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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서역남, 북로의 분기점, 카슈가르[Kashgar, 喀什]
* 동(東)투르키스탄의 새로운 강역
* 대 실크로드의 진주, 카슈가르[喀什噶爾,Kashgar]
* 무슬림의 성지, '에이티칼 모스크[艾提朶爾 淸眞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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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실크로드상의 시장인 ‘앵이바자르’
* 유구한 역사의 소륵성(疏勒城)은 어디에?
* 다시 찾은 '모르스투파(莫爾佛塔, Mor Stu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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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東)투르키스탄의 새로운 강역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리니치(GMT) 표준시간에 의한 '시차(時差)제도‘는 공식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최서단의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 Wéiwú'ěr]에서는 별도의 시간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바로 ‘신장스지엔[新疆時間]’이라 불리는 로컬 타임(Local Time)으로 중국의 공식적 표준시간인 ‘베이징 시간’보다 2시간의 시차(時差)를 두고 있다. 억지규정대로 현지생활을 베이징 시간에 맞추자니 불편함이 생겨 이런 별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데, 예를 들자면, 중국대륙 전체에 정해진 출근시간이 9시인데, 실제로 신장지방에서의 이 시간은 베이징의 7시쯤에 해당되는 새벽녘이기에, 그렇기에 할 수 없이 2시간의 시차를 두어 현지시간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국적인 표준이 필요한 비행기나 기차시간 같은 것을 제외한 일상생활에 관련된 시간에서 사용되지만,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이런 두 가지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이곳이 그만큼 수도 베이징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또한 이 지역이 그만큼 드넓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런 ‘광대함’을 말해주는 사례는 또 있다. 우선 신장자치구가 맞대고 있는 나라가 무려 일곱이라는 사실도 그중 하나이다. 한 나라도 아닌, 일개 ‘국가급자치구’ 란 행정구역이 7개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처럼 좁은 나라에서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 나라들을, 북쪽에서부터 시계방향 순서로 열거해보면 러시아, 몽골- 그리고 국내의 3성[칭하이성, 간쑤성, 티베트자치구]을 건너뛰어- 그 다음으로 인도, 파키스탄, 타지키스스탄, 키르기즈스탄, 카지흐스탄에 접해 있다.1)
▼ 신장위구르자치구 국경선 지도
본
각설하고, 물론 내가 이 지방을 주목하면서 오랫동안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또한 이 <신장위구르 자치구 항목>을 이번 단행본의 첫 부분에 두어 강조하고자 하는 뜻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이 시공간적으로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서역(西域)’2)의 배꼽 옴파로스에 해당되고 또한 여러 갈레의 ‘실크로드’가 만나고 갈라지는 길목이라는 때문이다. 사실, ‘서역’이란 용어는 어느 누구나 에게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역마살’을 타고 났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마니아들에게는 뭔가 아련한, 몽환적인 매력이 있는 말이다. 그곳을 떠 올리면 자동적으로 ‘실크로드’란 말이 따라오고 눈앞에는 신기루 같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막막한 사막이 펼쳐진다. 이어서 귓가에는 대상들이 타고 다녔던 낙타방울 소리도 들려오게 마련이다.
그렇듯 실크로드가 활성화되었던 옛날은 차지하고라도 현재에도 이곳, 즉 동투르케스탄의 옛 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물론 중국에 합병된 후 그 색깔이 많이 퇴색되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고하고 아직은 ‘중국적’이지 않은 ‘서역적’ 냄새를 맡을 수 있는 ‘0순위’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중국은 56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의 나라이기에 각 소수민족마다 다름대로의 특색이 있지만, ‘한족화’되지 않고 스스로의 선명한 문화와 혈통을 지켜가며 버텨내고 있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그중 첫, 두 번째를 다투는 민족이 바로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이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듯이 중국내에서 사용하는 ‘신장위구르자지구’3)라는 공식 명칭이 있지만, 이곳의 원주민인 위구르족4)은 오히려 ‘세르키이[東] 투르키스탄Trukestan)’ 이라 부르기를 즐겨한다. 이 이름이야말로 이들에게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키워드’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들에게 고구려나 백제나 신라처럼…
원
이처럼 한족 치하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체제의 일원으로 살면서도 위구르족 은 물과 기름처럼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의 배경에는 물론 위구르인의 뿌리 깊은 ‘반(反) 한족’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투르크족의 후예인, 위구르인들은 태생적으로 ‘호모 노마드(Homo Nomad)’5)로 태어나 고대에서부터 이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부족단위로 모여 자유롭게 살면서 때로는 같은 계통의 유목민족들과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중원의 역대 왕조들의 팽창주의에 점령되어 피지배계급으로 전락한 세월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아직까지도 한족을 동족으로, 중국을 조국으로, 그리고 중원 땅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물과 기름같은 관계였다. 몸은 유랑을 끝낸 정주족(定住族)이 되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늘 푸른 초원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현재 짊어지고 있는 이율배반적 운명인 것이다.
