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상영화제 하루 전날입니다. 직전 준비로 분주합니다.
극장주 친구들에게 오늘 할 일을 설명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미리 교회 옥상에다 장비들을 옮겨야 해. 사회자들은 대본을 다 만들 거고, 어떻게 꾸밀지 까지만 의논하면 오늘 할 일은 땡이야!”
“그럼, 미리 장비부터 옮겨요!”
“그럴까? 아직 장비들을 미리 점검하는 중이라,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선생님, 그러면 저희 노트북 좀 빌려주세요. 대본 만들고 있을게요.”
사회자들이 원활하게 대본을 작성할 수 있도록 노트북을 빌려줬습니다.
대본을 작성하고 영화제의 순서를 정하는 일은 강민지 선생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저 무거운 거 잘 들 수 있어요.”
“선생님, 저도 들고 나르는 거 할래요!”
그동안 저와 준서, 준이는 강당에서 장비들을 챙겨 1층으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옮겨야 하는 장비는 대개 음향 장비여서 크기도 크고 무게도 무거웠습니다. 준서와 준이는 체구가 아직 작아서 들고 움직이게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준이에게는 비교적 가벼운 라인 가방을 들게 부탁하고, 준서에게는 같이 들 수 있는 스피커를 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선생님, 이거 너무 가벼운데요? 더 무거운 거 들 수 있어요.”
“우리 준이가 무척 씩씩하네? 그래도 선생님이 봤을 때는 많이 위험할 것 같아. 그럼 준서 오빠랑 선생님이 옮기는 모습 사진으로 찍어줄래?”
“핸드폰 주세요!”
그렇게 두 남매에게 과업을 잘 나눴습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분배해주니, 즐겁게 저를 따라옵니다.
-
필요한 장비와 짐을 모두 옮겼습니다. 이어서 사회자들의 대본 작성도 마무리되었습니다.
"잘했어, 얘들아. 퀴즈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영화 보면서, 그 자리에서 만들려고요."
김승철 선생님과 윤시온 선생님의 도움으로 스타렉스에 짐을 모두 싣고, 은천제일교회로 향했습니다. 짧은 거리지만, 옥상으로 가는 게 신이 났는지, 극장주들은 차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도는 하얀 도화지, 레는 둥근 레코드~”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다 같이 짐을 엘리베이터에 옮겨 실었습니다.
옥상에 도착하니 쨍쨍한 햇빛과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습니다. 탁 트이고 근사한 공간이 동네에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라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멋진 동네의 한 공간에서 둘러 모여 영화를 볼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미리 짐을 옮긴 이유는 리허설 때문이었습니다. 스크린을 조립하는 방법을 배우고, 안전하게 설치할 수 있는지 미리 살펴봐야 했습니다. 모든 극장주 아이들에게 부탁해서 스크린을 펼쳐봤습니다.
스크린은 무척 사이즈가 컸습니다. 스크린의 프레임도 가볍지 않았고, 치는 과정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실제로 스크린을 치는 도중에 제 실수로, 프레임의 다리가 펴져 노을이의 머리에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노을이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매우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노을이가 진정하고 난 뒤, 노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노을이는 그런 저를 용서해주었습니다.
다시 심기일전해서 스크린을 설치했습니다. 조립하는 일은 아주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세운 스크린을 단단히 ‘고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옥상의 고도가 높아 바람이 매우 자주 부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영화제 당일 비 소식도 있어서, 스크린을 안전하게 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음향 장비까지 세팅하고 리허설해 보려던 기존의 계획을 틀어서 스크린 설치 방법만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운영기획팀의 장용식 주임님께서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스크린을 그대로 설치하는 데는 무리가 있어요. 작년 계단에서도 앵커를 박아서 단단히 고정해뒀었는데, 옥상에는 그렇게 설치할 수가 없네요.”
“주임님, 그럼 앵커를 박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저기 있는 벽돌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긴 한데…. 아무래도 앵커를 박는 게 훨씬 안전해요. 이건 목사님이 허락을 해주셔야 합니다.”
