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11시간의 긴 비행으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하늘은 푸르고 높아서 우리의 가을 하늘을 닮았다. 손을 들어 허리를 뒤로 젖히며 심호흡을 한다. 유럽의 중심에 독일이 있고 그 중심에 프랑크푸르트가 있다. 금융과 전시회의 도시. 250개의 대기업의 빌딩이 자리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망한 뒤 재건되면서 모든 건물과 도시가 계획도시화 되었다. 자전거 도로, 경전철, 공원 등이 질서정연하다. 유럽 중앙은행, 기아자동차 유럽지사 등 세계의 경제 중심도시가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룬다.
독일은 인구 8천7백만 명으로 올해가 마르틴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며, 가톨릭이 34%, 신교가 34%이다.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료이다. 국민의 이동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 고속도로비가 공짜이다. 독일의 50%국민이 월세에 살고, 도시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집을 짓고 아우트호반으로 출근한다. 사계절이 있어 여름에는 더우나 습이 없고 건조하기 때문에 크게 덥지 않다. 전쟁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의 보관을 위해 짠 음식에 검은 밀빵 야채 등이다. 이들의 혐오식품 2위가 한국의 산 낙지라 했다. 한국사람 만나면 첫째 개고기 먹느냐? 둘째가 남한이냐? 북한이냐? 가 궁금하단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 고성에 올랐다.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네카르강이 흐르고 사암으로 지어진 붉은색 집들이 6월의 신록과 하나 되어 동화속의 풍경이다. 엘리자베스와 프리드리히 2세 왕과의 사랑을 기념한 ‘사랑의 문’을 지난다. 그 힘은 고딕, 르네상스, 바르코 양식의 중세풍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사랑을 훔치려는 병사가 뛰어 내려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소개한다. 성안에 자리한 22만 리터의 술을 저장한 큰 술통을 보면서 놀란다. 사랑의 묘약인 독일 맥주의 시원함을 끼니때 마다 만끽했다.
헤라클레스 동상이 있는 마르크트 광장에 섰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도시 한가운대 단과대학으로 흩어져 있고 괴테의 후손들이 ‘철학자의 길’을 산책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벤츠 박물관을 방문하여 자동차의 발전역사와 미래까지 구경했다. 자동차 마니아인 아들이 있었으면 얼마나 신이 났을까? 무뢰한인 나도 가슴이 벅찬데 아들에게 자세히 선물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누구나 이동수단에 투자하여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벤츠의 삼각 로그는 선박모터로 시작하여 하늘의 비행기, 땅의 자동차를 상징한다. 독일경제의 허리는 중소기업(미텔슈탄트)이 99.3%차지한다. 중소기업은 한 우물 파기와 고품질, 고가격 전략이다.
독일의 이민 특혜국에 한국이 들어 있다. 박대통령과 메르켈총리의 친분 덕분이란다. 복지의 천국이다. 독일은 환자에게도 인건비의 70%를 지급하고 실직수당도 4가지 방향에서 지원한다. 국민 모두는 내년 여름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즐길 것인가? 관심이 모아진다. 1년 동안 저축해서 15일에서 30일 가량 호주, 미국, 한국으로 떠난다. 작은 돈으로는 스위스 스페인 크로아티아 등 주변국가로 가고 캠핑카로 자국 여행을 떠난다.
농업분야도 경제성 경쟁력을 위해 일차 가공을 한다. 과일을 주스로 만든다. 독일 사람은 합리적이다. 모든 상거래에 서비스가 없다. 서비스를 제외한 가격이 제시되며 함부르크에만 바다가 있다. 생선이 귀하다. 연어, 민물고기, 닭, 돼지, 칠면조, 감자가 주식이다. 구경하느라 하루가 바쁘게 지나간다.
그들은 풍요를 누리면서도 검소했고, 공동체 안에서 합리적 생각과 판단을 잊지 않았다.
북풍
유 태 일
북풍은 여명이 가까운 시간에 별빛을 스치고 불어와 문풍지를 흔들었다. 어머니의 산고(産苦)는 시작 되었고 정월 스무날 한 생명이 태어났다. 머리가 커서 조금 더디나와 주위를 걱정시켰지만 대체로 순산이었다.
추운만큼 열을 품어 울음을 크게 터트렸다. ‘범띠 정월 생이라 고집이 있으나 잘 먹고 순한 아이라며 지나가든 스님이 가슴에 북두칠성을 품어서니 시주나 크게 하시라’ 했단다.
북풍은 북쪽 시베리아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말한다. 북반구 계절 변화의 신호를 주기도 하고 제트기류로 남하하여 중국, 한반도까지 그 영향을 준다. 북풍은 추위를 몰고와 고향산천을 얼리고 가을걷이를 마친 마을을 겨울잠에 들게했다.