그런 복합적인 원인과 이유로 해서 현재도 가끔씩 분리독립운동6)이 일어나고 있다. 2013년 10월 28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의 차량돌진과 2014년 3월 1일 쿤밍역 테러 같은 것인데, 처음에는 증오의 대상인 자치구내의 공안원이나 무장경찰 같은 제한된 표적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중국 전역을 무대로, 무차별 공격으로 변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중국의 화약고'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외신의 보도에 의하면 이들의 배후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이란 단체로, 국제적인 이슬람테러조직인 '알카에다' 나 '탈레반' 등과도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중국당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행동이 같은 처지에 있는 티베트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데 있다. 티베트의 저항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는 분신7)같은 방법을 택하기에 평화적이고 소극적인 반면에 위구르의 그것은 테러 같은 폭력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어서 중국 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당국이 신장위구르에 대해 강공책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은 여러 가지이다. 면적만 보더라도 신장과 티베트를 합치면 중국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고 여기에다 '전략적 가치'도 한몫을 하고 있다. 신장이나 티베트가 석유와 천연가스의 매장량이 무한정한 곳이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어서 중국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데다가 나아가 구 러시아와 같은 분리독립 도미노 현상이 중국에서도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당국은 최근 빈번해지고 무차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테러의 수단이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슬람의 성월(聖月)인 라마단(Ramadan)기간8)내의 단식행위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라마단은 이슬람교도가 반드시 지켜야 할 종교적 의무로 임신이나 투병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틀 녘부터 해 지기 전까지 음식을 섭취해선 안 되는 성스러운 규율인데, 이를 금지시켰으니 국제적으로 퍼지고 있던 ‘반중정서'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이런 사태에 대해서 최근 ’서투르키스탄‘의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는 터키에서는 "동투르키스탄을 불법 점령한 중국은 위구르인 학살을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반중집회'를 열였다고 한다.
과연 이런 산발적인 일부 무슬림들의 희생으로 위구르민족이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투르케스탄'이란 이름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을지는 '전지전능하신 선지자 알라신'만이 아실 것이겠지만, 오랜 운둔의 죽의 장막을 걷어내고 이제 서방 자본주의 학습을 끝내고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견제할 나라가 없어진 국제 정세하에서 그 미래가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원래 천산산맥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드넓은 초원지대는 유목민족이 살기 적합한 초원지대였기에 예부터 여러 유목민족이 명멸했던 땅이다. 흉노, 돌궐, 몽골, 위구르 민족 등이 바로 그 주인공으로 비록 일시적으로는 중국의 여러 왕조의 점령아래 놓이기도 했었지만, 8세기 고선지장군의 탈라스 전투(Talas, 怛羅斯會戰)9) 이후에는 다시 투르크계의 유목민의 영역이 되었다가 수백년 만에 다시 중화권으로 편입되었다. .
원래 위구르족의 선조들은 현재 외몽골 자리에 있는 초원지대에서 살던 유목민족이었는데, 제국이 붕괴되면서 그 유민들의 일부가 당나라 세력이 물러난 신장지역으로 들어와 다른 투르크족들과 함께 카라한왕조((喀拉汗, 840-1230)를 건설하고 찬란한 ‘투르크-이슬람 문화’를 꽃피웠다.
그 뒤 서요(西遼, Kara-Khitai)의 지배를 받다가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의 봉지인 차카타이 칸국(汗國)과 티무르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만주족이 명나라를 대신해 중원에 자리를 잡으면서 팽창정책을 펴 나가면서 위구르족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청의 건륭제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타림분지를 점령하고는, '신강성(新疆省)', 즉 ‘새로운 강역’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바로 ‘신장’이란 명칭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초창기에 중앙의 장악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1933년에는 이슬람주의로 무장한 위구르족을 중심으로 ‘세르게이(東)투르키스탄’이란 이름의 나라를 세웠지만, 16년 뒤 이번에는 중국대륙을 통일한 붉은 인민군대에 의해 무력침략을 받아 현재와 같은 <새로운 땅에 세운 위구르족의 자치구>가 되어 버렸다.
