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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흩닐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李 梅窓-- 扶安邑內 서림 공원에는 위의 이매창 詩碑가 있다 서림 공원은 조선의 名妓 이매창과 當代의 文士 許筠(蛟山.1569-1618)과의 사연이 배어 있는 곳이다. 당대의 시인 寸隱(或은 市隱) 劉希慶(1545-1637)을 思慕하다 실의에 빠진 이매창은 후일 자신의 텅빈 마음을 허균으로부터 달래 보았던 것이다. 매창은 나이 스물에 한 남자를 사랑한다. 촌은 유희경. 도골 선풍의 그와 시로 화답하던 밤. 그녀는 머리풀고 큰절을 올린다. <명마는 백락을 만나기 전에는 굴복할 줄 모른다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임진난의 전쟁터로 떠나 버린다. 그를 보내던 날 배꽃이 눈처럼 비처럼 흩날렸다.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님---
허망한 기다림 속으로 다시 한 남자가 걸어왔다. 시대의 반항아 교산 허균. 그러나 그도 또한 역모의 상소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 끝에 참형되고 만다. 비련의 시인 매창은 거의 4백년동안이나 공동묘지였다는 부안읍 남쪽 외곽 봉두메의 매창뜸에 잠들어 있었다. 부안 사당패와 아전들이 외롭게 죽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이곳에 묻어주고 해마다 풀 뽑고 제사 지내오기 아득한 세월.. 생전에 그녀가 자주 놀러갔다는 개암사에서 아전들은 그녀 사후 58년만에 바람에 날아다니며 口傳되던 詩들을 모아 목판본의 책으로 묶어내었다. 그 시집이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불과 數 十年 전이었다 한다.
이매창--본명이 桂生인 李梅窓(1513-1550)은 扶安 官妓였지만 歌辭와 漢詩, 玄琴(거문고)에 두루 능했던 여류 예술인 .흔히 북의 황진이, 남의 매창 이라했지만, 황진이가 중앙무대에서 당대의 풍류남아들과 화려하게 교제할 기회가 많았던 데 반해 매창은 그녀보다 훨씬 많은 시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부안 땅을 평생 떠나지 않아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묘소는 부안군 봉두리 매창뜸에 있고, 부안읍내 서림공원내에 시비가 있다. 부안의 시인 김민성(金民星)家에서는 작고한 부친 김태수가 72년 매창시비를 세운 데 이어 김민성은 97년 매창전집제 1 권을 간행하였다.
北天이 맑다커늘 雨裝없이 길을 나니 어이 얼어 자리 므스일 얼어 자리
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鴛鴦枕 翡翠衾을 어듸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아 시니 얼어 잘까 하노라 -林悌- 오늘은 찬비 맞아 시니 녹아 잘까 하노라 -寒雨-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紅顔은 어듸두고 白骨만 무쳤는가?
盞잡아 勸할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임제--
洞庭西望楚江分 水盡南天不見雲.日落長沙秋色遠,不知何處弔湘君
瀟湘何事等閑回.水碧沙明兩岸苔.二十五絃彈夜月,不勝淸怨却飛來.
客舍幷州已十霜,歸心日夜憶咸陽.無斷更渡桑乾水,却望幷州是故鄕.賈島
咸陽(옛적 秦의 首都 병주와 함양의 거리는 7천리. 병주와 상건은 2천리)
雪晴雲散北風寒,楚水吳山道路難. 今日送君須盡醉,明朝相憶路漫漫.
十里黃雲白日曛,北風吹雁雪紛紛.莫愁前路無知己,天下誰人不識君.
虎溪寒月引相過,帶雪松枝掛薜蘿.無限靑山行欲盡 白雲深處老僧多-釋靈一
◆虎溪(廬山에 있는 시내) .晉代의 僧惠遠이 여산에 살았는데 손을 餞送할제 이 시내를 건너는 일이 없었다. 한 번은 陶淵明과 陸靜修를 전송하다가 생각지 못하고 호계를 지나오게 되었다. 거기서 삼인은 相顧大笑하여 이것을 호계삼소라한다.(* 그러나 이 三人이 동시대 인물이 아님)
◆薜蘿는 隱者가 거처하는 집
萬事無心一釣竿 三公不換此江山. 平生誤識劉文叔 惹起虛名萬世間.
一着羊裘便有心 虛名傳頌到如今. 若着當時蓑衣去 萍水茫茫何處尋.
故園東望路漫漫 雙袖龍鐘淚不乾. 馬上相逢無紙筆,憑君傳語報平安.
西向輪臺萬里餘 也知鄕信日應疎, 隴山鸚鵡能言語 爲報家人數寄書
鳳凰臺上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吳宮花草埋幽境 晉代衣冠成古丘,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總爲浮雲能蔽日 長安不見使人愁.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靑天歷歷漢陽樹 春草萋萋鸚鵡洲 日暮鄕關何處是 煙波江上使人愁
新林二月孤舟還 水滿淸江花滿山 借問故園隱君子 時時來往住人間
走馬西來欲到天 辭家見月兩回圓 今夜不知何處宿 平沙萬里絶人煙
시선(詩仙) 이백(李白)은 당(唐) 숙종(肅宗)과 황권(皇權) 다툼을 벌였던 영왕(永王) 이인(李璘)의 막료로 참여하였던 일로 숙종에 의해 처벌을 받았다. 그는 가장 낙후된 지역인 귀주성(貴州省) 촌구석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태백은 당시의 정치범이었던 것이다.
귀양 처벌을 받은 이백은 나룻배에 의지하여 장강(長江)을 역류하여 귀양지로 향하던 중 장강삼협(長江三峽) 중의 최고 절경인 구당협(瞿塘峽) 부근에 위치한 백제성(白帝城)에 도달하였을때 숙종의 사면을 받게 되었다. 백제성은 촉(蜀)나라의 유비가 오(吳)나라 병사의 침입을 방어하겠다면서 머물다가 인생의 종말을 맞은 곳이다.
이백은 특사 소식을 접하고 하류에 위치한 강릉(江陵)으로 되돌아가는 기쁜 마음을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라는 시에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조사백제채운간(朝辭白帝彩雲間) 아침 일찍 오색구름 낀 백제성을 떠나니
천리강릉일일환(千里江陵一日還) 천리 길 강릉에 하루만에 당도하네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 양안의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 가벼운 배는 어느덧 첩첩산중을 지났네
朝辭白帝彩雲間 千里江陵一日還 兩岸猿聲啼不住 輕舟已過萬重山.
非暑非寒二月天 비서비한이월천 (덥도춥도 아니한밤 봄철이월 하늘아래)
一妻一妾情相綿 일처일첩정상면 (정처하나 애첩하나 어이그리 정다운고)
鴛鴦枕上三頭列 원앙침상삼두열 (원앙한쌍 벼개위엔 머리셋이 나란하고)
翡翠衾中六腕纏 비취금중육완전 (비취색갈 이불속엔 여섯팔이 얽혔구나)
開口嬉聲成字品 개구희성성자품 (입을열어 신음소리 정녕히도 品자되고)
下鞍臥息似困川 하안와식사곤천 (몸을내려 누었으니 피곤하여 川자되네)
東端劈蛤西端燥 동단벽합서단조 (동쪽조개 벌리며는 서쪽에선 안달이라)
兩穴浅深子喘然 양혈천심자천연 (兩穴淺深 넘나더니 대감숨이 더차겠네) 이항복(만전에게)
▶어느 당(唐) 시인의 ‘무제’(闕題·궐제)에서 김씨의 독서 모습을 떠올려본다.
(閑門向山路 深柳讀書堂)‘한적한 대문은 산길로 열리고/ 글읽는 방에 버드나무 깊다
(幽映每白日 淸輝照衣裳).’ 한낮 햇살 그윽히 비추면/ 그 맑은 빛 옷자락에 어린다
걷고 사색하고 일하고 독서하는 그의 삶이 가난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것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도 용기요 지혜다.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따로 없다.
每 자는 昧(새벽 매) 자와 통자로, 여기에선 '가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독서당 깊숙이 드리운 버드나무(深柳讀書堂) 한낮의 해를 가려 그윽한 그림자를 드리우고(幽映每白日)'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시를 쓴 이는 唐시인 유신허입니다.
♤ 부모 ♤
한쌍의 제비(雙燕)-
雙燕銜蟲自忍飢 往來辛苦哺其兒 쌍연함충자인기 왕래신고포기아
看成羽翼高飛去 未必能知父母慈 간성우익고비거 미필능지부모자
한쌍 제비 벌레 물고 홀로 주림 참으며 괴롭게 왔다갔다 제 새끼를 먹이누나.
날개깃 돋아나서 높이 날아 가버리면 부모의 자애로움 능히 알지 못하겠지. 김리만(金履萬, 1683-1758),
저 배고픈 것도 잊고 제비 부부는 열심히 벌레를 물어 새끼를 먹인다.
입을 있는대로 쩍 벌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저 굶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것들이 날개에 깃촉이 돋아 제힘으로 훨훨 날게 되면,
저를 먹여 길러준 부모의 은공은 새까맣게 잊고서 저 혼자 큰 것으로 생각하겠지.
저것은 미물이라 그런다 해도 사람은 어째서 품어 길러주신 부모의 사랑을 까맣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자료출처 鄭 珉 한문학
2006/02/17 11:00:21
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 君不見管鮑貧時交 此道今人棄如土
霜落荊門江樹空 布帆無恙掛秋風 此行不爲鱸魚鱠 自愛名山入剡中
張翰江東去는 正値秋風時라 天淸一雁聲에 海闊孤帆遲라-李白
張翰(장한)--晉나라때 吳郡사람. 淸才기 있고 글을 잘해서 齊王이 大司馬를 시켰더니 가을 바람이 불자 故鄕 吳郡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먹고 싶어 벼슬을 그 만두고 故鄕으로 돌아갔다한다.
誰家玉笛暗飛聲 散入春風洛陽城 此夜曲中聞折柳 何人不起故園情
漢宮山河在 秦陵草樹深 暮雲千里色 無處不傷心
猿啼客散暮江頭 人自傷心水自流 同作逐臣君更遠 靑山萬里一孤舟
汴水東流無限春 隋家宮闕已成塵 行人莫上長堤望 風起楊花愁殺人-李益
汴河(隋煬帝가 開鑿한 運河인데 黃河와 淮水를 連結하여 길이 13000里. 運河의 兩岸에는 道路를 딱고 버들을 심었으며 離宮四十餘個所를 두었음). 行宮(離宮;天子가 行幸하여 머물러 있는곳)
煬帝行宮汴水濱 數株楊柳不勝春 晩來風起花如雪 飛入宮牆不見人-劉禹錫
宜陽城下草萋萋 澗水東流復向西 芳樹無人花自落 靑山一路鳥空啼
草色靑靑柳色黃 桃花歷亂李花香 東風不爲吹愁去 春日偏能惹恨長
二十年前別帝京 重聞天樂不勝情 舊人惟有何戡在 更與慇懃唱渭城 劉禹錫
百畝庭中半是苔 桃花淨盡菜花開 種桃道士歸何處 前途劉郞今又來 “
紫陌紅塵拂面來 無人不道看花回 玄都關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유우석
현도관(朱雀街에 있는 道敎寺院). 작자가 일찍이 連州에 귀양갔다가 다시 朗州로 옮겨서 그 후 十年을 지나서 召還되어 京城에 왔다. 때에 長安 玄都觀에 있는 道士가 桃樹를 많이 심었는데 都人의 觀賞이 매우 盛하였다. 작자는 이것을 빌어 당시 權貴에 아첨하여 영화를 누리는 者를 풍자하며 자기의 오랜 謫居를 自述한 작이다.
梁園日暮亂飛雅 極目蕭條三兩家 庭樹不知人去盡 春來還發舊時花
獨上江樓思渺然 月光如水水連天 同來看月今何處 風景依稀似去年
一年又過一年春 百歲曾無百歲人 能向花前幾回醉 十千沽酒莫辭貧
世上交結須黃金 黃金不多交不深 縱令然諾暫相許 終是悠悠行路心
獨在異鄕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偏揷茱萸小一人
故人西辭黃鶴樓 烟花三月下楊州 孤帆遠影碧空盡 惟見長江天際流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四明有狂客 風流賀季眞 長安一相見 呼我謫仙人 昔好杯中物 今爲松下塵
金龜換酒處 卻憶淚沾巾
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良宵宜此談 皓月不能寢 醉來臥空山 天地卽衾枕(留連은 차마 떠나지 못하여 머뭇거리는 모양, 盤桓)
峨嵋山月半輪秋 影入平羌江自流 夜發淸溪向三峽 思君不見下揄州
錦城絲官日紛紛 半入江風半入雲 此曲只應天上有 人間能得幾回聞
國破山河在 盛春草木深 感時花濺淚 恨別鳥警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自去自來堂上燕 相親相近水中鷗 老妻畵紙爲碁局 稚子敲針作釣鉤 多病所須維藥物 微軀此外更何求 (一本 에는 당상연이 梁上燕 으로 다병소수유약물은 但有故人供祿米로 되어있다)
山水無非舊眼靑 樓臺亦是少年情 可憐故國遺風在 收拾絃歌爲我行
綠樹重陰盡四隣 靑苔日厚自無塵 科頭箕踞長松下 白眼看佗世上人
昨日到城郭 歸來淚滿巾 偏身綺羅者 不是養蠶人
萬里路長在 十年今時歸 所經多舊館 太半主人非
晨窓林影改 夜枕山泉響 隱居復何求 無言道心長
松栢入冬靑 方能見歲寒 聲須風裏聽 色更雪中看
有風還自掩 無事盡常關 開闔從方便 乾坤在此間
水流無彼此 地勢有西東 若識分時異 方知合處同
琴書四十年 幾作山中客 一日茅棟成 居然我泉石
月白夜蜀魂啾 含愁情倚樓頭 爾啼悲我聞苦 無爾聲無我愁 寄語世上勞苦人 愼莫登春 三月子規啼明月樓. 端宗
雨後晴光萬綠新 一堂長少是君臣 花臺柳榭渾如畵 時有鶯聲喚主人 孝宗
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家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두목지
漢時明月秦時關 萬里長征人未還 若使龍城飛將在 不敎胡馬度陰山(飛將은 李廣)
靑海長雲暗雪山 孤城遙望玉門關 黃沙百戰穿金甲 不破樓蘭終不還-王昌齡-從軍行 설산, 옥문관, 루란은 고유명사
鳳林關裏水東流 白草黃楡六十秋 邊將皆承主恩澤 無人解道就楊州
遠上寒山石逕斜 白雲生處有人家 停車坐愛楓林晩 霜葉紅於二月花-杜牧之
黃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仞山 羌笛河須怨楊柳 春光不到玉門關-王之渙
開元年間 王之渙은 그의 詩友 王昌齡, 高適과 함께 어떤 料亭에서 술을 마셨다. 때마침 옆방에서 광대들이 모여 宴會를 열고 있는데 그 자리에 妓生들이 合席하여 詩唱을 시작하였다. 이 狀況을 본 三 詩人은 서로 約束하되 이제 저 기생들의 부르는 시의 多寡에 의하여 우리 詩名의 高下를 評定하자하고 귀를 기우려 듣기 시작하였다. 기생들은 처음 王昌齡의 시를 부르고 다음 高適의 시를 불렀다. 그러고 그 다음에는 또 왕창령의 시를 불렀다. 이 때 왕지환은 잊 저 제일 美妓가 부를 차례가 되었는데 저가 만일 나의 시를 부르지 않는다면 나는 다시 君等과 시명을 다투지 않겠다고 하고 기다린 즉 과연 그 美妓는 왕지환의 황하원상백운간을 소리 높여 불렀다 삼인은 드디어 大喜痛飮하였다한다.
爲政心閑物自閑 朝看飛鳥暮飛還 寄書河上神明宰 羨爾城頭姑射山
葡萄美酒夜光杯 欲飮琵琶馬上催 醉臥沙場君莫笑 古來征前幾人回
酒泉太守能劍舞 高堂醉酒夜擊鼓 胡笳一曲斷人腸 坐客相看淚如雨
陳中吟(이순신)
天步西門遠(천보서문원이요) 東宮北地危(동궁북지위라)
孤臣憂國日(고신우국일이요) 壯士樹勳時(장사수훈시라)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이요)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라)
讐夷如盡滅(수이여진멸이면) 雖死不爲辭(수사불위사로다)
임금의 행차 서쪽으로 멀어지고, 왕자는 북쪽 땅에서 위태로우니
외로운 신하 나라를 걱정하는 날, 사나이가 공훈을 세울때라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니라
원수를 만약 모두 멸할 수 있다면, 비록 죽을지라도 사양하지 않으리라
茶山 鄭若鏞 松壇白石牀 是我彈琴處 山客掛琴歸 風來時自語
소나무 서있는 단에 하얀 돌 평상은 바로 내가 거문고 타는 곳
산객은 거문고를 걸어두고 가 버렸지만 바람이 불면 때때로 절로 소리를 내네.
少小異鄕老大回 鄕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東去長安萬里餘 故人那惜一行書 玉關西望腸堪斷 況復明朝是歲除
鳥獸哀鳴海嶽嚬 槿花世界已浸淪 秋燈掩卷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
宮柳靑靑鶯亂飛 滿城冠盖媚春暉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석주
數日留連飮 今朝興更多 卿言也復是 奈此菊枝何-석주
이몸이 되올진데 무엇이 될고하니 곤륜산 곡대기에 落落長松 되었다가 群山에 雪滿하거던 홀로 우뚝하리라.-석주
交河霜落雁南飛 九月金城未解圍 征婦不知郎已沒 夜深猶自擣寒衣-석주
河上傳家只墨莊 兒孫蔬糲不充腸 如何將相三千日 幷欠城都八百桑-우복
死固人皆有 君應世無所 誰知一箇字 能喪百年軀 浩蕩神農業 蕭條大禹謨 此生那更見 孤月照西湖----東岳(聞權汝章坐於詩禍沒於東門外.汝章은 石洲)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終聲到客船.楓橋夜泊.張繼
풍교;封橋라고도 하는데 江蘇省蘇州府城 西七里에 있는 地名. 뒤에 山이 있고 앞에 江을 臨하여 南北으로 往來하는 사람이 반드시 이곳을 경유하게 되는 곳이다.
春城無處不飛花 寒食東風御柳斜 日暮漢宮傳蠟燭 靑煙散入五侯家.
한식날은 불을 엄격히 금하였는데 宮中에서는 특히 點燈을 하고 , 그 다음날 百官에게 新火를 頒賜하였다.
松竹黃花三節士 琴書白酒一閑人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洛陽城裏見秋風 欲作家書意萬重 復恐怱怱說不盡 行人臨發又開封
白草原頭望京師 黃河水流無盡時 秋天曠野行人絶 馬首東來知是誰
風急天高猿嘯哀 渚淸沙白鳥飛回 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 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 艱難苦恨繁霜鬢 潦倒新停濁酒盃 번상(서리가 많이 내림) 요도(늙어서 할일이 없는 모양)
春山無伴獨相求 伐木丁丁山更幽 澗道餘寒歷氷雪 石門斜日到林丘 不貪夜識金銀氣 遠害朝看麋鹿遊 乘興杳然迷出處 對君疑是泛虛舟
荊楚相接水爲鄕 君去春江正淼茫 日暮孤舟何處泊 天涯一望斷人腸
承恩借臘小平津 使氣常遊中貴人 一擲千金渾是膽 家無四壁不知貧 -吳象之
소평진(滄洲鹽山縣에 있는 天子의 獵場).중귀인(궁중의 귀인) 사기(의기를 고취하는것)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 借問酒家何處在 牧童遙指杏花村
子瞻謫海南 時宰欲殺之 飽喫惠州飯 細和淵明詩 彭澤千載人 東坡百歲師 出處雖不同 氣味乃相似
客心淨日月 來往豫期程 秋風不相待 先至洛陽城
貴賤雖異等 出門皆有營 獨無外物牽 遂此幽居情 微雨夜來過 不知春草生 靑山忽已曙 鳥雀繞舍鳴 時與道人偶 或隨樵子行 自當安蹇劣 誰謂薄世榮
龍疲虎困割川原 億兆蒼生性命存 誰勸君王回馬首 眞成一擲賭乾坤(過鴻溝:韓愈)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俊才 捲土重來未可知(題烏江詩.杜牧)
相送臨高臺 川原渺何極 日暮飛鳥還 行人去不息 -王維-
綠樹秦京道 靑雲洛水橋 故園長在目 魂去不須招
此地別燕丹 壯士髮衝冠 昔時人已沒 今日水猶寒.易水送別역수는 강.
遺文三十軸 軸軸金玉聲,龍門原上土 埋骨不埋名
春種一粒粟 秋收萬顆子 四海無閑田 農夫猶餓死
古墳何代人 不知姓與名 化爲路傍土 年年春草生
萬國尙戎馬 故園今若何 昔歸相識少 早已戰場多.杜甫 復愁
鋤禾日當午 汗滴禾下土 誰知盤中飡 粒粒皆辛苦
歲月人間促 煙霞此地多 慇懃竹林寺 更得幾回過
何處秋風至 蕭蕭送雁群 朝來入庭樹 孤客最先聞
春來萬里客 亂定幾年歸 腸斷江城雁 孤孤正北飛
牀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首思故鄕.靜夜思 李白
問道黃河水 頻年不解兵 可憐閨裏月 便照漢家營
燕趙悲歌士 相逢劇孟家 寸心言不盡 前路日將斜
秦娥十四五 面白於指爪 羞人夜採桑 驚起戴勝鳥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孟浩然. 春曉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乃相照. 王維 竹里館.
죽리관은 죽림속에 있는 정자. 이 詩 역시 輞川別業20경중 하나. 유황은 깊숙한 대숲
空山不見人 但聞人語響 返景入深林 復照靑苔上 - 王維 鹿柴
鹿柴(지명으로 이곳은 왕유의 輞川別業 20景中 하나). 返景은 저녘볕
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 杜甫 絶句
落日下大野 江邊漁事收 小舟橫斷岸 長笛一聲秋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偶來松樹下 高枕石頭眠 山中無曆日 寒盡不知年
主人不相識 偶坐爲林泉 莫謾愁沽酒 囊中自有錢
題袁氏別業(別業은 別莊.우좌는 耦坐로서 二人對坐의 뜻. 謾은 부질없다.沽는 사다)
結廬古城下 時登古城上 古城非疇昔 今人自來往
千山鳥飛絶 萬逕人踪滅 孤舟簑笠翁 獨釣寒江雪
戚戚一西東 十年今始同 可憐歌酒夜 相對兩衰翁
冷艶全欺雪 餘香乍入衣 春風且莫定 吹入玉階飛
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 大夢誰先覺 平生我自知
打起黃鶯兒 莫敎枝上啼 啼時驚妾夢 不得到遙西
出門何所見 春色滿萍蕪 可嘆無知己 高揚一酒徒, 高適 田家春望
여식기가 처음 한고조를 방문하니 고조는 그를 한 개의 儒生이라하고 접견하지 않자 여식기는 칼을 안고 들어가 나는 고양의 일주도요, 유생이 아니노라 하였다
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李白 사개는 이렇게
宿昔靑雲志 蹉跎白髮年 誰知明鏡裏 形影自相憐 照鏡見白髮-張九齡
숙석(옛날, 젊었을적). 차타(미끄러져 넘어짐. 途中에서 실패함)
種豆南山下 草盛豆苗稀 侵晨理荒穢 帶月荷鋤歸 道狹草木長 夕露沾我衣
衣沾不足惜 但使願無違 **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 晝短夜苦長 何不秉燭遊
爲樂當及時 何能待來玆 愚者愛惜費 但爲塵世嗤 仙人王子喬 難可以等期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君看日輪上 何處最先紅(石璘)
先王遺業有親耕 歲歲願豊樂太平 苾芬奉祀神其報 永使吾邦萬世榮(柳泰錫:석계)
人生四十太遲遲 貧病相隨不暫離 最恨山窮水盡處 任情歌哭亦難爲 -丹齋 申采浩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僧不知吾春睡惱 忽無心打月下鐘(日邊鐘)
綠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笻 龍造化含飛雪瀑 劍精神削揷天峰
來往千峰萬壑間 看看只識半邊顔 此身那得升天翼 全俯金剛內外山-姜俊欽-
橫看成嶺側爲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落照拖紅掛碧山 寒鴉尺去白雲間 問津行客鞭應急 尋寺歸僧杖不閑 放牧園中雨帶影 望夫臺下妾低鬟 蒼煙古木溪南里 短髮樵童弄笛還
溪聲自是長廣舌 八萬眞經俱漏洩 可笑西天老釋迦 徒勞四十九年說
衆鳥同枝宿 天明各自飛 人生亦如此 何必淚沾衣
呼船東問魯連津 五百年今一介臣 若使孤魂能不死 願隨紅日照中垠-백암
隴樹蒼蒼塞日昏 白山雲雪照離樽 君行莫限天涯別 我是歸人亦斷魂-농암
空山木落雨蕭蕭 相國風流此寂寥 惆悵一盃難更進 昔年歌曲卽今朝 -권석주-
(비인 산에 나뭇잎 지고 빗줄기만 쓸쓸해 정승의 풍류도 이처럼 적막할 줄이야. 외롭게 한잔 술 들었지만 다시 권할 길 없으니 옛날의 장진주사가 오늘에 와 맞는구려)
蕭蕭落葉聲 錯認爲疎雨 呼僧出門看 月掛溪南樹 --鄭松江
聞道紅衣將 逐倭如逐獐 爲言終戮力 須使郭汾陽--李好閔
親知屈指幾人存 半是三危半九原 怊悵世間餘一老 廣陵殘月又招魂--兪夏益-庚申年에 許堅의 獄事로 南人이 連坐되어 혹은 죽고 혹은 귀양가 一網打盡되었다. 參判 李堂揆가 죽었는데 判書 유하익이 시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시다.
