우선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대만처럼 끼어들기가 우선인 나라도 있다. 캐나다에서 우리와 다른 신호 체계로 당황하는 모습이다. 더구나 운전은 사람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것이기에 더욱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교통 신호를 잘 지키는 모범 시민이었는데, 캐나다에 와서는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잘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다른 문화 속에서 산 사람은 새로운 문화 체계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작가 자신이야 일정한 기간만 있으면 되지만, 딸아이는 계속 남아 공부를 해야 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는 것이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다>에서는 캐나다인들의 친환경 삶을 그려주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맘대로 활용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고 공존하는 것이다. 연어가 산란기를 맞아 강으로 회귀하여 올라올 때는 손만 뻗치면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잡지 않는다. 오히려 물길이 나지 않은 개천에 손으로 돌을 치워 길을 내 준다. 비록 연어가 죽어 썩는 냄새가 도시를 진동한다 해도 그들은 일정 기간동안만 낚시로 연어를 잡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음악회에 대한 구설>에서도 예술을 사랑하는 캐나다인들의 문화를 보여준다. 한 도시에 있는 세 학교가 한 팀이 되어 악기를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정겹다. 예술 앞에서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또 복장은 상의는 흰 블라우스에 검정 조끼, 하의는 검정 바지로 동일하게 입고 타이의 색으로 학교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런데도 학생들의 복장은 각양각색이다. 추리닝 바지로 무대에 오른 아이도 있다.
여기서 작가는 한국의 경직된 사회를 끌어낸다. 형식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는 아마도 무대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오로지 학생의 참여도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을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우리에게 제시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구절이다.
<친절한 이웃>에서도 문화여행은 계속된다. 딸아이의 핸드폰을 사 주는 이야기다. 캐나다의 시장 경제에 물색이 어두운 한국인들에게 친절하게 도와주는 현지인의 모습을 그렸다. 스스로 나서서 폰을 교체해 주고, 요금도 싼 것으로 조치해 준 그들의 친절을 그려주고 있다. 더불어 그들의 요금 체계도 소개한다. 전화를 건 사람만 요금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받는 사람에게도 요금을 부과함으로써 짧은 통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와 다른 캐나다인들의 문화에 작가의 시선은 닿아 있다.
<덤으로 만난 연인들>에서는 하노이 거리에서 맞닥뜨린 연인들의 모습을 적고 있다.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에서 두 사람의 애정의 깊이를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이 날카로워 재미있다. 뒤에 앉은 여성의 가방이 여성의 배와 남성의 등 뒤에 가로 놓여 있으면 이들이 만난 지 얼마 안 되고, 여성의 가방이 오토바이 핸들에 걸려 있으면 이들의 애정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중이며, 여성이 남성의 허리를 끌어안고 머리를 남성의 등에 묻었으면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절절한 사이이고, 여성이 조심성 있게 남성의 허리 양 옷깃만 잡고 있으면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새내기 연인이라는 기술은 작가의 세상읽기가 예리함을 보여준다.
<꽃 팬티에 취한 행복>은 강원도 여행을 적었다. 감자전을 부쳐내며 도시인의 호기어린 투정을 재치 있게 받아 넘기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솜씨에 강원도인의 풍류를 느낀다. 화장실을 찾는 손님에게 소인천축국을 심어 놓은 길가 꽃밭을 가리키는 기지에 놀란다.
바로 강원도 시골의 화장실 문화인 것이다. 들판이든 어디든 생리적인 배설을 해결하는 그들의 문화를 드러내 준다. 길가 꽃밭에서 소변을 해결한다 해도 전혀 지저분하지 않다. 그것은 작가 이명진의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간이천막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어 아무도 꽃밭에서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않았다 해도 독자들은 간이 천막이 드리워진 시골 화장실을 구경한 셈이 된다.
이명진의 《물색없는 사랑》에는 여행지의 문화에 대한 기술이 수필집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여행지를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을 읽어내는 수단으로 동원한 것이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담론의 흔적은 수필집 전편에 걸쳐 노정되어 있다. 이것은 《물색없는 사랑》에서는 ‘문화’가 키워드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나가면서
《물색없는 사랑》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은 ‘문화’이다. 국내는 물론 국외를 여행하면서도 이 모티브는 늘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때마다 작가 이명진은 남의 것과 내 것을 견주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에, 또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의 접목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심의 선을 잇고 있다. 즉,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를 늘 고민하고 있다.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사건에다 작가는 자신의 삶의 궤적을 걸쳐 놓으며 의미를 찾아 나선다. 그리하여 일상의 현상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읽어내고, 의미를 부여하여 형상화 작업에 들어가게 한다. 이때에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물게 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자칫 자신의 삶을 밀어 넣다 보면 편협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그 작가만이 만들어낸 세계가 된다. 이명진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얻은 글감이 작가의 삶을 통하여 의미를 함유하게 되기에 대개의 경우 자기 성찰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이명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성찰의 기회보다는 사회의 현상에 그의 시선을 맞추고 있다. 그것도 문화라고 하는 키워드에 철저하게 맞춰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기행수필은 기행문과는 다르다. 기행문은 여행을 하면서 여정에 따라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기술해 가면 그만이지만, 기행수필은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과 관계하지 않는 것들은 과감히 차단해야 한다. 아니 주제와 관계가 깊은 것을 한두 개 선택하여 주제를 살릴 수 있도록 구성하고 일목요연하게 독자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여행 중에 접한 사물이나 사건이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글감과 같은 위치에 놓이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이명진의 기행수필 경우는 주제는 다양하되, 그것의 모티브는 대개가 ‘문화’에서 끄집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기행수필이 아니라 ‘문화기행수필’이라는 하나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 이명진은 존재 의미가 있고, 그의 기행수필은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깊은 상념 속에서 사색과 명상을 하며 얻어진 결과물이다. 글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는 여행지의 인문지리를 더 익힐 필요가 있고, 그들의 토속적인 문화에도 관심을 갖는 노력이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라고 하는 하나의 모티브를 잡고 영역을 확보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다른 어느 것보다 많이 요구된다.
특히 이명진은 글을 씀에 있어서 지나치게 자신에 차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맨 처음 시작 부분이다. 어느 것이든 한 문장으로 하나의 형태단락을 이루면서 시작한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소설로 치면 사건을 독자에게 내던져놓고 시작하는 형태이다. 또 사물을 바라보는 감각이 뛰어나다. 그 감각으로 문장을 꾸리니까 번득이는 문장이 감칠맛을 준다. 여기에 적확한 어휘 선택만 이루어진다면 많은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접근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직도 돌아보아야 할 여행지가 많이 있음과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이기에 앞으로 그가 확장해 갈 기행수필의 영역은 무진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넓은 영역을 확보하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이명진 작가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다음 작품집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