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여섯시 삼삽 분에 기상이기 때문에 마지막 불침번은 한 시간 삼십 분인데 이번 주에 세번이나 서야 한다.
우리 내무실에 결막염으로 격리된 인원이 두 명이라 그렇게 된 것이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라 전염병은 금방 옮기 때문에 완전히 격리시키고 식기도 따로 쓰고 환자가 앉았던 자리는 물론이고 모든 장구류와 다니던 길의 문고리까지 소독한다.
결막염으로 오래 격리 받으면, 유급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유급에 대해 편지에 썼었나 모르겠다.
주요 훈련(K2사격, 행군, 수류탄, 화생방등)이나 정신교육 평가에서 떨어지거나 벌점을 많이 받으면 유급되어, 유급된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훈련소에 최소 일주일은 더 있게 되는거지.
우리 내무실에도 유급되어 한 명이 3주차때 들어 왔는데 불쌍하더라.
자신감도 없어보이고... 늦게 와서 친한 친구도 없어서 구석에서 조용히 있더라...
네가 보낸 편지 40통이 넘어서 41통이야. 후후~~
제일 많은 편지를 받았지...부러워하는 녀석들도 있고...
너 같은 여자 두 번 다시 없을거야(전에도 말했었지?)
네가 내 애인인게 자랑스럽기 까지 해....
그런데 둔탱이 짓을 한 가지 했더구나.
네 이니셜을 CHS로 썼다가CSH로 고쳐 쓴 건 아주 사소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고....
잡지....오려 보낸거!
(*제가 이쁨 받는다고 잡지에서 우리가 좋아 할 만한 기사
거리를 쫙쫙 찢어서..물론 곱게...보냈걸랑요...^^)
뉴스 프린트 한거!
(*애고...인터넷에서 최신뉴스..예를 들어 강원래가 오토바
이 사고난 거랑..미 대통령선거랑..뭐 그 딴 것들을 프린트
해서 봉투에 쏙~^^)
들키면 압수에 얼차려에 벌점감이다.
편지 검사 받을 때 몰래 가지고 들어오느라 얼마나 가슴 조이며 애 먹었는지 알기나 해?
아마 이번 주 편지에도 그런게 몇 개 아니.... 이 편지가 도착할 때 까지 계속 오겠지...
(*사실입니다..서태지 사진이랑...마구 보냈습니다,ㅠㅠ)
그 때마다 난 모험을...해야 하고... 에후~~~ 인석아.... 신경 쓸 일 하나 더 만들어 주는구나.....
그제 **에게서 편지가 왔다. 스티커 사진도 두 개 붙여서 왔더라.
**의 편지가 도착한 날은 네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의 편지가 왔을 때에도 별로 기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다음날(어제) 편지가 네 통이나 한 번에 도착하더라.
아마 밀린 모양이다.
날짜가 13일, 14일로 찍혀 있던데 같은 날 온거다.
그리고....아주아주 날 애먹이고, 기쁘고, 한 없이 행복하게 했던 '보이스카드'........
분대장님이 편지 나눠 주는 시간에 날 부르더니, 무언가를 귀에 대주더라.
짧은 시간...10초정도.... 정말 듣고 싶었고 그리웠던 너의 목소리....
'자기야 나야 예쁜 두리 나 든든이랑 잘 있을테니까 자기도 잘 있어야해. 사랑해 뽀뽀 쪽~! 안녕'.....
그렇게 두 번 들려 주더니..... "이게 뭐야. 완전 소포잖아. 들었으니 버린다!" 하면서 버리려고 하는 거다.
난 황급히.... 보관했다가 퇴소할 때 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전에 네가 보내 주었던 전화카드 (*으휴~! 제가 생각해도 전 철딱서니 없는 짓...많이 했습니다) 를 꺼내 보이면서
"원래 이것도 버려야 하는거야" 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사실....얼차려 안 받는 것으로도 다행인 일인데 달라고 할 수 도 없더라.
네 목소리가 담긴 카드는 꼭 가지고 싶고....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포기할 까 하다가 전화카드는 포기할 테니 카드만은 버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5000원 짜리 전화카드 두 개와 네 목소리......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네 목소리가 담긴 카드라면 전화카드 따위 포기해 버리는건 당연하지....
그렇게 말하고 정말 불쌍한 표정으로 분대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거의...받을 확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대장님이 가만히 날 보더니 손에,
네 목소리가 담긴 보이스카드를 쥐어 주시는 것이다. "에이~ 가져가라"하시면서....
얼마나 기쁘던지 그만 펄쩍 뛸 뻔 했다.
내무실로 가지고 들어와서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행복한 순간을 맘껏 만끽했다.
우리 내무실 녀석들이 한 번 들어 보려고 내 주위에 몰려 들었고, 우리 내무실에서는 네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모두들 신기해하고 부러워했다. 저번에 보낸 편지에 보이스카드 보내면 안된다고 미처 쓰지 못했는데...다행이다.
상당히 힘들었지만, 약간의 댓가도 치뤄야 했지만, 그리운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행복하다. 지금 불침번 시간인데 교대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가 네 목소리를 듣고 나왔다.
교대하고 나서 또 들어야지....후후~~~
네 편지 중에 편지지하고 우표 보낸거 있더라.
편지지는 그냥 그대로 넣어 두었다.
이런 멋없는 편지지가 아니어서 쓰기 아깝더라...
어제 비 조금...그리고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참 오랜만에 듣는 소리 같다.
분명 훈련소에 와서 몇 번이나 비가 내렸었는데, 왠지 오랜만에 듣는 듯 하다.
어쩐지 여기에선 내가 좋아했던 '비오는 날'마저 느낄 겨를도 없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은 것 같아서.... 맘이 아프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게(물런 넌 예외...넌 잊지 않지..절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일 전에 작업 나갈 때 군용 트럭 뒤에 탈 기회가 있었는 데 걷지 않고 이동하는 기분....정말 이상했다.
뒤로 멀어지는 풍경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그 기분.... 언제 또 느껴 볼 지...
그리고 파워 포인트 쓸 수 있는 사람을 중대장님이 찾으시길래 갔었는데, 거기서 따뜻한 커피도 정말 간만에 마실 수 있었다. (훈련병은 이런 거 꿈도 못 꾸는 일이다.)
편지 16일 까지 쓴다고 했더라.... 네 편지 하루만에 도착하는 건 알고 있는지.....?
15일 소인이 찍힌게 오늘(16일) 도착했다. 1박 2일이나 늦어도 2박 3일이면 오나 보더라. 그런데 16일 까지라면.....
편지 못 받는 날이 5일 쯤 되려나....
그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쳐진다.
네 편지 받으려고 하루하루 산 거 같은데.... (*퇴소날이 21일 이었고..그 사이 주말이 끼어서 편지를 목요일 까지만 부쳤습니다. 화요일이면 논산을 떠나니까요. 받지 못하는 <우리>도 힘이 빠졌지만, 보내지 못하는 두리도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제 후반기 학교 주소 알자마자 그동안 써 놓은것 8통 보냈습니다. ^____^)
이번엔 이쯤 쓰고 빨리 보낼께.
6주차인데도 작업만 하느라 시간이 없다. 퇴소하기 전에 한 통 더 보낼 수 있을거야. 안녕....또 편지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