應化非眞分 第三十二(二十七斷入寂如何說法疑)
계속 金剛經 끝편
圭峰:
釋此文三이니
一은 約兩論하여 釋魏本中九喩요
二는 約諸經論하여 顯諸虛假喩之大意요
三은 會通秦譯經本이니라
初中魏本九喩經에 云하되
一切有爲法은 如星翳燈幻露泡夢電雲이니
應作如是觀이라하다
於中에 文二니 一은 約本論斷疑니라
偈에 云하되 非有爲非離가
諸如來涅槃이니 九種有爲法을 妙智正觀故라하다
論에 云하되 諸佛이 得涅槃하시어
化身說法故로 非有爲며 非離有爲이니
何故로 示現世間하되 而不住有爲인가
由妙智로 正觀有爲가
如九喩虛假故라하다 後는 兼無着釋相이라
無着이 云하되 此偈는 顯示四有爲相이니
於中에 文四이니 一은 自性相이니
此見相識三이 用識爲體하여 生死根本故니라
於中에 文三이니
一은 星을 喩能見分이니
無着이 云하되 無智闇中에는 有彼光故이나
有智明中에는 無彼光故라하다
二는 翳를 喩所見分이니
論에 云하되
如人이 目有翳이면 則見毛輪等色하여
觀有違法도 亦爾이니 以顚倒見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人法我見이 如翳이니
以取無義故라하다
三은 燈을 喩識이니 燈約膏油의 相續不絶이요
識依貪愛하여 生死無休니라
二는 着所住味相이니
論에 云하되
幻은 喩所依住處이니 以器世間種種差別이
無一體實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味着顚倒境故라하다
大雲이 云하되 幻出城郭誑人하나니
識變山河不實이라하다 三은 隨順過失相이니
身及受用이 是過失也요 觀此無常을
是名隨順이니 又解云하되 隨順身受 卽是過失이니라
於中에 文二니 一은 露를 喩身이니 論에 云하되
身亦如是하여 少時住故라하다 二는 泡를 喩受用事니
論에 云하되 所受用事도 亦復如是이니 以受想因三法이
不定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顯示隨順苦體니
以受如泡故라하며
功德施에 云하되 觀察壽하면 如水上泡하여(壽는 當作受라)
或始生未成體하고 或纔生暫停住하여 卽歸散滅이라하다
四는 隨順出離相이니 無着이 云하되 隨順人法無我이니
故得出離라하다 於中에 文三이니 一은 夢을 喩過去이니
無着이 云하되 彼過去行을 以所念故로 如夢이라하며
新論에 云하되 應觀過去所有集造同於夢境이니
但唯念性故라하다.
功德施에 云하되 觀察作者가
如夢中에 隨先見聞憶念分別熏習住故로 雖無作者이나
種種境界가 分明現前하나니 如是衆生이 無始時來로
有諸煩惱善不善業이 熏習而住이니 雖無我是能作者이나
而現無涯生死等事라하다 二는 電을 喩現在이니 論에 云하되
以刹那不住故라하며 功德施에 云하되 觀察 心如電하여
生時卽滅이라하다 三은 雲을 喩未來이니 論에 云하되
以於子時에 阿梨耶識이 與一切法하여 爲種子根本이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彼麤惡種子가 似虛空하여 引心出故로
如雲이라하며
又云하되 如是知三世行하면 則達無我이니 此는
顯示隨順出離相이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過未는 無體요 現又不住이니 則三世空하여
達無我矣라하다 二는 約諸經論하여
顯諸虛假喩之大意者는 佛이
說一切法空하심에 疑云하되 云何現見一切境界인가하니
故說如幻이니 幻法雖無이나 分明可見이니라
又疑云하되 幻法이 旣無이면 人何愛着인가
故說如陽燄이니 渴鹿은 謂之爲水하여 愛着奔趣니라
又疑云하되 渴鹿이 畢竟不得水이니 貪者가
如何皆得受用인가 故說如夢이니 夢中所見도
亦得受用이니라
又疑云하되 夢造善惡이나 寤無業報요 夢打尊長이나
寤無憂懼라하니 故說如影如響이시니 雖全無體이나
明鏡對色이며 空谷對聲에 姸媸高低에 一一皆應하되
必無雜亂하며 必無參差니라 又疑云하되 若都無實이면
菩薩은 何以作利樂事인가 故說如化이시니 謂變化者는
雖知不實이나 而作化事이니라 三은 會通秦譯經本者하면
夢幻泡影은 空理全彰하고 露電二喩는 無常足顯이니라
悟眞空則不住諸相하고 觀生滅則警策修行이니
妙符破相之宗하고 巧示忘情之觀이니라 略者는
良以星燈은 有體하고 雲種은 含生이니
恐難契空心潛滋相想이니 取意譯之가 妙在茲焉이니라
규봉:
이것을 해석하는데 글이 세 가지가 있으니
(1)은 양쪽 견해(兩論)를 잡아서 위나라
(魏)의 번역본 가운데 아홉 가지 비유를 해석한 것이요
(2)는 모든 經論(부처님의 교법과 그 뜻을 기술한 것)을
잡아서 헛되고 거짓인 비유의 大意를 나타낸 것이요
(3)은 진나라의 번역본(秦譯)의 經을 모두 모아
통하게 해석한 것이다.
처음 魏本의 九喩經(아홉 가지 비유한 경)에 이르기를
“모든 함이 있는 것들은 별(星), 눈병(翳), 불빛(燈), 환(幻),
이슬(露), 거품(泡), 꿈(夢), 번개(電), 구름(雲)과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하라” 했다.
이 가운데 글이 두 가지이니
①은 本論을 잡아 의심을 끊은 것이다.