三危- 세가지 危急함을 초래하는 일, 小德而多寵, 才下而位高 身無大功而有厚祿
功在宗祊(팽)澤在民 能全終始獨斯人 不待百年公議定 是非何累地中身-이 詩는 吏判 吳祥이 使臣으로 北京으로 가는 도중에 죽은 이준경(李浚慶)의 뒷이야기를 듣고 지은 詩다 東皐의 生前에 험(흠)이 없다는 것과 遺箚는 未久에 判定이 날 것이니 땅 속에 있는 그에게 아무런 損益이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 시는 申欽의 春坡錄에도 수록되었으며 東皐를 높이 평가하였다. 祊=제사이름팽 사당문제사 팽(廟門祭神 = 閍[사당문팽 대궐문팽].과通 )
빈강-空江
-情裏佳人夢裏逢 -相看憔悴舊形容 -覺來身在高樓上 -風打空江月隱峯 (成孝元, 1497-1551), (院樓記夢)-
牢落乾坤後死悲 更無餘淚及親知 靑山好葬如公少 堪向九原作賀辭= 金壽增--己巳年에는 많은 西人들이 죽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金壽增이 判書 李翊相의 輓詩를 지었는데 위의 두 시는 몹시 비통하여 사람들은 차마 읽을 수 없었다.
金壽增-1634-1701-자는 延之 號는 谷雲 安東人 1689년 己巳換局으로 仁顯王后가 廢位되고 동생 壽恒이 賜死됨. 이듬해 兄 壽興도 配所에서 죽자 淮陽府使를 그만 두었다. 1694년 甲戌獄事 후 다시 起用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谷雲集이 있다.
鳥獸哀鳴海嶽嚬 槿花世界已浸淪 秋燈掩券懷千古 難作人間識者人-황매천
勸君更進一盃酒 不到劉伶墳上土 三月將進四月來 桃花亂落如紅雨
況是靑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勸君今日酩酊醉 不到劉伶墳上土
泰山在後天無北 大海當前地盡東 橋下東西南北路 杖頭一萬二千峰
宮柳靑靑鶯亂飛 滿城冠蓋媚春輝 朝家共賀昇平樂 誰遣危言出布衣--權石洲--
天門中斷楚江開 碧水東流至北廻 兩岸靑山相對出 孤帆一片日邊來-望天門山 李白-
田園歸路三千里 帷幄深恩四十年 立馬渡迷回首望 終南山色故依然-서애
山形背立本同根 水勢分流亦一源 花石古亭人不見 夕陽歸去重銷魂-題花石亭(서애) -今見詩意悽惋愷切 若使栗谷尙在而 共儕危難則 其能如范呂解仇之爲未可知也-
竹牕寒雪夜蕭蕭 千里楓宸夢裡遙 白首縱添新雨露 豈宜重誤聖明朝-서애
李恒福.李元翼 上箚伸救 更給職帖 成龍作詩言志(初東西分黨 東人鄭仁弘忌禹性傳才名 劾之而 李潑主之 物情紛紜 於是李潑 洪汝醇等 右潑者稱北人 柳成龍 李元翼等 右性傳者稱南人 壬辰後成龍久在位相朝野歸心 李山海 鄭仁弘忌之 使其徒擊去之 自宣祖末年 至光海朝 北人秉政而 西南幷貶困一隅)
去國經秋滯塞城 異邦雲物摠關情 洪河欲濟無舟子 寒木將枯有寄生 自笑謀身非直道 還慙欺世坐虛名 曉來拓戶臨靑海 旭日昭昭照膽明--심언광(沈彦光)
심언광은 1592년 그 형 언경과 함께 유배중인 김안로의 용서를 주청하여 예조판서에 등용케 했다. 그런데 김안로가 차츰 횡포를 일삼고 그의 외손녀를 세자빈으로 삼으려하자 이를 극렬하게 반대한 탓으로 김안로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됨 저서로 漁村集이 있다.
三從不出相門闈 此事於今始有之 更拄省中靈壽杖 却被堂上老萊衣 恩霑雨露眞千載 歡
接冠紳盡一時 何處得來叨席次 愧無佳句賁黃扉-盧穌齋 賀領相洪暹大夫人--暹(字는 退之. 號는 忍齋)宣祖初拜領相 以年七十 入耆社 賜几杖設宴 卿宰皆會 時 暹母夫人年九十 尙在 以領相宋軼之女 爲領相彦弼之妻 又爲領相母 見此宴寔盛事也 守愼賦此賀之 朝廷 昇平優禮大臣 以及壽母 仁厚之風可見(叨-탐내다.함부로 차지하다..외람되이. 참됨. 拄-떠받치다. 거절하다 손가락질하다.拄杖-지팡이. 짚고 의지하는 막대기.昇平-나라가 태평함. 세상이 잘 다스려 짐)
天地之東國以南 沃川城下數間庵 有難赦罪難醫病은 爲不忠臣不孝男 客日三千四百幸 生年乙亥丙辰慙 汝盧守愼如無死 報得君恩底事堪-穌齋(沃州城은 珍島의 옛 이름.노수신은 을해(1515)생이고 이 시는 병진년(1565)년에 지은 것으로 귀양살이한 날짜가 3500일이 되는 때이다. 生은 幸 . 如는 將. 死는 醉. 報는 補. 君恩은 公私로 되어있는 것이 있다.)
李山海問李珥曰蘇齋遞相 有關於時事否 李曰 蘇齋不能建明하야 人多少之호데 但今世에 雖使出世之才로 居相位라도 安能有爲乎 譬之工匠則蘇齋는乃拱手空食者也 雖無益이나亦無害하고 蘇齋遞後 若毁瓦畵墁者로遞之則 其害豈淺淺乎. 公이作相에無建白하니崔永慶이 譏之曰盧相之唾는宜用之治瘇이라하니 盖治瘇에 用未言前唾爲良故也라.癸丑에 大拜至領相賜几杖하고 庚寅에卒하니諡文懿라.. 芝峰類說 권14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盧穌齋는 평생 論語를 읽었기 때문에 그의 시에는 논어의 전 구절을 사용한 곳이 매우 많다. 그가 일찍이 말하기를 “나의 시문은 논어 안에서 가장 많은 힘을 얻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盧穌齋 平生讀論語 故 其詩用論語全句處甚多. 嘗言 我之詩文 最於論語中得力云.)“
天心錯莫臨江水 廟算凄凉對落暉 問道南兵近乘勝 幾時三捷復王畿 --李好閔[임난때 임금의 행렬이 龍灣에 머물면서 遼河를 건너야 되는지를 의논하였다. 五峰 李好閔이 律詩 한 수를 지었다. 임금 마음 착잡하여 강물 굽어보고 조정 계책 처량하여 지는 해만 바라보네)
問道紅衣將 逐倭如逐獐 爲言終戮力 須似郭汾陽--李好閔[충익공 곽재우가 여러번 놀랄 만한 공을 세우자 五峰이 이 시를 지어 주었다)
五日長關三日越 哀歌唱斷魯陵雲 妾身亦是王孫女 此地鵑聲不忍聞-오일은 장관이오 삼일은 영월이라, 슬픈 노랫가락 노릉의 구름에 애 끊네--李玉峰者卽 趙伯玉之妾也 詩亦淸壯無脂紛態 寧越道中作詩
親知屈指幾人存 半是三危半九原 怊愴世間餘一老 光陵殘月又招魂-兪夏益(자는 士謙, 호는 百忍堂. 1680년 庚申大黜陟으로 南人이 肅淸당할 때 罷職當하고 門外出送되었다가 1689년 己巳換局으로 西人이 追放되자 풀려 나와 都承旨에 登用되었다. 許堅의 獄事로 南人이 連坐되어 혹은 죽고 혹은 귀양가 일망타진되었다. 참판 李堂揆가 죽었는대 判書 유하익이 시를 지어 죽음을 애도하기를 친지들 몇 사람이나 남았는지 헤아려 보니, 반은 삼위를 겪고 반은 죽었네, 슬프게도 세상에 늙은이 혼자 남았는데 광릉에 뜬 새벽달이 혼을 부르네.)
牢落乾坤後死悲,更無餘淚及親知,靑山好葬如公少,堪向九原作賀辭,-金壽增. (1634-1701; 자는 延之 호는 谷雲 安東人 1689년 기사환국으로 인현황후가 폐위되고 동생 수항이 사사됨. 이듬해 형 수흥(壽興)도 배소에서 죽자 회양부사를 그만 두었다. 1694년 갑술옥사 후 다시 기용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저서로 곡운집이 있다. 己巳換局에 많은 서인들이 죽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김수증이 판서 李翊相의 輓詩를 지었는데. 적막한 세상에서 뒤에 죽는 것은 슬프다네 눈물도 친지도 남지 않았으니, 청산의 좋은 장례 공 같은 경우 드무니 감히 황천을 향해 祝辭를 올리네)
老峰 閔鼎重과 驪陽 維重은 兄弟인데, 매번 尹白湖를 보면 반드시 감복하였다. 사람들이 혹 그 까닭을 물으면 <그분의 기품 있는 모습은 봄바람 위에 앉아 있는 것 같고 언론은 경전에 출입하여 고금을 꿰뚫었고 시를 읊으면 능히 雲開萬國同看月 花發千家共得春[구름 걷히니 온나라 함께 달보고 꽃 피니 온 집 다 봄 감상하네] 라는 구절을 말하였으니 어찌 감복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우암이 일찍이 尹이 처음에는 이런 경지에 이르지 않았는데, 大司馬 형제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여기에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大司馬는 곧 노봉이다.
楚辭前歲喟憑心 宋史今朝淚滿衿 異代忠邪那繫我 自然相感謾悲吟-金麟厚(하서가 이소경을 읽다가 슬펴하며 시를 지은바 있고, 또 송사를 읽다가 秦檜가 岳飛를 죽이는 일에 이르러 위와 같이 시를 지었다.)
僧去汲井水 和月滿盂中 入寺無所見 方知色是空--崔簡易
山僧貪月色 並汲一甁水 到寺方應覺 甁傾月亦空--이규보
羲王樂俗今如掃 只在春風盃酒間(吳祥) [今如掃-今猶存. 只在--看取.尙震]
명종 때 정승 상진(尙震)의 증조부 상영부(尙英孚)는 재물이 많아 이식을 놓고 살았는데 만년에 그 차용증서를 모두 모아 불살랐다. 그 연기가 하늘 높이 이르는 것을 보고 반드시 감천하여 좋은 후손을 보리라고 둘레에서 말들 했다. 그러하고 태어난 것이 상정승이다.
맞추지 않은 예언이 없었다는 소문난 점복가 홍계관(洪繼寬)으로부터 죽을 날을 예언 받은 상정승은 사후를 정리하고 운명을 기다리는데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홍계관이 찾아가 죽을 사람을 살려준 음덕(陰德)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나는 게 없습니까 물었다. 젊었을 때 밤길에 붉은 보자기를 줍고 보니 대전 수라간에서만 쓰는 그릇인지라 이를 몰래 수소문하여 훔친 궁인(宮人)에게 돌려준 적이 있음을 상기했다. 궁의 물건을 훔치면 베어 죽이게 돼있었기에 죽을 사람 살려준 것이 된다. 상정승은 그 후 자신의 사주팔자보다 15년을 더 살았던 것이다.
功在宗祊澤在民 能全終始獨斯人 不待百年公議定 是非何累地中身-오상-
心無名利窮何病 案有詩書樂自存
平壤壯士目雙張 快殺邦讐似殺羊 未死得聞消息好 狂歌亂舞菊花傍-김창강
宛轉蛾眉能幾時 須臾鶴髮亂如絲 但看古來歌舞地 惟有黃昏鳥雀悲
酌酒與君君自寬 人情飜覆似波瀾 白首尙知惟按劍 朱門先達笑彈冠 草色全經細雨濕 花枝欲動春風寒 世事浮雲何足問 不如高臥且加餐-(酌酒與裵迪)-王維
一峰二峰三四峰 五峰六峰七八峰 須臾更作千萬峰 九萬長天都是峰
艶陽時節又蹉跎 遲暮光陰復若何 一年平分春日少 百歲統計老時多. 白樂天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煙 花落家童未掃 鳥啼山客猶眠 - 王維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 隨富隨貧且歡樂 不開口笑是癡人- 樂天
花明柳暗春五月 昌德宮中太極亭 娼婦不知君國變 無心歌舞不堪聽
蒼明夜夜迎孤月 杞鞠年年闢小畦 回首不逢堯舜世 甘心不讓牧草儕 李午
草入王孫恨 花添杜宇愁 汀洲人不見 風動木蘭舟 李午
一面疏籬是我家.春來不隔四山花 粉牆丹柱何能久 坐愛庭中月色多-曺繼芳
世間從富不從貧 誰記江村冷瘦人 惟有乾坤無厚薄 寂寥茅屋有靑春 -조계방 ‘-
敲門宿客直須麾 勿使山家奇事知 屋角梨花開滿樹 子規來呌月明時 조계방
一死非難事 偸生反是羞 伶俜獨立世 西望淚長流 - 栗澗 李仲賢
自古有一死 偸生非所安 寥寥千載下 英烈橫秋天--정도전(예부터 한 번죽음 뉘나 있으니 구차한 삶은 처할 바 아니지 않나. 천년 지난 광막한 오늘날에도 英烈이 가을 하늘에 비끼었구료)
蒼茫歲月一株松 生長靑山幾萬重. 好在他年相見否 人間俯仰已陳蹤(아득한 세월속 한 그루 소나무여 청산에 나고자라 몇 만겹 인가 언제 우린 다시 볼 수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높이 보고 따르리)정도전-營前有老松 鄭道傳白而書此詩以諷 盖知天命所在而促之也
天涯遊子惜年華 千里思歸未到家 一路東風春不關 野桃無主自開花 途中卽事 金安國
雪裏寒梅雨後山 看時容易畵時難 早知不入時人眼 寧把臙脂寫牧丹-김종직-
이시는 晉陽誌에 의하면 점필재의 門人인 大憲 李仁亨이 낙방하였을 때 지은 것이다.
秋草前朝事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白光勳(號,玉峰)의 弘慶寺
雪月前朝色 寒鍾古國聲 南樓愁獨立 殘廓暮烟生(閨秀 安玉媛의 松都懷古)
淸香旨酒千人血 細切珍羞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光海君 在位中에 서울에 왔던 明나라 將帥 趙都司의 글로서 이 詩는 若干 潤色되어 春香傳에 도 登場한다.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食不爲充腹 盈案以相誇. 一卓之費 可 飢者 數月之糧.
衣不爲弊體 華美以相競. 一襲之費 可 寒者 十人之衣.
十人耕田 不足以食一人而 耕者小 食者多.
十人織布 不足以衣一人而 織者小 衣者多. 奈之何 民不可 飢寒哉
臨溪茅屋獨閒居 月白風淸興有餘 外客不來山鳥語 移床竹塢臥看書-
새냇가 띳집에 한가롭게 홀로 살아, 밝은 달 맑은 바람 흥취가 넉넉하다. 바깥 손님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귀니, 대숲으로 상을 옮겨 누워 책을 읽는다.
或坐緗簟時几凭 赤脚惟思踏層氷 況復堂宇閙蚊蠅 中心鬱鬱愁如繩-李德懋
(1741-1793)의 苦熱行 --자리 깔고 기대엇다가 때로 안석 기대니, 맨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뿐. 하물며 집안에는 파리 모기 들끌어, 가슴속 답답하여 근심만 가득쿠나.--부채하나 달랑 들고 물것들에게 실컷 물려가며 속수무책으로 견딜 수밖에 없었던 선인들의 여름나기의 광경이 눈에 선하다 여기에 견주면 요즘 더위는 더위랄 것도 없다. 凭=기댈빙
年年人道熱無前 卽事剽量也似然 自是凡情忘過去 天心均一豈容偏-李瀷의 苦熱
渾身竟日汗漿流 揮扇功高不暫休 想到夏畦人正病 茅廬雖窄亦寬愁 ‘
전에 없던 더위라고 해마다 말하지만, 막상 닥쳐 생각하면 그렇겠다 여겨지네. 사람생각 지난 일을 잘 잊기 때문이지 하늘마음 한결같아 치우침이 없다네
온몸에 하루 종일 땀이 줄줄 흐르니, 힘겨운 부채질을 잠시도 못 쉬누나. 밭일 하는 사람들 괴로울 것 생각하곤, 초가집 좁지마는 근심을 접어두네.
해마다 무더위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전에 못 보던 폭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난 일을 잘 잊기 때문일 뿐, 하늘이 올여름에만 유난히 더 뜨겁게 할 리가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투덜대기보다 그러려니하고 느긋이 견디겠다는 각오다.
전신에 흐르는 땀을 주체 못해 팔이 빠져라 부채질을 한다. 죽을 맛이다. 그러다 이 땡볕에 밭에 나가 들일을 하고 있을 농부들 생각하니 미안해서 차마 괴롭단 말을 할 수 없더라고 했다. 좁긴 해도 땡볕에서 일하는 괴로움에야 견주겠는가? 이익(1681-1673)
(當知恨一結, 終古不磨滅. 巴山萬里色, 望帝千年血)
기억하라! 한이 한번 맺히면/ 영원토록 마멸되지 않음을./ 파산(巴山) 만 리 붉은 빛은/ 망제(望帝) 천년의 피눈물임을!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다. 비운의 촉(蜀)나라 임금 망제는 죽어서 진달래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천에도 진달래꽃은 피었으니 만 리의 산야를 천년토록 붉게 물들일 내 한을 기억하라!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떠올리지만 처절한 느낌은 오히려 더하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이광사(李匡師·1705~77)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의 참담한 인생과 애절한 사랑을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천하명필이 왜 이런 처절한 한을 노래했을까? 내로라하는 명문가로서 강경파 소론(少論)이었던 그의 집안은 반대 당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하루아침에 역적의 집안으로 몰락했다. 백부가 한 일에 연좌되어 이광사는 평생 출세를 단념하고 오로지 불우한 심사를 글씨와 그림과 시에 풀어내 시대를 초월한 조선의 명필로 군림했다. 그러나 반대 당파는 세사에 초연한 채 예술에 몰입해 사는 것조차 봐주지 않았다. 1755년 50세의 그는 역적으로 몰려 의금부에 투옥되어 왕의 국문까지 받았다.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이때 그는 머리를 치켜들고 “빼어난 예술을 갖고 있으니 목숨만은 건져주소서!”라며 통곡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영조가 극형만은 모면하게 해주었다. 이후 그는 국토의 양끝 부령과 진도에서 무려 23년간 유폐되어 살다가 죽었다. 유배지 두만강변의 부령에서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가 지어졌다.
인생에 일어난 모든 것이 그에게는 한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오로지 한 가지 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은 그의 아내였다. 그가 의금부로 끌려갔을 때 아내 윤씨(尹氏)는 남편의 죽음을 예상했다. 정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이레를 굶으면 죽고, 여자는 여드레를 굶으면 죽는다 하니 여드레가 내가 세상에 머물 날이다”라며 바로 굶었다. 그러나 물 한 모금 안 마신 지 엿새째, 남편을 극형에 처한다는 헛소문이 들려오자 윤씨는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마 끝에 목을 매어 죽었다.
의금부에서 풀려나 유배를 떠나려는 이광사는 찾아온 아들이 상복을 입은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유배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는 통곡을 터트렸다. 그해 겨울 망자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다.
“내가 죽어 뼈가 재가 되어도 이 한은 정녕코 사라지지 않으며, 내가 살아 백 번 윤회를 거듭해도 이 한은 영원히 생생하리라. 수미산이 개미둑처럼 줄어들어도, 황하가 물방울처럼 가늘어져도, 천 번이나 부처를 땅에 묻어도, 만 번이나 신선을 장사지내도, 천지가 뒤집혀 태초가 되어도, 해와 달이 빛을 잃어도, 이 한은 맺히고 굳어져 세월이 갈수록 단단해지리라. 부서지지 않는 번뇌처럼, 뚫지 못하는 금강석처럼, 간직하면 큰 덩어리 되고 토해내면 대천(大千)세계에 가득하리. 내 한이 이럴진대 그대 한도 그럴 테지. 둘의 한이 영원히 흩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만날 인연이 있으리라.”
일백 번의 윤회를 거듭해도 한은 더 굳어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일은 있을지언정 한은 사라지지 않아 그의 한은 극단과 대결한다. 저승과 이승에서 한을 풀지 않으면 언젠가 만나리라는 마지막 대목이 사무친 비원(悲願)으로 들려온다. 곱게 늙어가던 부부에게 일어난 이 기막힌 사별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진달래꽃을 읊은 시는 다음해 어느 봄날에 쓰였다.
우리 역사에서 잔혹한 정치판이 무고한 사람들을 파멸로 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애정 깊은 명필 부부의 인생은 파괴되었지만 그 한은 예술로 바뀌어 지금까지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風雨蕭蕭拂釣磯 渭川魚釣摠忘機 如何老作鷹揚將 空使夷齊餓採薇---時習與 徐居正善 居正 嘗得太公釣魚圖 請題詩 時習卽書此 居正黙然曰 子之詩吾之罪也 (매월당집에는 渭川魚鳥識忘機로 되어 있고 망기란 세속 모든 욕망을 잊어버린다는 뜻)
削髮逃塵世 存髥表丈夫--김시습(明天淵은 元나라 末期 翰林學士였는데 元나라가 망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이름을 來復이라 하고 字를 見心이라 하였다. 그런데 수염은 옛날 그대로 두었다. 高皇帝가 괴이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削髮除煩惱 留鬚表丈夫라고 하였다.)
把竿終日趁江邊 垂足滄浪困一眠 夢與白鷗飛海外 覺來身在夕陽天--成聃壽
萬物變遷無定態 一身閑適自隨時 年來漸省經營力 長對靑山不賦詩(李彦迪-無爲)
兩兩佳人弄夕暉 靑樓朱簾共依依 無端一片陽臺雨 飛滴三韓御使衣 (李穀)
滿紙縱橫總誓言 自期他日共泉源 丈夫一死終難免 願作嬋姸洞裏魂(沈守慶-嶺相)
人生得意無南北 莫作嬋姸洞裏魂-權應仁
歌傳白雪知音久 路隔靑雲識面遲
荷香月色可淸宵 更有何人弄玉簫 十二曲欗無夢寐 碧城秋思正迢迢(鄭礥.海州芙蓉堂 迢멀초)
年將知命病相催 屋角悠悠梵些哀 梅萼不知人事改 一枝先發送香來-江陽君 臨歿時作
今夜燈前酒數巡 汝年三十二靑春 吾家舊物惟淸白 好把相傳無限人--朴元亨(號晩節堂官領相) 位至台鼎而淸儉律身及生日其子安性 設酌獻壽 元亨 口占此詩戒子 門闌杯酒 無逸樂之意而 警戒深摯 可謂敎子以法 後安性亦貴顯
食人之食衣人衣 所志平生無一違 一死固知忠義在 顯陵松栢夢依依--成三問
主人夢說客 客夢說主人 今說夢中客 吾亦夢中人--休靜
矗石樓中三壯士 一杯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滔滔 波不竭兮魂不死
日落天含黑 山空寺入雲 君臣千載義 何處有孤墳--湜(老泉 官大司成) 與光祖同被薦拜大司成 己卯 謫善山 忽亡命到居昌山中 作此詩自 縊死(액사)
酒半高樓華燭明 金城絲竹正轟轟 佳人恐敗風流興 笑道鷄聲是鷺聲-洪鸞祥
數尺高松在塔西 塔高松短不相齊 傍人莫道松爲短 松長他時塔反低--鄭仁弘이 어렸을 때 합천 해인사에서 독서를 하는데, 어떤 方伯이 시찰하다가 절에 들렀다. 방백은 정인홍이 단정히 않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탑 주변에 있는 소나무를 가리키며 운을 불러 시를 짓게 하였더니 바로 이 시를 지었다. 그 방백이 “너의 시가 이러한데 훗날 부귀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아라.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자만하는 습관은 이롭지 못하니 경계하라”고 하였다, 방백의 이름은 전하지 않지만 정인홍이 반드시 패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같이 경계하였던 것이다. (내암집권1에는 원제가 詠松이고 셋째句가 莫言此日松低塔으로 되어 있다).