고향은 도시에서 최고의 오지에 속했다. 오죽하면 ‘서울에서 최고 촌놈이 울산 촌놈이고, 울산에서 최고 촌놈이 내 고향 두동 촌놈이다’는 말이 생겼을까.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산과 벌판이 많았다. 경주 북천 내 (川)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풍이 겨울의 시작이다. 집집마다 월동준비에 바빴고 어린 우리는 들판이나 냇가 둑으로 나가 소꼴을 뜯고 모아 쇠죽 끓일 준비를 했다.
집 뒤 연화산은 해발 532미터로 높았다. 겨울엔 서너 시만 되어도 마을에 산그늘을 드리웠다. 밤이면 북풍은 골짜기를 타고 마을로 흘러와 웅웅 울었다. 우리 집은 동네 중앙쯤에 있었고 작은 개울을 끼고 20여 호가 살았다. 북풍이 천개의 바람이 되어 불 때면 어김없이 나이 많으신 어른들을 한둘 씩 모셔갔다.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의 안녕을 위해 제당에다 제물을 두고 천제를 지냈다.
초등학교 등굣길은 십리 길이었다. 호박소가 있는 냇가를 끼고 들판을 가로질렀다. 도시락과 책을 넣은 보자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친구들과 무리지어 들판 길을 걸었다. 바람은 옷깃을 파고들었고 몸을 움츠려도 귀가 시려 눈물을 글썽이며 앞만 보고 걷다가 다시 뛰었다. 앞줄에 선 형아 뒤를 졸졸 따라가며 바람을 피해 보기도 했지만, 홍골 모퉁이 돌아서면 얼어서 붉어진 볼을 사정없이 때렸다.
음력 2월 초하룻날은 연등날이다. 농경과 어로(漁撈)에 큰 영향을 주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神), 영등할머니가 천상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 바람이 차고 세게 불어 봄이 오는 것을 할머니가 시기한다지만 기실은 봄맞이 준비를 위한 마지막 점검인 셈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딸과 오고, 비가 오면 며느리를 데리고 온다고 믿어 풍년이 든다고 했다. 영등할머니는 농신(農神)이었다.
이월이 오면 농사가 많은 집에 머슴들은 집 기둥을 붙잡고 운다고 했다. 논에 거름내고, 물 받아 서래질, 모내기, 가을 추수하여 뒤주를 만들었다. 집집마다 여인들은 삼베를 얻기 위해 삼을 심었다.
내 삶속에서도 북풍은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 가지처럼 허허벌판에 내동댕이쳐졌다. 눈보라에 앞이 보이지 않았고 길은 끊어져 백척간두였다. 그러나 주저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살청(殺靑)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나무를 불에 쬐어 푸른빛을 없애듯 내 안의 북풍과 싸우며 힘든 시간을 극복해나갔다.
북풍은 숨이고 생명이다. 겨울나무들이 추워 떨고 잠들면 죽을까봐 끝없이 흔들어 깨운다. 춘분이 살짝 지나면 온기를 조금 바람에 실어 보낸다. 나뭇잎들은 이때다 싶어 연초록색 입술을 내민다.
도시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북풍이 불어 봄을 불러주던, 뻐꾸기 울던 고향 뒷산을 그리워했다. 그곳에는 큰 숨을 내 쉬며 뛰고 달렸던 짱밭(잔디밭)과 따사로운 햇살이 들던 북풍과 함께한 고향산천이 있었다.
북풍은 여전히 들판을 지나 나무를 흔들고 내가 머문 안방을 파고든다. 살아 있는 존재들은 추위에 반(反)해 더욱 뜨거워진다. 이 바람은 나의 생명이었고 어머니가 남겨준 바람이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지나면 기쁨의 순간이 온다. 2월의 북풍은 봄으로 가는 통과의례이다. 안태고향의 산과 들이 봄맞이에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려온다.
탑 골 샘
유태일
동해안에 한때 비, 매주 가는 등산을 노칠 수 없다. 오늘은 태화강 발원지인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운문산 탑골샘을 찾아 나섰다. 태화강 굽이쳐 흘러내려서 기름진 들판에 펼쳐진 곳에 함월산 줄기찬 흘러내려서… 초등 때 교가를 읊조리며 걷는다.