게송에 이르기를 “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읨도 아님이 모든 여래의 열반이니
아홉 가지 함이 있는 것들(有爲法)을 묘한 지혜로써
바르게 관한(正觀) 까닭이라”했다.
論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이 열반을 증득하여서
化身으로 說法하는 것이므로 有爲가 아니며
有爲를 여윔도 아니니 무슨 까닭으로 世間에
나투어 보이되 有爲에 머물지 않는 것인가?
妙智로 말미암아 有爲를 正觀하는 것이 아홉 가지
비유의 헛되고 거짓됨과 같은 연고라” 했다.
②는 무착의 相해석한 것을 겸한 것이다.
무착이 이르기를
“이 게송은 네 가지의 함이 있는 相을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 가운데 글이 네 가지이니
㉮는 自性相이니 이 見과 相과 識 세 가지가
앎(識)을 써서 體를 삼아 생사의 근본이
되는 연고라” 했다.
이 가운데 글이 셋이니
㉠은, 별(星)을 주관분(能見分)에 비유한 것이니
무착이 이르기를 “지혜가 없는 어둠 가운데는
저 빛(상대적)이 있는 연고요
지혜가 있는 밝음 가운데는 저 빛이 없는 연고라” 했다.
㉡은, 눈병(翳)을 객관분(所見分)에 비유한 것이니
논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눈에 병이 있으면
곧 헛것(毛輪) 等의 色을 보는 것과 같이 有爲法을
觀하는 것 역시 그러한 것이니 전도된 소견인 연고이다”
라고 하며
무착이 이르기를 “사람이다, 법이다, 내라는 소견이
눈병과 같으니 취할 게 없다는 뜻인 연고이다”라고 했다.
㉢은, 불빛(燈)을 알음알이(識)에 비유한 것이니
등불은 기름이 계속되면 끊어지지 않음을 잡은 것이요,
識은 탐하고 애착함에 의하여 생사가 쉬지 않은 것이다.
㉯는, 머무는 바의 어두움에(昧) 집착하는 相이니
논에 이르되 “幻은 의지하여 머무는 곳을 비유한 것이니
6진 경계의 세계(器世門)의 갖가지 차별들이 하나도
體가 실다움이 없는 연고이다” 라고 하며
무착이 이르기를 “전도된 경계에 맛들여 집착하는 연고이다”
라고 했다.
大雲이 이르기를 “幻으로 나온 성곽이 사람을 속이나니
識이 山河의 실답지 못함을 변하게 한다” 했다.
[能變의 識도 오히려 실답지 못한데 所變의 경계가
어찌 體가 있겠는가?]
㉰는, 잘못을 거슬리지 않는 相이니
몸과 더불어 수용하는 것이 과실이요
이것이 無常함을 觀하는 것을 거슬리지 않는 것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또 해석하여 이르되
“身受를 거슬리지 않으니
身, 受가 곧 과실이기 때문이라” 했다.
[몸을 받아 집착하는 것이 인과를 짓는 잘못됨이니
이른바 몸을 집착해서 항상함으로 삼고,
받음을 집착해서 낙을 삼기 때문인 것이다]
그 가운데 글이 두 가지이니
㉠은, 露를 몸에 비유함이니 논에 이르기를
“몸도 이와 같아서 잠시 머무르는 연고라” 했다.
㉡은, 거품(泡)을 (몸에)수용하는 일에 비유한 것이니
논에 이르기를 “수용하는 일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
受, 想, 因 세 가지 법이 定하지 않은 연고이다” 라고 하며
[三法이 定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苦, 捨의 세 가지 받아들이는 것이 定한 것이 아닌 것이고,
둘째 受想因이 三法에 定한 것이 아니니
三法은 곧 어기는 등의 3경계이고,
셋째 受, 相, 觸이 3이 되는 것이 이
3이 모두 定한 것이 아니다.
因은 곧 이 觸, 受가 因인 연고이므로
想이 능히 受를 도우는(助) 까닭인 것이다]
무착이 이르기를 “괴로움(苦體)을 거슬리지 않음을
드러내 보인 것이니 受는 물거품과 같은 연고로서라”
하며 功德施(공덕시 보살론:공덕시 보살이 짓고
日照스님이 번역)에 이르기를 “壽를 관찰하면,
수는 물위의 거품과 같아서 (壽는 마땅히 受로 써야 한다)
혹 처음 날 때 체를 이루지 못하고 혹 겨우 생길 때 혹
잠시 머무르다 곧 흩어져 멸하여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는, 여의고 떠남(出離)을 거슬리지 않는 相이니
무착이 이르기를 “人과 法의 無我를 거슬리지 않으므로
떠난 것이라” 했다. 그 가운데 글이 세 가지니
㉠은, 꿈(夢)을 過去에 비유한 것이니 무착이 이르되
“저 과거의 行을 생각함인 연고로 꿈과 같다” 하며
화엄신론(新論)에 이르기를 “과거의 있는 바 지은 것이
꿈의 경계와 같음을 마땅히 관찰할지니
다만 오직 생각하는 성품인 연고라” 했다.
功德施에 이르기를 “지은 것을 관찰하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보고 듣고 기억하고 분별하며 익힌 것이 저장된 것(熏習)을
따라서 머무는 것이므로 비록 지은 것이 없으나 갖가지
경계가 분명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이와 같이 중생이
시작 없는 때로부터 오며 모든 번뇌의 착함과 착하지 못한 業이
훈습하여 머무는 것이니 비록 내가 능히 지은 것이 없으나
끝없는 생사 등의 일을 나타낸다” 했다.