*대 실크로드의 진주 ,카슈가르[喀什噶爾,Kashgar]10)
현 신장위구르의 서쪽 끝자락의 이 국경도시를 위구르인은 예부터 ‘카슈가르’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에 중국인들은 그냥 줄여서 ‘카스[喀什,Kāshí]’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우루무치[烏鲁木齊]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가장 큰 행정중심지이기는 해도 진정한 위구르민족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은 역시 카슈가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인구비례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신장지방이 표면상으로는 위구르족의 자치구라고 하지만, 그 동안 꾸준한 한족들의 이주정책으로 인해, 실제로 자치구 전체적으로 보면 한족과 위구르족의 인구비례는 과반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퀴이둔[奎屯] 같은 몇몇 신흥공업도시의 위구르족은 1%밖에 안 되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카슈가르는 총인구 25만 명 중 위구르족이 75%를 차지한다. 이는 서역남로의 호탄[9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점유수치이다. 이런 인구비율은 1999년 10월 우루무치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남강철로(南疆铁路)가 카슈가르까지 개통된 후 한족들이 대거 이주해온 사실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럼으로 위구르족으로서는 이곳을 민족혼을 고수할 마지막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이해가 된다.
과거 천여 년 동안 오아시스 도시로 실크로드의 진주로써 번영을 누려오던 카슈가르는 실크로드가 그 기능을 상실한 후, 점차로 세상에서 잊혀 갔다. 그러나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경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가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카슈가르의 문화유산들은 근대에 와서야 그 중요성이 알려지며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 에이티칼 모스크의 한가로운 전경
‘대 실크로드(G. Silk Road:絲繰之路:뵈유크 이페크 율루(yolu)>)’11)는 여러 갈레로 분류되지만, 크게는 거대한 천산산맥 북녘의 초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스텝로’와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을 건너가는 ‘사막로’ 또는 ‘오아시스로’ 로 나뉘고 있다. 그중 후자는 둔황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사막의 북쪽 가장자리를 통과하는 ‘서역북로’ 와 남쪽 가장자리를 건너는 ‘서역남로’로 나뉜다.
이 두 루트는 일단 대 사막을 위, 아래로 우회하여 일단 신장 위구르지방의 서북쪽 끝자락의 유서 깊은 도시 카슈가르로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는 휴식과 기력을 충전한 대상들은 험난한 파미르 고원을 넘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12)에서 카슈가르는 소륵국(疏勒國), 가사기리(伽師祇離), 가사라서(迦舍邏逝), 객십(喀什), 거사(佉沙) 등으로 표기되어 왔다. 우선 이곳을 카슈가르13)라고 표기했던 유일한 기록을 남긴 우리의 혜초사문의 기행록을 먼저 살펴보자.
또 총령에서 걸어서 한 달을 가면 ‘소륵국’에 이른다. 외국인들은 카슈가르국[伽師祇離國]14)이라고 부른다. 이곳도 중국 군대가 지키고 있다. 절도 있고 승려도 있으며 소승이 행해진다.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먹으며 토착인은 면직 옷을 입는다.
위 기록에서 우리는 한 두 가지 사실을 눈여겨 볼 수 있다. 우선 위에서 지적한 대로 혜초는 이곳을 중국식으로 '소륵'으로 부르지 않고 현지민의 호칭대로 ‘카슈가르’로 불렀다는 점이다. 또한 파 부추를 먹는다는 사실15)도 부기하고 있는데, 이는 필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한, 파와 관련된 총령의 유래를 확인하는 또 다른 기록이어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또한 현장법사도 역시 이곳을 빼놓을 수 없었는지, 역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16)
소륵국의 둘레는 5천여 리이고 모래와 자갈이 많고 토양은 적다. 농사는 번성하고 꽃과 과일도 풍성하다. 가는 모직물로 된 옷이나 양탄자를 짜는 기술이 훌륭하다. 기후는 온화하고 화창하며 비와 바람은 순조롭다.(중략)
그들은 자식을 낳으면 머리를 눌러서 평평하게 만드는 풍속이 있다. 용모는 추하고 비천하며 문신을 새기고 눈동자가 녹색이다. (중략) 불법에 대한 믿음이 굳고 부지런히 복과 이익을 베풀고 있다. 가람은 수백 곳이 있으며 승려들은 만여 명이 있는데, 이들은 소승의 가르침인 <설일체유부>를 배우고 있다.