一說
: 一尺孤松 在塔西 (일척고송 재탑서: 한척의 외로운 소나무가 탐의 서쪽에 있으니)
: 塔高松短 不相齋(탑고송단 불상재: 탑은높고 솔은 짧아 나란하지 않터라)
: 莫言今日 松爲短(막언금일 송위단: 오늘날에 있어 솔이 짧다고만 말하지 말라)
: 松長他日 塔反低(장송타일 탑반저 : 어느날에 있어 솔은 높고 탑이 되려 낮을 지니)
정인홍
생존연대: 1535(중종 30)~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학자, 의병장, 정치가.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덕원(德遠). 호는 내암(來菴). 합천(陜川) 출신으로 아버지는 건(健)이다. 조식(曺植:호는 南冥)의 수제자로서 최영경(崔永慶), 오건(吳建), 김우옹(金宇옹), 곽재우(郭再祐) 등과 함께 경상우도의 남명학파(南冥學派)를 대표하였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관직에 오르고, 1575년 황간현감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이듬해 지평을 거쳐 1581년 장령(掌令)에 승진하였다.당파가 동인과 서인으로 양분되자 다른 남명학파와 함께 동인 편에 서서 서인의 정철(鄭澈), 윤두수(尹斗壽) 등을 탄핵하려다가 도리어 해직당하고 낙향하였다. 1589년 정여립옥사(鄭汝立獄事)를 계기로 동인이 남북으로 분립될 때 북인(北人)에 가담하여 영수(領首)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조직, 성주에 침입한 왜군을 격퇴하고, 10월 영남의병장의 호를 받아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듬해 의병 3,000명을 모아 성주.합천.고령.함안 등지를 방어하였으며, 의병활동을 통하여 강력한 재지적기반(在地的基盤)을 구축하였다.
1602년 대사헌에 승진되고, 동지중추부사. 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유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 때 화의를 주장하였다는 죄를 들어 탄핵 상소하여 파직하게 한 다음 홍여순(洪汝諄). 남이공(南以恭) 등 북인과 함께 정권을 잡았으며, 이어 유성룡과 함께 화의를 주장하였던 성혼(成渾) 등 서인을 탄핵하였다. 북인이 선조 말년에 소북과 대북으로 분열되자 이산해(李山海). 이이첨(李爾瞻)과 함께 대북을 영도하였으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仁穆大妃)에게서 영창대군이 출생하자 적통(嫡統)을 주장하여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소북에 대항하여 그는 세자 광해군을 적극 지지하였다.
1607년 선조가 광해군에게 양위하고자 할 때 소북의 영수 유영경(柳永慶)이 이를 반대하자 탄핵하였다가 이듬해 소북 이효원(李效元)의 탄핵으로 삭탈관작, 영변에 유배되었다. 이어 광해군이 즉위하자 유배도중 형을 사면받고 풀려나와 대사헌에 기용괴어 소북일당을 추방하고 대북정권을 수립하였다. 대북정권의 고문 내지 산림(山林:실무책임자)의 위치에 있던 그는 유성룡계의 남인과 서인세력을 추방하고 스승 조식의 추존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한편, 문묘종사 문제를 둘러싸고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을 비방하는 상소를 하여 두 학자의 문묘종사를 저지시키려 하다가 8도유생들로부터 탄핵을 받았고, 성균관 유생들에 의하여 청금록(靑襟錄:儒籍)에서
삭제되는 등 집권을 위한 획책 및 싸움으로 정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1612년(광해군 4) 우의정이 되고, 1613년 이이첨과 함께 계축옥사(癸丑獄事)를 일으켜 영창대군과 김제남 등을 제거하고 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졌다. 같은해 좌의정에 올라 궤장이 하사되고 1618년 인목대비유폐사건에 가담하여 영의정에 올랐다. 그는 광해군 때 대북의 영수로서 1품(品)의 관직을 지닌 채 고향 합천에 기거하면서 요집조권(遙執朝權:멀리서 조정의 권세를 좌지우지함.)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참형되고 가산이 적몰(籍沒)당하였으며, 끝내 신원되지 못하였다. 이이(李珥)는 일찍이 그를 평하여 "강직하나 식견이 밝고 넓지 못하니, 용병에 비유한다면 돌격장이 적격이다."라고 하였다. 강경한 지조, 강려(剛戾)한 성품, 그리고 지나치게 경의(敬義)를 내세우는 행동으로 좌충우돌하는 식의 대인관계를 맺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저서로는 <<내암집 來菴集>>이 있다.
조선 성리학 영남학파의 두 거두를 꼽으라면 역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다. 이중 남명 조식은 경상우도를 중심으로 한 현실비판적 성리학자로서 칼을 든 유학자로 유명하다. 남명 조식에게는 두 명의 수제자가 있는데, 김우옹과 함께 그 쌍두마차가 정인홍이다.
조일전쟁 당시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의병장을 꼽으라면 역시 김면, 곽재우와 더불어 3걸로 이름을 날린 정인홍이 해당된다. 근데 정인홍은 연합노선보다는 독자노선에 더욱 치중했던 것 같다. 이것은 경상우도 의병장들에게 관직을 제수함에 있어서 여실히 드러난다. 바로 이점 때문에 정인홍은 임진전쟁 후 강력한 향촌지배력을 지니게 된다.
합천 야로현 태생인 정인홍은 생원과에 합격은 했으나 대과에는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36세 때 스승 조식의 임종을 지켜보았으며 당시 조식은 유품으로 방울과 칼을 남겼는데, 바로 칼을 받은 이가 정인홍이었다. 칼은 의(義) 를 상징한다고 한다.
정인홍의 정치 성향을 먼저 살펴 보자면, 그는 이이와 이황의 학풍을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고, 붕당 사이의 대립을 용인해야 된다는 입장을 지니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공격적 성향은 남명계열의 많은 인재들이 퇴계계열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의 입장은 남명학파 내부에서조차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정인홍은 전쟁 이전부터 류성룡과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알려진대로 류성룡은 동인계 남인의 대표적인 실세였다. 동인계 북인의 실세는 역시 정인홍이었다. 그들의 대립은 "정여립의 난" 때 최영경의 사사 책임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정인홍은 남명의 학문을 계승하여, 정통 남명학을 밝히고 고수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반대세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니, 그의 이런 배타적이며 불타협 공격적 성향은 자연히 도처에 적을 쌓아두는 형상으로 만들어 가게 된다.
다시 조일전쟁 상황으로 돌아가서 한 예를 들어보자면, 경상우도 초기 의병장의 핵심은 곽재우도 정인홍도 아니었다. 바로 김면이었다. 김면은 조일전쟁 중에 죽게 되었는데 김면 사후에 김면의 참모들은 정인홍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 역시 김면과 정인홍의 알력관계에 의한 불편한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됐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정인홍이 관직에 나가지 않은 상태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려 했던 것은, 독자적인 의병활동을 위해서였다. 그만큼 그는 향병적 성격이 누구보다도 짙었던 것이다.
정인홍의 부정적 왜곡은 스스로 자초했다고 보여진다. 우선 그는 독자적 활동으로 인해서 명분에서는 앞서고 있었으나 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는 불타협을 보였으며, 소인당과 군자당이라는 확고한 선을 그어놓고 스스로 군자당이라는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고스란히 광해군의 정국운영에 논리적 바탕이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기제어 능력을 상실하여 인조반정으로 결정적 타격을 받아 와해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남명 조식은 대민사상을 부르짖은 대표적인 학자였다. 이것을 이어받은 정인홍은, 전쟁 중 군량미를 명군에게 공급한 것이 국가 재정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니 백성들의 부담률을 낮추도록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 상업 유통의 활성화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향촌중심의 기반만 지니고 있었던 만큼 정인홍의 붕당적 기반은 자연히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왕권을 정점으로 하는 획일적인 통치체제를 지향했고, 때문에 붕당의 존재를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인사정책에서 독단적 모습을 보이게 된다.
서인 주도의 인조반정 성공으로 인해서 광해군과 북인정권은 소멸됐으며, 대서인 온건파의 입장을 표방했던 남인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고 서인과 남인, 심지어 종친에게까지 외면당한 북인의 거두 정인홍. 그의 평가는 당연히 가혹하게 쓰여질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는 김면이나 곽재우조차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으며 김면은 남인계열에게, 곽재우는 서인계열에게 각각 추앙을 받았다.
조일전쟁 당시 정국운영의 주도를 서인과 남인이 담당했다면 전쟁터에서 몸소 뛴 것은 북인이었다. 바로 이러한 명분적 우월감은 자만심으로 이어졌고, 협력자가 아닌 적대자만을 만들어 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정인홍의 최대 실수라 하겠다.
그렇다면 독단적인 모습이 정인홍의 전부인가? 물론 아니다. 정인홍이 일화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정인홍이 사헌부 언관으로 활동했을 당시에 그는 동당 타당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의해를 가하는 관리들은 사정없이 비판했다. 이렇게 공명정대했던 그가 편협자로 전락했으니, 애석할 따름이다.
기존의 이론적 성리학 개념을 뛰어넘어 실천적 개혁을 꿈꾸었던 인물 정인홍. 그가 저술한 책의 태반이 인조반정과 함께 사라졌기에, 더불어 인조반정 후에 쓰여진 광해군 일기이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광해군의 개혁적 정국운영이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면, 그 사상적 방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정인홍의 재평가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남명학 = 정인홍 = 광해군'의 이 등식을 참고로 하여, 정치인 정인홍이라는 울타리 개념이 아닌 개혁가 정인홍이라는 넓은 시각의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현대 민족사학을 확립한 신채호는, 그를 일컬어 "우리 역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평가했다. 내 생각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지만 남명학은 분명히 호감가는 학풍이라고 생각하며, 광해군 때의 정책들도 대부분 흠잡을 데 없다고 믿어진다.
臣罪如山死亦甘 聖恩寬待謫江南 臨岐別有無窮恨 慈母今年八十三---鞱亦慷慨 有文學坐弟鞸獄 謫南海 作此詩 .兄鞈號草廬 有大北一隊船遊江上 過門外 請與同遊 鞈往赴之 攖取盤中饌具 以與童奴曰 此漢年幼 尙知愛母 是以愛之.以北人 方主廢母論也 諸人怒甚 欲起獄 有言者曰 旣殺二弟 又殺其兄 人謂吾儕何如 遂無事 諸兄弟能詩 放達不羈如此.
日暮滄江上 天寒水自波 孤舟宜早舶 風浪夜應多--崔壽峸(1487-1521 江陵人 字는 可鎭 號는 猿亭 또는 北海居士. 諡는 文正 贈領議政 文章.書法 畵格,音律이 모두 精妙. 寒暄堂門人)-己卯後 壽峸 慷慨時事 語其叔世節曰世事如此 强仕何爲 不如歸臥湖山 以終餘年 作此詩寄之 辛巳 宋祀連 誣起安處謙獄 世節語同僚曰壽峸 勸我勇退 欲去未能 誦此詩 袞 聞之 爲怨謗搆殺之---한편 ‘海東詩選’과 ‘학산초담’에 의하면 羅湜이 驪江 의 배 안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相國酣眠日正高 門前刺紙已生毛 夢中若見周公聖 須問當年吐握勞-尹孝孫(世祖時人,諡文孝,號楸溪,官叅贊)門地卑微 其父爲議政府錄事 淸晨往刺相公 閽人 辭以寢不爲通 日晩飢困而歸 謂孝孫曰余不才 受辱於人 汝須勤業 無如爾父也 孝孫年纔十餘 遂書此詩於刺尾 翌日其父不省 又往投刺 相公見其詩召而問之 其父驚愕 審視乃孝孫書也 具告其實 相公召見孝孫 穎悟出倫 大喜 妻以女 後大顯
四十纔過五十初 人間無用一籧篨 餘生只合劉伶醉 散步江湖堪打魚-송당
無中春意柳先知 白髮江山不欲欺 六載靜聞天嘿嘿 何時刮目見幾微
本是無眞色 如何說黑白 年光疾似飛 長作異鄕客
湖海堂堂八尺身 誰人牽挽入紅塵 朝來黙料平生事 坐對靑山一笑新
步出三更夜 乾坤月正中 竹深雙叫鶴 天遠一聲鴻 身落烏山北 心淸洛水東 早知閒興味 何必强塵蹤
痛哭關山月 傷心鴨水風 朝臣今日後 寧復更東西-선조-
九秋霜夜長 獨對燈火輕 低頭遙想鄕 隔窓聽雁聲;명온공주(순조맏딸) 익종에게.
江頭誰唱美人詞 正是孤舟月落時 悽愴戀君無限意 世間惟有女郞知 李安訥
晩計昭陽下 同君老一竿 莫憂生事薄 自有浮來山-이항복
本是同根何太薄 理宜相愛亦相哀 緣何脫此樊籠裏 綠水靑山任去來
塵寰飜覆似狂瀾 何必憂愁意自閑 二十六年成一夢 好隨歸去白雲間
駕洛遺墟幾見春 首王文物亦隨塵 可憐燕子如懷古 來傍古樓喚主人-孟思誠맹사성
男兒得失古猶今 頭上分明白日臨 持贈蓑衣應有意 五湖煙雨好相尋-河緯地하위지
有山何處不爲廬 坐對靑山試一居 簪笏九年成老人 莫敎霜鬢賦歸歟-姜希顔강희안
描山描水摠如神 萬草千花各自春 畢竟一場皆幻境 誰知君我亦非眞-金守溫김수온
新築書堂壁未乾 馬蹄催我上長安 兒時但道爲官好 老去方知行路難 千里關山千里夢 一番風雨一番寒 何時靜坐雲林下 翠竹蒼梧仔細看--表沿末
我逢暗主投江死. 爾遇明君底事來
我逢楚懷王 乃沈汩羅水 汝逢聖明君 何爲亦來此-당나라 태종때 高崔嵬(고최외)가 말장난을 잘 하였는데 황제가 給使를 시켜 그의 머리를 물 속을 향해 어지럽게 흔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물으니 그의 대답이 굴원을 보았다고 하면서 위와 같은 시를 읊었다고 한다.
靑眼故人俱白髮--신숙주
黑頭宰相只丹心--尹子雲(尹淮-大提學,兵曹判書,文度公-의 孫子),世宗 甲子에 文科하여 睿宗朝에 領議政, 茂松府院君, 諡號 文憲.-신숙주의 妻兄(처남)이고 同甲, 당시 신숙주가 丹心이라는 妓生을 좋아했다
佳菊今年皆較遲 一秋淸興謾東籬 西風大是無情思 不入黃花入鬢絲-徐居正(字는 剛中, 號는 四佳亭, 牧使 彌性의 아들 陽村 權近의 外孫 ,刑曹判書, 左右贊成, 大提學 世子師傅, 文忠, 享年 69歲
紅牌已收白牌失 翰林進士摠虛名 從此峨嵯山下住 山人二字熟能爭-申潛(申從護의 아들 .峨嵯山人)-아차산(지금의 서울 중량구 신내동 봉화산)
此地來遊三十春偶尋陳迹摠傷神,庭前只有梨花樹不見當時歌舞人-申潛(숙주현손)
嗟乎天地間男兒 知我平生者有誰 萍水三千里浪跡 琴書四十年虛詞 靑雲難力致非願 白髮惟公道不悲 驚破還鄕夢起坐 三更月鳥聲南枝
㉮
數郡高朋共上樓 良辰做得好風流 澄湖浪靜明如鏡 綠樹陰濃爽欲秋
憶昔靑春猶過夢 傷今白髮已盈頭 若使摩詰遊於此 一景無遺畵盡收
文華形勝擅南州 碧海桑田往事悠 吉子淸風遺百世 河公大節炯千秋
島夷塵跡纔消盡 舊國絃琴久秘收 昔日賢豪今不見 江波咽咽淚添流.
靑天霹靂是何聲 星落山崩萬姓驚 邦國蒼生繁且富 千秋竹帛永垂名-輓朴大統領
萬萬千千意外變 哀號四境若喪親 興揚國勢安民業 靑史而今第一人- “
百尺湖樓夏晝長 林風江氣客衣凉 多年廢讀詩無格 竟日論情酒滿觴
絃誦猶餘前世俗 芝蘭不改舊時香 化翁莫送峰頭雨 病脚蹣跚去路忙
趂約來登水上樓 良辰共作好風流 琴書已抛離鄕日 劒俠虛耗失意秋
浪靜鏡開平湖色 雲晴天抵遠山頭 如何倩得王維手 一景無遺畵盡收
一髮彌山別有天 功臣短竭在其邊 滿江雲氣新含雨 隔樹村容半沒煙
長老風流如舊日 後生悲淚感前年 趂約參同修契事 永和遺韻至今傳(27.4.10)
輕風煖日艶陽天 勝地參同盡惠然 紅映林塘花浥露綠樹溪壑柳含煙 往時文藻今難見 舊國 絃琴孰有傳 咫尺桃源看未盡(隔歲相逢俱白髮) 前津莫艤別離船(비산동 거주시)
Ⓐ極宿無光木稼殃 曉山高士去仙鄕 如何一崇終(於)耋 空使朋(傷)淚滿眶.( )내는 불분명
Ⓑ隔廬咫尺不孤隣 翰墨從遊意益眞 自是壽城風月夜 閉門獨坐( )無人
Ⓒ雨風不憚暮朝尋 卄載交情老益深 陽界泉臺從此隔 而今誰復許吾心
Ⓓ儂亦年來百病隨 相逢泉下不多時 有生有死難違理 生不足喜死豈悲
ⒶⒷⒸⒹ는 정인묵씨에게 보낸 輓詞로 메모지에 草書로 草한 것이 있어 어림잡아 轉寫한 것이기 때문에 혹 글자를 잘못 본 것도 있을 것으로 생각됨. 한 首 더 있으나 도저히 判讀할 수 없음)
㉮이후 10여수는 선고의 작품
楚辭前歲爲憑心 宋史今載淚滿襟 異代忠賢那繫我 自然相感謾悲吟-金麟厚
心裏佳人夢裏逢 相驚憔悴舊形容 覺來身在高樓上 風打空汀月隱峯-成孝元(一說 崔壽峸夢見沖菴詩)
高麗五百獨先生 一代功名是足榮 凜凜淸風吹六合朝鮮億載永嘉聲-監司南龜庵-
君問我家何處在 依山臨水掩荊門,有時雲鎖沙場路 不見荊門只見雲-李瑀
경경一聲破寂寥 如聽仙樂下雲宵 追憶空王浮海蹟 月明依舊過江橋-桃庵曉磬
翠華西南又起峰 扶桑曉日此先紅 從知瑞彩無私照 暘谷陰崖一樣同-河峰朝旭
澄江皓月兩相宜 二美俱全此一時 天地虛明開別境 迷茫眼界布琉璃-余湖明月
靑山盡處大江流 去去來來賈客舟 憐爾一心貪貨利 前頭危險不知愁-龍津歸帆
嶺樹橋雲暗淡時 風牽飛雨細吹絲 沙鷗取適忘愁濕 點立煙波一助奇-汶浦疎雨
西去金烏不暫休 人生前路亦難留 有誰空灑牛岑淚 無奈浮寰歲月流-鶴山落照
雄鎭南州萬仞山 譊譊天地獨安閒 仙靈恐被煙塵累 長使雲霞滿世間-烏岑宿雲
管嶺風光去復回 長江一碧又浸苔 聊知勝景無踰此 何事年年苦往來-平沙落雁
위의 8행은 증조부의 시
謂我西行錦繡叢 慈親戒色婦言同 母憂疾病誠爲足 妻妬風流未必公-申混
妻意安知盡出公-金得臣
魂隨紅粧去 身獨倚山立 驢跛疑我重 添騎一人魂
心逐紅粧去 身空獨倚門 驢嗔車載重 添却一人魂
矗矗尖尖怪怪奇 天神人佛共堪疑 平生詩爲金剛惜 及到金剛不敢詩
書爲白髮劍斜陽 天地無窮一恨長 痛飮長安紅十斗 斜風簑笠入金剛
山與雲俱白 不辨雲山容 雲去山獨立 一萬二千峰
王家事業付寒灰 草木荒凉滿月臺 後輩不知興廢數 千秋空受夢周才--伊藤博文開城滿月臺
梨花肩上刻誰名 墨入深膚字字明 寧使大同江水盡 此心不欲負初盟
山中日亭午 草露濕芒履 古寺無居僧 白雲滿庭戶
靑山影裏碧溪水 容易東流爾莫誇 一到滄海難再見 且留明月暎娑婆
萬國都城如垤蟻千家豪傑盡蟹鷄(若醯鷄) 一窓明月淸虛枕 無限松風韻不齊-휴정
愛國憂宗社 山僧亦一臣 長安何處是 回望淚沾巾
三十年來返故鄕 人亡宅廢又村荒 靑山不語春天暮 杜宇一聲來渺茫
一行兒女窺窓紙 鶴髮隣翁問姓名 兒號方通相泣下 碧天如海月三更
門前車馬散如煙 相國繁華未百年 村嶺寥寥過寒食 茱萸花發何墻邊--崔慶昌-
世人最重重陽節 未必重陽引興長 若對黃花傾白酒 九秋何日不重陽--鄭碏-
世事紛紛是與非 十年塵土汚人衣 落花啼鳥春風裏 何處靑山獨掩扉--金齊顔(?-1368)
誰憐身似傷弓鳥 自笑心同失馬翁 猿鶴定嗔吾不返 豈知難出覆盆中-趙光祖-
露草夭夭繞水涯 小塘淸活淨無沙 雲飛鳥過原相管 只怕時時燕蹴波= 退溪
負石穿沙自有家 前行却走足偏多 生涯一掬山泉裏 不問江湖水幾何= “‘
臥病(疾)高齋晝夢煩 幾重雲水(樹)隔桃源 新水淨於靑玉面 爲憎飛燕蹴生痕=남명
天時人事太無端 新曆那堪病後看 不識今年三百日 幾番風雨幾悲歡--姜克成(명종시)
國破山河異昔時 獨留江月幾盈虧 落花巖畔花猶在 風雨當年不盡吹-洪春卿
雲水幾千里 山川政渺然 相逢各白首 屈指計流年--文東道-
重逢顔面記茫茫 屈指如今已六霜 千里來尋珍重意 一庭相對萬叢香-退溪-湖南卞成溫秀才字汝潤來訪 留數日而去 贈別五絶 中第一.
人皆苦炎熱 我愛夏日長-文公 (足柳公權聯句)
薰風自南來 殿閣生微凉-公權
一爲居所移 苦樂永相忘 願言均此施 淸陰分四方-蘇子瞻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間有眞意 欲辯已忘言--도연명
昔年有狂客 呼爾謫仙人 筆落警風雨 詩成泣鬼神 聲名從此大 汨沒一朝新
昭君拂玉鞍 上馬啼紅頰 今日漢宮人 明朝胡之妾-李白-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曹子根
叩馬當年敢言非 忠義堂堂日月輝 草木亦沾周雨露 愧君猶食首陽薇
擊鼓催人命 回首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香燈處處皆祈佛 簫管家家盡祀神 獨有一間夫子廟 滿庭春草寂無人( 簫자가 수문쇄록과 지봉유설에는 絃. 청구풍아 시평보유에는 絲로 되어 있고, 管자가 동시화에는 筦으로 盡자가 청구풍아. 지봉유설에는 競, 시평보유에는 皆로 獨자가 청구풍아에는 唯. 시평보유 지봉유설에는 惟로, 春자가 청구풍아 지봉유설 시평보유에는 秋로 되어있다.
蟬噪忘螳捕 魚遨喜鷺眠 此地知何地 他年重開筵--倭使 玄蘇 蟬噪(매미가 시끄럽게우는 것)
忠武祠堂萬竹林 英雄事畢海沈沈 世間不乏千名將 有否盟山誓海心__姜瑋(1820-1884.추금)
花落庭前憐不掃 月明窓外愛無眠. 花前酌酒呑紅色 月下烹茶飮白光
朝愛碧山褰箔早 夜憐明月閉戶遲 白雲斷處見明月 黃葉落時聞擣衣
山矗未遮千里夢 月高相照兩鄕心.珠簾半捲暎山月 玉牖初開納月光
朝來朝去山色裡 人歌人哭水聲中.山靑山白雲來去 人樂人愁酒有無
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花衰必有重開日 人老曾無更少年
花不語言能引蝶 雨無門戶解關人. 遲醉客欺先醉客 半開花笑未開花
山影倒江魚躍水 樹陰斜路馬行枝.脩竹暎波魚怯釣 垂楊俠道馬驚鞭.