㉡은, 번개(電)를 현재에 비유한 것이니 논에 이르기를
“찰나에도 머물지 못하는 연고이다”라고 하며
功德施에 이르기를 “마음이 번개와 같아서 생긴 즉시
곧 멸함을 관찰한다” 했다.
㉢은, 구름(雲)을 미래에 비유한 것이니
논에 이르기를 “子時(한밤중)에 아뢰야식(제8함장식)이
일체법과 더불어 종자(만유의 물심
현상이 아뢰야식에 갈무리된
것을 종자라 함)로써 근본이 되는 것이라” 하며,
[子時라는 것은 종자 위에 있는 때이니
根本等이란 것은 마땅히 이르기를 아뢰야식이 종자 위에
있을 때에 일체법의 종자의 근본을 지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체 제법이 종자로 쫓아 생기는 것이 되는 까닭이다]
무착이 이르기를 “저 거칠고 악한 종자가 허공과 같아서
마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므로 구름과 같다”고 하며,
[거칠고 악한 종자는 샘이 있는 종자이니
샘이 없는 종자가 세밀하고 묘한 것이 되는 까닭이다.
허공과 같다(似虛空)라는 것은 많음을 비유한 것이다.
如雲이라는 것은 공은 종자를 비유한 것으로,
雲은 미래에 일어나는 바인 현행의 법(모든 것)이 구름이
빈 것에 의해 홀연히 일어나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게 된 까닭이다]
또 이르기를 “이와 같이 三世의 行을 알면
곧 無我를 통달하는 것이니 이것은 여의고 떠남을 거슬리지 않는
相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했으며 大雲이 이르기를
“과거와 미래는 體가 없음이요 현재 또한 머물지 않으니
곧 三世가 空하여 無我를 통달한다” 했다.
(2)는 모든 經論을 잡아서 모두 헛되고 거짓인 비유의
큰 뜻을 드러낸다고 한 것은 부처님이 일체법이
공함을 설하심에 의심하여 이르되
“어떻게 일체 경계가 나타나 보이는가”
하므로 幻과 같다고 설하신 것이니
환이란 것(幻法)이 비록 없으나 분명히 보이는 것이다.
또 의심하여 이르기를 “환이란 것이 이미 없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왜 애착하는가?” 하므로
아지랑이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니
목마른 사슴은 그것을 물이라 애착하여 달려가는 것이다.
또 의심하여 이르기를
“목마른 사슴이 끝내 물을 얻지 못하는 것이니
탐욕하는 자가 어찌 모두 거둬 쓸 수 있는가?” 하므로
꿈과 같다고 설하신 것이니 꿈속에 보는 바도 또한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의심하여 이르기를 “꿈에 선악을 지으나 깨고
보면 업보가 없는 것이요 꿈에 어른을 때렸으나
깨고 보면 두려운 마음이 없다” 하니
그러므로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다고 설하신 것이니,
비록 전부 體가 없으나 밝은 거울이 사물을 대하는 것이며,
빈 골짜기가 소리를 대함에 고운 모습, 더러운 모습,
높고 낮음에 낱낱이 모두 응하되 반드시 뒤섞임이 없으며
반드시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또 의심하여 이르기를
“만약 모두 실다움이 없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이롭고 즐거운 일을 하는가?” 그러므로
化(변화)와 같다고 설하신 것이니 변화라고 하는 것은
비록 실답지 않음을 아나 변화되는 일을 짓는 것이다.
(3)은 秦譯의 經本(지금 쓰는 경전)을 會通
(모두 모아 해석)한다는 것은 夢, 幻, 泡, 影은
空의 이치가 온전히 드러나고 露와 電의 두
비유는 無常함을 족히 드러낸 것이다.
참으로 빈 것(眞空)을
깨달으면 곧 모든 相에 머물지 않게 되고
생멸을 觀하면 곧 수행하는데 경책함이
되는 것이니 妙하게 相을 깨뜨리는 宗旨에
부합하고 교묘히 忘情(미혹한 분별심을 잊고
진리에 계합하는 것)을 살펴 봄(觀)을 보이신 것이다.
생략한 것은 진실로 星과 燈은 바탕(體)이 있고
雲은 種을 머금(含)고 生함인 것이니 空心(빈 마음)에
계합하기 어려워서 相想(상을 생각)에
더욱 잠길까 염려함이니 뜻을 취하여 번역한
묘함(妙)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體가 있다는 것은 비록
별(星)은 태양이 되지 못하고
燈은 기름을 넣어야 되나
이 온통 빈(空) 것이 아니므로
바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雲種이라는 것은 법과 비유를 쌍으로 든 것이니
운은 능히 비를 머금고 종은 반드시 싹(비)을
냄(生)으로 含生이라 하는 것이다.
潛滋등이라는 것은 이미 무상함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상의 경계에 항상 생각을 내어 능히
여의어 버리지 못할까하는 것이다.
取意등이라는 것은 옛 선지식이 이르기를
“당언(唐言)과 범어(梵語)를 적(相對)으로 하니
곧 삼장법사를 능하다고 이르고 뜻을 취해
경을 번역한 즉 구마라즙이 최상이 된다
하는 것을 의미한다” 했다.
그러나 雲등 아래 비유는 3가지를 잘라 없애고
그 남은 여섯 가지가운데 또 하나의 비유를
바꾸니 그림자로써 가리는 것(눈병)을
대신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바꾸는 것은 그림자가 가리는 것(눈병)을
견주어서 空의 뜻을 드러낸 까닭인 것이다]
---
六祖:
夢者는 是妄身이요 幻者는 是妄念이고 泡者는
是煩惱이며 影者는 是業障이라 夢幻泡影業을
是名有爲法이니 眞實은 離名相이요
悟者는 無諸業이니라.
