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신 같은 등신불
누가 함부로 몸을 불사르는가?
얼마 전 소신공양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소신공양이란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이다.
소신공양에 대한 이야기는 김동리 소설 등신불에서 잘 나타나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는 일제강점기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정원사라는 절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금불각의 등신불을 보게 되는데, 이는 당나라 시대 ‘만적(萬寂)’이라는 스님이 인신공양을 하고 타다 남은 몸에 금을 입힌 것이었다.
먼저 인간사 번뇌를 끊기 위해 소지공양을 한다. 글자 그대로 손가락을 기름종이로 감싼 다음 불을 지르고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고해의 바다를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그만 온몸에 불을 지르는 야만적인 행위를 한 결과 등신불이 된다.
등신불은 처음 ‘몸을 불살라 세상의 불쌍한 중생들을 구하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여기서 ‘몸을 불사르다’는 말은 그만큼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지 결코 몸에 불을 붙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몽매한 수행자들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라’는 뜻으로 알고 실제 몸에 불이 붙이는 진짜 ‘등신’같은 짓을 한 것이다. 깨달음은 살아있을 때나 구하는 것이지 불에 타죽게 되면 고통의 기억만 남게 되어 구천을 떠돌게 된다.
이같이 등신불은 등신들이나 하는 짓이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이는 결코 하지 않고 해서도 안된다. 아울러 등신짓을 하는데 옆에서 말리지 않으면 자살 방조죄가 되어 처벌받는 세상이다.
깨달음은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육체가 있어야 가능하다. 영혼의 상태에서는 느낄 수 있는 육체가 없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특히 죽을 당시의 기억은 귀신이 되었을 때 온전히 지니게 된다. 그래서 여한 없이 잘 죽어야 사후세계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혼은 자신에게 맞는 육체를 받아 이 세상에 오기까지 지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중한 육체를 얻었으면 육체가 있을 때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온몸을 불태울 만큼 노력해도 모자랄 이 땅에서의 사명은 다하지 않고 실제로 몸을 태우면 재산피해와 공해만 발생한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