露凝垂柳千絲玉 日暎長江萬頃金. 巷深人靜晝眠穩 稻熟魚肥秋興饒.
春鳥弄春春不怒 曉鷄唱曉曉無言 .春日鶯啼脩竹裡 仙家犬吠白雲間
삐꺽삐꺽登高山하니 씨근벌덕氣息散이라 醉眼朦朧굽어觀하니 울긋불긋花爛漫이라
浪撫腰間匣劒鳴 時平久絶報邊聲 如令衛藿生今世 虛老無成沒姓名-崔慶會在珍島時 詩
申光漢不能聽理 有頑奴不修貢 詩曰 平海郡居老莫同 年年身貢聽如聾 官威促致非難事 須趁明年二月中--申光漢은 高靈人이니 字는 漢之요 號는 企齋며 叔舟의 孫이라
窮前千日千相見 達後一年一得書 癡夢不知窮達異 有時有款少年如-(贈權相國轍 朴遂良(號三可亭.官縣監. 性朴訥無華 以遺逸拜縣監 士禍累起不樂仕進 罷歸鄕里與轍素善及轍拜相 寄此詩戱之
口耳聾啞人 猶餘兩眼存 紛紛世上事 能見不能言-朴遂良-
金淨以躑躅杖贈朴遂良 幷詩贈之曰 萬玉層岩裏 九秋霜雪枝 持來贈君子 歲晩是心知 遂良對曰 似嫌直先伐 故爲曲其根 直性猶存內 那能免斧斤 盖戒其避禍而沖庵竟不免
粉堞縱橫萬里平 居民賴此得安生 若數當時秦皇罪 只在焚坑不在城--安裕
祖舜宗堯自太平 秦皇何事苦蒼生 不知禍起蕭牆內 虛築防胡萬里城 任熙載(士洪子) 蕭牆(君臣이 會議할 때 두르는 가림)之患--外侵이 아닌 內部에서 일어난 變亂
先生倡學牖群蒙 曾把良箴證解工 退陶一語深相識 斯道東方永不窮(先生嘗解夙興夜寐箴而退陶李子曰斯道不亡於東方則此解必傳於後世) 文章雄拔逈超倫(張谿谷云蘇之氣格雄拔) 三百年無一躡塵(崔簡易車滄洲俱言本朝三百年操觚之士無一人及先生) 古高聲律知何似 殷卣周罇本面眞(趙龍洲曰其聲律古氣可比於殷卣周彛)許舫山過鳳山感吟ㅣ(鳳山在尙州之化寧廢縣而 穌齋盧先生妥靈之處 頃年邦禁院宇見撤)
小任崇載大任洪 千古奸雄最是雄 天道好還應有報 從知汝骨亦飄風--임사홍當時人
靑春扶社稷 白髮臥江湖-沈貞 扶(危.傾). 臥(蟄.汚). 舊恨波難洗 新愁酒欲春(沈노)
仗鉞登南路 孤臣一死輕 終南與渭水 回首有餘情-(壬辰倭警日急 以誠一除慶尙右兵馬使 出都時 僚友會餞 誠一賦此詩
爲圓何必斲吾方 當事先須立脊梁 若使芝蘭終變化 不如蕭艾本無芳(贈黃中允赴官京城. 中允被召赴京城 稍向勢利故 涌 作此詩警之,
爾本無家依我屋 旣依胡迺反穿爲 固知爾亦無長慮 我屋顚時爾失依(嘲鼠-權榘[號屛谷]-并谷以文章学行重於郷 隠居教授不求聞知 時当英宗祖勳戚窃命蠹国病民而不知止 屏谷以此警之
臣罪当万死 聖恩如天地 叩頭向宸極 無言有双涙-戊申屏谷入賊招 供対詳明 上知其賢 命釈之 屏谷(권구)感而作詩.
桃花李花杏花発 南里西里北里春 不寒不熱好時節 半酔半醒無事人(光海深喜此詩 嘗於上林賞花之日 必令諸姫吟詠之)
日晏龍樓展瑶図 大明天地此中輸 州郡不曾三代減 忠臣何独一人無 忍看穢徳臨中土 欲挽銀河洗旧都(예덕은 임금의 부덕)
八十三歳翁 滄波万里中 一言胡大罪 三黜亦云窮(己巳時烈竄井邑 作此詩 未幾 賜死 可知国家之不能優容老臣而 詩意亦無舎達之意)
江南万里野花発 何処春風無好山(恭譲朝国事日非 夢周毎独処憂念 有一僧踵門 献此詩以諷去 夢周流涕曰已晩矣 蓋以 身為大臣而国家垂亡 義不可去也)
愛君忠義弟兄同 一死一生扶我東 心切臥薪嘗越胆 気専懐匕入襄宮 三千里内蒼茫跡 五百年來慷慨風 安氏家中雙節立 世人誰不頌其功
時來天地皆同力 運去英雄不自謀 爲國丹心誰有識 絞臺虛作一孤魂-전봉준임사시
平生營事只今畢 死地圖生非丈夫 人在三韓名萬古 生無百歲死千秋-원세개
楚人餐後名傳遠 晉士採來香不休 雪白盛紅多別種 也知黃花最居頭- 石齋徐丙五-
僧乎莫道靑山好 山好何事 更出山 試看他日吾踪跡 一入靑山更不還-
采菱渡頭風急 策杖村西日斜 杏樹壇邊漁父 桃花源裏人家 --田園樂
萋萋芳草春綠 落落長松夏寒 牛羊自歸村巷 童稚不識衣冠
山下孤烟遠村 天邊獨樹高原 一瓢顔回陋巷 五柳先生對門
桃紅復含宿雨 柳綠更帶朝烟 花落家僮未掃 鳥啼山客猶眠
酌酒會臨泉水 抱琴好倚長松 南園露葵朝拆 西舍黃穰夜舂
危石纔通鳥道 空山更有人家 桃源定在何處 澗水復來落花 -尋張逸八居山
對水看山別離 孤舟日暮行遲 江北江南春草 獨向金陵去時
爪步寒潮送客 楊州暮雨沾衣 故山南望何處 秋草連天獨歸- 宋陸灃中吳還
淸州永路何極 落日孤舟解檇 鳥向平蕪遠近 人隨流水東西
水流絶澗終日 草長山深暮春 吠犬鳴鷄幾處 條桑種杏何人
江上年年春草 津頭日日人行 借問山陰遠近 猶聞薄暮鐘聲
京口情人別久 楊州估客來疎 潮至潯陽回去 相思何處通書
白雲千里萬里 明月前溪後溪 惆悵長沙謫去 江潭芳草萋萋
心事數莖白髮 生涯一片靑山 空林有雪相對 古道無人獨還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소동파. 어린 비구니를 노래한 것이다. 대문을 잠근채 절 안에만 들어박혀 있는 중에, 봄도 거의 다가는데 버들꽃이 저렇게 지고 있다는 취지다.
萬綠叢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 宋代의 有名한 政治家이자 文學者이던 王安石의 石榴詩의 一絶 -- 일대가 모두 나뭇잎 때문에 푸른 빛 일색인 중에 붉은 물감을 찍은 듯한 한 점의 石榴, 그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봄의 정서를 묘하게도 일으키게 하는데, 원래 사람을 감동시키는 봄의 경치는 꼭 많아야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周公恐懼遺言日 王莽謙恭下士時 若使當年身便死 一生眞僞有誰知
酒半高樓畵燭明 錦城絲竹正轟轟 佳人恐敗風流興 笑道鷄聲是鷺聲 洪鸞祥(履祥의 弟)
江水茫茫入海流 靑山影裏一扁舟 百年南北人多事 只有沙鷗得自由(姜好文 熊津渡)
過客悠悠千古恨 山靑雲白首空回 當年把酒人何去 杳杳長天月自來
衲白雲無色 潭淸鶴有雙 從師出山去 片月照空窓
山自無心碧 雲自無心白 其中一上人 亦是無心客
安招月姥訴冥府 來世夫妻易地爲 我死君生千里外 使君能識我心悲-추사 姥(할미모)
莫怪今夕把酒頻 明朝七十歲華新 夢中猶作靑年事 世上空留白髮身(除夜 申應朝)
歲暮寒窓客不眠 思兄憶弟意悽然 孤燈欲滅愁難歇 泣抱朱絃餞舊年(除夜 秋月)
禿魯長堤芳草香 有情無語似無情 送君萬里碧山外 何時再逢離思長
春風桃花滿山香 秋月送客別淚情 我今舟上一問之 別恨與君誰短長
三十年來收怪石 案頭無數小名山(姜秋琴)
無事此靜坐 一日是兩日 若活七十年 便是百四十(蘇東坡)
壬亂倭侵憤激天 首都被奪幾經年 民兵倡義扶王室 國將殫忠破敵船 栗老疏章眞實出 使臣復命僞裝連 悠悠往事憑誰問 武備精神萬代全 讀壬亂史有感
天高日月明 地厚草自生. 父母乾坤幷 君臣上下分
夫婦二姓合 兄弟一氣連. 春來梨花白 夏至樹葉靑
秋涼黃菊發 冬寒白雪來. 竹筍黃犢角 蕨芽小兒拳
竹根龍腰曲 蕉葉鳳尾長. 花笑聲未聽 鳥啼淚難看
枝迎南北鳥 葉送往來風. 舟耕蒼海去 鴉尺白雲來.
耕田埋春色 汲水斗月光. 花紅黃蜂鬧 草綠白馬嘶
鳥歸花影動 魚躍浪痕圓. 黃鷄垂頭哭 白鷺捲足眠.
龍歸雲猶濕 麝過草自香. 看弁僧頭角 開襟女乳圓
月爲無柄扇 星作絶纓珠. 燈作房中月 月爲天下燈.
江碧鳥猶碧 山靑花欲燃. 柳枝千絲綠 桃花萬點紅.
春意無分別 人情有淺深. 山外山不盡 路中路無窮
草露蟲聲濕 風枝鳥夢危. 虛簷看星疎 高樓得月多
齊人攫金(제인확금)--齊나라에 黃金을 몹시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느 날 衣冠을 갖추고 저자거리로 나가 黃金을 파는 곳을 발견하곤 재빨리 黃金을 훔쳐 달아나다 官吏에게 잡혔다. 관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어찌 金을 훔쳤는가? 하고 묻자 이 사람은 내가 金을 훔칠 때에는 금만 보였고 다른 것인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財物에만 정신이 흘려 나쁜 일을 일삼는 사람을 比喩할 때 쓰는 말이다.
鷄肋(계륵)--요충지 한증을 구하기 위하여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온 조조는 제갈공명의 촉군에게 패배를 거듭한 나머지 사곡성까지 쫓겨와 진을 치고 전열을 가다듬었으나 장비한테 식량까지 빼앗겨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로 나온 닭갈비 요리를 들던 조조는 마치 닭갈비가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하며 “계륵은 먹자니 살이 없고 버리자니 맛은 있고 마찬가지로 지금 싸움은 더 벌여 봤자 이득은 없고 물러나면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될 테니--” 하고 사람들의 비아냥거림을 각오하고 철수해야 할지 아니면 이득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장수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 밤 암호를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계륵, 계륵” “예,계륵이라 하셨습니까? 즉시 하달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은 조조가 무심코 내 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계륵이 그날 밤의 암호가 되고 말았다. 그것을 들은 양수는 즉각 군사들에게 철수 준비를 지시했다. 그러자 하후돈이 놀라 양수한테 달려가 왜 갑자기 철수 준비를 하느냐고 물었다. 양수는 닭갈비의 특성을 설명한 뒤, ‘전하께서도 이득 없는 싸움을 더 이상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하셨지만 장병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계륵이란 말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라고 일러주었다. “아하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인 하후돈은 즉시 장군들에게 전하여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그날 밤 깊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진중을 돌아보던 조조는 철수 준비를 하는 군사들을 보고 놀라 하후돈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가 철수 준비를 시켰느냐” ’네 양수가 전하의 심정을 짐작하고 철수 준비를 시켰습니다. “ ”뭐라고 양수가! 괘씸한-- 양수를 불러오너라“ 불려 온 양수로부터 설명을 들은 조조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인 듯한 기분이 들어 몹시 불쾌했다. 양수에게 쌓이고 쌓인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닥쳐라 양수 이놈! 계륵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그것을 멋대로 해석해서 軍律을 어지럽히다니 용서할 수 없다. 이놈의 목을 쳐라!“ 아아 그 재주가 놀라웠던 양수 그는 이렇게 해서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才士는 재능으로 망한다“ 라는 옛말이 그대고 적용된 것이었다.
양수라는 인물-- 그는 비상한 재능의 소유자로 조조도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능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어 조조는 그다지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일찍이 조조가 후궁에 정원을 만든 적이 있었다. 조조는 그 정원을 돌아보고 좋다 싫단 말없이 門에 活자를 써 놓고 가 버렸다. 그것을 본 인부들은 그 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양수한테 물었다. 양수는 그것을 풀이했다. “전하께선 정원이 너무 넓은 듯 싶으니 좀더 아담하게 개조하라고 말씀하신거요, 門안에 活이라는 글자를 써넣으면 넓다는 闊자가 되지 않소? ”양수의 풀이대로 정원을 개조해 놓고 나자 얼마 후 조조가 다시 정원을 둘러보기 위해 나타났다. ”아주 훌륭하다. 누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고쳤느냐?“ ”네, 양수님이 알려 줘서--“ ”뭐라고 양수가? 정말 대단하구나 내 생각을 알아맞히다니--“ 조조는 말로는 양수를 칭찬했지만 마음속에선 자신의 모든 것이 양수에게 낱낱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서 찜찜해 하고 있었다.
또 이런 일 도 있었다.
조조는 세자를 누구로 정해야 할지 아들들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신하들에게 명했다. “내일 큰아들 丕와 셋째 植을 이 업성으로 불러들여라 , 그런 다음 둘이 성문에 당도하거든 절대로 통과시키지 마라” 이튿날 먼저 장남 조비가 찾아왔다. 그러나 성문에서 경비병이 들여보내 주지 않자 그대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어서 셋째 조식이 나타났지만 마찬가지로 경비병들에게 入城을 制止 당했다. “뭐라고 들어갈 수 없다고? 난 왕명을 받들고 온 몸이다!” “하지만 통과시킬 수가 없습니다.” "닥쳐라, 왕의 부름을 받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가야겠다. 막아서면 용서치 않겠다!“ 하고 조식은 막는 경비병들을 베어 버리고는 아버지 조조에게 달려갔다. 조식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조조는 흐뭇해서 말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해내고야 말겠다는 그런 자세가 믿음직스럽구나 역시 내 아들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귀띔해 주기를 ‘그건 양수가 조식에게 미리 가르쳐 준 것’이라 하지 않는가 조조는 황당할 수밖에 ”양수 이놈 쓸데없는 꾀를 가르쳐 주었구나“ 그뿐 아니라 양수는 조식을 위해 국가 대사에 관련된 문제에 이르기까지 소위 모범 문답집 같은 <答敎>를 만들어서 조식에게 읽혔다. 그래서 조식은 조조가 무엇을 물어 보든 언제나 막힘 없이 술술 대답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세자는 자기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장남 조비는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 그리고 조조가 그 답교를 손에 넣게 되어 읽어보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래 이런 것을 만들어서 보게 했구나“ 그 때 조조는 양수를 죽일 결심을 했다. ”부자간의 세자 책봉 문제에까지 꾀를 부린다는 건 아무리 재주가 있더라도 눈총을 면치 못한다, 가정불화만 일으킬 뿐, 기회를 봐서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 해 오던 참이었다.
項羽와 劉邦--韓信은 처음에 항우 밑에서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는 정세를 분석하고 앞날을 예측하는 非凡無雙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동네의 불량배들이 시비를 걸자 싸우기 싫어 그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갔다고 해서 두고두고 <바짓가랑이 겁쟁이 놈>으로 비웃음을 받는 한신. 楚나라의 군사 범증이 거듭 거듭 韓信을 천거했으나, 항우는 <바짓가랑이 놈>이라고 무시해 버린다. 범증은 “만일 한신을 중용치 않으려면 죽여라”고 까지 한다. 왜 그랬을까? 아뿔싸! 한신은 자신을 중용해 주지 않는 초나라를 탈출하여 한나라의 유방에게로 가고 그는 거기에서 총 사령관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項羽軍을 破竹之勢로 무찌르고, 천하 통일 의 偉業을 달성하는데 <바짓가랑이 겁쟁이>의 어디에서 그런 놀라운 힘이 나왔을까? 왜 항우는 이렇게 특출한 人材를 곁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을까?
叩盆(고분)---莊子가 그의 아내가 죽자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항아리를 두들기며 “生도 없고 形도 없고 氣도 없으며 죽고 삶은 四時의 運行과 함께 當然히 行해지는 것이로다”하였다 -<莊子(장자). 지략편>
受之(수지)--偉大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아들의 상징. 朱子의 맏아들 受之에서 나온 말
喪明(상명)--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눈이 멀었다는 고사 아들의 죽음
翹楚(교초)--잡목 중에서 특출한 나무. 翹는 꼬리 ,날개, 깃털, 才能이 뛰어남
고비(皐比)-1.虎皮 2.將軍이나 學者의 座席. 3講義의 자리 4敎師를 이름
병몽(帲幪)- 幕.. 휘장. 병은 둘러치는것. 몽은 위를 덮는것
適然(적연)--때마침 우연히
척령(鶺鴒)-할미새(물가에 사는 작은 燕雀類).형제의 다정함을 비유
棣華之情(체화지정)---혹은 체악지정(棣鄂之情), 형제사이의 우의를 이름.상체꽃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을 이름, (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위(韡)는 꽃 활짝 필 위. 체악지정
총죽지교(葱竹之交)-죽마고우(竹馬故友)
규각(圭角)-옥의 뽀족한 모서리. 말과 행동이 모가 나서 남과 어울리지 않음
환유(宦遊)--벼슬하려고 고향을 떠남. 타국에서 관리가 됨
신교(神交)--정신적인 사귐
자차(咨嗟)-한숨을 뒤며 한탄함. 자탄(咨嘆)
일미(溢美)-아주 아름다움. 아름다움을 지나치게 칭찬함
액회(厄會)-재앙이 닥치는 불행한 고비
牖民(유민)--백성을 착하게 인도함.牖는 窓. 引導하다 牖後--후손 또는 후배를 잘 인도하는 것. 推先牖後
迺者(내자)--近日 迺는 乃
凋謝(조사)--凋落
源源--1.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모양.2.사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양.3.不斷히 찾아 옴
翶翔(고상)---새가 높이 날다. 날고 날개상
裨益(비익)--보태어 도움 . 裨益弘多
酹酒(뇌주)--1.飮酒禮의 처음에 술을 땅에 뿌리는 일 2.降神할 때 술을 땅에 뿌리는 일. 酹(부을 뢰. 祭酒랄)
藐末(묘말)--後裔. 아득할 막. 멀묘
燾育(도육)--보호하여 기르다
緇磷(치린)--때가 묻어 검어지고 닳아 엷어지는 것으로 세속에 물들어 절조를 그르침. 검을 치, 얇아질 린.不緇不磷
素履(소리)--검소한 생활을 함. 본분을 쫓아 만족함.
素履往无咎--본심대로 행동하면 허물이 없다는 말
眷言(권언)--친절하고 정중한 말.돌아볼 권
桑梓.梓桑 梓里--故鄕. 梓의 音은 자, 또는 재 뜻은 가래나무 또는 고향
옛날에 집을 지으면 자손을 위하여 집 주위에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심었다. 후손은 그것을 보고 조상을 생각하라는 뜻으로. 상재,
敷榮(부영)--초목이 번성함. 무성하여 꽃이 핌
匠石(장석)--고대의 名工. 목수의 우두머리
崖異(애이)--도도하여(혹은 고독을 즐겨) 남과 사귀지 아니함. 平生崖異每自笑.一接俗人三禊除.
애안(崖岸);물가의 단안. 오만하여 남과 어울리지 않음. 不爲崖岸嶄絶之行
干進(간진)--벼슬을 바람. 관리가 되고자 함. 干은 바라다. 희망하다
瑚璉(호련)--宗廟에 黍稷을 담아 바치던 祭器이름. 사람의 존경을 받을 만한 품격, 품격 높은 사람을 비유해서 일컫는 말임
昌黎子(창려자)--당나라 韓愈가 창려지방 사람이었으므로 한 유를 일컫는 말
鯫生(추생)--송사리 같은 인생, 즉 자신을 낮춰서 일컫는 말
贅旒(췌류) 깃발에 달린 술로서 깃발을 잡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는데 자리만 지킬 뿐 권력 잃은 임금이 신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위태함을
비유한 말,綴旒(철류;임금이 신하에세 좌우 됨)라고 도 함
賁飾(비식)--아름답게 꾸밈
介弟개재--남의 아우의 존칭
철권(鐵券)--공신에게 나누어주는 훈공을 기록한 책.付信(부신)
丕變(비변)--종래의 나쁜 풍습을 타파함
행기(行己)--몸가짐, 처신
殪賊(에적)--적을 무찌르다. 殪(에; 죽이다 쓰러지다 멸하다 다하다 없애다)
원습(原隰);높고 마른땅과 낮고 습한 땅.隰(진펄. 낮고 습한 땅)
下臨(하림)--降臨. 내려다 봄. 神佛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옴
연거(燕居)--한가하게 거처함. 燕息-한가하게 쉼
염염(冉冉)--길가는 모양. 나아가는 모양. 부드럽고 약한모양. 세월이 흘러가는 모양
신신(申申)--거듭함. 조용한 모양 .子之燕居에 申申如也하시며 夭夭如也러시다
연옥(燕獄)--연나라의 옥. 宋나라 丞相이었던 文天祥이 元軍과 항쟁하다가 패하여 연지방에 갇혔다가 얼마 후에 죽음을 당했다. 그 후부터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옥을 연옥이라 불렀다. 燕樓(연루.연누)
설문청(薛文淸)--명의 학자 설선(1389-1464). 薛夫子. 讀書錄의 著者
문천상(文天祥; 호는 문산[文山].封爵은 信國公. 음소집이라는 詩集이 있음)--남송의 충신으로 오파령에서 패전하여 원장 장홍범에게 피집되어 3년동안 燕獄에 拘禁되어 끝내 굽히지 않으므로 마침내 시시(柴市)에서 피살되었는데 의대속에 찬이 있었으니 곧 의대찬이다. “孔曰成仁 孟曰取義 惟其義盡 所以仁至 讀聖賢書 所學何事 而今以後 庶幾無愧”
문천상(文天祥)--宋나라 때 대신 자는 文山. 元나라가 宋나라를 침입하자 군사를 일으켜 여러 차례 싸웠지만 이기지 못하고 끝내 사로잡혔다. 원나라 世祖가 문산의 인품이 하도 좋아서 인물을 아껴 여러 번 항복하여 마음을 바꿀 것을 설득했으나 끝까지 항복하지 않으므로 柴市에서 죽였는데 원나라 세조는 ‘참으로 남자다’ 하고 탄복을 했다고 한다.
만석(萬石)-漢代 三公의 異稱. 녹질 이천석의 벼슬이 한집에 다섯사람이 있는집
萬石君(만석군)-漢의 石奮과 그 네 아들이 모두 祿秩 二千石의 벼슬에 이르러 景帝가 석분에게 붙인 이름
곽자의(郭子儀.郭汾陽)-唐 숙종 때 功臣.
죽림칠현(竹林七賢);阮籍 嵇康 王戎 阮咸 向秀 山濤 劉伶
안락공(安樂公)--蜀漢의 後主가 魏에 降服하여 안락공의 封爵을 받음
군산(君山)--洞庭湖 속에 있는 仙山으로 湘君의 놀던곳
남위(南威); 晋代의 美人. 晋의 文公이 그에 반하여 사흘간 政事를 게을리 하다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그를 멀리한 다음. 후세에 반드시 女色으로 나라를 망치는 일이 있을것이라 말했음.
위곽(衛霍)-衛靑과 霍去病.함께 漢武帝시 武將으로서 匈奴征伐에 功이 컸음
엄자릉(嚴子陵)--東漢 光武帝에 옛 친구로서 광무제가 제위에 오르자 招聘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富春山에 숨었다.