육조:
夢(꿈)이란 것은 망녕된 몸이요,
幻(허깨비)이란 것은 망녕된 생각이고,
泡(거품)란 것은 번뇌이며,
影(그림자)이란 것은
業障인 것이다.
夢, 幻, 泡, 影의 業을 함이 있는
(有爲) 것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진실(참으로 실다운 것)은
이름과 모양(相)을 여윈 것이요,
깨달음은 모든 업이 없게 된 것이다.
---
傅大士:
如星翳燈幻이 皆爲喩無常이니 漏識修因果여
誰言得久長이리요 危脆同泡露이고
如雲影電光하여 饒經八萬劫이라도
終是落空亡이니라.
부대사:
저 星, 翳, 燈, 幻이 모두
항상 함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니
샘이 있는 알음알이로 인과를 닦음이여
누가 영원하다고 말하리요
위태하고 연약한 것이 물거품,
이슬과 같고 구름, 그림자, 번개, 빛과 같아서
설사 팔만 겁을 지나더라도
끝내는 비어 없음에 떨어지니라.
---
冶父:
行船이 盡在把梢人이로다
說誼:
篙師行船에 要東卽東하며 要西卽西이니
或東或西로 去住自由하며 洪波涌浪에 隨高隨下하나니
以觀智로 入法性波瀾하면 是則俱是이라 非則俱非이니
掃蕩亦在我며 建立亦在我니 我爲法王이니
於法에 自在로다.
야부:
배가 가는 것은
모두 노(梢)를 잡은 사람에게 있도다.
설의:
사공(篙師)이 배를 가게 함에
동으로 가고자 하면 곧 동으로 가고
서로 가고자 하면 곧 서쪽으로
가는 것이니,
혹 동이나 혹은 서로 가고 머묾이 자유로우며
큰 파도가 물결치면 높고 낮음을 따르나니,
이로써 지혜로 관(觀智)하여 法性의 파도에
들어가면 옳은 즉
모두 옳고 그른즉 모두 그름이라.
없애는 것도 역시 나에게 있으며
건립도 또한 나에게 있으니
내가 法王이 되는 것이니,
법(모든 것)에 있어
自在(스스로 마음대로)하도다.
---
청봉착어:
꿈, 허깨비,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불이
모두 덧없는 것이라
사대육신은 꿈같은 것이요
망령된 생각은 허깨비 같고
번뇌는 거품 같이 쉴새없이 생멸하고,
지은 업은 그림자처럼 따르며
이슬과 번개 또한 생멸하여,
함이 있는 모든 것 덧없는 것이니라.
4대육신은 배요 사공은 나이니
어찌 동서로 감이 내 뜻이 아니리요
---
冶父:
水中捉月하고 鏡裏尋頭이며 刻舟求劍이며
騎牛覓牛요 空華陽燄이요 夢幻浮漚이니
一筆句下요 要休便休함이 巴歌社酒村田樂이
不風流處自風流로다.
說誼:
我不是渠거늘 認影爲眞하며 日用便是거늘
向外尋眞이로다 一切皆非이니 可以句下요
一切皆是이라 要休便休니 村田이 何荒涼하여
固非風流處이나 歌酒樂自娛하니 是則也風流로다
六喩에서 取一幻하여서 以明箇中意하여
一切皆如幻이라 幻外에 無非幻이니
幻與非幻이 成一家라 頭頭自有無生樂이로다
此名大幻法門이며 亦名大幻三昧이니
古今證者가 同證此大幻三昧며 古今說者가
同說此大幻法門이니 以此大幻法門으로
能作種種佛事하며 以此大幻三昧로
能現種種神變하나니 大幻之義가
何止從古于今이리오 亦乃天上天下로다
一喩가 已如是하니 餘喩亦如然이로다.
야부:
물 속에서 달을 건지려 하고
거울 속에서 머리를 찾음이며
배에 새겨놓고 칼을 찾으며
소를 타고 소를 찾음이요
허공 꽃과 아지랑이요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니
모두가 붓끝에 그어 지우며
쉬고 싶으면 문득 쉬는 것이
속된 노래와 제사 술과 시골의 즐거움이
풍류 아닌 곳에서 스스로 풍류로다.
설의:
나는 저가 아니거늘
그림자를 참으로 알며, 날마다 쓰는 것이
곧 이것이거늘 밖을 향해 참을 찾음이로다.
일체가 모두 아님(非)이라 가히 지워지는
것(句下)으로써
일체가 모두 옳음(是)이라 쉬려하면 문득 쉬나니,
시골 밭이 자못 황량하여 진실로 풍류처가 아니나
노래와 술의 낙으로 저절로 즐거우니
이것이 곧 풍류로다.
여섯 가지 비유에서 한 가지 幻을 취하여서
그 가운데 뜻을 밝힘으로써 일체가 모두 幻과
같은지라 幻밖에 幻아님이 없으니
幻과 더불어 幻아님이 一家를 이룬지라
낱낱이 스스로 無生의 樂이 있도다.
이 이름이 大幻法門이며 또한 이름하여
大幻三昧이니 옛과 지금에 증득한 이가 똑같이
이 大幻三昧를 증득했으며 옛과 지금에
설한 이들이 이 大幻法門을 똑같이 설한 것이니,
이 대환법문으로써 능히 갖가지 佛事를 지으며
이 大幻三昧로써
능히 갖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것이니,
大幻의 뜻이 어찌 옛부터 지금에 이르는데
그침이 있으리오.
역시 이에 天上天下로다.
