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로 읽는 논개 이야기 ❸
이애미 붉은 꽃타래
박일만 시인
의기를 노래하다 / 김택영
義妓歌
푸른 강물은 빛나는 그날의 치마빛이런가
강 위에 피는 꽃은 숨 쉬는 그녀의 넋이런가
강 밑에 잠겨 있는 그 뼈나마 거두어
천년토록 우리들 곁에 모셔두자
江水羅裙碧(강수나군벽) 江花魂氣遲(강화혼기지)
願收江裏骨(원수강리골) 千歲傍要離(천세방요리)
외로운 바위에는 봄바람 스치고
쓸쓸한 사당엔 이끼만 무성하다
오늘날 강가를 거니는 여인들은
물에 비친 모습 바로 그 미인일세
孤石春風厲(고석춘풍려) 荒祠蘚色滋(황사선색자)
至今江上女(지금강상녀) 照水正蛾眉(조수정아미)
얼마나 아름다웠으랴 춤추는 그대 모습
얼마나 고왔으랴 그대의 머리단장
나 이제 와 그대의 서린 원한 물어보니
강물만 소리 없이 흐르고 흐르네
愛娘眞珠舞(애낭진주무) 愛娘錦纒頭(애낭금전두)
我來問芳怨(아래문방원) 江水無聲流(강수무성류)
-------------------------------
▶김택영(金澤榮 : 1850~1927), 황해도 개성 生, 조선 말엽 학자, 시인, 저서 안중근전 한국역대소사 한사경 교정삼국사기 신고려사 등, 시문집 창강고 소호당집 등.
이 시를 쓴 김택영은 우리나라 한문학사 마지막 시기의 문인이었다. 그는 일제에 의해 조선의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가의 장래를 통탄하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시는 당대에 무너져가는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개탄하며 쓴 시로서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
김택영은 이 시의 첫머리에 다음과 같은 창작 동기를 남겼다고 한다.
<晋州妓有曰論介者 宣祖癸巳 日本將陷晋 招妓游前 江大石上 酒酣 妓抱將落江俱死 余旣訪其祠
진주에 논개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선조(宣祖) 임금 계사년(癸巳年) 난리에 왜병(倭兵)의 장수(將帥)가 진주성을 함락시키고는 기생들을 불러 모아 앞 강가 큰 바위 위에서 놀다가 술에 취하자, 논개가 적장을 안고 강물에 빠져 함께 죽었다. 이에 나는 그 사당을 찾았노라> ☜ 논개실기
이는 논개의 절의에 대한 감회를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달래고하 한 것이다.
제1연에서는 강 밑에 잠겨 있는 논개의 뼈나마 거두어 천년토록 우리들 곁에 모셔두자고 하여 논개의 기상을 영원토록 기리자는 의지를 나타냈다.
또한, 제2연에서는 오늘날에 남강을 찾은 여인들의 물에 비친 그 모습이 바로 논개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우리나라 여인들의 절개와 저력은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몸속에 흐른다고 칭송하고 있다.
제3연에서도 “이제 와 그대의 서린 원한 물어보니 강물만 소리 없이 흐르고 흐르네”라고 하여 늦게나마 의암을 찾아온 시인 자신의 애석한 심중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논개는 시대가 아무리 흐르고 바뀌어도 한국 여인들의 표상적인 인물로 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여인들의 충절 정신은 조용한 강물처럼 깊이를 내포하고 있다.
촉석루 현판의 운을 따라 / 김창숙
전 세상 말하려하니 분한 눈물이 흘러
힘없이 고개 돌려 옛 강가 바라보네
이 금수강산은 도대체 누구의 것이런가
비바람에 황량한 장사누각 뿐이구나
대독으로 호령하던 일 옛 꿈인 듯 희미하고
왜놈들 날뛰니 새로운 걱정 생기네
의기암 강가에는 물결만이 분노하는데
우리들은 어찌하여 속절없이 노니는가
矗石樓次板上韻(촉석루차판상운)
欲說前塵憤淚類(욕설전진분루류) 悄然回首古汀洲(초연회수고정주)
江山繡錯誰家物(강산수착수가물) 風雨荒凉壯士樓(풍우황량장사루)
大纛號令迷舊夢(대독호령미구몽) 小酋橫突釀新愁(소추횡돌양신수)
娼娥岩畔波猶怒(창아암반파유노) 我輩何心汗漫遊(아배하심한만유)
-------------------------------
▶김창숙(金昌淑 : 1879~1962), 경북 성주 生, 유학자(儒學者), 독립운 동가, 저서 심산유고 등.
이 시는 일제강점기에 쓴 것으로 추측된다. 작자 김창숙은 일제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 평생 불구로 살았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에 이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자 시인은 시절을 개탄하며 임진란 당시 치열하게 싸우다가 순국한 삼장사와 논개의 충절정신의 표상인 촉석루와 의암을 찾아 이들의 희생정신을 칭찬하고 회상했다.