호계(虎溪)--慧遠法師. 陶元亮. 陸修靜의 故事. 호계삼소(虎溪三笑)
왕통(王通); 隋나라의 學者. 字는 仲淹. 號는 文中子. 왕발의 조부. 李靖 魏徵 房玄齡의 스승
왕세정(王世貞 1528-1593)--明의 政治家요 文人. 자는 元美 號는 弇州山人(엄주산인). 李攀龍과 함께 詩文의 復古를 主張하여 李王의 古文辭라 함
왕자교(王子喬)--周代의 仙人. 周 靈王의 太子로 名은 晉. 直諫하다가 廢함을 당하여 庶人이 되었다. 笙簧을 불며 흰 鶴을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함
하도(河圖--伏羲氏 때 黃河에서 나왔다는 龍馬(높이가 8척 이상 되는 말)의 등에 나타난 圖形.이것이 周易 易卦의 原理가 됨
낙서(洛書)--夏의 禹王이 治水할 때 洛水에서 나온 神龜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로 (아홉개의 무늬) 洪範의 原本이 됨
수사(洙泗)--山東省에 있는 洙水와 泗水. 孔子가 여기에서 제자를 가르친데서 孔子의 學 및 그 學統. 儒學
낙민(洛閩)--程朱學. 宋의 程頤. 程顥는 洛陽人이고 朱子는 閩(지금의 福建省)에서 學問을 가르침.
염락(濂洛)--宋나라때 周敦頤는 濂溪에서 살았고, 程顥와 程頤 두 형제는 洛陽에서 살았는데 이 분들이 宋나라 때 성리학의 祖宗이므로 곧 성리학의 본원이라는 뜻으로 쓰임 이렇게 학자가 살고 있는 地方名을 붙인 것으로는 이 濂洛 외에도 關閩이 있다. 關은 關中으로 張載가 살았고, 閩은 閩中으로 朱憙가 살았다. 이 때의 학문을 性理學, 道學, 宋學이라 부른다.
이고(伊皐)-殷湯王 賢臣 伊尹과 堯舜時代 賢臣 皐陶(고요)
이윤(伊尹)--殷의 湯을 도와 夏의 桀을 쳐 天下를 平定
이곽지사(伊霍之事); 나라를 위하여 무도한 임금을 몰아내는 일. 殷의 伊尹이 太甲(제2대 임금 太宗)을 桐宮으로 내 쫓아 惡行을 고치게 한 뒤에 다시 帝王에 복귀 시킨일과 漢의 霍光이 昌邑王 賀를 폐하고 宣帝를 세운 故事
燕丹(연단)-春秋 戰國時代 燕王喜(昭王)의 太子. 秦에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도망하여 와서 荊軻를 시켜 진왕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진이 燕을 침공하자 연왕 丹을 목베어 진에게 바쳤다.
형가--衛의 刺客. 戰國 시대에 丹이 진에 人質이 되어서 진에서 모든 학대를 받다가 도망쳐 燕으로 돌아 왔다. 丹은 秦의 원한을 갚아 줄 者를 구하여 마침내 형가라는 협객이. 진왕을 죽일 사명을 띠고 떠나게 되었다. 태자의 막료들이 형가를 역수(易水)상에서 전별할 제 형가는 비장한 태도를 짓고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차도다. 장사가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는 못하리라”는 노래를 부르니 보는 자 모두 눈이 부릅떠지고 머리털이 쭈삣 하여졌고 형가는 태자를 위한 비분에 못 이겨 머리털이 관을 찔렀다(髮衝冠). 이 때 형가는 유유히 수레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그러나 그 계획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괘관(掛冠)--後漢의 명신 蓬萌이 王莽의 신하되기를 거부하고 冠을 벗어서 東都 城門에 걸어놓고 가족을 데리고 배를 타고 요동으로 도망갔다. 따라서 “관과 옷을 벗어 걸고”는 곧 신하가 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다.
주추(啁啾)-새가 지저귐 또는 그소리
번리(藩籬)-울타리. 藩落.이락
번리지안藩籬之鷃-울타리에 앉은 메추리라는 뜻으로 見識이 좁은 小人에 비유
夫藩籬之鷃 豈能與之料 天地之高哉
반근(盤根)-뒤엉킨 뿌리. 일이 몹시 곤란함
착절(錯節)-울퉁불퉁한 마디라는 뜻이로 일이 잘 푸리지 않고 어려움
이기(利器)-날카로운 날이 있는 연장.예리한 武器. 이용가치가 있는 훌륭한 기구. 편리한 기계
재능이 비상하여 쓸모있는 인물. 비상한 재능 不遇盤根錯節 何以別 利器乎
망복(罔僕)-종이 되지 않음. 箕子之罔僕東來無或怪矣. 書經微子之命에 商其淪喪 我罔爲臣僕
不臣(불신)--신하가 되지 않음.
형산지옥(荊山之玉)--형산에서 나오는 옥, 현량한 사람을 이른다.
과거(過擧)--지나친 행동. 실수 실책, 실패
饒貸(요대)--너그럽게 용서함, 宥貸=용서함,묵인함
台閣(태각)--나라 정사를 하는 곳, 議政府의 딴 명칭
閨鸞(규란)과 庭鵠(정곡)---규란은 夫人. 정곡은 아들을 일컫는 말
九皐--깊은 못 심원한 곳을 비유. 皐는 澤 고(縱으로 白大十)
惛暓(혼무)--사리에 어두움. 도리에 벗어나 어수선함
金粟(금속)--돈과 곡식. 월계화의 다른 이름. 국화를 형용하는 말
斷爛(단란)---여러 조각으로 찢어짐
薦目(천목)--사람을 추천하는데 필요한 名目, 吏治 文學 才能 孝廉 等
賓天(빈천)--천자의 죽음
侔德(모덕)--덕을 같게함. 侔는 가지런할 모
渙發(환발)--詔勅(조칙). 勅命을 발포하는 일. 渙은 널리 퍼지는 것.
軒豁(헌활)--앞이 확 트여 시원스런 모양
摩挲(마사)--손으로 어루만짐. 愛撫
汙隆(오륭)--盛衰. 움푹 파인 곳과 튀어나온 곳
自任(자임)--자기의 재능. 행위 등을 자랑하는 것
引領(인령)--기대함. 목을 빼고 기다리는 것
방박(磅礡)--가득 참. 돌 떨어지는 소리 방. 가득할 박
希夷(희이)--심오한 도리. 道의 본체. 깊은 이치. 영지버섯
絜矩(혈구)--지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도덕상의 법도. 잴혈, 자구. 恕의 道 . 同情
鉛槧(연참)--胡粉과 분판.文筆을 이름
유즙(維楫)--배를 매는 줄과 배를 젓는 노
도주(陶鑄)--물건을 만들어 냄. 인재를 양성함. 陶冶
유련(留連)-- ㉮ 객지에 묵고 있음. ㉯ 차마 떠나지 못하여 머뭇거리는 모양(盤桓)-滌蕩千古愁 留連百壺飮 . ㉰ 직업을 잃고 방황함
颯然(삽연)--빗소리 바람소리의 형용.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모양
集義(집의)--道義 善行이 쌓인 것. 마음속에 쌓아둔 正義
孜孜(자자)--부지런히 힘씀. 孜: 힘 쓸 자
豹變(표변)--改過 遷善의 比喩. 군자가 전일의 잘못을 뉘우쳐서 改過遷善하는 것. 2.貧賤에서 高官에 오름을 비유. 3.태도가 갑자기 바뀜.
革面(혁면)--얼굴만 고쳤을 뿐 마음은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임.
君子豹變. 小人革面.. 構(지을구. 집세울구)
방박(磅礡);가득 참. 磅(돌 떨어지는 소리 방).礡(가득할 박. 널리 덮일 박)
긍구지의(肯搆之意)-선인의 뜻을 이어 받드는 뜻.搆(얽을구, 당길구)
긍구긍당(肯構肯堂)--아버지가 이룩한 일을 아들이 잘 이어받음
구의(摳衣)--옷 뒷자락을 걷어올림. 옛날의 경례. 경건한 동작
임지(稔知);익히 알고 있음. 稔聞:여러 번 들어 귀에 익음
승평(昇平)--태평성세. 세상이 잘 다스려짐 .
打魚(타어)--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음.
聞說松堂豹變年,靑山前後吾心傳. 常慚吾輩名鉛槧, 雙鬢如今雪颯然 고두곡
厚所當厚薄所當薄 乃所以爲絜矩也
得卽高歌失卽休,多悲多恨謾悠悠. 今宵有酒今宵醉, 明日愁來明日愁
濁酒一甁天地小 高談盡日宇宙賖
十年今復到三淸.滿綠林間一水聲 可奈山川依舊觀 風流非復昔時情(張志淵)
三從不出相門闈 此事於今始有之--暹 宣祖初 拜領相以年七十入耆社 賜几杖設宴 卿宰皆會 時 暹母夫人 年九十尙在 以領相宋軼之女 爲領相彦弼之妻 見此宴 寔盛事也 守愼賦此賀之 朝廷昇平 優禮大臣以及壽母 仁厚之風可見
三從不出相門闈 此事如今始有之 更拄省中靈壽杖 卽披堂上老萊衣 恩霑雨露眞千載 歡接冠紳盡一時 何處得來叨席次 愧無佳句賁黃扉
專三議政官槐棘 奉大夫人福海江--沈守慶
北門之禍---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이르는 말인데 남곤등 간신배가 밤중에 비밀히 경복궁의 북문인 神武門을 열게하고 들어가서 화를 일으켰으므로 이렇게 이름.
북문화변--중종14년(1519) 洪景舟 南袞, 沈貞 등이 신진파인 조광조 金淨 金湜 등을 모함해 죽이려고 밤중에 신무문을 통해 들어가서 임금에게 고변하여 일으켰던 기묘사화[조선왕조 500년의 최초의 정쟁인 사화가 경복궁을 무대로 벌어진 것이다. 임금은 당시 士林, 즉 儒敎 學者들의 우두머리로서 명성이 높던 靜庵 趙光祖(1482-1519)를 登用하여 그를 信任하였고 정암은 대사헌으로서 곧은 말을 서슴지 않았으므로 周圍로부터 猜忌마저 받게 되었다. 그런 中에 중종14년 11월 15일 밤에 남양군 洪景舟, 공조판서 金詮, 예조판서 남곤, 병조판서 이장곤, 호조판서 高荊山, 도총관 沈貞, 병조참판 成運, 등이 신무문 밖 大隱巖 아래 남곤의 집에 모여 남몰래 정암파를 단번에 무찔러 버리기로 謀議한 다음 곧장 신무문을 뚫고 불법 입궐하여 홍경주는 글로 써서 정암을 헐뜯고 南袞은 이에 앞서 경복궁 후원 나뭇잎에 꿀물로 주초위왕 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해 놓고는 그 잎사귀를 들이대며 이는 곧 趙가 임금이 된다는 암시입니다. 하고 임금을 興奮하게 하였다. 때마침 임금도 靜庵의 過激한 直諫과 行動에 어느 만큼 짜증을 느끼던 터라 저들의 주장에 따라 정암을 비롯하여 叅判 이자(李耔). 형조판서 金淨, 부제학 金球 등을 곧 바로 의금부에 가두었다.
조광조(1482-1519)-- 1482년 개국 공신 조온의 玄孫이자 감찰 조원장의 둘째 아들로 출생, 18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고향 용인에서 독서에 전념하다 29세에 진사시에 장원 급제했다. 34세 때 판서 安瑭의 추천으로 조지서에 취직했다가 그해 가을 알성시에 합격, 35세부터 왕과 학문을 토론하는 경연관이 돼 왕의 총애를 업고 개혁 정치를 펴다가 38세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 中宗 10년(1515) 34세로 정치에 입문한 뒤 4년 만인 38세에 감찰기관 최고 책임자인 종2품 대사헌에 취임하는 파격적인 출세가도를 달렸다. 17세 때 戊午士禍로 평안도 희천에서 귀양살이 중이던 金宏弼에게서 학문을 배운 뒤 천마산 성거산 용문사 등지에서 학문을 계속했다. 중종 10년 왕이 성균관을 방문하여 치는 과거인 알성시를 열었다 이때 왕이 낸 문제가 의미 심장하다, “공자가 3개월 안에도 정치의 실효를 낼 수 있고 3년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나는 10년이나 노력해도 실효가 없으니 그 이유와 대책을 제시하라“는 것이었다. 靜庵은 이 시험에서 모범 답안을 제시해 2등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의 나이 34세로서 혈기가 넘쳐흐를 때였다. 드디어 왕은 ”새 부대에 담을 새 술“을 찾은 것이다. 정암은 言官이 되자마자 바로 담양부사 박상, 순창군수 김정 등과 함께 정국 공신이 폐위시킨 왕비 愼씨 북위 운동을 벌였다. 이때부터 조정에는 신구세력의 갈등이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후 정암이 왕도정치를 내걸고 추진한 개혁은 군주 독재방지와 권력분산, 유교진흥과 불교 道敎등 이단 배척, 민생 안정, 부정한 공신세력축출로 요약된다. 당시 역사적 조건은 왕조를 세운 뒤 백년간 이미 기틀을 잡은 유교정치를 다시 회복시키는 중흥의 시대로서 이 정도의 개혁도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정치개혁 사업으로 왕이 신하를 존대하여 실권을 대신들에게 넘기도록 하고 왕이 신하와 경전을 읽으면서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인 경연을 열 때도 신하가 엎드리지 않고 임금과 마주 앉아서 하도록 바꾸었으며 현량과를 통해 28명의 젊은 선비들을 대거 영입해 정치권 물갈이를 실현했다. 그는 또 유교진흥을 위한 시책으로 김굉필, 정몽주, 성삼문, 박팽년 등 忠義를 위해 순절한 선현들은 문묘에 제사할 것, 소격서를 폐지할 것, 소학과 향악을 농촌에 보급해 삼강오륜을 세울 것 둥을 입안했다. 정암은 올바른 정치만이 국가의 태평을 이루는 방법일 뿐 막대한 재정을 낭비하면서 종교행사를 벌이는 것은 국가 安寧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민생을 위한 개혁으로는 우선 당시 농민을 가장 괴롭힌 토산품의 상납, 즉 貢物의 폐단을 시정하고 限田法을 실시하여 토지소유의 상한선을 정하려고 했다. 정암의 이런 개혁 정치는 백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특히 서울의 평민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말 앞에 엎드려 우리 상전이 오신다고 환호했다고 한다. 반면 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개혁의 피해자들은 그를 더욱 증오했다. 정암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재촉한 것은 중종 14년에 정국 공신 117명중 76명의 공신에게 준 작위를 취소시킨 사건이었다. 전체 공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인사들의 작위를 박탈한 사건은 정국공신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 동시에 정국 공신에 의해 추대된 中宗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중종14년 11월 왕은 정암과 그를 추종하던 김정, 윤자임, 박세희 박훈 김구 김식 기준 등 개혁 세력을 체포했다 정암은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고 마침내 그해 12월 20일 사약을 받고 운명했다. 이때 정암은 사약을 가지고 온 도사에게 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도사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죄명도 모르고 죽은 것이다. 己卯士禍로 불리는 이 사건은 아무리 훌륭한 개혁정치도 지나치게 과격하면 반동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나라를 어지럽게 한다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예컨대 선조 때 학자 栗谷은 儒敎의 理想國家를 하루아침에 달성하려고 덤빈 정암 일파의 처사를 가리켜 일을 추진하는 데 순서를 가리지 못하고 직선적이며 너무 날카로웠다고 평하고 그 원인을 ‘학문이 채 成熟하지 않은 탓’으로 보았다.
丁乙之役(정을지역)--교정하는 일. 校訂
단연(丹鉛)--丹砂와胡粉.
欷歔(희허)--흐느껴 움,
天祿(천록, 천녹)--사슴과 비슷한데 꼬리가 길다. 건축이나 비구 등에 장식으로 새긴다. 천록대부--술의 별칭
庚申大黜陟--1680년(숙종6) -남인 실각 허견의 역모를 김익훈, 김석주가 고발
己巳換局--1689--송시열 사사 경종 세자책봉
甲戌獄事--1694--閔암 사
계축옥사--1613-광해5-유영경 김제남 영창대군사 소북실각--조령에서 잡힌 서얼 고관첩자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問招
申從濩(1456-1497-三魁亭.신숙주의 손자)-→申潛(1491-1554-靈川子, 峨嵯山人 尙州牧使) ..申用漑(1463-1519-숙주손자. 성품강직, 영광귀양. 중종반정후 우의정 좌의정)...朴誾(박은.1479-1504. 신용개의 사위, 바른말, 燕山君의 미움 , 이극균, 유자광탄핵파직,동래유배,사형,才士)
莘野(신야)--有莘國의 들. 伊尹이 湯王의 정승이 되기 전에 신야에서 농사짓고 있었다. <맹자만장上--伊尹耕於 有莘之野>
人定(인정)--밤 10시에 28번 타종하여 통행금지
罷漏(파루)--五更三點에 33번 타종 통금해제. 바라 바래
佳城(가성)--분묘.墳墓. 隧(묘길 수. 墓道)
梗槪(경개);대개, 대강
顓蒙(전몽);어리석음, 顓愚. 顓騃(전애) 顓民;어진백성 良民
旁求(방구)-널리 구함, 빠짐없이 찾아 다님
귀각.구각(晷刻).때, 시각, 光陰, 晷;그림자 귀
유인(游刃);식칼을 씀
戡定(감정);전쟁에 이겨 난리를 평정함,戡;칠 감
盍簪(합잠);친구들과의 會合
祖述(조술);스승이나 조상의 道를 이어 받아 서술 하는 것
親炙(친자);스승에게 가까이하여 몸소 감화를 받음
散渙산환; 흩어짐. 흩어질 환(渙)
用志(용지); 한가지일에 전념함
竊性(절성); 혼자 여러모로 생각함 竊念 竊思
乞骸(걸해);노신이 벼슬을 사양하기를 임금에게 청원함; 乞骸骨 .乞骸還鄕
揖讓(읍양);辭讓함, 相見禮. 賢者에게 自己의 地位를 讓位함
揄揚(유양) 끌어 올림. 찬양함
折節(절절);절조를 굽힘, 지금까지의 主義나 態度를 바꿈
袪弊(거폐);폐단을 없앰. 袪痰;담을 없앰; 袪;옷깃,除去하다,
刮磨(괄마); 학문을 딱음 磨;갈마 劘;깍을 마; 講劘=講磨
介胄(개주) 갑옷과 투구. 무인을 일컬음. 介士,,(介弟는 남의 동생을 稱함)
專對之材(전대지재);외국 사신으로 가서 혼자서 능히 처리할 수 있는 인재
夷險(이험); 平坦함과 험함
봉신첩퇴(奉身輒退)--身命을 살려서 곧 바로 물러남
肯綮(긍경) 사물의 가장 요긴한곳 ,綮;(음은 계,경. 비단계,힘줄이 얽힌곳)
賁育(분육).춘추전국시대 勇士 孟賁과 夏育.. 賁飾(비식)-아름답게 꾸밈
靑帝(청제) 봄을 맞이한는 神,
鎭日(진일); 하루 종일 ,긴 해
乾斷(건단)-㉠큰 결단. ㉡군주가 정사를 스스로 裁決하는 것
白鹿洞學規--송나라 朱子가 江南에 있는 백녹동 서원이 황폐한 것을 보고 다시 복구한 다음 학규를 만들어 게시했는데 五敎之目, 爲學之序 修身之要, 處事之要 接物之要 等等이었다.
행장(行藏)__출세하면 도를 행하고 나라에서 쓰지 않으면 은거한다는 말(用之則 行.捨之則藏)의 준말.. 藏修(은거하여 도를 닦고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음)
猥贅(외췌)--처가. 췌:붙일췌. 데릴사위, 猥;성할 외
巾衍(건연)--書籍, 遺稿, 巾卷(상자에 넣은책)
巾笈(비단을 바른 책 상자) 巾.수건건. 덮을건. 衍:상자연 성할연 넘칠연.
倜儻不羈(척당불기)--기개가 있고 뜻이 커서 남에게 눌려지내지 않음 倜:고고할 척 , 儻:고상할 당. 억매이지 않을 당
鳶飛魚躍(연비어약)--군자의 교화가 널리 미친 상태. 도는 천지간 어디서나 있다는 뜻. 솔개가 하늘을 나르고 물고기가 뭇에서 뛰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도의 작용이어서 새나 물고기는 스스로 체득한다는 뜻.
啓沃(계옥)--사심없이 충성된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임금에게 사룀.
書經(啓乃心 沃朕心).나의 마음을 펼쳐서 임금의 마음을 인도하는 것
謇諤(건악)--꺼리낌 없이 바를 말을 하는 것
史直(사직)--史魚의 直諫. 春秋時代 衛靈公이 賢臣 거백옥을 중용하지 않고 불초한 微子瑕를 임용하므로 사어가 여러 차례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그 후 사어가 죽을 때 그 아들을 불러 나는 생전에 신하로서 충성을 다 못했으니 죽은 후 正禮로 장사하지 말라 하였다. 영공이 弔文하러 와서 그 까닭을 물음으로 사실대로 말했더니 영공이 크게 깨달아서 빈소를 만들도록 하고 그의 直諫을 들었다 한다.
扶桑(부상)--동해 복판에 있는 神木. 해가 나오는 곳이라 한다. 동쪽을 가리키는 말로 쓰기도 한다.<山海經> . 東隅><桑楡--해지는 곳
砥柱(지주.저주)--중국 황화강에 우뚝 솟은 바위 이름, 격류 속에 있어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다. 어지러운 세상에 의연하게 절조를 지키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임
砥礪(지려)--㉠숫돌. ㉡학예, 품성 등을 갈고 닦음
窮髮(궁발)-髮은 풀. 풀도 나지 않을 정도의 極寒地帶. 不毛地帶
袵席(衽席,임석)-자리 요.침실.
邊幅(변폭)--겉모양 外貌. 天性醇朴 不事邊幅
옥수(玉樹)=美木 仙木, 뛰어나고 고결한 풍채.見其儀 如玉樹之臨風
作之不已(작지불이)=끊임없이 있는 힘을 다함.作之不已 乃成君子
감가(坎坷.坎軻)때를 잘 못만남, 不遇; 坎坷於閭巷之間 以終可恨也
구수(丘嫂)=맏형수, 每事 必就質於丘嫂
금낭(錦囊)=佳作의 詩
장솔(獎率) 격려하며 이끔
돈좌(頓挫)=기세가 갑자기 꺾임. 문장의 기세가 바뀌어 강한 필봉을 부드럽게 서술함. 挫=꺾다
尋數之業(심수지업)-글자를 익히고 글 짖는 일. 不解佛法圓通 徒勞尋行數墨. 詩禮之暇 尋數舊業. 某之一夜刻苦 勝人一年咿唔
尸祝시축--㉠신주와 제문.. ㉡숭배함. 書院 先生尸祝之所也..
投荒(투황)--변방으로 귀양가는 것. 三千里外投荒客.一萬儒中制疏人.
遭故(조고); 父母喪을 당함
완색(玩賾); 玩索. 玩繹(완역); 글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찾음. 賾;깊숙할 색
옥성(玉成)--학문을 갖춘 훌륭한 인격자.取聖賢書 玩賾格致 實是玉成之道
박채(博採).博采; 널리 의견을 구함;
쇠세. 숙세;衰世. 叔世; 망하여 가는 세상
悶沓민답. 괴로움으로 가슴이 답답한 것. 沓 거듭할 답. 합칠 답.
桑楡상유; 日暮. 晩年 老年.遲暮(年老). 해지는 곳 (해뜨는 곳은.東隅. 扶桑)
시무時務; 시급한 것 當世의 急務.농사일;
국보國步; 한 나라의 운명.國運.
喟然위연; 한숨쉬며 탄식함. 中夜喟然嘆曰--
장수藏修; 책 읽고 학문에 힘씀. 栗澗亭 栗澗公 藏修之所也
규표窺豹; 대롱 속으로 표범을 봄.
탄우(呑牛);소를 삼킬만한 장대한 기세.眼超窺豹 氣聳呑牛
顚躓(전지); 顚跌; 실족하여 넘어짐.
菁莪(청아); 人材敎育. 많은 人材
험희險巇; 험하고 위험함. 세상살이의 어려움. 自此 益歎世道險巇
궁도(窮途)--困窮하게된 경우. 困窮한 時期
나변(那邊)--어느곳. 어디. 저기. 저곳. 거기.
식일(式日)--날마다. 經體震艮若何
震艮(진간)--動止. 震은 떨쳐 나오는 象. 艮은 머물러 나아가지 아니하는 象.
消遣(소견)--소일(消日).00病伏窮巷且無從遊之益日與卷中人爲消遣之資.
從遊(종유)--학덕이 있는 사람과 더불어 놈.