위 기록에서 '편두풍속(匾頭, cranial deformation)‘17)에 대한 부분은 우리 신라의 그것18)과 같아서 흥미롭기 그지없다. 앞으로 다음 장[이식쿨호수편]에서 다시 이야기가 이어지겠지만, '편두'란 인위적으로 어린아이 때 두개골을 변형시켜 뾰족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 외에도 현장이 이곳을 지날 때까지는 아직 불교가 성행하고 있었으나 한 세기 뒤 혜초 당시에는 이미 불교의 쇄락19)이 느껴진다는 점도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 카슈가르의 구시가지 입구
실크로드 중심 교차로였던 카슈가르는 20세기 초반, 중앙아시아에서 팽창하고 있었던 영국과 러시아 두 제국의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이른바 “Great Game" 이라 불리는 파워게임이 벌어진 무대였다. 이 두 제국 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 같은 열강들까지 가세하여 파미르고원을 횡단하는 루트를 개척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개척하는 등의 실크로드 탐험을 지원함으로써 지도 위의 빈칸을 채워 나가며 경쟁적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사실은 고고학자로써 큰 성과를 올린 유명한 스벤 헤딘, 오렐 스타인, 폴 펠리오 같은 사람들도 학술탐험이나 고고학발굴을 빙자하여20) 자신의 나라의 국익을 위한 첩보활동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시 중국인들은 외국인들 자체를 ‘외국양도깨비[外國鬼子]’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
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도굴범이냐, 학자이냐를 따지기 전에 중국인들의 자세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당한 일들은 그렇다고 치고, 그렇게 서양 약탈자를 매도하면서도 천불동 막고굴의 제323호굴 등을 비롯한 수많은 석굴을, 예전도 아니고 바로 얼마 전인 1966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문화혁명 때, 그들 스스로 무참히 파괴했지만 지금도 그 정확한 통계 숫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티베트에서 자행한 행동을- 85%에 가까운 사원들을 파괴한 행위- 미루어보아 또한 심지어는 전국의 공자(孔子)의 사당까지도 무차별 파괴한 것을 보면, 나머지 종교적 유물들은 말해 무엇 하랴!
둔황 장경동 유물강탈 사건의 당사자인 왕도사의 뒤처리 문제도 그렇다. 1900년에 장경동을 발견한 뒤 그는 스타인이 오기 전에 이미 7년 동안이나 값나가는 물건들을 임의대로 처분한 뒤였다. 그런 왕도사에게 중국정부는 사형을 언도했다지만, 그는 뇌물을 주고 무죄 방면되어 그 뒤로도 ‘유물 브로커’ 노릇을 해가며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막고굴 앞에 그의 기념탑까지 세워져 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문제는 그런 행위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다. 고대 유적은 대개 짚을 썰어 넣어 흙벽돌을 만들었기에 천연비료로는 최고라는 인식이 있는데, 특히 채색벽화를 그린 부분의 흙은 더욱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유적이 우연히 발견되어도 신고하지 않고 우선 부셔서 비료로 쓴다고 한다.
또 다른 사례는 모슬렘들은 고대 석굴이 발견되면 대낮에 석굴로 찾아들어가 몰래 벽화 속의 인물들을 긁어내는데, 특히 눈과 입은 무조건 파낸다는 것이다. 불교유적을 혐오의 대상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밤에 벽화 속의 인물들이 살아나서 그들을 해친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중국당국은 유적보호를 위해서 현상금제도까지 내걸었지만, 무슬림과 일부 극우파적인 기독교들의 우상숭배파괴행위를 실효를 보기 힘든 현실이다라 한다. 자기들의 직계조상들이 과거 수천년 동안 심혈을 기우려 만들어 놓은 귀중한 유산을, 단지 자기가 지금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난다해서 간단히 훼손하는 행위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인가에 대해 우리나라 일부 종교단체에서 곱씹어 볼 일이다.
