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어린이 안전에 앞서 보행자 배려 없는 우리 도로 문화를 다시 되돌아봐야 한다
영화 <분노의 질주 : 더 세븐> 스틸 컷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자동차가 먼저일까, 사람이 먼저일까? 당연히 사람이 먼저이겠지만, 실제 도로에서는 자동차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교통문화 선진국에서는 사람이 보이기만 해도 일단 서는 일이 습관화 됐는데, 우리 도로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주변 차들의 경적 세례를 각오해야 한다.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된 민식이법은 우리 도로 문화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법이다. 스쿨존에서 한 아이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을 계기로 만든 법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 신호등과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운전 부주의로 스쿨존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좋은 취지로 법을 만들었지만 민식이법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처벌이 너무 가혹하다며 악법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교통 약자인 어린이 보호를 위한 취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선다. 형평성 문제나 법 해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견이 갈리는 쪽은 서로 법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주장의 논점이 잘못됐다는 등 공방을 이어간다.
논란이 이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므로, 좀 더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개정하거나 보완하는 절차를 거치면 된다. 법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풀고 넘어가야 한다. 논란이나 문제 여부를 떠나, 민식이법을 계기로 다시 생각할 문제는 도로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나라 도로는 여전히 자동차가 우선이다. 도로 위 사람의 안전을 위하기보다는 자동차의 편의를 먼저 따진다. 사람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골목에서 차와 사람이 함께 갈 때 사람 보고 경적을 울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차가 옆에 지나가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울리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비키라는 신호다. 차가 비켜 갈 수 있는 데도 진로를 방해하지 말라고 사람보고 비키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차 소리를 듣고 보행자가 알아서 비켜 갈 때까지 천천히 기다리며 따라가는 차는 보기 힘들다. 골목이라면 사람과 차가 함께 섞여 다니는 곳이다. 사람이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곳인데도 차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운전자가 대부분이다.
횡단보도는 사람이 건너다니는 곳이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도로교통법에는 보행자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말고 정지선에 일시 정지하라고 규정해놨다. 횡단보도만 단독으로 있는 곳은 정지신호를 무시하는 차들이 많다. 심지어 사람이 건너는 데 지나가는 차도 있다. 통행량이 많은 곳은 정지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차가 계속 지나가, 보행자가 건너지 못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교차로는 차들이 교차하는 곳이라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자신이 사고를 당할 수 있어서 자동차가 그나마 신호를 그나마 지키는 편이지만, 단독 횡단보도와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이 건너고 있어도 차들이 지나가기 일쑤다.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면 뒤차들이 빵빵거리며 가라고 재촉한다. 보행자는 파란불에 건너가는 데도 지나가는 차를 조심해야 하고, 오히려 자동차 눈치를 봐서 신호가 여유롭게 남았는데도 뛰어서 건너간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는 말할 것도 없다. 건너려는 사람이 보이면 자동차가 일단 서야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사람이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지나가려 하면 오히려 자동차가 통행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건너지 못하게 경적으로 위협하거나, 사람이 건너는데도 아슬하게 옆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요즘은 교차로 횡단보도 신호를 일시에 주는 곳이 늘었다. 사방 차가 다 서고 전체 횡단보도를 사람이 일시에 사용하는 신호체계다. 차와 사람을 분리해 안전성을 높이는 목적인데, 오히려 이때를 이용해 지나가는 차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보행자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뚫고 자기 갈 길을 간다.
신호가 있는 곳이든 없는 곳이든 사람이 건너는 횡단보도에서 자동차가 사람을 주의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동차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황색불이 켜지면 자동차가 서야 하는데, 빨간불이 켜진 후에도 지나가니 보행자가 파란불이 들어왔는데도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도로교통공단 조사에 따르면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의사를 표시하고 횡단을 시도했을 때 운전자가 정차한 경우는 22%에 그쳤다. 얼마나 운전자 위주로 도로가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어린이보호구역이라면 더욱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시속 30km 이하로 달렸으니 주의의무를 다 했다고 할 수 없다. 도로 위 어린이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속도를 더 줄이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무조건 섰다 가는 등 다른 곳보다 더 신경 써서 운전해야 한다. 어린이보호 자동차가 정차해서 아이들을 태우고 내릴 때는, 어느 곳이든 간에 뒤에서 기다려야지 절대로 추월해서는 안 된다.
우리 도로는 사람보다 자동차와 운전자 편의가 우선이고, 자동차 통행이 방해받아서는 안 되고 빨리 가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운전자에 불편한 상황을 참지 못하고,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고 배려하는 데 인색하다.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이 번거롭고 횡단보도를 비롯해 도로 위에서 법을 제대로 따르는 일이 귀찮을 수 있다. 그런데 배려하고 법을 준수하는 태도가 정상이다. 운전자에 불편한 상황도 따지고 보면 운전자 위주로 판단하는 이기심 때문이다.
지금 도로 위에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통하는 일이 너무 많다. 어린이보호구역은 더 까다롭게 지켜야 하니 더 불합리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보행자 중에서도 어린이의 특성을 고려하면 더욱더 철저하게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 민식이법을 두고 논란이 되는 부분도 배려하는 운전이 생활화되고 법과 상식에 따라 운전한다면 크게 문제 될 부분은 없다. 운전자 위주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출처 : 오토엔뉴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