徵逐(징축)--사람을 訪問하거나 招待함. 오고 가고 다정히 지냄, 徵逐於蓉臺淸絶之間
香山古事;(향산고사)-백낙천이 향산사에서 아홉 사람(당대문장)과 계를 같이함. 香山 九老. 백낙천을 香山居士라고도 함
皤皤;백발이 다된 모양. 파파노인. 백발노인. 皤; 머리셀 파
歉然겸연; 겸연쩍다. 부끄럽다. 불만스럽다. 歉;흉년들다. 부끄럽다. 불만스럽다.
勃然(발연); 성내다. 갑작스럽다(卒然). 힘차게 일어나는 모양
頤(이); 턱. 보양하다 후하게 대접하다. 頤養.
杖頭錢 장두전; 술값정도의 적은 돈. 以杖頭之錢 周遊於名山大川
踽踽凉凉 우우양양; 몹시 고독한 모양. 踽 홀로갈우. 獨行
冗務용무; 필요하지 않은 事務..冗.쓸데없을 용.
擡頭不起;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지 못함.
遽爾거이; 갑자기
承龍승룡; 사위의 榮華가 旺盛함.
魯衛之政; 노나라와 위나라의 정사는 형제처럼 비슷함(논어)
三餘삼여; 글읽기 좋을 때 겨울. 밤. 비올 때.歲之餘.日之餘 時之餘
鐵樹開花(철수개화)--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이 없음
望聞問切‘망문문절-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환자의 얼굴이나 병세를 바라보고. 병세를 듣고. 묻고. 진맥하고를 뜻함
幹蠱간고; 부모의 허물을 아들이 덮어준다는 말로 “허물 있는 사람의 才智있는 아들. 일을 맡아 처리함. 技能, 才能
내자迺者; 요사이
主鬯주창; 主器; 宗廟의 祭器를 管掌하는 사람. 맏아들
묵수墨守; 자기의 의견을 굳게 지킴. 墨翟의 故事
기구지업箕裘之業;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 家業
涓埃연애; 작은 물방울과 먼지라는 뜻. 아주 작은 것을 이름
거안제미 擧案齊眉;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中國 後漢時節 梁鴻과 그의 妻 孟光의 아야기. 富者집 딸 孟光은 가난한 선비 梁鴻에게 시집을 가서 날마다 열심히 일을 했고 맹광은 남편이 돌아올 쯤 이면 손수 정성껏 저녁을 준비하여, 거안제미 즉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올려 내밀며 恭敬을 표했다고 한다. 孟光荊釵
妯娌축리; 여자의 동서간
瑣瑣쇄쇄; 잔 부스러기.
청조(靑鳥); 使者. 편지. 서간.魚雁도 편지를 뜻함. 靑帝는 봄을 말함
경기(經紀); 순리로 다스림 (가정을)
塞責색책; 책임을 다함.
祖武(조무); 조상이 남긴 거룩한 업적
승당입실升堂入室 학문이 점점 깊어짐.
사륜(絲綸)--천자의 詔勅. 綸은 인끈.
윤음(綸音)--임금의 詔勅. 綸言
애안(崖岸);물가의 단안. 오만하여 남과 어울리지 않음. 不爲崖岸嶄絶之行
참절(嶄絶)--산이 높고 험준함. 참줄(嶄崒). 嵂崒. 崒嵂
白雲鄕;天帝가 사는 곳. 天上世界. 仙鄕
苫塊(점괴); 짚으로 자리를 하고 흙으로 베게를 함. 喪禮를 가리키는 말
令抱;남의 손자의 존칭
塤篪훈지; 옆으로 부는 저. 塤篪雅奏; 형제가 화목함을 비유.
參差참치; 가지런하지 않음. 연이은 모양. 흩어진 모양.
奎文(규문)--문학, 문물, 문교를 이르는 말, 奎는 별의 이름으로 文運을 맡아본다고 함.文昌星)
色吏(색리)-- 어떤 일을 分掌한 胥吏.감영이나 고을 관아에 딸려 있어 어느 일을 분장하는 서리를 말한다. 色人
봉모(鳳毛)--봉의 털. 자손이 父祖 못지 않은 소질이 있다는 말
恬退(념퇴.염퇴)--마음이 편안하여 겸손함. 명예나 이익에 관심이 없음 退는謙退
引疾(인질)--병을 이유로 삼음. 인은 陳述
犀(무소서)--이마 위에 뼈가 머리털 사이로 나오는 일 貴人의 相
公乏--결핍. 궁핍. = 匱乏 公之家力 漸匱 實由此也
際遇(제우)--우연히 만남 . 君臣이 서로 뜻이 맞아 만남. 際會(제회)
剞劂(기궐.의궐)印刷
爛商(란상)--爛議.충분히 의논함. 爛醉는 滿醉
彙征(휘정)--동행함, 같은 무리가 조정에 나아감 彙 무리휘, 모을 휘.
拔茅茹 以其彙征(書經)
深厲淺揭(심여천게)--일의 형편에 따라 행동함. 深則厲 淺則揭
輓近(만근)--近來. 近年
束修(속수)--제자가 될 때 스승에게 올리는 禮物.. 負笈從師.不遠千里.
俺博(엄박)--학문이 매우 심원함
哲匠(철장)--현명하고 재예가 있는 사람 行誼敦厚文飼俺博可以爲當世之哲匠
湛樂(담낙.담락)--즐김
叔世(숙세)-末世.. 政治, 道德 風俗등이 衰退하여 亡해 가는 世上. 衰世
蓼莪(육아)--詩經 육아편. 賦役으로 멀리 나가있어 어버이를 奉養하지 못하고 死後에 돌아와 그 슬픔을 읊은 시편 蓼(音 요,육)
雕繪(조회)문채(문장 및 서체)가 아름다움 雕(독수리, 새기다. 아로새기다)
회(糸貴)채색이 고운 것
章甫-- 유생 髫丱(초관)--幼年時. 未成時 ,더벅머리 시절,
芝宇(지우)--尊顔.남의 얼굴을 높임말. 承顔
蔦蘿(조라)--㉠담쟁이 넝쿨. ㉡親戚이나 兄弟의 친밀함을 표기
薜蘿(벽라)--隱者가 거처하는 곳
公聽幷觀--공평한 마음으로 듣고 쌍방을 아울러 봄. 공평한 태도
藏頭匿影---일을 똑똑히 밝히지 않음
朋比(붕비)--붕당을 이루어 자기편을 두둔함
방오(旁午)--煩多
弼善(필선)--世子侍講院
방통(旁通)--자세하고 간곡하게 함.. 曲盡
탄장(彈章)--탄핵하는 문장 .彈章旁午.
蕃臣(번신)--諸侯
釐正(이정.리정)--釐革.改革
황천후토(皇天后土)--하늘의 神과 땅의神 .하늘과 땅
宅相(택상)--甥姪
齠齔(초츤)--이를 갈 나이. 7-8세 정도의 아이
의흘(齮齕;기흘)--물어 뜻음. 남의 재능을 시기하고 배척함.
소인(宵人)-음침한 사람. 小人(소인).
壬人(임인)-간사한 사람. 壬은 간사하다. 알랑거리다. 아첨하다.
韋布(위포)--가죽과 베로 만든 옷. 가난한 사람의 형용. 布韋
석갈(釋褐)--처음으로 관리가 됨. 褐은 굵은 베로 천인이 입는 옷으로 천인이 입는 옷을 벗고 관복을 입는다는 뜻. 筮仕(서사= 처음으로 벼슬함)
筮仕(서사)--처음으로 벼슬을 함.
堂兄弟(당형제)--4촌 형제. 종형제 舍-30리. 군인이 하루 걷는 거리
후설지임(喉舌之任) --都承旨 . 赤--비었다. 죽다.
文藻(문조)--文章의 멋, 文采. 文才. 藻(말. 바닷말. 무늬 , 채색)
蘋藻(빈조)-㉠개구리밥과 말.蘋은 물에 떠있는풀.藻는 물속에 있는 풀.水草의 總稱. ㉡변변치 못한 祭需. 혹은 藻蘋
炳浪(병낭.병랑.炳琅.)--문장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모양.(남이 모르는 어려운 문구를 써서) 文藻炳浪
庭戺(정사)--집, 가정 ,가문, 戺(문지방, 지도리)
岐嶷(기억)--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었음을 이르는 말, 갈림길 기, 높을 억
舛이그러질 천. 잡될 천.世路多舛
穹壤(궁양)--하늘과 땅 .하늘 궁 穹天.
秦晉(진진)--秦나라와 晉나라. 두 나라 사이에 婚姻이 많았음으로 秦晉之好라고 함
疇昔(주석)--옛날.전날, 昔時. 疇輩(같은 무리.疇는 누구로도 됨)
弸中(붕중)--속을 채움.弸(화살시위붕.채울팽) 撫念疇昔 哀懷弸中
조고계(操觚界)--언론계. 觚는 대쪽,
骨鯁之臣 혹은 骨骾之臣
令甲(영갑)--法令의 第一令. 政令. *良賤相婚之禁 載在令甲 今不畏朝令 公然相婚 請離異入送
離異(이이)--㉠강제로 이혼을 시킴. ㉡다름 . 같지 않음. 良賤相婚之禁 載在令甲 今不畏朝令 公然相婚 請離異入送
入送(입송)--안으로 들어 보냄 載--문서, 서적
甲士--조선 때 義興府에 속했던 軍人. 司直(사직).副司正의 군직을 맡을 수 있음.. 의흥부(군부를 통활했던 관청). 사직(오위에 속했던 정오품)
章服--무늬가 있는 옷.罪囚服
擔負(담부)--짐을 메고 지고함. 擔夯(담항). 夯;다질 항
家丁--집에서 부리는 남자 상일군
頂玉--淸代에 1品에서 9品까지의 官吏가 모자 꼭대기에 달던 珠玉, 그 빛깔과 품질에 의하여 品級이 區別 . 頂子, 頂戴
庸君--뛰어 나지 않는 보통 임금.
里巷--마을 里巷聚會爲堂上 章服之相雜 至有頂玉紅帶而擔負奔走自驅 牛馬或以淫娼之子奴僕之賤許通而登果從仕
贖良(속양)--노예를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함
推刷--달아난 노비를 찾아내어 본고장에 돌려 보내는 일
屬公--죄인을 관청의 노비로 삼는일
從良(종양)--노예나 천민으로서 양민이 되게 함
錢文; 돈
累:每
貢賦--공부에는 調와 庸과 租 가 있음
調는 貢物로서 布帛등 土産物로 賦課. 용은 장정이 공역 불참시 현물로 내는것. 租는 토지에 부과. 有田則有租 有身則有役 有戶則有調(有戶則有貢物)
結負;結卜--조세를 매기기 위한 토지넓이의 단위 結. 負. 束 이 있다.
鄕曲(향곡)--시골 벽촌.
豪猾(호활)--강폭하여 법을 두려워하지 않음,그런사람.
里正(이정.리정)--里長.
武--자만하다. 업신여기다.
略賣(약매)--남의 부녀자나 아이를 略取하여 남에게 팔아 넘김
滔滔--탄식하는 모양, 어지러운 모양
比--治.
匝(잡)--두르다. 돌다. 둘레
坐(좌)--죄명을 쓰다. 법에 저촉되다.
全羅道民 非他道之比 自來頑惡 品官輩 武於鄕曲 他人奴婢 略賣於人滔滔者--
里正 畏其氣勢 莫敢誰何 (武-업신여기다)
里任--마을의 일을 맡아 보는 사람
棒招(봉초)--죄인에게 구두로 陳述을 받음
商販(상판)--장사. 장사함. 今 士大夫之家 使奴僕 務於商販.. 反外--배반
推斷(추단)--범죄를 심문하여 처단함
呈狀--訴狀을 냄 . *情願--진심에서 나온 소원
徒(형벌).
倩工(시공.천공)一時的인 傭人 代書人 臨時傭人) ;
依允--승낙을 받음.
泛然--들떠 있는 모양
범과(犯科)--犯法
率養--양자로 삼음 推閱--심문 烝--손위의 女子와 私通하다
三省推鞠(삼성추국)--議政府 兩司 義禁府의 관리가 모여 앉아서 삼강오륜을 범한 죄인을 국문하는것
立券--계약
祖宗(조종)--當代 以前의 代代임금의 總稱
寃抑(원억)--무고한 죄에 빠짐. 큰 잘뭇이 없는데 죄를 받음
優遊(우유)--편안하게 지내는 것. *수괄(搜括)--찾아내다.
獷悍(광한)--모질고 독살스러운 것.
방헌(邦憲)--國法
犯越(범월)--국경을 몰래 넘어 달아남
단한(單寒)--친족이 적어 고독하고 가난함. 單寒無依
僑居(교거)--임시로 삶, 임시고 사는 곳. 寓居
睚眦(애자)--눈을 부릅뜨고 흘겨 봄
陵轢(능역)--犯하여 짓밟음 , 서로 충돌함. 不和, 軋轢
곤욕(困辱)--심한 모욕.
緊歇(긴헐)-요긴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갱연(鏗然)--金屬의 소리.
縹緲(표묘)--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모양, 아득히 넓은 모양
郢人영인--비속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歌手). 郢客
郢歌..郢聲. 郢曲---비속한 노래. 巴調. 巴曲
遏雲(알운)--하늘의 구름도 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노래 소리의 아름다움”을 이르는 말
衡--五嶽의 하나 [오악; 泰山, 衡山 恒山 華山 嵩山]
神來(신래)--신이 하강함, 신들린 것 같이 느끼는 기분
韻度(운도)--풍류스러운 마음가짐, 고상한 품격. 풍도. 운치
掛劍(괘검)--吳나라의 왕자인 延陵의 季子(名은 禮)가 보검을 차고 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에 徐나라 왕을 찾았을 때 자기 칼을 왕이 몹시 탐내는 눈치라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를 왕에게 줄 것을 마음먹었으나 귀로에 들리니 왕은 죽고 없었다. 곧 왕의 능에 찾아가 그 칼을 능 앞 나무 가지에 걸어 마음의 約束을 지켰다는 옛 故事.
권형(權衡)-저울, 저울추와 저울대 사물의 가볍고 무거움을 고르게 함,衡平, 均衡
詔獄(조옥)--왕명으로 죄인을 국문 하는 일 또는 그 옥사
倜儻(척당)--뜻이 크고 기개가 높음
冲融(충융)--마음이 沖靜하여 편안하고 고요하며 행동이 융화하여 조화롭고 화기가 있는 모양
充養(충양)--가득 차게 학덕을 쌓고 본래의 양심과 좋은 품성을 잃지 않도록 이를 기름
藎臣(신신)--忠臣. 忠厚한 신하. 誠臣. 忠臣. 藎은 풀이름, 나아가다(進)
二竪(이수)--병마(病魔) 奈何二竪 刀圭無力
설설(屑屑)--㉠부지런한 모양(孜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모양
동첩득구(動輒得咎)-자칫하면 남에게 욕을 먹음.
繩墨(승묵)--먹줄, 規則. 法度 須不屑屑於學而動輒繩墨苟非天姿近道能如是乎
공거(貢擧)주군에서 공사를 선발하여 천거함.
공사(貢士)-지방에서 선발하여 중앙에 천거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
공거(公車)--應試하는 科文
蕭艾(소애)-쑥. 賤한 사람이나 小人을 이름(楚辭;何昔日之芳草 今直爲此蕭艾也). 爲圓何必斲吾方 當事先須立脊梁. 若使芝蘭終變化 不如蕭艾本無芳(운천 김용)
礌礌(뇌뢰;礌礧)-마음이 넓고 큼, 礌礌落落-마음이 高明正大함
區區--작은 모양 근소한 모양
座目(좌목)-자리의 차례를 적은 目錄
玩物喪志(쓸데없는 물건에 마음이 팔려 본심을 잃음),玩人喪德
忘形-육체를 잊음. 道를 體得..容貌 地位를 문제삼지 않음..(忘形之交.忘形之友)
黃壚(황노)-黃廬(황려); 황천黃泉 .. 壚는 黑土를 이름
黃壤황양-黃土. 黃泉
矢心(시심)--맹세하는 마음 ..矢는 맹세하다.
蕕臭(유취)--고약한 냄새. 蕕는 누린내 풀로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일년초 풀
勿孤(물고)--저버리지 않음. 배반하지 않음. 孤는 저버리다 배반하다 버리다
專美(전미)--美名을 혼자 차지함
負劍(부검)-업고 안고 함, 劍은 ‘끼다’의 뜻. 辟은 기울이다(注意등을)
負劍辟咡詔之 咡는 입 언저리. 詔는 윗사람이 가르치는 것
杏林--醫術에 從事하는 사람. 杏壇--학문을 딱는 곳
綿蕝-몸을 가지는 態度. 儀表. 蕝의 音은. 절, 체, 촬 등으로 읽는다.
陰騭(음즐)--하늘이 隱微하게 人間을 도움
束閣.束高閣--묶어서 높은 시렁에 얹어둔다는 뜻. 오랫동안 使用하지 않음
含飴弄孫--엿을 입에 물고 손자를 데리고 논다는 뜻. 노인이 아무할일 없이 마음 편히 소일함.
下詢하순--임금이 신하나 백성에게 물음. 詢問. 諮詢. 諮諏.consultateon
氵此筆(자필)--붓에 먹을 먹임. 氵此 (물맑을 자. 땀축축히날 자.)
悚縮송축.- 송구스러워 몸을 움추림
庇蔭(비음)--遮陽의 그늘. 두둔하여 보살펴 줌
顒望(옹망)- 크게 우러러 바람
緬憶면억--回想
芟夷. 芟除. 芟鋤 ;雜草를 베어버림.世上 害로운 것(亂賊)을 쳐서 나라를 平定함
簇出(족출)--떼를 지어 연달아 생겨 남.
丹砂..芝草--신선이 되는 약.
枳棘(기극.지극)--탱자나무 가시. 惡木. 妨害物.遭時枳棘未能展布其所蘊.
泫然(현연)--눈물 줄줄 흘림.泫然而 嘆曰.嗚呼! 天理其可諶乎(諶;믿다. 헤아리다)
因循(인순)--옛 습관을 버리지 못함. 진취력이 없어 우물쭈물함.事巨力綿因循到此.
腥臊(성조)-누린내가 남. 더러움. 돼지 누린내.
浮躁--輕薄하고 깊은 맛이 없음.
巴調-俗된 曲調-自己가 지은 詩文을 謙讓하여 말하는 것.
淺露--얕아서 쉽게 들어남.
周程張朱之學-濂洛關閩-周頓頤(濂溪).程顥(明道).程頤(伊川).張載(橫渠),朱熹.
逆鱗(역린)--韓非子의 說難篇에 나오는 말.龍의 목 아래 부분에 있는 직경 한자쯤 되는 거꾸로 선 비늘을 일컫는다고 한다. 용은 평소엔 화를 내지 않지만 역린을 건드리면 건드린 자를 반드시 죽인다고 한다. 어떤 諫言을 해도 좋지만 임금의 역린을 건드려선 일을 圖謀치 못하니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영망(令望)--좋은 評判. 좋은 人望.先君早有令望 年未三十不幸夭無嗣 夫人以一女在乳不能下從. 不溺於愛而弛於敎 或違之則 訶之如嚴父.
칭의(稱意)--마음에 맞음. 마음에 듬. 稱은 따르다
미염(米鹽)--쌀과 소금. 살림 밑천. 자질구레하고 귀찮은 일 . 번거로운 일.
汝以寡母之一女 幼求稱意 長當何如 間試米鹽賤執 不令之安佚
시훼(柴毁)--상을 당하여 너무 슬퍼하여 몸을 상함. 當外艱 柴毁幾至滅性
멸성(滅性)--親喪에 너무 슬퍼하여 自己의 性命을 잃음.
벽용(擗踊)=부모 상사에 애통하여 슬피울고 가슴을 두드림(擗가슴칠 벽)
운절(殞絶=隕絶=쇠하여 끊어짐
유고(遺孤)--父母가 다 죽은 孤兒.
천리(踐履)--行實
숙유(宿儒)--學識과 德望이 높은 선비.
설언(褻言)--푼수 없는 말. 其 闇修之篤 踐履之正 有宿儒之所不及者多矣. 言不爲諧謔褻焉 無一毫濫費於奢靡
사미(奢靡)--신분에 지나치게 치레함. 言不爲諧謔褻焉 無一毫濫費於奢靡
하종(下從)--아내가 남편을 따라 죽음. 紅:붉을홍. 연지홍. 갈쌈공(工)
고복(顧復)--부모가 자식을 양육함. 顧復之恩. 詩經;顧我復我
장염(糚奩)--화장도구를 담는 그릇
정문(程文)--科擧볼 때 쓰는 一定한 法則의 文章.
공거(公車)--應試하는 科文.
공령학(功令學)--과거 보기 위하여 하는 학문
선정(先正)--先代의 賢人. 先賢. 先哲. 伏以先正臣文純公李滉 闡河洛之學接洙閩之統 .禮安縣陶山書院則 滉講道之所而 我東之闕里考亭也. 궐리는 공자가 살던 마을이고 고정은 주자가 살던 마을.
균(囷)== 둥근 곳집균. 或當饑歲 不計親疎 傾囷而賑濟之
망양(亡羊)--실패. 두 가지 일을 경영하다가 두 가지 다 실패함. 萬事亡羊
가부(葭莩.葭孚);갈대. 갈대 속의 엷은 막. 葭莩之親; 먼 친척
향화(香火)--제사.불공. 大宅無嗣幾絶香火之境爲患竟以齎恨而歸. 齎(재);가져가다
집불(執紼)--영구차의 밧줄을 잡음. 葬送하는 일.喪焉而未能憑棺.葬焉而未能執紼
석과불식(碩果不食)--큰 과실은 다 먹지 않음. 자신의 욕심을 억제하여 자손에게 복을 끼쳐줌. 碩果之報 只在此焉. 三彧有才而善茁..茁(자라는 모양)
양구(陽九)--災難 . 陰陽數理에서 陽厄五와 陰厄四의 和
척촌(尺寸)--얼마 안 되는 조그마한 것. 尺寸之功. 尺寸之利. 尺寸之地
미월(彌月)--온 한달 동안 걸림. 달을 넘김. 여러 달. 生後 滿 일개월
면례(緬禮)--移葬
조짐(兆朕)--징후
부천(膚淺)--지식이나 말이 천박함
주향(炷香)--향을 피움
자인(自刃)--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
상상(上庠)--中國 虞代의 大學
소목(昭穆)--종묘나 사당에 신주를 정하는 차례, 시조를 가운데 모시고 왼쪽줄을 昭, 오른쪽을 穆이라 한다. 2.4.6세를 昭. 3.5.7.세를 穆에 모신다.
석저析箸-따로 分家함.析(쪼개다. 가르다 나누다)
탁거拆居-分家 拆은 열다.
천현(天顯)-*하늘의 밝은 도리.*존비상하의 分數 *하늘이 밝힘
天顯之親--부모형제간의 친의
기설(羈紲)-굴레와 고삐*임금의 말고삐를 잡는다는 뜻으로 ‘신하가 되어 섬김’의 겸칭
참천(參天)-德이 천지와 같음 하늘높이 날아감/하늘에 닿음/하늘높이 뻗어남
위금(委禽)--婚禮의 納采에 기러기를 보내는 일. 禽은 雁. 我於其門 委禽托跡
사설僿說(사설.새설)--僿談. 세세한 말. 자질구레한 말 僿(잘게 부술 사. 새)
견권繾綣(견권)--㉠생각하는 정이 두터워 잊지 않는 모양, ㉡맹세하고 배반하지 않음
기구(箕裘)--家業. (부조로부터 내려오는 가업)
은유일노(憖遺一老)--한 사람의 老聖人이라도 억지로 남겨두고 싶다는 것
영회(縈廻)--얽히어 돌아감. 둘러쌈.(縈繞. 縈旋. 얽힐영)
질야(質野)--질박하고 꾸밈이 없는 것
한수(鼾睡)--코를 골면서 잠듬. 코골 한.
가호(呵護)--保護
상우(尙友)--고인을 벗으로 함. 上代 賢人을 벗으로 함. 及君尙友 我已遲暮
동우(東隅)--동쪽 해 뜨는 곳. 인생의 아침인 젊은 시절. 東隅已逝 桑楡非晩
촉도蜀道--지금 사천성으로 通하는 險峻한 길. 人情과 世路의 어려움을 比喩하는 말. 蜀道難 . 蜀路 ; 거친 人生行路
북창삼우北窓三友--술(酒).絃琴. 詩. 북창은 서재.