* 신장 무슬림의 최대 성지, '에이티칼 모스크[艾提朶爾 淸眞寺]
카슈가르의 구시가지의 무게중심은 중앙의 ‘에이티칼(Aitiga'er)마스지드21) 광장’으로 모여드는 형세였다. 그곳에 유서 깊은 모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1442년에 건립된 이 모스크는 신장지방 최대, 최고의 것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 에이티칼 광장을 가득 메운 위구르 무슬림들
▼ 에이티칼 모스크의 낙조
아! 얼마나 환상적인 정도로 아름다운가? 직선과 곡선이 만나 머물럿다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낸, 저 인공건축이 가진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의 걸작품인가?
거기다 찬란한 아침햇살이, 피빛같이 붉은 저녁노을이, 베샤카의 초저녁에 뜬 둥근 달이, 상금한 여인의 눈섭같은 초승달이... 거기에 걸려있으면 ... 얼마나 환상적인가...
그러나 저 숨막힐 것 같은 아름다움이, 나보다 약한 뭇 중생들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해서 커다란 아가페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저런 숭고한 사랑의 결정체들이 만들어 졌을텐데,..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생겨난 종교들이 수십년, 수백년, 수천년 지난 뒤의 현실은 저렇게 아름다운가 ?
일단 무슬림을 부모로 하여 태어난 이상 그들은 하루 다섯 번씩22) 어느 곳에서든지,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예언자 무함마드(Muhammad, 571~632)의 고향 아라비아반도의 메카(Meca)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도를 올려야하는 '태생적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한다는, 세계종교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원리주의적 규율을 지켜야하는 의무를 지닌다.
평소에는 대충 4천 명 정도의 무슬림들이, 금요일에는 1만 명이 모여들어 ‘나마즈’, 즉 알라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중앙아시아, 신장지방으로 전래된 이슬람교는 다시 중원 땅으로 들어가, 회흘족(回紇族)을 통하여 전래되었기에 회회교(回回敎) 또는 청진교라고 불렸는데, 독특한 전래방식으로 인해 짧은 시간 내에 굳게 뿌리를 내렸다.
이곳에서의 기도광경은 평일보다 이슬람축제일에 장관을 이룬다. 특히 금식기간 ‘라마단[로자]’23)이 끝나는, ‘로자헤이트’나 ‘쿠르반헤이트’ 같은 축제24)에는 무려 7만~8만 명이 모스크 바깥의 광장까지 가득 채워 예배를 드리는 관경을 연출한다. 만약 나그네가 그 기간에 그곳에 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다면 일생일대의 인상적인 기분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예배가 끝난 후에는 그 드넓은 광장 가득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어 태평소와 북 소리에 맞춰 ‘사마’라는 춤을 추는 광경은 더욱 그러하리라.…
현 에이티칼 모스크가 위치한 자리는 원래 9세기에는 궁정 관료들과 아랍인, 페르시아 상인들의 묘지였는데, 그 후손들이 조그만 추모사원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되어 비교적 대규모로 증축된 것은 두 명의 여인들25)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온 세계의 여인들이 ‘벗기내기’에 빠져 있는 세상에서 오직, 아직도 머리끝까지 ‘히잡’26)같은 베일을 뒤집어쓰고 살아야하는 유일한 종교를 위해, 막상 그녀들은 출입할 수도 없는 모스크를 짓기 위해, 두 여인들의 전 재산을 털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각설하고, 그 뒤 도시가 점차로 확장되자 1839년에는 모스크가 성내로 편입되면서 무슬림들이 사원 주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카슈가르의 시민들의 생활의 중심지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1901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모스크 양 측의 두 탑 중 하나가 무너지고, 더구나 무신론자들의 붉은 중국에 점령되어 1960년대에는 문화대혁명 의 와중에 파괴될 위험을 맞았지만, 순교정신으로 맞선 무슬림들의 덕분으로 모스크를 사수할 수 있었고 그 뒤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의 햇빛정책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중국 최대의 모택동 석상을 앞세우고 팽창하는 인민광장의 붉은 물결에 에이티칼 광장은 속수무책 잠식을 당하는 상황이고 더구나 최근에는 광장 너머에 현대식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물질주의라는 새로운 괴물에 잠식되어 가면서 어쩌면 지금껏 지켜왔던 세르게이 투르케스탄 무슬림들의 영혼마저 시들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염려되기도 한다.
1) '新疆'(신강)이란 새로운[新] 강토[疆土]란 뜻인데, 이 ‘疆’자의 파자(破字)풀이가 흥미롭고 절묘하다.