이 시는 그러므로 점점 무너져 가는 조선왕조의 전통, 민족혼의 상실과 침체, 일제에 의한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는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심정을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서 나날이 잔혹해져가는 왜놈들의 행태를 보며 아무런 대책 없이 살아가는 우리민족들을 향해 애국심을 깨우치려는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금수강산은 도대체 누구의 것이런가’라고 절규하면서 우리나라는 우리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당시에 서구열강인 미국, 러시아 등과 일본이 한반도 침략에 혈안이 돼있음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제식민통치가 본격적으로 자행되는‘새로운 걱정’이 생기고 나라가 풍전등화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임진왜란 때나 일제 침략기 때나 나라는 황량하기 짝이 없고 동방을 호령하던 민족의 기상은 사라지고 혼란과 방종과 속절없는 민족혼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의암이 있는 남강 물결이 분노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제5행의 대독(大纛)은 대둑으로도 읽히는데, 군중(軍中)에 세우는 큰 깃발로서 임금이 타고 가던 가마 또는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던 큰 의장기를 일컫는다.
의기를 노래하다 / 황 현
풍천나루의 강물은 아직도 향기로우니
머리와 수염을 깨끗이 씻고 의로운 논개에게 절하노라
아름다운 성품으로 어떻게 적장을 죽였을까
죽음을 각오한 채 거룩한 뜻을 단행했네
장계의 노인들은 고향사람이라 자랑스러워하고
촉석루에서는 단청하고 순국함을 제사 지내네
화려한 왕조 돌아보면 인물이 많았다 하지만
기생이었어도 오랜 세월 그 이름 한결같이 빛나는구나
義妓歌(의기가)
楓川渡口水猶香(풍천도구수유향) 濯我鬚眉拜義娘(탁아수미배의낭)
蕙質何由能殺賊(혜질하유능살적) 藁砧已自使編行(고침이자사편행)
長溪父老誇鄕産(장계부노과향산) 矗石丹靑祭國殤(촉석단청제국상)
追想穆陵人物盛(추상목릉인물성) 千秋妓籍一輝光(천추기적일휘광)
-------------------------------
▶황 현(黃 玹 : 1855~1910), 전남 광양 生, 학자, 시인, 독립운동가, 저서 매천집 매천시집 매천야록 오하기문 동 비기략 등.
이 시는 대문장가이며 시인인 매천(梅泉) 황 현(黃玹)이 조선 말기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하고 낙향하여 지내던 시절, 나라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논개가 나고 자란 장수의 풍천(신내) 지역을 찾아 쓴 작품이다.
황 현은 논개정신의 의로움이 서려있는 생장지에 와서 감동과 깨달음을 얻는 동시에 마치 촉석루에서 제사를 지내듯 상상하며, 의관을 가다듬고 논개를 향해 절을 한다.
이 시는 그러므로 시인의 애국심이 발로되어 집필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적장을 죽인 논개의 결행의지를 칭송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장수 사람들의 자긍심을 포착하여 진솔하게 서술했다.
시인은 그동안 우리민족 중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었지만, 천한 기생 신분이었지만 논개 만큼 의로운 기상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고 하면서 순국의 뜻이 영원불변하리라고 장담한다.
논개나 촉석루를 두고 읊은 수많은 시 작품 중에서 장수지방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매천의 이 작품이 처음이다. 풍천나루, 장수의 노인들이 그것이다.
황 현은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한편으로는 우국지사이기도 하다.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하는 이른바 경술국치 사건이 일어나자 울분을 토하며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다.
이 시는 진주 논개사당인 ‘의기사’ 현판 오른쪽에 ‘義妓祠感吟(의기사 감음)’이라는 제목으로, 기생 산홍이 쓴 ‘의기사 감음’과 함께 나란히 걸려있다.
초혼의기 / 안지정
가련타 가련타 의기선생 가련타
황량한 사우(祠宇)에 이빠진 제기(祭器) 이지러진 술잔이 가련타
선생이 만약 남자였다면 충렬사 안에서 혈식 받는 분이었으리
招魂義妓(초혼의기)
可憐他 可憐他 義妓先生 可憐他(가련타 가련타 의기선생 가련타)
一片荒祠 冷豆殘盃 可憐他(일편황사 냉두잔배 가련타)
先生若爲男子身 忠烈祠中血食人(선생약위남자신 출렬사중혈식인)
-------------------------------
▶안지정(之亭 安往居 : 1858~1929 ), 경남 김해 生, 구한국 황실 수학 원(修學院) 교관, 저서 열상규조(洌上閨藻) 고부기담 난 설소설헌집 신해음사 등.
이 시는 안왕거의 작품이다. 그의 호는 지정. 지정이 지은 열상규조에 실려 있는 글이다.