앵커를 박게 되면 옥상에 흔적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임의로 앵커를 박을 수 없었기에, 목사님께 허락을 구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앵커를 박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강구하시다가, 이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가장 흔적이 안 남는 방법으로 진행해달라는 약속을 하고 허락해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 덕에, 마음의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생각해야 하는 변수가 또 있습니다. ‘날씨’가 중요했습니다. 야외에서 영화제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약속된 시간에 비라도 오면 큰일이었습니다. 목사님께 우천 시, 대안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목사님, 비가 오게 되면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것처럼 본당에서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우선 본당을 보시고, 소예배실도 한 번 확인하시죠. 소예배실도 100명 정도는 충분히 모일 수 있습니다.”
본당과 소예배실을 모두 확인했습니다. 사실상 가장 편하게 영화제를 진행하는 방법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본당에서는 스크린의 크기가 작고, 영사기의 성능이 다소 떨어진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음향 장비를 활용하는 데에도 본당과 소예배실 모두 제약이 많았습니다.
고민했습니다. 강민지 선생님과 의논한 끝에, 비가 오면 소예배실을 쓰던, 복지관 강당을 쓰든 하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결론이 가능했던 것은 며칠 전보다, 영화제 당일의 우천 확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선 의논이 진행되는 동안, 극장주 친구들은 교회 카페에 내려와 무더운 햇볕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극장주들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오늘 모임을 끝내기로 했습니다. 스크린과 날씨에 대한 변수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극장주들은 웃으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복지관에 돌아와서 강민지 선생님과 스크린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게 스크린을 칠 수 있을까'와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크린을 설치할 수는 없을까'가 주요한 주제였습니다. 옥상 영화제를 더 근사하게 준비하고 싶은 욕심을 채우는 것보다 안전하고 소박하게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민지 선생님이 일전에 일러주신 것처럼, 방법론적인 사고를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답이 안 나오면 장용식 주임님과 윤시온 선생님께 달려가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오고 간 가운데, 탁구 잔치에서 사용했던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걸 활용해서 스크린을 조금 더 작게 해보는 건 어떨까 여쭤봤습니다. 강민지 선생님은 한번 들으시고, 함께 화이트보드를 살펴보자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화이트보드를 잘 살펴보니 스크린을 접으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화이트보드의 높이만 조금 더 올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강민지 선생님은 화이트보드를 분해하고 각목을 대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그래서 호리목 축제 때 사용한 각목들을 살피러 창고에 내려갔습니다. 쓸 만한 각목이 무척 많았습니다. 이걸로 화이트보드를 개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이트보드를 고정하는 위 거치대가 조금 튀어나와 있는 것을 봤습니다. 스크린이 오랫동안 위에 걸쳐있으면, 분명히 늘어나 자국이 남아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거치대와 스크린 사이에 부하를 줄이기 위해 요가 매트를 덧대기로 했습니다. 스크린도 미끄러지지 않고 더욱 안정감 있게 설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꽤 늦은 시간까지 이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누구 하나 마음 불편한 일 없이 옥상 영화제를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습니다. 본격적인 개조는 내일 아침, 장용식 주임님과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
'잘 돼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그래도 명랑한 극장주 친구들과 옆에서 항상 지켜봐 주시는 강민지 선생님이 계셔서 무척 힘이 납니다.
큰 변수들이 남아있지만 제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더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어려운 상황이라도 그게 발생했을 때, 사회사업의 방법으로 잘 이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긍정론보다, '그때에, 최선의 방법으로 하자'고 생각하는 것이 제게 더욱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답이 안 나올 땐 물어봐야 해요. 이게 최선이야."
이번 옥상 영화제는 준비 과정에 변수가 많아, 제 마음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고,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가 많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아주 답답했습니다.
오늘 강민지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이제껏 어떻게 준비했는지 돌아봅니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과정으로 사회사업 진행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나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분명 어렵고 힘든 순간이 있어 마음이 어려울 순 있겠습니다만, 그 순간만 그런 것이며 해오던 방법대로 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끝까지 사회사업 잘하고 싶습니다. 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