弓의 가로 3획은 위에서부터 곤륜산, 천산, 알타이산등의 3개산을 나타내고 , 그 사이 두 개의 田은 타림분지와 준가르분지를 의미하여 그래서 국경선이 7국이 되었다는 풀이다.
2) 중국에 인접한 서방 지역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통 천산과 곤륜산맥에 둘러싸인 타림분지의 일대와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하여 이에 연속된 투르케스탄(Turkestan) 지역을 포함하여 가리킨다. 이 지방은 동서교통의 요충지로서 옛날부터 문화가 꽃피어 중국의 한나라(漢) 시대에서는 서역 36국(西域三十六國)의 이름이 알려졌다. 이후 국제적인 교류가 많아지면서 중국인들은 서역을 더 먼거리의 나라에도 적용하여 현재 서방세계에까지 포함시켰다.
역사적으로, 서역(西域)은 전한(前漢: BC 206-AD 8) 때 한족들이 옥문관(玉門關: 돈황으로부터 서북쪽으로 98km 떨어진 곳)과 양관(陽關) 밖의 자신들의 경계를 벗어난 서쪽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전한 무제 때의 장건의 서역 사행 이후에 생겨난 말로 이 지역은 대월지(大月氏·大月支) · 오손(烏孫) · 대완(大宛) · 강거(康居) · 안식(安息·파르티아) · 조지(條支) · 대하(大夏) 등의 나라들을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 말로 본래에는 서북국이라고도 칭하였다.
후한의 반고는 《한서》의 〈서역전〉에서 서역의 나라들을 둘로 나누었는데, 거국(居國)과 행국(行國)으로 나누었다. 거국은 오아시스에 정주하는 민족이 사는 나라로서 성곽이 있기 때문에 성곽국이라고도 불렀다. 거국에는 누란(楼蘭) · 대완(大宛) · 고사 · 대하(大夏) · 안식(安息) · 조지(條支) 등이 있었다. 행국은 유목을 생업으로하는 유목민으로 오손(烏孫) · 강거(康居) · 엄채(奄蔡) · 대월지(大月氏·大月支) 등의 나라들이 이에 속한다.
3) 여기서 이 ‘신장위구르자지구’ 의 뜻은 "새로운 영토(疆)“를 뜻하며 "위구르"의 뜻은 민족의 이름이기도 하며 ‘단결’과 ‘연합’을 의미한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는 위구르족(45%)과 한족(41%)이 백중세를 이룬 가운데 카자흐족, 회족, 키르기스족, 몽골족 등 10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5) 프랑스의 석학인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가 쓴 「호모 노마드 Homo Nomad(유목하는 인간)」는 ‘정착민’과 ‘유목민’에서 쓰인 새로운 문화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6) 다음은 2007년 이후 위구르인들의 분리독립 관련 주요 사건 정리.
▲2007/ 파미르고원 산악지대서 동투르키스탄이슬람운동(ETIM) 테러훈련기지 급습, 18명 사살하고 17명 체포.
▲2008/ 카슈가르(喀什)에서 무장경찰을 향해 수류탄 던져 17명 사망하고 15명 부상.
▲2009/우루무치에서 분리독립 요구하는 유혈 시위 발생해 140명 사망하고 828명 부상.
▲2013/ 베이징 천안문에서 위구르인 일가족 차량 돌진 사건 발생, 5명 사망.
▲2014/아커쑤(阿克蘇)지구에서 경찰 공격, 12명 사망.
▲2014/운남성 쿤밍(昆明)시 철도역에서 무차별 테러 발생, 29명 사망, 170여명 부상.
8) 아랍어로 라마단은 더운 달을 뜻하는데 유대교의 금식일 규정을 본 떠 제정한 것으로 선지자 마호메트가 아라비아반도 서쪽의 동굴에서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념하여 헤지라 2년인 서기 623년부터 9번째 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생달이 나타난 다음날부터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담배, 물, 성관계도 금지된다. 다만 여행자나 병자, 음신부 등은 면제되는 대신 후에 별도로 금식을 해야한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날부터 ‘이드알피트르’ 라는 축제가 3일간 열려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주고 받는다. 2014년 은 6월 28일~7월 27일이다.
