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버킷리스트
2019.10.07. 황금모
“택배 온 것 없어요?”
그녀가 퇴근하자마자 내게 물었다. 벌써 며칠째다.
그러기를 일주일쯤 후 드디어 택배가 왔다. 매일 묻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중요한 것이려니 했는데, 막상 도착한 것은 엽서 크기 정도의 작은 봉투였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길래 그토록 기다렸는지 나로선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와, 드디어 도착했네. 그동안 얼마나 기다렸는데...”
저녁 식사 후 그녀는 나를 소파에 앉히더니 다짜고짜 내 양말을 벗겼다.
“우리 같이 페디큐어 해요. 내 첫 번째 버킷리스트예요.”
“웬 페디큐어?”
깜짝 놀란 내가 뒤로 물러나자 그녀는 자신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를 끝마쳐야 두 번째, 세 번째를 수행할 수 있다며 내 발을 끌어당겼다. 평생 단 한 번도 페디큐어를 해본 적도 없거니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손사래를 쳤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봉투 속에는 색깔도 다양하고 무늬도 화려한 스티커가 가득 들어 있었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세요.”
페디큐어를 할 생각을 꿈에도 안 해봤기에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색이 마음에 들면 무늬가 너무 화려하고, 무늬가 수수하면 색이 칙칙했다.
“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라.”
“그럼 이 색깔로 같이 해요.”
그녀가 고른 것은 그 여러 가지 색깔과 무늬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가 이걸 어떻게? 망설일 새도 없이 그녀는 내 발가락을 이리저리 조몰락거리며 작업에 열중한다.
붙이고 문지르고 자르고 한참을 쓰다듬더니 드디어 완성이 되었단다.
“이렇게 예쁜걸. 진즉에 해드릴 걸 그랬어요.”
그녀는 매우 흡족해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어색하고 민망하기만 할 뿐, 그것에 대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이쁜 건지 어떤 건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이쁘구나. 수고했다.”
그녀의 성의를 생각해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나 한 닷새 동안 발을 안 닦은 것 같은데?”
“그러세요? 괜찮아요.”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궁금하다. 왜 그녀의 버킷리스트에 하필 나와 같이 페디큐어 하는 것이 들어가 있었을까?
아무리 가족이라도 다른 사람의 발가락을 거침없이 주물럭대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나라면 과연 그녀의
발을 서슴없이 어루만질 수 있었을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얼결에 하게 된 페디큐어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사그라진 줄만 알았던 내 안의 미적 감수성이 아직 살아있었나 보다. 그녀의 두 번째,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과연 무엇일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신발장에서 샌들을 꺼내 신어보았다. 그녀의 정성이 가득 담긴 발가락이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바탕에 하얀 물결무늬가 돋보인다. 샌들을 신은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그녀, 내 며느리, 김효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