하나의 비유가 이미 이와 같으니
나머지 비유도 또한 그러한 것이로다.
---
청봉착어:
중생들이 환(幻)만을
참으로 항상 함을 삼나니
참으로 참된 것은 환 밖에 참이나
참과 더불어 幻이 일가를 이루니라.
-----
宗鏡:
施七寶滿僧祇라도 福有求而卽妄이요
持此經演四句함은 德雖勝而非眞이라
宴坐水月道場하여 成就空花佛事이니
度幻化之含識하여 證寂滅之菩提케하니
凡情聖解가 俱空하여 生死涅槃이 如夢이로다
昔에 梁武帝가 請傅大士講經함에
大士揮案一聲하고 便乃下座하니
如斯洪範이 千古分明이라 不悋弘慈하시어
當機辨着이로다 噫
大士의 揮尺講經도 猶是曲垂方便이니
美則甚美나 了則未了로다 若論最上頓宗하면
直是不通凡聖이니 以金剛王寶劍으로
盡情掃蕩無餘하여
一任渠明來暗來四方八面來하여
普敎他로 休去歇去一念萬年去하니라
然雖如是이니 且道하라
末后一句를 誰堪奉行고 咄 直得虛空悉消殞하니
天龍八部가 徧流通이로다
說誼:
求福은 元是妄이요 持經亦非眞이라
道場이 如水月하니 宴坐者가 阿誰이며
佛事若空花하니 成就介什麽인가
含識이 卽幻化라 無生可度요 菩提가
本寂滅이라 無法可證이니 凡情聖解가
所以俱空이요 生死涅槃이 所以如夢이로다
大士의 揮尺講經으로 垂範千古는
卽不無이나 於此最上頓宗에서
了沒交涉이니 若是最上頓宗이면
高提寶劍하여 隨到便斬하여 普敎他로
休去歇去一念萬年去니라 然雖如是이나
末后一句를 誰敢?勵?인가 咄 金剛寶劍이
倚天寒하니 直得虛空悉消殞이라 奉行에
何必推諸聖이리오 天龍八部가 徧流通이니라.
종경:
칠보를 보시하기를 아승지 동안 계속하여도
복을 구함이 있으면 곧 妄이요,
이 경을 지니고 사구게를 연설함은
덕은 비록 뛰어나나 참은 아닌 것이라,
水月道場에 편안히 앉아서
空花佛事(허공의 헛꽃으로 교화함)를
성취하는 것이니
幻化인 중생(含識)을 제도하여 적멸한
보리를 증오케 하니 凡夫의 알음과 聖人의 아는
것이 함께 空하여 生死涅槃이 꿈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 梁無帝가 傅大士를 청하여 經을 강의함에,
大士가 법상을 휘둘러 한번 소리치고 문득
이에 자리에서 내려오니 이와 같은 모범이 되는
큰 규범이 천고에 분명한 것이다.
큰 자비를 아끼지 않으시어 根機에 맞게
가려준 것이다.
噫! 大士의 잣대를 휘둘러 經을 강의함도
오히려 간곡한 방편을 드리움이니
아름답기는 심히 아름다우나
깨달음인즉 깨달음이 아니로다.
만약 최상의 頓宗으로 논한다면 바로
이 범부 성인에 通하지 않는 것이니
金剛王 寶劍
(예리한 지혜의 칼)으로써 알음알이
(情)를 소탕하여 남음 없이 다하여
저 밝음으로 오나 어둠으로 오나
四方八面에서 오는 대로 한결같이
맡겨서 널리 저로 하여금 쉬어가고
쉬어가서 한 생각이 萬年되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와 같으나
자. 말하라!
마지막 一句를 누가 받들어 행할 만한가? 咄!
바로 허공이 다 녹아버리니 천룡팔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들)가 두루
통용(流通)하게 되는 것이다.
설의:
복을 구함은 원래 妄이요
經을 가짐도 역시 참이 아닌 것이라.
도량이 마치 水月(고요함)과 같으니
편안히 앉은 자가 누구이며
佛事가 허공 꽃이라면 성취한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
중생(含識)이 곧 幻化라. 가히 제도할 중생이 없음이요,
菩提가 본래 적멸한 것이라. 가히 증득할 법이 없음이니
凡夫의 알음알이(情)와 聖人의 아는 것이 이 까닭으로
모두 空한 것이요 생사열반이 이 까닭에 꿈과 같음이로다.
대사가 법상을 휘둘러 경을 강의함으로
그 규범을 천고에 드리운 것은 곧 없지 않으나
이 최상의 頓宗에서는 깨달음에 교섭할 수 없으니,
만약 이 최상의 頓宗이라면 높이 보검을 들어
이르는 곳마다 문득 베어서 널리 저로 하여금 쉬어가고
쉬어가서 한 생각이 만년이 되게 하느니라.
그러나 비록 이와 같으나 마지막 一句를
누가 받들어 행할 만 한가? 咄!
금강보검이 하늘을 의지하여 차가우니
바로 허공이 다 부서져 내림이라.
받들어 행함에 어찌 반드시
모든 성인에게만 미루리오.
천룡팔부가 두루 유통하니라.
---
청봉착어
복을 구함도 망이요
설법도 실은 참이 아니어서
범부 성인과 생사열반이 꿈이로다
지혜의 칼을 들어 알음알이를 잘라 제하고
한 생각이 만년 같이 쉬어가고 쉬어가라. 악!
---
宗鏡:
空生이 疊疊窮迷妄이거늘
大覺이 重重說偈言이시니
末后가 了然超百億하니
明如杲日耀乾坤이로다.