거자(擧子)--아들을 천거함. 관리등용시험에 응시함. 응시하는 사람
온오(蘊奧)--學問 技藝 등의 심오한 이치
온포(蘊抱)--깊이 품은 재주. 머릿속에 재주를 간직함. 蘊쌓을 온
지현(贄見)--제자가 폐백을 가지고 스승을 찾아 뵘. 入門함. 贄謁
이업(肄業)--기술을 배움. 강습함, 肄(익힐 이)
백비(白賁)--화려함을 버리고 자연 근본으로 돌아감. 채색을 않고 흰빛으로 꾸밈
도회(韜晦)--才智 學問 등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음. 鞱=韜=감출 도
도광(韜光.鞱光)-학식이나 재능을 남에게 알리지 않고 감춤
온옥(韞玉)--옥을 싸서 감춤/ 감출 온.
산적(鏟迹)--자취를 숨김. 鏟(대패 산)
호겁(浩劫)--①宮殿의 계단. 塔. ②未來에 걸친 매우 긴 世上.③人間의 큰 災禍
루빙(鏤氷)--얼음에 새긴다는 뜻으로 “無益한 努力” 鏤는 새길 루. (內無其質而 外學其文, 雖有賢師良友. 若畵脂鏤氷 徒費日工耳).
화지루빙(畵脂鏤氷)--기름에다 그림을 그리고 얼음에 조각을 한다는 뜻으로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음을 비유(若⊙⊙⊙⊙費日損功)
조충(雕虫)-세공함. 시문을 짖는데 미사여구로 수식함. 잔재주.
조충전각(雕虫篆刻)--벌레 모양이나 전서를 조각하듯 文章의 字句를 修飾.
봉장(封章)--密封하여 임금에게 上奏하던 意見書, 封事. 封奏
박락(剝落).--剝脫. 강제로 뺏음. 강제로 벗김.
서서(棲棲)--車馬를 檢閱하는 모양.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모양. 안달하는 모양
활불(活佛)--살아 있는 부처. 자비로운 사람/
이실(貳室)--임금이 擧動할 때 머무는 別宮. 離宮 副宮.
비은(費隱)--聖人의 道는 그 效用이 廣大하여 두루 미치나 그 自體는 隱微하여 드러나지 않음. 中庸(君子之道 費而隱).
융연(隆然)--우뚝 솟은 모양
수재(繡梓. 수자)-- 문서를 판목에 아름답게 새김. 책을 출판함.
위사(委蛇 위이로 읽음이 옳음)-의젓하고 천연스러움. 느릿느릿함
각저(角抵)--두 사람이 서로 맞붙어 힘을 겨루며 競爭하는 中國 遊戱의 하나
천록(天祿)--하늘이 주는 福祿.
병혁(病革)--병이 위독하게 됨
즉세(卽世)--사람이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남. 卽(죽다. 떠나다)
신근(辛勤)--몹시 애써 부지런히 일함
염출(拈出)--집어냄. 끄짐어 냄. 字句를 생각해 냄
택심(宅心)--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않음.
설니홍조(雪泥鴻爪)--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 눈이 녹으면 곧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을 말함(人生到處知何事. 應是飛鴻踏雪泥 泥上偶然留指爪 鴻飛那復計東西).士友輓祭之錄 盡歸雪泥之爪
무우(無虞)--생각지 않은. 뜻밖에. 생각지 않은 일. 뜻밖의 일.
참절(斬截;斬絶)--목을 베고 수족을 자름.
과방(過房)--양자를 들이는 일. 凡四世過房而 六世始得五男.
실음(失音)--목소리가 쉼. 쉰 목소리
해천(咳喘)--기침과 천식
벽립(壁立)--바람벽처럼 우뚝 섬
구합(苟合)--경솔히 남의 뜻에 영합함. 구동(苟同).
승자(承藉)--父祖 또는 다른 세력에 의지함
위신(委身)--몸을 맡김. 봉사(奉仕)
가금(呵禁)--꾸짖어 못하게 함
구장(舊章)--엣 制度, 文物. 엤 法令
궤이(詭異)--이상함. 궤괴(詭怪)
복욱(馥郁)--그윽한 향기가 풍김
천량(天良)-良心. 座下苟有天良 必欲鑽地而 入也
천위(天威)--임금의 威光. 臣深知其寃終如畏懼天威 不得暴白則 不旦辜負恩遇
도선(徒跣)-맨발.跣(맨발선) 亦齎恨於泉下
고부(辜負)--배반함. 위배함. 상대의 뜻에 거스름.
은우(恩遇).㉠은혜롭게 대우함. ㉡임금의 은총
편발(編髮)-땋은 머리. 編(머리 땋을 편). 貧家之女 豈將以 編髮老死乎
절도(絶倒);감정이 극도에 이르러 외형에 나타나는 일.*크게 웃는 것.(抱腹絶倒) *크게 감격하여 넋을 잃음. *매우 슬퍼하여 넋을 잃는 것. *매우 敬服함. 몹시 걱정함
지추덕제(地醜德齊); 나라의 크기나 군주의 덕망이 서로 비슷함.(孟子)今天下 地醜德齊 莫能相尙. 想是地醜德齊 何不結婚乎
포진(布陣;전쟁 경기등를 하기 위하여 陣을 침..布陳;펴서 늘어 놓음. 사방으로 흩어짐)
병장(屛障);보이지 않게 가리는 휘장. 병풍과 장지
포장(包藏);㉠싸서 간직함. ㉡마음에 품고 있음(남몰래) 包藏逆謀
초소(樵蘇);나무를 찍고 풀을 벰. 초목을 베는 일, 시골 사람의 생업. 混於樵蘇入門
주무(綢繆);일을 빈틈없이 미리 준비함. 뒤얽힘. 辛苦經營의 뜻으로 씀. 심오함. 연속한 모양
홍분(紅粉). 청아(靑蛾);미인을 이름. 연지와 분(화장)/미인의 푸른 눈썹
지두(地頭);지위 위치 到此地頭
야차(夜叉)무서운 귀신. 煩惱.
질곡(桎梏)(질곡)-차꼬와 수갑. 雖在綺羅珠翠 如在桎梏
지복(持服)-喪服을 입음. 服喪. 旣立勳에 以方持服으로 只賜功臣號하고.
원구(元舅)-임금의 외숙.
파측(叵測)-예측할 수 없음.叵奈--어찌할 수 없음. 叵(어려을파). 語頗泄.事機叵測
춘궁(春宮)-皇太子. 王世子. 世子宮.太子宮.
승관(承款)-죄인의 자백. 親鞫承款
액정(掖庭)-대궐 안. 宮中 闕內. 掖庭署에서는 왕명의 전달. 임금이 쓰는 붓이나 벼루 등 조달. 궁중열쇠보관. 대궐 뜰의 보수 등을 담당하는 관서.
회방(回榜)-과거에 급제한지 60돌(60주년)이 되는 해
청리(聽理);송사를 자세히 듣고 처리함.申光漢 不能聽理
음읍(飮泣); 몹시 섧게 움
왕사(枉死); 橫死. 非命으로 죽음. 枉(부질없다. 헛되다)
신공(身貢);나라에서 成丁에게 부과하는 貢物. 奴婢가 身役代身 바치는 貢物
황화(皇華);中國 使臣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
주착(做錯);잘못인줄 알고 저지른 과오. 知無辜而殺人以避嫌大不可也 微兪公吾幾做錯 . 兪公은 兪大儆으로 兪구경의 祖
난취(爛醉);滿醉
방사(放肆);방자(放恣)함. 제 멋대로 함. 방일(放逸). 탁이(跅弛 ;척이).
치주(置酒)--술자리를 베품
부하(負荷)-- ㉠임금의 맡은 직책, ㉡짐을 짐
여알(女謁)--大闕 안에서 政事를 어지럽히는 女子.
편전(便殿)--임금이 항상 居處하면서 政事를 처리하던 宮殿. 正殿
각신(閣臣)--규장각의 벼슬아치
대각(臺閣)--사헌부와 사간원을 아울러 일컫는 말
황각(黃閣)--의정부를 일컫는 말
사옹원(司饔院)-- 궁중에서 음식을 맡아보던 관청
정시(庭試)== 慶科. 국가의 慶事 時 임시로 보이던 과거로 특히 殿庭에서 보이므로
정시라고 한다.
중시(重試)--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격려하기 위한 특별시험으로 당하관에만 보였으며 10년에 한번씩 보이던 과거제도
표문(表文)--임금에게 올리는 글
균축(鈞軸)- 저울추와 굴대. 大臣(대신)을 이름
장옥(場屋)= 관리를 채용할 때의 시험장
대배(大拜)=宰相을 除授함. 宰相
통천(通天)=하늘에 통함. 通天冠(天子가 쓰는 관)
과종(過從)==사이좋게 지냄. 相從함. 訪問함
평량자(平涼子.평양자); 패랭이. 평량 白髮平涼子 生涯爛醉中
합가(闔家);온 집안. 擧家. 全家. 闔家蒼皇
주대(奏對)ㅣ 임금께 상주함. 임금의 물음에 대답함
길거(拮据);쉴 사이 없이 일하다(予手拮据).곤란을 당하다. 생활이 어렵다.拮;깍지끼다
창양(搶攘)-- 어수선하고 수선스러움.
등철(登澈); 상소문을 임금에게 올림.
현순(懸鶉)헤어진 옷. 옷이 헤어져 너덜너덜하여 메추리 꽁지 같음.
彼非植路之土堠면 卽是門畵之鍾馗라 眞所謂燕婉之所求 得此戚施라 吾雖令汝老死閨中 이언정 決不欲結縭於懸鶉之老乞兒耳.
척시(戚施); 꼽추. 추악함.
彼非植路之土堠면 卽是門畵之鍾馗라 眞所謂燕婉之所求 得此戚施라 吾雖令汝老死閨中 이언정 決不欲結縭於懸鶉之老乞兒耳.
천편(擅便);擅斷. 혼자서 일을 마음대로 처리함.
상려(상여;商旅);행상인. 떠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
연완(燕婉);조용하고 얌전함/
종규(鍾馗);역귀를 잡아먹는 귀신. 그 그림은 마귀를 쫓는데 쓰였다.
결리(結縭.結褵); 시집가는 일. 리(衣帶. 香을 뜻함)
체임(遞任)-벼슬을 갈아냄 . 직무를 바꿈. 遞職
추창(趨蹌)-禮度에 맞게 빨리 걸어감
융사(戎事)-軍事
백면서생白面書生-오직 글만 읽고 세사에는 경험이 없는 사람
방면(方面)-관찰사가 다스리는 행정구역
관각(館閣);翰林. 弘文館과 藝文館
뇌롱牢籠(뇌롱)- ㉠한데 묶어놓음. ㉡남을 자기 마음대로 씀. ㉢手中에넣어 마음대로 놀림
무복(誣服)-罪도 없는데 하는 수 없이 强制에 의하여 自服하고 刑에 복역함. 誣服以苟活 不如死也. 不勝痛 自誣服
혼질(昏窒)-정신을 잃을 정도로 질식함
초공(梢工.梢公)-뱃사공. 梢工讓直不受(直은 삯)
원비(圜扉;환비)--감옥. 감옥의 문
관담(款談.款話 款語)-허물없이 이야기함. 터놓고 이야기 함
발정(發程. 發道. 發足)--길을 떠남.
항장骯髒(항장)-1.肥大함.2.强直하여 뜻을 얻지 못함 .某者는 骯髒不拘小節
구사(丘史);官員의 馬前과 轎前을 喝道하는 奴婢. 弘文館無丘史 爲官者例借他司帶率
갈도(喝道);①.지체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驅從이 소리질러 일반인의 통행을 금하는 일. ②.司諫院이나 玉堂이 出勤할 때 下隷가 앞에 서서 길을 치우며 인도하는 일. 또는 그 사람.
구종(驅從); 벼슬아치나 양반들을 가까이 모시면서 시중들던 하인
별배(別陪); 벼슬아치 집의 下人
대솔(帶率);帶率下人;귀인을 모시고 다니는 사람.某者獨不借帶率 只以皂卒前導
산자관원(山字官員);從者 없이 籃輿를 탄 모양이 山짜와 같아 陵官을 놀림조로 일컫는 말. 籃輿는 두 사람이 메는 덮개가 없는 가마
폭건(幅巾);두건의 일종으로 은사가 썼다. 幅巾三四人 誰是輞川主(망천은 王維가 살던곳)
표일(飄逸); 뛰어남. 俊逸
두호(斗護)--남을 두둔하여 잘 보살펴줌
봉지(奉旨) 임금의 명을 받듦
파출(罷黜)罷免
소취(嘯聚)ㅣ (자기네 패를 군호로 불러 모움) .
文身문신--刺文
기한祁寒(기한)-혹독한 추위 祁(성할기)
태백.중옹(泰伯.仲雍)--周太王 欲立季歷.泰伯仲雍 稱以采藥逃之荊蠻而不歸
타령(妥靈)-위패(位牌)를 일정한 곳에서 잘 섬겨 모심
저앙低昻-低仰.-낮아졌다 높아졌다 함.
예궐 詣闕--대궐에 들어감. 參內(참내). 入闕 詣(이를 예)
朝廷之事는 當付公論하니 予 何敢 低昻이리오 姑氏 詣闕之後에 若貸 暄死則 人必以予로 爲私라하고 翌日에 遂允臺啓하니 暄之死는 盖以翁主之言으로 激之也니라
늑정(勒定)--강제로 적정하게 함.
주연(株連.주련);다른 범죄자에 관련되어 여러 사람이 같이 처벌됨. 連坐,, 株連蔓引 株連受累 株連被逮. 범죄와 관련되는 사람.
조강(朝綱); 조정의 기강
위관(委官); ㉮죄인을 추국할 때 議政大臣 가운데서 임시로 뽑아서 임명하던 재판장. ㉯토지의 등급을 매길 때 그 지방 사람 중 임시로 뽑아서 임명한 심판관
겸종(傔從); 下人. 시중드는 사람, 傔人, 傔卒,傔(시중들 겸).문직이. 청직이
도류(道流);道士의 部類. 老子의 道, 談空空於釋部,覈玄玄於道流. 朝鮮때 雜職의 하나
단구(丹丘); 신선이 산다는 가상의 곳
무격巫覡(무격);무당과 박수
임편(任便); 편리한대로 함. 申潛 量移楊州 任便住居
참승(驂乘); 귀인(주로 임금)을 모시고 그 옆에 탐.昔霍氏之禍 萌於驂乘.人臣 有震主之威而能保始終者未之有也
외조(外朝)--四朝의 하나. 임금이 국정을 듣는 곳. 공식적인 宮廷. 外廷
의빈(儀賓)- 親王, 君王의 女婿 . 禮儀에 익숙하여 國王의 손님으로 適合함.
儀賓府; 駙馬에 관한 事務를 맡아보던 官廳
동관(同官)--같은 관청의 같은 등급의 관리
봉필(蓬蓽)ㅡ 봉호(蓬戶;쑥대로 엮은 문 가난한 사람의 집을 이름)와 사립문
가난한 사람의 집. 자기 집의 겸칭
봉필생휘(蓬蓽生輝); 가난한 집에 고귀한 손님이 찾아주어 영광스럽다는 인사
가액(加額)-이마에 손을 얹는다는 뜻으로 사람을 몹시 기다림
탈신(脫身)--㉠위험을 벗어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몸이 됨. ㉢관계하던 일에서 몸을 뺌
진념(軫念.진염)-임금의 마음. 임금이 백성을 염려하는 마음. 宸襟
표친(表親); 外戚
문신(問訊); 안부를 물음
박탁(剝啄)-방문자의 발자국 소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 / 바둑을 두는 소리
납교納交(납교); 교제를 맺음
교결(交結)--서로 사귀어 정을 맺음
무인(誣引); 무죄한 사람을 죄로 몰아 강제로 구인함
안옥(按獄); 조사하여 다스림.按治
추뉴(樞紐);일의 요점. 주안점
장고(掌故); 국가의 故實(예전에 있었던 일. 옛 儀式. 예법으로서 후세에 본이 되는 것). 慣例 . 장고는 漢나라 때 벼슬. 掌故家(국가의 典故를 맡은 자)
초류(噍類); 음식물을 씹어서 먹는 동물의 총칭. 특히 사람을 이름. 生民
간알(干謁); 사사로이 謁見을 求함
명부(明府); ㉠明法을 간직하여 두는 곳 ..㉡태수. 현령을 이름
명부(冥府)--저승 .황천
고굉(股肱)--다리와 팔뚝. 股肱之臣
고율股栗(고율);두려워서 다리가 떨림. 栗=慄
휴진(畦畛)--㉠논밭의 경계. ㉡문장이나 서화에 일정한 법칙.
백석(白晳)--흰 피부, 흰 얼굴. 容貌白晳如氷壺
빙호(氷壺)--맑고 깨끗함, (얼음을 넣은 항아리)
화후(火候)--불이 타는 상태나 화력이 센 정도
용사(龍蛇)--㉠ 龍과 뱀. ㉡非凡,非常한 사람의 비유. ㉢草書의 筆勢. ㉣有能한 人物의 隱遁. 君子得時則大行.不得則龍蛇. ㉤兵器
청화(淸華)--㉠문장이 조촐하고 아름다움. ㉡대대로 지체가 높은 가문.㉢깨끗한 꽃
건명(建明)--일을 일으켜서 명백히 함.
건백(建白)--윗사람에게 의견을 말함. 建言
헐후(歇後)--뒷 끝에 붙은 말은 줄여 버림. 예사로워서 대수롭지 않음
공수(拱手)--두 손을 마주잡고 아무 일도 않음. 拱手空食
조빈(藻蘋).-- 변변치 못한 祭需
저장(抵掌);손뼉을 치며 이야기함. 신나게 이야기함.世之扺掌前代之事者 近代之事則昧昧焉
정신(挺身)--어떤 일에 앞장서서 나아감.
시석(矢石)--전쟁에 쓰던 화살과 돌. 每陣에輒挺身而前蒙矢石
피미(披靡)--바람에 불려 한 쪽으로 쓰러져 흔들림. 권세나 위력에 눌리어 여러 사람이 굴복함
도령(都令)--都承旨
풍지(風指. 風旨)--風采와 意志
구복(舊服)--낡은 옷. 옛 領土
연관(捐館)--살고 있던 집을 버린다는 뜻으로 “貴人의 죽음”을 이름.捐(버릴연. 捐世)
지우(知遇)--自己의 人格이나 學識을 남이 잘 알고 잘 待遇함.
지사(指使);--지시하고 부림
건정(乾淨.간정.)--깨끗하고 말끔함. 일의 뒤끝이 말끔하여 후환이 없음
등해(燈海)--넓은 지역에 등불이 총총하게 많이 켜 있는 모양
용종(龍鍾)-①눈물 흘리는 모양. ②늙고 병든 모양. ③失意한 모양. ④대나무의 一種
필연(疋練)-한 필의 누인 명주. 흰 비단처럼 보이는 물건
의부(蟻附)--개미떼처럼 떼지어 달라붙음.
수신(守臣)--일정한 지방을 지키는 신하
수의(繡衣)--감사.繡衣閤下.
곤수(梱帥. 閫帥)- 水使. 兵使를 예스럽게 부르는 말
혼설(混說)--무턱대고 이야기함. 도설(掉舌 ;掉는 흔들다)
침재(鋟梓)= 책을 인쇄함. 鋟은 새기다
정거(停車)=얼마동안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게 함
돈정(敦定)=확실히 정함.
훤등(喧騰)= 평판이 높음
영략(領略.영약)--뜻을 깨달음. 領會. 領解
도구(菟裘.토구)--地名. 숨어서 살려는 별장
별업(別業)--별장. 별서(別墅)
상황(徜怳)(상황)-- 머뭇거릴 상.멍할 황
명부(命婦)--여자로서 封號를 받은 사람. 內命婦(妃嬪等 宮內 封爵)/ 外命婦(公主. 王妃 및 男便을 따라 封號를 받은 士大夫의 아내)
종정옥백(鐘鼎玉帛)--食事前에 音樂이 演奏되고 식당에는 山海珍味가 가득하며 酒宴뒤에는 옥과 비단의 선물이 나오는 호화로운 연회
종명정식(鐘鳴鼎食)--부귀한 사람의 생활
정종(鼎鐘)--솥과 종. 모두 宗廟에 갖추어 놓은 국가의 寶器
오루(梧淚)--어머니를 잃은 눈물.(父死杖用竹 本在下.母死杖用桐 上圓下方)
왕옥(王獄)--禁府獄. 조선 때의 감옥. 의금부에서 官人犯罪者와 兩班階級 犯罪者를 가두던 곳
승소(承召)--임금의 부름을 받음
별성(別星)--奉命使臣. 집집이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한다는 女鬼
근행(覲行)--근친하러 가거나 옴. 근친(覲親;친정부모를 뵈오러 감)
계청(啓請)--임금에게 아뢰어 청함. 주청(奏請)
점두(點頭)--승낙하거나 옳다는 뜻으로 머리를 약간 끄덕임
선력(宣力)--애써 주선함.
공구(供具); 부처나 보살에게 공양하는 香. 華. 幡蓋. 飮食등. 또는 그런 것을 공양하는데 쓰는 그릇
절새(絶塞)--먼 변경지대
향시(嚮時)--嚮者(향자). 접때, 向時. 向者
부첩(簿牒)--장부
인연(夤緣)--뇌물을 쓰거나 연줄을 타서 출세하려함. 연속함. 줄지어 있음. 달라붙음.夤(조심할 인. 두려워함. 이어짐. 관계가 미침)
적몰(籍沒)--형벌의 하나. 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까지 처벌하는 일
연좌(緣坐)--일가의 처벌에 관련되어 처벌당함
반포(反哺)--부모의 은혜를 갚음
입이(立異)- 다를 意見이나 異論을 세움. 以首相으로 立異하다(수상은 영의정)
궁위(宮闈)-궁궐. 교횡(驕橫)--교만하고 횡포함
준책(峻責)-준절하게 꾸짖음. 峻節(높고 고상한 절개)
척리(戚里)-임금의 內戚과 外戚
촉장(促裝)-行裝을 재촉함
휴구(休咎)-기쁜 일과 언짢은 일. 길흉, 화복
불숙(不淑)-①착하지 못함. ②불행한 일. ③나라가 망함
청간(靑簡)-서적을 이르는 말. 옛날 종이가 없었을 때 종이대신 푸른 대쪽을 불에 쐬여 기름기를 빼고 글씨를 썼음.
동접(同接)--같은 곳에서 함께 공부함. 글동접. 同硯. 同門 同窓. 同接契
입계(入啓)- 임금에게 상주하는 글을 올림
봉복(捧腹)- 배를 잡고 웃음.捧腹絶倒= 抱腹絶倒
횡리(橫罹)- 뜻밖에 재앙을 당함. 의외의 횡액에 걸림
수사(收司)--죄를 들추어 냄. 잡아서 조사함. 옛날 中國에서 10家가 한 組를 이루어 그 중에 한집이 죄가 있을 시 다른 아홉 집이 관청에 고발하던 제도.
정적(情迹)-감정으로 느낄 수 있는 흔적 사물의 정세와 형편. 情況
공보(公輔)-三公과 四輔. 함께 천자를 보좌하던 대관.
四輔(임금의 좌우전후에서 임금을 보좌하는 사람. 左輔 右弼.前疑 後丞)
근포(跟捕)--죄인을 쫓아가 잡음. 미행하여 체포함.跟(따르다 수행하다. 시중들다)
회확(恢廓)--크게 넓힘. 도량이 넓음.
상장(上章)--임금이나 관청에 글을 올림. 庚年의 딴 이름
번연(幡然)--선뜻 태도를 바꾸는 모양. 깨끗이 飜意 하는 모양
방통(旁通)--조리 있게 자세하고 분명하게 앎. 幡然開悟(모르던 사리를 갑자기 깨달음)
습봉(襲封)--제후가 영지를 이어 받음. 龍庇其襲封之祖
지부해함(地負海涵)--땅은 만물을 지고 바다는 넓은 지역을 적신다는 뜻으로 “지식 따위의 넓고 큼”을 이르는 말 . 語其大則○○○○. 先生之學 可謂 ○○○○.
기우(奇耦)--詩文中에 騈儢(변려.병려)를 耦라하고 변려가 아닌 것을 奇라 함
시의(時議)--그 때 사람들의 의논
주사(舟師)--수군(水軍). 배를 타고 싸우는 軍隊
체찰사(體察使)--지방 軍亂이 있을 때 왕을 대신하여 그 지방에 나아가 一般軍務를 총괄하던 軍職으로 임시 벼슬임. 재상이 겸임함.
기찰(譏察)-엄중히 살핌. 비밀히 탐사함. 범인을 잡으려고 수소문하여 염탐하여 행인을 임시 검사함. 逆賊이 非如鳥獸魚鼈處處生産之物하야 難以譏察이라
달관(達官)--高官. 높은 벼슬 子路曰 傷哉貧也 生無以爲養 死無以爲禮
백정(白梃)--희고 굵은 지팡이 孔子曰 啜菽飮水 盡其歡 斯之謂者
방거(紡車;방거)--물레
파복(皤腹)--커다란 배. 배가 불룩하여 살찐 모양.