한참 전에는 가지산 쌀바위로 알려졌는데 2006년 울산발전연구원의 실측을 통해 가지산보다 운문산 탑골샘이 2km 정도 더 긴 47.54km임을 확인하고 발원지로 확정했다. 발원지라 쓰인 큰 바위 돌 주위를 둘러본다. 작고 큰 돌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고향집 뒷산 덜겅과 모양이 흡사하다. 덜겅은 산에 바위나 돌들이 위에서 길게 부어 놓은 일정한 범위의 돌산이다. 그 밑에는 짱밭(잔디밭)이 있고 그 중앙엔 무덤 한 쌍이 있었다.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어린 날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오면 아침 일찍 덜겅에 올려놓은 염소를 찾아 산그늘이 내리기 전에 산을 올랐다.
산이 머금은 빗물이나 복류수는 덩겅 밑으로 흘러 짱밭 끝부분에서 물길이 솟아올라 계곡으로 흘렀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김이 올라 따뜻했다. 탑골샘 위 덜겅은 그렇게 커지 않으며 반쯤은 흙으로 덮여있어 물푸레나무, 참나무가 무성하고 나무 위로 다래 덩굴이 타고 올라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그 계곡 물은 청아한 소리 청청… 청… 아래로 쉼 없이 흘렀다.
태화강은 울산의 중심을 가르며 흐르는 강으로 태화 뜰을 지나 용금소를 굽이돌아 학성, 남쪽으론 삼산평야를 이루고 울산만에서 동해로 들어간다. 발원지를 찾는 것은 뿌리를 찾는 기쁨이고 강 유역에 펼쳐진 역사성과 고유의 문화를 찾는 의미가 있다. 강물 흐름 속에는 삶에 기쁨, 분노, 사랑과 미움이 다 녹아들어 유유히 흘러간다.
탑골샘에서 흐른 물은 백리를 넘게 흘러 댐을 만들고 아득한 선사시대 기록인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낳았다. 다시 흘러 선바위를 지나 태화강 국가정원에 이른다. 태화 뜰 십리대숲은 공업도시 허파역할로 공기를 정화하고 사철 푸르르 태화루, 남산과 절경을 이룬다. 용금소를 휘돌아 흐르는 태화강은 백십 만 울산시민의 젖줄이고 산업수도 울산의 모태가 되었다.
강물이 흘러 동해에 이러는 하구에는 조개 섬이 있었다. 아침이면 뜨거운 재첩국을 파는 아낙들이 ‘재첩국 사소’외치며 온 동네를 돌았다. 가장들은 전날 숙취해소용으로 먹었고 마을에는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또 바다와 접하는 여천천 갯벌에는 갈대가 무성했고 먹이가 풍부해 가물치가 많아 손으로 잡을 정도로 어종이 풍부했다.
강원도 산소도시 태백은 민족의 젖줄 한강 발원지 검룡소, 삼척의 비경 오십천, 그리고 1,300리길 물길을 자랑하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 연못이 있다. 황지라는 지명의 유래는 자린고비 황 연감의 무례함으로 뇌성벽력과 함께 황부자 집 옛터가 연못으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 치술령 건너편 백운산 옹달샘에도 승천을 꿈꾸는 이무기가 살았다. 마침 천둥·번개가 있었고 비가 내려 승천을 시도했다. 요사스런 기운에 놀란 스님이 지팡이를 던졌고 이무기는 떨어지면서 절 앞마당에 있는 탑을 쳐 무너 뜨이고 죽었다. 비늘은 굳어져 돌로 변해 덜겅이 되고 계곡 물에는 용의 눈물이 섞여 흘러 영흠하다고 했다. 산 아랫마을로 탑이 굴러 탑골이라 불린다는 전설이다.
맷돌에 콩을 갈아 천대에 넣고 짜서 어레미 밑으로 맑은 콩물이 나온다. 간수를 두부를 만들 듯 빗물과 복류수는 덜겅을 거쳐 흘러 맑고 깨끗한 물이 되어 흘러간다. 세상 욕심을 내려놓고 고향 산천을 품은 어린 마음은 항상 나비를 쫓았고 매미를 잡으려고 나무에 올랐다. 안분지족하며 살았다.
모든 사람은 물의 성품을 닮기를 원한다. 둥근 그릇에는 둥글게, 네모난 그릇에서는 네모지게 모습을 만든다.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근본을 잃지 않는다. 추(醜)함을 씻어주고 끝없이 아래로 흘러 자신을 낮춘다. 수행자들은 수덕지상(水德之像)을 수행의 화두로 삼았다.
비 내리는 운문산 안개가 자욱하다. 땀이 식어 등줄이 서늘하다. 내려오는 길, 담에 좋다는 천남성, 삿갓나물, 용담과에 큰 구설붕이 보인다. 한참 차를 몰고 내려왔다. 복안 저수지, 삭다리못 수면에 물빛이 깊다. 초등 때 십리 길 찬바람 맞으며 등교한 모교가 저 멀리 보인다. 물길 따라 흘러간 세월을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