說誼:
空生이 疊疊窮迷妄이거늘 大覺이 重重說偈言하시니
說到如如不動處하여서는 見盡情忘無所依로다
無所依여 脫然更在靑山外로다 靑山도 尙不戀이어서
紫陌豈留情이리오 笑指白雲多事在하고
長空掛目不廻頭로다 不廻頭여 通身光燦爛하니
杲日이 耀乾坤이로다.
종경 :
수보리(空生)가 첩첩의 미망을 다했거늘
부처님(大覺)이 거듭거듭 게송을 설하시어
말씀하시니
末后가 똑똑하고 분명하여
대천세계(百億)를 초월하니
밝기가 높이 뜬 태양 같아 천지에 빛나도다.
설의:
수보리(空生)가 첩첩의 미망을 다했거늘
대각(불 세존)이 거듭거듭 게를 설하여 말씀하시니
말씀이 如如不動한 곳에 이르러서는 소견이 다하여
알음알이(情)가 모두 잊혀져서 의지할 바가 없음이로다.
의지할 바 없음이여!
탈연(느긋하고 태연함)히 다시 靑山밖에 있도다.
靑山도 오히려 그리워하지 않거니 도성의 거리(紫陌:
잡다한 세속)에 어찌 뜻을 머무르리오?
白雲이 일이 많음을 웃으며 가리키고
높은 하늘에 눈을 걸고 머리를 돌이키지 않도다.
머리를 돌이키지 않음이여!
온 몸에 그 빛이 찬란하니 높이 뜬 해가
하늘과 땅에 빛나도다.
---
청봉착어:
세존께서 거듭 비유를 드시어 설하시니
일체 함이 있는 것은
꿈, 환, 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라
이로써 여여 부동함에 이르르니
삿된 소견이 남김 없어 무여 열반이로다.
---
圭峰:第三은 流通分이라
규봉
3. 통용하는 분이다.
-------------------
佛 說 是經已 長老須菩提 及 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와 남자 신도 여자 신도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를 듣고 모두 크게 즐겁고
기뻐하며 믿고 받아 지녀서 받들어 행하도다.
淸峯:
부처님이 이 경을 말씀해 마치시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 등과 모든 이 세상 사람과
하늘에 태어난 이와 아수라 등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모두 다 크게 기뻐하며 믿고
닦고 받들어 행하였다.
세존이 수보리와 더불어 대기(體)
대용(慧․차별작용)을 드러내어
설하셨으니, 금강정안을 갖추어
최상 대승법을 요달하게
되겠으므로 일체 중생들이 영원히
믿고 받들어 행하게 되는 것이다.
※
이 “금강경”은
자성불을 설하신 것이니,
곧 심지(心地) 법문이다.
일체 중생이 시작 없는 옛부터 왔으나
생멸로서
윤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를 집착하는 것으로부터
무명, 무지가 생기며 이 무명으로 인하여
또 나를 애착하고 나의 것 우리에 집착하여
그로 인해 業을 쌓아 불성을 가려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때문이니
자성을 투득하여 일체가 공적함을 요달함으로써
보리를 증득하면 모든 성품이 공적하여, 없이
있어서 생각 일어남에 나툼이 있고
생함이 있으므로 현상이 있으나 현상은
지수화풍이 인연에 의해 모인 것일 뿐임을 밝게
알게 되는 것이다.
본래 공적여여한 것을 깨우쳐
번뇌망상과 집착을 여의게 하고자 함이
이 경 설하신 바이다.
또한 경계를 보고 그것이 환이요(法空)
실상이 아님을 깨달아 참으로 있으면서
참으로 없고, 참 실상과 참 빈 것을 깨달으면
공과 색이 둘 아님도 요달할 것이다.
따라서 법상과 비법상 등의 상대적인
차별상을 실제의 모습인 실상으로 취하여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자리(自利)를 성취하는 것을 신수(信受)라 하며
자리 성취를 바탕으로 상대를 다함없이 교화하는
것을 이타(利他) 봉행(奉行)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쉬고 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불법을 배우지 않을지라도
마음을 쉬도록 힘쓰라.
이 마음 일분을 쉬면 곧 일분의 반야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는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로 사랑과 미움, 취사 선택하는 분별심을
여읜다면 반야지혜를 따로 사량과 분별과
학문으로써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쉬라(방하착)한다하는 말에
참으로 닦지 않거나, 혼침에 떨어지면
큰 병이 됨도 알아야 한다.
說誼:
靈鋒獨露에 四相俱破되고
慈雨普潤九類同沾이로다
三觀智滿하고 一乘理圓하니
四衆齊悟하고 群疑頓釋이로다
正眼圓明하여 心鏡豁爾하니
妙體實相이 瞭然目前하여
信受奉行하면 妙益斯在로다.
설의:
신령스런 칼날이 홀로 드러나매
四相이 모두 깨뜨려지고
자비의 비가 널리 윤택케 하니
九類(중생)가 똑같이 적셔 지도다.
三觀(空,假,中)이 지혜로 가득 차고
一乘의 이치가 원만하니
사부대중이 고르게 깨닫고
온갖 의심들이 단번에 풀어지게
되는 것이로다.
눈이 바르고 뚜렷이 밝아져서
마음 거울이 훤하니
묘한 바탕인 진리의 상(妙體實相)이
눈앞에 분명하여 믿고 받아 지녀서
받들어 행하면 묘한 이익이 여기에 있도다.
