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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날에 떠오른 보름달
"하하하 배 터지겠다!”
"호호호 오줌 싸겠다!"
현우와 미희 남매는 할아버지께서 방안에 들어오신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애들아, 뭐가 그리도 우습기에 배 터지고 오줌 쌀 것 같으냐?"
할아버지의 말씀에 현우와 미회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만화가 너무 우스워서 그래요."
먼저 입을 연 현우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예의를 모르는 노총각이 장가를 들었습니다. 워낙 예절을 모르고 꺼벙하기까지 하여 나들이를 할 때면 그의 아내는 걱정이 되어 자세히 일러 주곤 하였습니다.
하루는 일가 친척집에 초상이 나서 꺼벙한 남편은 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여보, 초상집에 가서는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오?”
남편의 물음에 아내는 자세히 일러 주었습니다.
"상사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이 말은 상을 당하신 슬픔이 얼마나 크시냐는 위로의 인사말입니다.
꺼벙한 남편은 초상집에 가서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 별 탈 없이 문상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일가 친척집의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꺼벙한 남편은 아내에게 물으려고 하였지만 그의 부인은 그 잔칫집 일을 거들기 위해 먼저 떠났으므로 묻지를 못하고 뒤따라갔습니다.
잔칫집 대문 앞에 도착한 꺼벙한 남편은 인사말을 혼자 끙끙 생각하다가 지난번 초상집에 가서 문상을 하던 말이 생각났고 또 초상집에서 슬피 곡하던 사람들 생각도 나서 두 가지를 응용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꺼벙한 남편은 잔칫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보란 듯이 슬피 곡하며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상사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그러자 잔칫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이없이 바라보더니 마침내 욕설을 퍼부으며 빗자루와 몽둥이까지 들고 나와 꺼벙한 남편을 내몰았습니다.
"웬 미친놈이냐. 썩 꺼지지 못해!"
"축복해야 할 잔칫집에서 곡을 하다니, 무슨 원한이 있어 이 결혼을 저주하는 게냐?"
꺼벙한 남편은 온몸에 멍이 들만치 매를 흠씬 맞고 잔칫집에서 쫓겨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동생의 뒤를 이어 입을 연 미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김 생원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 생원은 어느 날 시집간 딸이 보고 싶어 딸네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김 생원은 처음 찾아간 딸네 집에서 후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푸대접이 심했습니다.
괘씸하게 여긴 김 생원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의논하여 자기가 죽었다는 기별을 딸네 집에 보냈습니다.
김 생원은 딸이 달려올 때쯤 안방에 병풍을 둘러치고 상청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김 생원은 병풍 뒤에 숨어서 딸의 행동을 살폈습니다.
딸은 동구 밖에서부터 머리를 풀고 슬피 울며 들어왔습니다.
너무나 슬피 울기에 아버지는 감격하여 전날의 노여움이 싹 가셔져서 병풍을 열고 뛰어나와 효성스런 딸을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딸이 늘어놓은 넋두리에 아버지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고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애고, 애고, 아버지. 어제 우리 집에 오셨기에 온갖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대접하여 드렸더니 잘 잡수시고는 '내가 죽으면 동구 밖 과수원과 앞뜰의 기름진 논은 네게 준다' 고 하시더니 이게 대체 웬 말인가요. 애고, 애고, 애고, 우리 아버지 "
하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우와 미희 남매의 이야기를 듣고 나신 할아버지는 혀를 차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쯧쯧 별 고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구나. 예의란 그런 것이 아닌데."
할아버지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무슨 생각에 잠기시다가 이윽고 눈을 뜨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무지개를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
"아름답다고 느껴요."
현우와 미희는 합창하듯 대답했습니다.
"그래 무지개는 아름답지.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예의란 마치 무지개와 같이 아름다운 것이니라. 그리고 너희들은 무지개에 여러 빛깔이 있는 것을 알테지?“
"예. 빨,주,노,초, 파, 남, 보 일곱 가지 아름다운 색깔이 있어요."
"그래, 아름다운 무지개에 일곱 가지 색깔이 있듯이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아름다운 예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느니라."
"무지개 빛깔처럼요?"
"그럼,"
"할아버지, 그것을 차례로 이야기해 주셔요.“
녀석들, 또 이야기를 조르는구나."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는 만화보다 더 재미있는걸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만화만 보나 봐요. 할아버지도 시골에 내려가시지 말고 우리랑 함께 사셔요. 네?"
"그건 차차 생각해 보기로 하고 예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주마, 무슨 이야기부터 해 줄까?“
"물은 높은 데서 아래로 내려오니까 높으신 임금님이야기부터 해주셔요."