종종(種種)--머리털이 짧게 모지라진 모양
숙수(菽水)--콩과 물. 변변하지 못한 음식. 孔子曰 啜菽飮水 盡其歡 斯之謂者
숙수지공(菽水之供)--가난한 중에도 정성껏 어버이를 모심
숙수지환(菽水之歡)--가난한 처지에도 부모에 효도하여 그 마음을 즐겁게 함
숙속(菽粟)--두류와 곡류. 사람이 常食하는 것으로 없어서는 안될 물건
숙속지문(菽粟之文)--세상에 널리 알려진 아주 쉬운 글
거연(居然)--그대로 온통. 편안한 모양. 安然. 사물에 동요되지 않는 모양. 머물러 있는 모양
송명(松明)--관솔 불 .송명화(松明火). 松火
여차(旅次)-여행중 머무는 곳. 편지할 때 아랫사람에게 씀.大米數石 以拱旅次之用
공극(孔棘)-대단히 급박함.國事孔棘하야 不遑退食이라. 遑(급함. 겨를)
앙장(鞅掌)--일이 매우 바쁘고 번거로움. 번로(煩勞)
번무(繁務)--매우 바쁜 사무
염희(恬嬉-념희)--맡은 사무를 개을리 함
번갈(煩渴)--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른 症
한훤(寒暄)--날씨의 춥고 더움
어주(御廚)--수랏간
행재(行在)--임금이 순행중 일시 머무는곳
주필(駐蹕)--임금이 나들이하는 도중에 거가(車駕)를 잠시 머무르거나 경숙(經宿)하는 일
경숙(經宿)-임금이 대궐 밖 다른 곳에서 밤을 지냄
탈가(稅駕;세가);사람이 정착하는 곳.(莫知탈가,吾未知所탈가也). 稅는 거두다. 두다 방치하다 의 뜻
반함(飯含)--염습할 때 죽은 사람의 입 속에 구슬이나 쌀 동전 등을 물리는 일
극인(棘人)--몹시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 부모의 상을 입은 사람이 자기를 일컫는 말 喪制
가벽(呵壁)--자신의 함은 미치지 못하나 정의감에 북받쳐 벽을 보고 꾸짖음.呵壁問天
자사(子舍)--아들. 아들이 거처하는 곳. 正室 以外의 다른 곳
이궐(貽厥)--孫子 또는 子孫을 爲하여 남기는 계책
권점(圈點)--㉠방점(傍點). ㉡弘文館의 官員을 登用할 때 후보자들의 성명을 죽 적어 놓고 銓選官들이 각각 기용하고자하는 사람의 성명아래 찍는 둥근점
공첩(公牒)--政府나 公共團體에서 내는 公事에 관한 意思通知
두담(斗膽)--매우 큰 쓸개
협의(愜意)--서로 뜻에 맞음
창두(蒼頭)--奴僕
주장(周章)--두로 돌아다님. 허둥지둥함. 놀라서 어리둥절함
모릉(模稜)--決定을 짖지 못하여 可否가 없음
영위(榮衛)--血氣. 榮은 血. 衛는 氣
윤균(륜균.輪囷)--높고 큰 모양. 굴곡의 모양
책언(責言)--힐난
군척(捃摭)--주워 모음.採摭
두수(抖擻)--깨끗이 씻어 버림. 털어 버림.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없애 버림. 분발. 떨처 일으킴. 정신을 차리게 함
낭탐(狼貪)--이리와 같이 욕심이 많음 以若壯健之身 猶被吾輩處置 便如
화가(畵舸)--유람선(그림이 있는) 走韓盧而博蹇兎라 今汝纔免黃口之兒
한노(韓盧)--戰國時代 韓나라의 털이 많은 名犬 敢爲妻家 作推奴之行 汝就死地
황구(黃口)--새 새끼. 어린아이. 경험이 없는 미숙한 사람/ 便是滄浪
진췌(殄瘁)--모두 지쳐 괴로워 함. 병들고 시듦
태뇌(太牢)--㉠제사에 소, 양, 돼지 세 犧牲이 갖추어 짐. 맛좋은 음식. 성대한 잔치
은괄(檃栝)--잘못을 바로 잡음. 檃은 굽은 것을 바로 잡는 것 (도지재 은).栝은 뒤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
농조(籠罩)--고기 잡는 가리. 새장 속에 넣은 것처럼
도해(蹈海)--바다에 투신하여 죽음. 고결한 지조를 말함. 바다를 건넘. 위험을 무릅씀을 말함
승간(乘間;승극-乘隙)--잠시 틈을 탐, 겨를을 이용함
창방(唱榜;방방-放榜)--과거 及第者에게 증서를 줌. 頒稗
부옹(婦翁)--사위에 대하여 장인의 지칭
구경(究竟)--사리의 마지막, 필경. 窮極
절책(切責)--매우 심하게 책망함. 深責
감면(酣眠)--酣臥. 깊이 잠듬. 충분히 잠
중화(中火)--길가는 도중에 지어먹는 밥. 점심
과공(課工)--일과로 정해 놓고 하는 공부
봉내(封內)-封彌. 과거를 볼 때의 절차
봉환(封還)-사표 따위를 봉한 채 그대로 돌려보냄
추행(楸行)--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려 감
고명(誥命)--五品官 이상의 관리 임명시 주는 사령장
공거(公車)--兵車
계행(啓行)--앞장서서 길을 이끌어 줌. guide. 여행길을 떠남
어핍(語逼)--말이 남의 꺼리는 곳에 가까워 짐.곧 남의 아픈 곳을 다칠 것 같음. 말을 삼가야 함
감사(減死)--죽을 죄인의 형을 감함
대변(對辯)--어떤 사람이나 기관을 대신하여 그 의견이나 입장을 발표함
사불급설(駟不及舌)--한번 입밖에 낸 말은 駟馬도 따라 잡을 수 없음. 駟馬不能追
駟馬高蓋 其憂甚大 高貴之畏人兮 不若貧賤之肆志 造父(조보)-周 穆王의 御者
駟馬不調 造父 不能以取道 君臣不和 聖人不能以爲治也 -馬術의 名人
식곡(式穀)--좋은 사람을 씀. 式은 用. 穀은 善
폭죽절(爆竹節)--정월 초하루. 설날 爆竹을 터트리며 雜鬼나 厄運을 쫓아냈다고 함
촉광(속광.屬纊-屬絖)--臨終. 臨終시 솜털을 코에 대어보아 殞命하였는지 알아봄.
강공일신(杠功一身)--필생의 노력을 기우려 성취하다.
강공(杠功)--공을 이루다. 成功. 杠(올릴공 擧.이룰 강.깃대 공)
서욱(胥勗)--서로 힘쓰다. 함께 힘쓰다. 胥(다 서. 서로 서.皆也)
몽진(蒙塵)--임굼이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 감. 파천(播遷) 播越
대간(臺諫)--司憲府와 司諫院 벼슬의 總稱
낙역(락역.絡繹 絡驛)--人馬의 往來가 끊어지지 않음
형혹(熒惑)--天災나 兵亂의 徵兆를 보여준다는 별의 이름. 熒惑星
왕부(王府)--조선시대 의금부를 달리 이르는 말
종백(宗伯)--宗伯府. 禮曹의 딴 이름(禮曹는 東銓(동전)이라고도 함. 西銓은 兵曹)
남두(南斗)--28수의 여덟 번째의 별
제반(躋攀)--높은 곳을 향하여 기어올라감. 躋(오르다). 攀(휘어잡다. 매달리다. 의지하다)
포주(庖廚)--부엌. 주방.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
준모(俊髦)--才德이 뛰어난 사람. 모(뛰어날 모). 雋髦
강장(絳帳)--붉은 휘장, 絳帷. 스승의 자리, 學者의 書齋 後漢의 巨儒 馬融이 高堂에 앉아 붉은 휘장을 두르고 그 앞에 生徒를 앉혀 놓고 가르친 데서 나온 故事
착락(錯落)--온통 깔림. 뒤 썩김
조획(措畫. 措劃)-조치함. 조치
울유(鬱攸)--불의 귀신. 火神
지중(持重)--정도를 굳게 지킴. 무게 있는 위엄을 유지함. 신중함
전제(筌蹄)-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토끼를 잡는 올가미. 곧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을 이름. 引導. 사대부가 講話할 때 손에 쥐던 것. 拂子따위
제전(蹄筌)--올무와 통발이라는 뜻으로 ‘道를 풀이한 文字와 言說’을 비유하여 이른 말. 문자와 언설은 도를 깨닫기까지의 도구가 되므로 이르는 말
회유(誨諭)--가르쳐서 깨우침. 타이름
순복(諄復)--장황히 되풀이하여 말함. 見君復呼子 誨言甚諄復
친자(親炙)--스승에게 가까이하여 친히 그의 가르침을 받고 몸소 감화를 받음
속의(屬意)--어떤 대상에 마음을 둠. 마음을 붙임. 희망을 걺.
사수(斯須)--須臾.잠간동안. 禮樂不可斯須去身
녹동아호(鹿洞鵞湖)--녹동은 백록동으로 朱子가 講하던 곳이고 아호는 江西省에 있는 山으로 朱子가 呂祖謙, 陸九淵兄弟와 學問을 講하던 곳임
취지(揣知;췌지)--헤아릴 췌. 혹은 취. 揣度(췌탁)
극명(克明)--속속들이 밝힘. 임금의 도리를 다함
저사(底事)--왜. 어찌하여. 我逢暗主投江死 爾遇明君底事來-表沿末
준분(駿奔)--질주. 썩 빨리 달림
청금(靑衿.靑襟)--학생이 입는 옷. 學生. 儒生. 靑衿之士
치의(緇衣)--검은 옷. 僧服. 중
쉬려(淬勵. 淬礪)--몹시 애써 학문을 딱음. 淬(담금질할 쉬)
남상(南牀)--홍문관 정자의 딴 이름
사판(仕版)--관리의 명부. 職員錄
권조(權厝)--임시로 매장함
위예(違豫)--질병
반궁(泮宮)--成均館과 文廟의 總稱. 벽옹(辟雍).
대간(臺諫)--諫言을 맡아보던 官吏로 司憲府. 司諫院의 總稱
예연(禮宴)--예를 갖추어 베푼 宴會
망조(罔措)--罔知所措. 당황하여 어쩔줄 모름. 허둥지둥함
청관(淸貫)--侍從의 벼슬
채흥(綵興)--왕실 儀式때나 귀중품을 옮겨 싣는데 사용하던 교자와 흡사한 기구
진첩(震疊)--존귀한 사람이 성을 내어 그치지 아니함
헌의(獻議)--윗사람에게 의견을 드림
사륜(絲綸)--조칙(詔勅)의 글.
경사(京師)--서울
수규(首揆)--영의정을 달리 이르는 말
태재(太宰)--관리 중의 으뜸 벼슬. 이조판서
책려(策勵)--채찍질하여 격려함/ . 計策.
훈설(訓說)--글자나 글의 새겨 읽기와 뜻의 풀이. 훈해(訓解)
무우(無虞)--뜻밖의 일/. 예상하지 아니한 일
기덕(耆德)--덕이 높은 것
작작(綽綽)--침착하고 여유가 있는 모양
공벽(拱璧)--큰 寶玉 .
수수(滫瀡)고대 요리의 일종으로 綠末을 음식물에 섞어 부드럽고 걸죽하게 한 음실
弭(편안할 미. 그칠 미. 쉴 미) 弭災
原=용서하다. 罪不可原者. 원견(原遣)--죄인을 용서하여 놓아 줌. 釋放
휼(恤)-돌보다. 동정하다.一身之私計를 不可恤也
閈(한. 낮은 담.里門). 昕(흔. 날이 샘. 해가돋음) 同居共閈 昕夕歡顔
魄-달(月)
蕆(천.전) --갖추다. 준비하다.謹蕆薄羞
祀(年:해.)--樹德百祀 人文赫赫. 騫(이지러질 건.虧) 蹇(절다).謇(말더듬다)
潰(흩어질궤).撓(요란하다,시끄럽다.꺽다-撓屈). 剿(끊을초. 죽일초) 剿殺. 勦수고할초.剿仝
銜(.啣.);마음에 품다.追銜宿怨 餕(준. 대궁.먹다남은 음식. 제사음식).
拱(팔짱끼다.아무일도 않음.한아름되다 先生之墓木已拱而石未具)
연좌제-- 연좌제는 혈연을 연좌시키는 緣坐와 동업자를 연좌시키는 連坐로 나뉘는데 후자는 벼슬한 자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부패했을 때 그를 그 자리에 천가한 사람(거주;擧主)과,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同務나, 더불어 사는 이웃끼리의 연좌다. 이 연좌는 周禮에 나오는 五家作統에서 뿌리를 찾는다. 이웃 다섯 집이 서로 의탁하고 서로 화친하며 잘못을 견제하고 또 고발케 하는 제도로, 그것을 게을리 하거나 범했을 때 다섯 집 모두를 연좌시켰다. 진나라 法家인 상영은 五家作統을 정착시키고자 죄를 고발하지 않으면 허리를 베어 죽이는 극형에 처했기로, 父子. 夫婦, 兄弟 간에 불신하고 의심하며 사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연좌는 가족 친척에게 미치는 연좌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世祖가 쿠데타 成功후에 성삼문의 아내를 비롯한 死六臣의 아내들을 쿠데타 공신의 婢女로 下賤시키고 있다. 대역죄의 주범이나 종범은 능지처참하고 범인의 아버지와 아들은 16세 이상이면 모두 목 졸라 죽였으며, 15세 미만과 어머니 딸 처 첩 할아버지 손자 형제자매는 공신 집안의 종으로 삼고 재산은 몰수했다. 그리고 8촌까지는 유배시키거나 벼슬을 못하게 하거나 과거를 보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주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까지 벼슬에서 소외시키는 미래 연좌까지 했다. 또 죄인이 살았던 고을의 邑號까지 강등시켜 한 고을 사람까지 불이익을 분배시켰던 것이다. 甲申政變으로 김옥균이 大逆罪人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10년 옥살이 끝에 絞殺당하고, 어머니와 누이는 연좌의 치욕을 피하여 자결했으며, 동생은 옥사하고 어린 딸 때문에 죽지 못한 부인은 옥천 官婢로 하천 당했다. 혈연의식이 남달리 끈끈한 정착민족인지라 통치수단이나 士禍등 정적 숙청, 반대당 거세 등에 악용되어 한국사를 피비리게 한 연좌제이기도 하다.
초선(貂蟬)--담비와 매미. 고귀한 사람의 모자의 장식으로 담비의 꼬리를 달고 둥근 부분을 둘러 마치 매미의 날개를 붙여놓은 모양으로 꾸몄다. 고관의 모자 장식을 일컫던 말이 나중에는 고관의 별칭으로 쓰인 것이다.-- 삼국지의 유명한 미인계의 주인공, 천하제일의 미녀 이름이 貂蟬이다. 때는 後漢 말기, 동탁과 여포가 결탁하여 나라를 어지럽혔다.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는 둘을 제거해야겠는데 도저히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王允이라는 신하가 천하제일의 미녀 초선을 자기의 딸로 삼고 여포를 초청하여 시중을 들게 했다. 여포는 초선에게 반해버렸고,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을 주기로 약속한 다음, 동탁에게도 똑같이 했다. 결국 여포와 동탁은 원수지간이 되어버렸다.
양약고구(良藥苦口)--司馬遷 史記 留後世家편, 漢 代까지 전해오던 古書의 내용을 모았다는 孔子家語, 韓非子의 外儲說左上편에 나옴. 秦始皇이 죽은 휴 천하를 다투게 된 劉邦과 項羽는 초나라 懷王(義帝)의 命을 받아 秦나라 首都 함양에 쳐들어간다. 먼저 함양에 들어간 유방은 아방궁의 매력에 흠뻑 빠져 그곳에서 살고자 했다. 동서이자 수행장인 번쾌와 참모 張良이 간했다. “애당초 진이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해서 인심이 떠났기 때문에 주군께서 이곳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진의 땅으로 들어오자마자 환락에 젖는다면 진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양약고어구이리어병. 충언역어이이리어행”이라고 했다. 이 간언을 듣고 제정신이 돌아온 유방은 진의 창고를 봉인하고 고향인 패상으로 돌아갔다. 이 때문에 인망이 그에게 쏠려 훗날 漢을 세우는 디딤돌이 됐음은 물론이다. 유방이 주변에 번쾌와 장량같은 현량한 諫臣을 두고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으나 유방 또한 그러한 충언을 귀담을 만한 큰그릇이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지도자는 아첨과 충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孟嘉落帽(맹가낙모)-秦의 孟嘉(字는 萬年)가 龍山에서 酒宴이 있을 때 바람에 맹가의 모자가 떨어져도 맹가는 이를 모르고 있자 桓溫이 맹가를 놀리는 글을 짓자 이에 화답하는 맹가의 글이 매우 아름다웠음 (蒙求의 標題)
병길문천(丙吉問喘)
여도지죄(餘桃之罪)ㅁ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말. 위나라 임금의 총애를 받던 미소년 미자하가 복숭아를 먹다 맛이 너무 좋아 임금에게 주었다. 그 맛있는 복숭아를 받아먹은 임금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훗날 미자하가 나이를 먹어 고운 자태를 잃자 임금은 그 일을 트집잡아 미자하를 매몰차게 나무랐다.
도리불언(桃李不言.下自成蹊)--桃李는 말이 없어도 아름다운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길 정도라는 뜻. 중국 漢나라 때 이광(李廣)이란 명장은 용맹하기 짝이 없어 일생동안 70여 차례 흉노와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飛將軍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원래 말재주가 없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정 간신들의 오해와 미움을 많이 샀다. 60여세 때 최후의 싸움에 패하여 자살한 것도 간신들의 中傷謀略으로 지원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온 국민이 비탄에 잠겼다. 평소 아무 말이 없었는데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당시 역사 기록에서 인용한 속담이 ‘도리불언 하자성혜’이다.
滄海桑田(창해상전)--상전벽해. 진나라 葛興이라는 사람이 엮은 神仙傳에서 처음 나온 말. 마고라는 선녀가 있었는데 하루는 麻姑가 地上에서 道을 닦는 도사 王方平의 부름에 응하여 蔡經이란 사람의 집으로 내려왔다. 마고의 용모를 보니 20세정도 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왕방평이 마고에게 도대체 실제 나이가 몇 살인지 묻자 마고는 확실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아니 보아하니 20세 정도이겠는데 자기 나이를 모른단 말이오? 하자 마고는 글쎄요 내가 사는 동안 저 바다가 뽕나무밭으로 변하고 또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하는 것을 세 번 정도 보았을 다름이지요 라고 대답했다. 옛날에는 경작지 이외의 땅에 뽕나무를 주로 심어 누에를 키웠기 때문에 뽕나무밭이 육지의 대명사로 많이 쓰였다.
정문입설(程門立雪)--제자가 스승을 지극히 받듦.. 유작(유초;游酢)과 양시(楊時)가 정이(程伊川)를 뵈었을 때 그가 瞑目하여 앉아 있으므로 侍立하고 있었다. 물러가라고 했을 때는 문밖에 눈이 한자나 쌓여 있었다는 故事. 晨造門外待朝,喜曰不意今日 復見立雪之人. 造는 다다르다. 도착하다
원헌빈(原憲貧)--魯의 原憲(孔子의 弟子)이 淸貧한 生活을 했다는 故事에서 “淸貧한 生活”을 이름.汝知原憲否 原憲不傷貧 貧爲士之常 安貧終不貧.
위편삼절(韋編三絶)--공자가 역경을 애독하여 죽간(竹簡)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독서에 힘씀’을 이르는 말
臥薪嘗膽(와신상담)--吳나라 왕 합려는 越나라 왕 句踐과 싸웠다가 大敗하고 重傷을 입었다. 합려는 아들 夫差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그래서 부차는 편한 잠자리를 마다하고 장작더미 위에 앉고 누워, 復讐의 일념을 불태웠다. 얼마 후에 부차는 구천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구천은 臣下가 된다는 條件으로 부차에게 항복하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구천 역시 夫差에게 복수를 한다는 일념으로 항상 곁에 짐승의 쓸개를 매달아 놓고 그 쓰디쓴 것을 핥으며 지냈다. 10여년이 지난 후 句踐은 결국 오나라를 공격하여 대패시키고 부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구천은 부차를 安心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術數를 쓴다. 저라산(苧蘿山)에서 나무 장사를 하던 절세미인 西施를 얻어 오왕 부차에게 바쳐 夫差로부터 歡心을 사고 월나라에는 양식이 부족하다며 부차에게 식량을 구걸한다. 부차는 전승후 驕慢과 自慢에 빠져 재상 伯嚭(백비)의 말만 듣고 忠臣 伍子胥를 죽이고 구천에게 양식을 준다. 구천은 이것으로 軍糧米를 備蓄하는등 軍備를 擴充하여 國力을 培養한 다음 오나라를 공격하여 부차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였음, 吳나라 宰相 백비는 事前에 越의 句踐과 내통이 된 間諜이었는데도 부차는 백비의 말만 듣다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음)--[구천에세 사랑하는 妾이 있었으니 이가 곧 모장[毛嬙]이다]
백과사전에서 해설--BC 496년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월(越)나라로 쳐들어갔다가 월왕 구천(句踐)에게 패하여 전사하였다. 그 아들 부차(夫差)는 이 원수를 갚고자 본국으로 돌아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ꡒ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ꡓ하고 외치게 하였다. 부차의 이와 같은 소식을 들은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먼저 쳐들어갔으나 패하고 말았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말이다.
한편, 싸움에 크게 패한 구천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를 거느리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을 하였으나 견디지 못하고 오나라에 항복하였다. 포로가 된 구천 내외와 신하 범려(范蠡)는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은 끝에 영원히 오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는 돌아오자 자리 옆에 항상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늘 이 쓸개를 핥아 쓴맛을 되씹으며 ꡒ너는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잊었느냐!ꡓ하며 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이 상담(嘗膽)에 대한 이야기는 《사기(史記)》 월세가(越世家)에도 나온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쳐서 이기고 오왕 부차로 하여금 자살하게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와신상담은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이 합쳐서 된 말로 ꡐ회계지치ꡑ라고도 한다.
서시(西施)
저라산(苧羅山) 근처에서 나무장수의 딸로 태어났다. 절세미녀였기 때문에 그 지방의 여자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 병이 들었을 때의 서시의 찡그리는 얼굴까지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방빈(倣)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또 오(吳)나라에 패망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 범려(范蠡)가 서시를 데려다가, 호색가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후에 서시는 범려와 함께 오호(五湖)로 도피했다고도 하고 또는 강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구천(勾踐; ? - BC 465)
아버지 윤상(允常)이 죽은 뒤 왕위를 이어받자마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싸워 그를 죽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한다. 2년 후인 BC 494년에 구천은 부차에게 패배하여 회계산(會稽山)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가 되었다. 그 후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이것이 ꡐ와신상담(臥薪嘗膽)ꡑ의 고사(故事)이다. 그리하여 끝내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서주(徐州)에서 제후와 회맹(會盟)하여 패자(覇者)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명신(名臣) 범여(范蠡)를 추방하고 대부종(大夫種)을 자살하게 하는 등 만년에는 지각없는 행동을 많이 하였다. 최근에 후베이성[湖北省] 장링[江陵]의 망산일호초묘(望山一號楚墓)에서 ꡐ월왕구천자작용검(越王勾踐自作用劍)ꡑ이라는 명(銘)이 있는 아름다운 동검(銅劍)이 출토되었다.
범 려(范蠡)---
-자 소백(少伯). 초(楚)나라 사람. BC 494년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이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패하고 20여 년 뒤 오나라를 멸망시킬 때, 대부(大夫) 종(種)과 함께 부차를 자살하게 하였다. 그러나 구천을 더이상 섬길 수 없는 군주라고 생각하여, 월나라를 버리고 제(齊)나라로 갔다. 이름을 치이자피(隋夷子皮)라 고치고, 해변(海邊)을 일구어 거부가 되었다. 제나라에서 그의 현명함을 듣고, 재상(宰相)으로 삼았다. 얼마 뒤 재상자리를 버리고, 재물은 모두 친지 ․향당(鄕黨)에게 나누어주었다. 당시 교통 ․상업의 중심지 도(陶:山東省 定陶縣)로 가서 도주공(陶朱公)이라 칭하고 상업에 종사, 다시 거만(巨萬)의 재산을 모았다. 치이자피나 도주공이 그와 동일인물이었는지는 의심스러우며, 사마 천(司馬遷)이 이전(異傳)을 모아서 그의 전기를 지어 낸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