9) 중앙아시아의 탈라스 강 근처에서 벌어진 고대의 전투. 751년 7월 ~ 8월에 당나라와 티베트 연합군과 압바스, 카르룩 연합군이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접경을 흐르는 탈라스 강 근처에서 격돌한다. 이 때 당군에 속해있던 천산산맥 북쪽에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 카를룩족 이 아바스 왕조로 돌아섰기 때문에 당나라군은 패배했다. 그 결과로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되었고 중국이 독점하고 있던 종이를 제조하는 기술인 제지술이 이슬람문명으로 전파되어 유럽까지 퍼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포로 중에는 <경행기(經行記)>의 저자인 두환(杜環)도 있었다. 민간인 신분이었던 두환은 전쟁 포로가 되어 지중해까지 끌려가 유럽 관광까지 한 뒤 이슬람 제국의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762년 페르시아만에서 상선에 편승해 광주를 거쳐 다시 장안으로 돌아와 책을 쓰게 되었다. 중국판 마르코 폴로인 셈이다.
10) 현 신장위구르의 끝자락의 국경도시인 카슈가르로 동서교통의 요충지로서 서로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과 천축에 이르고, 동으로는 사막을 지나 옥문관과 양관을 거쳐 장안에 이른다. 한 무제 때 서역통로가 열린 이래 급속히 발전하여 서역 36국 중의 일국으로서 중요시되어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면서 파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크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2) 5세기『법현전』에서는 갈차(竭叉), 『신당서』에서는 구사(佉沙), 거사(渠沙), 가사(迦師)’, 현장의 『대당서역기』에서는 구사(佉沙), 실리흘율다저(室利訖栗多底), 혜초의『왕오천축국전』에서는 가사기리(伽師祇離), 혜림의 『일체경음의』에서는 가사길려(迦師佶黎), 『원비사(元秘史)』에서는 걸사합아(乞思合兒), 가실합이(可失哈耳)『명사(明史)』에서는 합실합아(哈實哈兒)로 불러왔다.
13) 폴 펠리오에 의하면 서양인들은 13세기경부터 소륵이란 지명을 거론했는데, 라틴어로는 Chassar, Casahar, Chasahar, Chaschar, Cascar 등으로 표기하였다.
14)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고 세상에 소개한 프랑스의 뺄리오(P.Pelliot)도 다음과 같이 예외적으로 다른 여행기와 다르게 혜초가 현지명을 한자로 음역해 놓은 점을 크게 평가하고 있다. “혜초는 우리에게 8세기 전반기 인도에서의 불교의 상황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서북인도, 아프가니스탄, 러시아령 투르케스탄, 중국령 투르케스탄에 관해서는 다른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지식을 많이 제공해준다. 중복되는 말이지만 그는 중앙아시아제국의 명칭을 통상적인 중국식 명칭과 함께 현지명을 기록해 놓고 있다. 예를 들면 ‘소륵’을 실제의 호칭인 ‘카슈가르’로 적은 같은 일이다. 이 점은 이 방면의 첫 번째이며 또한 마르코 폴로나 몽고시대의 기록보다 5세기나 앞서는 것이다.”
17) 원문은 ‘其俗生子押頭匾’이란 구절은 “자식을 낳으면 머리를 눌러서 평평하게 만드는 풍속”이라고 해석되는데, 우리 신라의 편두(匾頭)의 풍속과 같아서 흥미롭기 그지없다. 정형진저, 『고깔모자쓴 단군』, 백산자료원, 2003.에 우리민족의 이동루트와 편두의 풍속을 고찰한 흥미로운 내용이 자세하다.
18) 『위지동이전(魏志 東夷傳)의 일부로,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의 편두(褊頭)와 문신(文身) 풍속을 전하고 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동이전이 편찬된 시점인 3세기 중반 무렵 진한과 변한 사람의 머리가 모두 납작하다고 하였다.
19) 혜초는 불교가 왕성한 곳에는 ‘족사족승(足寺足僧)’ 같은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유사유승(有寺有僧)’이라고 하여 불교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았다. 서역북로의 끝인 카슈가르에서는 대승불교가 유행하였던 것을 알려주는 구절이 있는데, 바로 유명한 역경승 구라마집에 대한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구마라십은 원래 소승불교를 신봉했으나 어머니를 따라 천축에서 돌아오는 길에 카수가르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그는 사차(莎車) 왕자 야리소마(耶利蘇摩)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내가 지난날 소승을 배운 것은 마치 사람이 황금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하며 소승을 따른 것을 후회하고 대승에 몰입하였다. 이는 4세기경 소륵에서 대승이 성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20) 특히 미국의 랭든워너(R Wanner)과 독일의 르코크(LeCoq)는 동굴 벽에서 접착제가 묻은 천을 벽화에 발라 벽화를 떼어내거나 석굴에서 벽화를 톱질해서 절단하는 수법을 쓴 행위로 인해 지금까지도 지탄을 받고 있다.