---
圭峰:
尼者는 此云女也라하며 優婆塞는 此云近事男이고
優婆夷는 此云近事女라하니 親近比丘比丘尼하여
而承事故니라 阿修羅는 此云非天이니라 皆大等者는
文殊所問經에 云하되 有三種義하여 歡喜奉行이니
一은 說者淸淨이니 不爲取着利養所染이요
二는 所說淸淨이니 以如實知法體요 三은 得果淸淨이니
以得淨妙境界라하니라 無着이 云하되 若聞如是義하고
於大乘無覺이면 我念過於石이니 究竟無因故라하며
天親이 云하되 諸?聊仲採툇?法과 不可稱量深句義를
從尊者聞及廣說하노니
廻此福德施群生이라하며
大雲이 云하되 大聖說經의 妙理斯畢하니
二空圓極하여 四衆奉行이라하며 肇가 云하되
同廳齊悟에 法喜蕩心하니 服玩遵式하여
永崇不朽라하며 資聖이 云하되 般若深經은
三世佛母이니 一聞四句로 以超惡趣之因이요
一念淨持하면 必獲菩提之記라 故로
人天異類 莫不奉行이라하다.
규봉:
尼라는 것은 이곳에서는 여자라 하며,
우바새는 여기서는 가까이서 받드는 남자라 하고
우바이는 여기서는 가까이서 받드는 여자라 하는 것이니
비구 비구니를 가까이하여 받들어 섬기는 연고이다.
아수라는 여기서는 非天이라 하는 것이다.
皆大等이라는 것은 文殊所問經에 이르기를
“세 가지 종류의 뜻이 있어서 즐겁고
기쁨으로써 받들어 행하는 것이니
1은
說하는 자가 청정함이니
이익을 취함에 물든 바가 되지 않음으로써요
2는
설하는 것이 청정함이니 진실과 같이
법의 바탕(체)을 앎으로써 이요
3은
果 얻음이 청정함이니 깨끗하고 묘한 경계를
증득 하였기 때문이라” 하였다.
무착이 이르기를
“만약 이와 같은 뜻을 듣고도
大乘의 깨달음이 없다면 내 생각에는
돌보다 더 미련한 것이니
구경(깨달음)의 因이 없는 연고라” 했으며
[無覺이라는 것은
二空(아공, 법공)의 지혜가 일어나지 않음인 것이다.
두 가지 집착은 튼튼하고 굳세기가
돌의 굳기와 같으니
돌은 오히려 닳고 갈리나
경을 듣고 능히 내가 없음을
알지 못하면 돌보다 못하므로 지나치다
(過於石:더 미련함)고 이르는 것이다]
天親이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드물고 진귀(稀有)한
한량없는 뜻을 포함한 법(摠持法)과
가히 칭량할 수 없는 깊은 구절의 뜻을
尊者(무착스님)로부터 듣고 널리 說하노니
이 복덕을 돌이켜서 모든 중생에게 베푼다” 했으며
[총지법이라는 것은
비밀스러운 반야요
깊은 구절의 뜻(深句義)이라는 것으로
지혜가 갖추어 숨은 것이다.
혹은 총지법은 이 경의 글이요
깊은 구절의 뜻은 이 경의 게송이다.
존자로부터 라는 것은 미륵과 무착스님인 것이다.
광설이라 한 것은 스스로 논한 글을 가르킨 것이다]
大雲이 이르기를
“大聖(세존)이 經을 설한 묘한 이치를
여기에서 마치니 두 가지 空(我空, 法空)의
원만함이 지극하여 사부대중이 받들고
행한다”고 했으며
조(肇)법사가 이르기를
“같이 듣고 고르게 깨달음에
법의 기쁨이 마음에 넘치니
익혀 쓰고, 본받아서 길이 받들고
잘못되지 않게 한다” 했으며
資聖이 이르기를
“반야심경은 三世의 부처님의 어머니이니
四句를 한번 듣는 것으로써
악도에 떨어질 因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한결같은 생각으로 깨끗하게 가지면
반드시 菩提의 수기를 얻느니라.
그러므로
人天(사람과 천상)과 異類(축생 등의 중생)들이
모두 봉행하지 않음이 없다”고 했다.
---
冶父:
三十年後에 莫敎忘却老僧이니
不知라 誰是知恩者일까
呵呵 將謂無人이로다.
說誼:
三關已透에 一鏃遼空하니 更須奮丈夫志하여
拗析一鏃하고 向壁空外하여 相見老僧이니라
若與老僧相見하면 可謂知恩報恩이니
不知라 誰是知恩者인가 呵呵將謂無人이로다.
야부:
30년 후에 老僧(야부스님)의 가르침을
잊어버리지 말지니, 알 수 없어라.
누가 은혜를 아는 者일까. 하하,
장차 사람이 없을까 함이로다.
설의:
세 가지 관문(定 有 中)을 이미 뚫어버리고
하나의 화살만이 멀리 허공을 날으니
다시 모름지기 장부의 뜻을 분발하여
하나의 화살마저 꺾어버리고
푸른 하늘 밖을 향하여 老僧(야부스님)을
相見(서로 봄)할지니라.
만약 老僧과 더불어 相見하면
가히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는다고
할지니 알 수 없어라.
누가 은혜를 아는 자일까?
하하,
장차 사람(은혜를 갚을 자:깨달은 사람)이
없을까 함이로다.
---
청봉착어:
법을 설함에 명리를 구함이 없으며
설하는 불법이 삿됨이 없어 깨우친 바 대로요
증득함이 진리임에 이설(異說)이 없음으로
이로써 듣고 받들어 행하게 되나니라.
---
冶父:
饑得食渴得漿하며 病得瘥熱得涼이요
貧人遇寶하고 孾兒見孃이로다
飄舟到岸이요 孤客歸鄕이요
旱逢甘澤이요
國有忠良이로다 四夷拱手하고 八表來降이니
頭頭總是이며 物物全彰이로다 古今凡聖이니
地獄天堂과 東西南北을 不用思量일지니
刹塵妙界諸群品이 盡入金剛大道場이니라.