"그러지. 옛날옛날 한 작은 나라에 어리석은 왕자가 임금님 자손으로 태어난 덕에 임금님 자리를 물려받았단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임금님은 백성들이 찾아와 물을 때면 그 백성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슬기로운 왕비를 만나 물어본 뒤에야 처리를 하곤 했단다.
하루는 농부 한 사람이 찾아와 집에서 기르던 황소가 마른 콩을 먹고 배가 터져 죽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단다. 어리석은 임금님은 안으로 들어가 슬기로운 왕비에게 물었지. 슬기로운 왕비는 말하기를, 마른 콩을 먹고 죽은 소는 병들어 죽은 소와는 다르니까 가죽을 벗겨서 팔고 살코기도 팔아서 그 얻은 돈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사 길러서 큰 소를 만들도록 하라고 일러주었지, 어리석은 임금님은 왕비에게 들은 대로 농부에게 일러주었단다.
그 뒤 어느 날, 이번에는 나라 안에서 소문난 효자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울면서 물었단다.
어리석은 임금님은 이번에도 왕비에게 물어보려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마침 왕비가 대왕대비 전에 가 있어서 물을 수가 없었구나. 어리석은 임금님은 당황하며 이 생각 저 생각 끙끙거리다가 전날 소를 죽인 농부에게 하던 말을 응용하여 자신 있게 말했단다.
'효자라고 소문난 백성아, 뭐 그리 어려울 것 있느냐! 가죽을 벗겨서 고기와 함께 팔고, 그 돈으로 조그만 계집애 하나를 사다가 잘 길러서 어머니를 삼아라.
이 말을 들은 백성은 넋을 잃고 도망치자 어리석은 임금님은 자신만만하게 낄낄 웃으며 자기의 일처리가 어떠냐는 듯이 대신들에게 뽐냈단다.
그러니 어리석은 임금이 다스리던 그 나라 백성들은 언제나 편히 살 수가 없었다는구나."
"하하하."
"호호호·
현우와 미회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배꼽이 빠질 듯이 웃었습니다.
"얘들아, 이 이야기는, 임금님이 백성들을 다스릴 때 마음은 경건히 하고 태도는 단정 엄숙하여 말을 이치에 맞게 해야 백성이 편히 살 수 있다는 뜻을 알리고자 하는 이야기란다. 이 말은 예기라는 책의 곡례에 이른 말이란다.“
"할아버지, 곡례에 이르기를 사람이 경계해야 할 네가지가 있다는 말씀을 선생님께서 해 주시는 걸 들었는데 그 뜻을 다 잊어버렸어요. 자세히 풀이해 주셔요.“
"우리 현우가 제법이로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크게 경계해야 할 네 가지 항목은, 오만함은 키워선 아니 되고, 욕심은 따를 수 없으며, 뜻은 채울 수 없고, 즐거움은 최고에 이르러선 아니 된다고 하였느니라.“
"할아버지, 예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셔요."
이번에는 미희가 말했습니다.
"예라고 하는 것은, 몸을 닦고 도를 지켜 자기를 낮추고, 남을 공경하고 겸손하게 하며 남을 존중하는데 있단다. 그러니까 자기를 귀히 여김과 같이 남을 존중하여 인격 평등과 인권 평등으로 서로 예를 존중하여 자중 자애함을 말하는 것이란다.“
"할아버지, 이 만화에 나오는 상례와 혼례도 그 예지요?"
현우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셨습니다.
"그럼. 예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행하는 예절인 상례와 결혼을 하는 예절인 혼례를 정하여 그 방법이나 질서 등 옳고 그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지.“
"할아버지, 만약 앵무새에게 예절 바른 말을 가르쳐서 그대로 말하면 예를 안다고 할 수 있나요?"
미희가 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를 흔드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냐, 앵무새가 말을 할지라도 날아다니며 아무데나 똥을 싸는 새의 무리임엔 틀림없어. 그리고 유인원과의 동물인 성성이가 말을 한다 하더라도 짐승의 무리임에는 틀림없지.
오늘날 사람이 예를 모른다면 비록 말을 한다 할지라도 또한 짐승의 마음과 다름이 무엇이겠니? 성인이 예를 만들어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알아, 스스로 짐승과 다름을 알게 하였단다. 그래서 사람은 짐승과 달리 문화 생활을 누리는 것이지.“
"할아버지, 사람은 여럿이 모여 살기 때문에 예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중도덕도 예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해요."