22) 첫 번째 기도-‘파즈르’- 새벽에서 해뜨기 사이에
두 번째 -‘주흐르’- 정오에서 오후중반 사이에
세 번째-‘아스르’-오후중반에서 해지기 사이에
네 번째-‘마그리브’- 해진 직후에
다섯 번째-‘이샤’-밤에서 새벽사이에
24) 로자헤이트-금식기간이 끝났음을 축하하는 다음 날인 31일째 되는 날 벌이는 잔치로 공식적으로는 1~5일 정도눈 휴일이다. 이날은 여자들은 아침 6시에 집에서 기도[나마즈]를 하고, 남자들은 아침 8시에 모스크에 모여 기도를 한다. 이렇게 나마즈를 끝내면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서로 라마단을 무사히 마친 것을 축하한다.
3) 쿠르반[희생양] 헤이트-위구르 무스림들의 초대 명절로 ‘로자헤이트’로 부터 70일 후가 되는 날자인데, 그 유래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다가 알라께서 양을 준비해 두신 사건을 기념하여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3일 동안 열리는데, 그 첫째날에는 집에서 가족들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주로 양을 잡아서 케밥 등 온갖 요리를 한다. 둘째 날부터는 친지들의 집을 서로 방문하며 먹고 마시며 축복을 기원한다. 이때 어른들이 애들에게 용돈 주기도 한다.
25) 1798년 귈나르라는 여인이 파키스탄에 가려는 목적으로 카슈가르를 지나가다가 불행히 병에 걸려 많은 재물을 남기고 사망하였는데, 그녀의 일가친척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유산을 모스크 증축에 썼다.
또 줄피야라는 이름의 잉사르 출신의 여인이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나려고 바느질로 여비를 마련하여 길을 떠났으나 페르시아에 도착했을 때 전쟁이 일어나 카슈가르로 되돌아 자신의 오랜 숙원을 보상하기 위해 남은 여비를 털어 사원을 증축하고 토지를 구입하였다고 한다.
26) 이슬람국가들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크게는 3종류 작게는 65종류로 구분뉜다고 한다.
- 히잡(Hijab)은 가장 간단한 머리수건으로, 아랍어로 '장막'이란 뜻이며 '자신을 가리고 숨긴다'는 동사 'hajaba'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머리카락을 비롯한 머리 전체 그리고 귀, 목, 어깨를 가린다. 파키스탄 전역과 이란의 경우에는 입국과 동시에 현지 여성, 외국 여성 여행자 가릴 것 없이 외출시에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샤일라(Shayla)는 걸프지역에서 쓰는 긴 스카프다.
-알 아미라(Al-Amira)는 머리에 딱 붙는 모자에 튜브 모양의 스카프를 덧쓰는 베일이다.
-키마르(Khimar)는 머리칼, 어깨와 상반신만 가린다.
-차도르Chador)는 얼굴은 내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를 가리는 복장으로 검은색, 흰색 같은 단색 위주이며 문양은 거의 없다. 이란에서 착용된다.
-니캅(Niqab)은 눈을 제외한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가리개로 파키스탄 페샤와르, 퀘타 같은 지역에서 사용된다. 부르카에서 망사 부분이 없다고 보면 된다.
-부르카(Burka)는 온몸을 완전히 가리는 복장으로 발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다. 파키스탄 페샤와르, 퀘타 그리고 아프간 등지에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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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보이는데요? 오래 기다린 덕에 좋은 자료를 보게 됩니다만, 단행본 원고 같은데, 너무 공짜로 이렇게 막 올리셔도 되는지? ...하여간 감사합니다만.
@천산 좀 번거롭지만, 원칙대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회원님들게 드리는 서비스로...
여기서 공짜로 보았다고 책을 안 사시지는 않겠지요? ㅎㅎㅎ
@천산 ~~
카슈가르에 이런 역사가 있었군요...후다닥 지나가기만 했었는데... 씨에세
이글을 읽어보니.... 참 여러 번 가 본 곳이긴해도...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다닌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고 싶다.
그런 비하이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