說誼:
佛坐道場이여 北辰居其所요 十方同聚이니
衆星皆拱北이로다 諸子가 癡迷하여 捨父逃逝하여
流落天涯가 爲日已曠이니 父王設權하여 號令天下하니
諸子知非하여 今盡來歸라 各慙無知하여 願聞慈誨하되
如飢思食하며 如渴思漿하니 水澄月現하여 感應交生하여
甘露門開하니 皆得法喜하며 斷常爲病하여 惱亂法身이나
法爲良藥이라 一聞便除하며 貪愛爲熱하여 煩煎心海하나
法爲淸涼이라 一聞頓歇하며 乏功德財하여 日受貧苦이더니
一聞法要에 寶藏現前하며 爲迷所覆하여 覺性不現이더니
一得開悟에 妙體昭彰하며 失正知見하여 飄沈苦海더니
方便風生에 得到彼岸하며 立令 竮五道하여 客作多年이더니
今始得歸常樂家鄕이며 惑日煩蒸하여 道芽燋枯이더니
法雨遐霑하여 心花發明이로다
心王作夢하니 識臣壇權하여 淸平世界에
風塵이 競作이더니 天君一覺하니 識變成智하여
風塵頓息하고 六國晏然하며 萬法이 歸己하여
天下太平하니 千途異轍이 共向帝都라 長安路通하니
萬戶千門이로다.
古今也無疑碍하고 凡聖也無疑碍하며
以至地獄天堂東西南北에 悉無疑碍하여
不用思量이로다 祇園一會利如斯하니
從此含靈이 盡歸源이로다.
야부:
주림에 밥을 얻고 목마름에 마실 것(물)을 얻으며
병든 이가 쾌차하게 되고 더위에 시원함을 얻음이요
가난한 이, 보물을 만나고
어린 아이가 어머니를 보게 되는 것이로다
표류하던 배가 언덕에 이르고
외로운 나그네가 고향에 돌아옴로다
가뭄에 단비를 만남이요
나라엔 어진 충신이 있음이로다
사방의 오랑캐가 예배하고 八方에서 항복해 오니
낱낱이 모두 옳으며, 물물이 온전히 드러나도다.
옛이니 지금이니 범부니 성현이니 지옥과 천당,
동서남북을 사량하지 않게 되니
모래 티끌같이 많은(찰진) 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모두 금강 대도량에 들어 가니라.
설의:
부처님이 도량에 앉음이여.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음이요
十方에서 함께 모임이니
뭇 별들이 모두 북쪽으로 예를 하도다.
모든 아들들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
천애를 떠도는 지 날이 이미 오래되어
父王이 방편을 베풀어 천하를 호령하니
모든 아들들이 그릇됨을 알아 지금모두 돌아와
귀의함이라.
각각 무지함을 부끄러워하여
자비로운 가르침을 듣기 원하되
주린 이가 밥을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자가 마실 것을 생각하듯 하니
물이 맑으면 달이 나타나 느끼고
응함이 서로 생겨서(交生)
감로의 문이 열리니
모두 法喜를 얻으며, 끊어져 없음과
항상 있음이 병이 되어서
法身을 어지럽게 하고 괴롭혔으나
법이 좋은 약이 됨이라.
한번 들으매 문득 없어지며
탐하고 애착하는 것이 뜨거워서
마음의 바다를 번거롭게 들 끓였으나
법(문)이 맑고 시원하여
한 번 들으매 몰록 쉬게 되며,
공덕의 재물이 없어서 날로 가난한
고통을 받더니 한번 법의 요점을
들음에 보배 창고가 눈앞에
나타나며, 미혹의 덮인 바가 되어서
각의 성품이 나타나지 않더니
한번 깨달음을 얻음에 기묘한
바탕(妙體)이 밝게 나타나며,
正知見을 잃어서 苦海에 표류하고
빠지더니 방편의 바람이
남(生)에 피안에 이르게 되며,
五道에 비틀거리며 나그네 된(윤회)지가
여러 해에 이르더니 지금 비로소
항상 즐거운 고향에 돌아옴이며,
미혹의 해가 번거롭게 내리쪼여
道의 싹이 타서 마르더니
법의 비가 멀리까지 적시어서
마음의 꽃(지혜)이 피어 밝도다.
心王이 꿈을 꾸니 알음알이의 신하가
권력(방편)을 마음대로 굴려서
맑고 평화로운(淸平) 世界에
풍진이 다투어 일어나더니
天君(心王)을 한번에 깨달으니
알음알이가 변하여 지혜를 이루어서
풍진이 단번에 쉬고
六國(육근)이 편안하여 萬法이
자기에게 돌아와 天下가
태평하니 千가지 길에 다른 자국들이
한 가지로 서울(帝都)을 向함이라.
서울(長安)로 길이 통하니 萬戶와 天門
(모두가 문이요 집이로다)이로다.
옛과 지금에 의심과 걸림이 없고
범부 성인에 의심과 걸림이 없으며
지옥, 천당과 동서남북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심과 걸림이 없어서
사량을 쓰지 않음이로다.
기원정사에 한번 모인 이익이
이와 같으니 이로부터 모든 중생이
모두 근원으로 돌아 가도다.
---
청봉착어:
왕의 아들이 어리석음에 가려 나그네가 되니
왕이 방편을 들어 천하를 호령함에
주린 자가 밥을 얻고 목마른 자 물을 얻고
떠돌던 배 항구에 닻을 내리니
여기가 금강대도량이로다
金剛般若波羅蜜經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