열상규조는 안왕거가 《매일신보》에 연재한 시화이다. 이 시화의 연대는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고대사가 그 시기인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며, 여성이 역사의 주체로 설정돼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현실에서 논개의 여성성을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혁명적인 여걸들을 출현시켜서 이에 자극을 받게 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역대 기생들의 실상에 관해 기술한 자신의 저서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1927)에 지정(之亭)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후배가 선배를 선생이라고 하는데, 논개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노래의 특색이고, 또 의기 논개에게 감복하고 있다. 충렬사와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것이 또한 갸륵하다.”이다.
이처럼 지정 안왕거는 시와 설명을 통해 논개를 일반적 인물이 아닌 역사적인 인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낡고 허름해진 논개사당, 흠집이 많은 제사 용품, 찌그러진 술잔 등을 통해 충신들의 죽음에 대한 예우와는 달리 일반 서민들의 죽음에 대한 예우는 매우 소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제사에 쓰이는 사실적인 매개체를 통해 조정의 잘못된 정책과 당시의 사회상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행의 ‘남자였다면 충렬사 안에서 혈식 받는 분이었으리’의 의미를 살펴보면,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정에서는 전란으로 피해를 입은 지방을 조사하여 공로가 있는 사람들을 표창하였다.
특히 전쟁 중 공이 큰 장수들이나 권력가들은 충렬사와 같은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주로 남성 중심의 정책이었다. 따라서 논개가 남자였다면 그리고 권력가였다면 야사가 아닌 역사에 기록되었을 것이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논개의 순국이 인정되어 의기(義妓)의 정포사액(旌襃賜額)이 내려지고, 사당이 지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당시의 진주시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진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조정의 불합리한 처사가 어디 이 경우뿐이겠는가. 당시의 사회가 엄격한 사농공상, 관존민비, 남존여비 등 봉건시대 사상이 심했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촉석루 원운 / 신유한
진양성 바깥에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
울창한 대숲 아름다운 풀은
모래섬에 푸르다
이 세상엔 충성 다한
삼 장사가 있고
강산엔 나그네를 머물게 하는
높은 누각 있구나
따뜻한 날 병풍치고 노래하니
잠자던 교룡이 춤추고
병영 막사에 서리 내리니
졸던 가마우지 걱정스럽네
남으로 북두성 바라보니
전쟁 기운은 없고
장군단에 피리 북소리
봄을 맞아 노닌다네
矗石樓原韻(촉석루원운)
晉陽城外水東流(진양성외수동류) 叢竹芳蘭綠映洲(총죽방란록영주)
天地報君三壯士(천지보군삼장사) 江山留客一高樓(강산유객일고루)
歌屛日暖潛蛟舞(가병일난잠교무) 劒幕霜侵宿驚愁(검막상침숙경수)
南望斗墟無戰氣(남망두허무전기) 將壇笳鼓伴春遊(장단가고반춘유)
-------------------------------
▶신유한(申維翰 : 1681~1752), 경북 고령 生, 조선시대 문신, 벼슬 봉 상사(奉常寺) 첨정, 1719 일본통신사, 연천군수, 저서 海遊錄 등.
연천군수를 지낸 청천(靑泉) 신유한은 당대의 시인이었다. 그는 관료출신이지만 명승지를 찾아다니면서 시를 짓고 문인, 예술인들과 교분을 나눈 문인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화가 정선과 문신 홍경보 등과 자주 어울려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모임과 놀이도 함께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촉석루인들 인들 외면했을 리가 없다. 이 시 「촉석루 원운」을 보면서 그의 행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봄날을 맞아 진주성의 정경을 살피며 평온하게 노니는 작자 의 감회를 읊고 있다.
비록 역사적인 아픔이 서린 남강이지만 지금은 그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어 이를 만끽하며 봄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모래섬에는 풀이 푸르게 올라오고, 삼장사가 투신한 누각은 높고, 노래하고 춤추니 전쟁의 기운이 전혀 없는 태평한 시대에는 피리, 북소리마저 봄을 맞아 음색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시는 논개에 관련된 직접적인 시는 아니다. 최경회를 비롯한 삼장사와 관련된 시이다. 그러나 촉석루를 찾아 과거 역사를 회상 하면서 논개를 떠올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신유한의 이 시는 촉석루 남쪽 2층 기둥 6개에 8개의 주련으로 나누어 붙여 놓은 것으로서 남쪽에서 볼 때 동쪽과 서쪽의 기둥에는 각각 2귀절씩을 붙여서 총 8귀절의 시가 된다.
<다음호에 계속>
*이매미는 의암(의로운 바위)의 방언이며, 꽃타래는 논개를 노래한 시들의 묶음을 뜻한다.
박일만
전북 장수 육십령 출생. 2005년 현대시로 등단.
송수권 시문학상, 나혜석 문학상 수상.
시집 사람의 무늬, 뿌리도 가끔 날고 싶다, 뼈의 속도,
살어리랏다(육십령), 사랑의 시차(제부도)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