현우의 말에 할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성인께서는 덕을 귀하게 여기고 그 다음 은혜를 베풀며, 또한 보답하는데 힘썼단다. 예란 언제나 오고가야 하는 것이지, 가고 오지 아니함은 예가 아니며, 오고 가지 아니함도 또한 예가 아니란다.
사람은 예를 다하면 편안하며, 예가 없으면 위태로우니 그러므로 예는 반드시 배우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거아 "
"할아버지는 부모님을 어떤 예로 섬기셨죠?“
"역시 현우는 우리 집안의 기둥다운 질문을 하는구나. 무릇 자식으로서 부모 섬기는 예가 됨은 부모의 의복이나 잠자리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고, 밤에는 부모님께서 편히 잠드시기를 기다려 물러나며, 새벽에는 침실로 찾아 문안을 드리며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싸움을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할아버지는 잠시 사이를 두고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섬기는 법과 나이에 따른 대인관계의 예우가 있느니라. 자식된 도리로서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알려야 하며, 돌아와서도 반드시 뵙고, 배우는 것이 반드시 스승을 따라야 하며, 익히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끝을 마쳐야 하며,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늙었다 하지 아니해야 한단다.
나이가 자기의 곱절일 경우에는 곧 부모와 같이 섬기고, 10년 위일 때에는 형으로 섬기며, 5년 위일 경우는 평배로 할 것이야. 다섯 사람이 같이 자리를 했을 때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반드시 자리를 따로 해야 하느니라."
"할아버지, 예는 아랫사람이 윗어른에게만 드리나요?“
"아니야, 윗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도 많지. 어른이 아기를 키울 때는 언제나 돌보며, 어른은 어린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지."
"할아버지께서 우리들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그것도 예절에 속하나요?"
"그렇고말고, 이름이란 사람의 표식으로서 아버지는 자식에게 마땅히 바르고 큰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거야.“
"그런데 왜 아버지가 짓지 않으시고 할아버지가 지으셨어요?"
"집안에 윗어른이 있으니 상의를 드려 함께 지은 것이란다."
그때 "아버님, 진지 드셔요."
하고 어머니가 방안에 들어와 말씀하셨습니다.
현우네 가족은 식탁에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얘들아, 남의 집에 가서 손님으로 식사 대접을 받을 때의 주의도 알아두거라."
할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며 천천히 말씀하셨습니다.
"어른과 같이 식사하기를 기다릴 때, 주인이 친히 밥상을 들여올 때는 곧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 먹고, 주인이 친히 들여오지 아니할 때는 인사를 아니 하고 먹어도 되느니라. 밥을 같이 먹을 때는 입맛을 다시지 말고, 국은 입가에 흘리며 들이마시지 말고, 먹을 때는 큰 소리를 내지 말며, 생선은 뒤집어 먹지 아니하며 좋아하는 음식만 먹지 말고, 밥이 뜨겁다고 후후 바람을 불며 식혀 먹지 말아야 하며 식탁에서 이를 쑤시지 말아야 한단다. 알겠느냐?"
"예! 그리고 어른보다 식탁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잘 아는구나. 그러나 바쁜 일이 있을 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는 것이 예의니라."
"할아버지, 이제 며칠 있으면 추석인데 올해는 추석 다음날이 일요일이어서 우리도 모두 할머니 산소에 갈 수 있겠네요.“
"응, 그래서 너희들을 데리러 시골서 올라온 거 아니냐. 헌데 너희들 성묘에서의 예의도 알고 있겠지?"
"상가에서 웃거나 노래를 부르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같은 예가 아닌가요?"
"그래, 맞는 말이다. 그리고 무덤에 올라가서도 안되지."
"참, 그렇군요.“
소슬한 가을 바람 속에 추석날을 향해 점점 커져가는 둥근달이 예의바른 가족의 머리 위로 둥실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도덕 인의는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가르쳐서 풍속을 바르게 하는 것도 '예' 가 아니고는 갖추어지지 않는다.
다투어 판가름 하는데도 '예'가 아니면 결정을 지을 수 없다.
임금과 신하의 위 아래 관계, 아버지와 자식, 형제 관계도 '예'가 아니면 정하여지지 않는다.
벼슬을 하거나 배워 스승을 섬김에서도 '예'가 아니면 친할 수 없다.
조정에서 계급의 차례를 바로잡는 것도, 군대를 다루는 것도, 관직에 있어 법을 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으로 행할 수 없다.
복을 빌고 제사를 드림에도 '예' 가 아니면 정성스럽지 못하고 장엄하지 못하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언제나 공경과 법도 그리고 분수로서 '예' 를 밝혀야 한다.
-예기-
출처 : 고전속의 지혜(송명호, 기획출판 南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