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족히 11년은 지났다. 새벽에 이사를 했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간. 남편은 2.5톤 트럭을 어디서 몰고 왔다. 많은 짐을 박스에 묶어 놓은 것을 두 아들을 시켜 차곡차곡 차에 실었다. 백 만원 만 들이면 이삿짐센타에서 실어다 줄 것인데 이제껏 이사를 너댓차례 하는 동안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처음 두어번 시댁 식구들이 짐을 날라주었고 그 뒤론 내 차지가 되었다. 남편은 바깥 일에만 신경을 썼지 손하나 까딱 않으려 했다. 그날 이삿짐을 남편과 아이들은 서너 번 실어 날랐고 다 실어 날랐다는 안도감에 우린 정리도 않고 그대로 현관의 너른 마루에 큰 대자로 뻗어 잤다. 모두 직장엘 갔다왔는데 자기 방조차도 정리 안하는 건 보나안보나 뻔한 일이다. 도와주기는 커녕 남편은 텔레비젼만 보고 아이들은 제 방에서 컴퓨터 하기에 바빴다.
아니나 다를까 ''주일에 시간내어 정리를 같이하면 어디에 무얼 넣어 두었는지도 알 것이다. 찾기도 쉬울 것이다.'' 고 말했건만 찾고자 하는것이 없다며 잘 정리해 놓은것을 찾느라 이리저리 흐트려 놓아 다시 정리를 해야 했다. 속이 상했다. 친정아버지는 집안청소며 자녀 한 사람 한 사람까지 챙기며 낮에 뛰어놀면 엄마 깨니까 조용하게 놀아라고 나무라기까지 했는데...신혼때 따라다니며 커피까지 태워주고 이래라 하면 이러구 저래라 하면 저러더니 커피도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한것이 아니고 그건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는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전화가 오고 전화를 하면 친정아버지는 사사건건 간섭을 하니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아무 간섭 안하는 남편이 편했다. 그래 많이 배려 해주는구나 생각했던 그것 마져도 선입견으로 인한 나의 편견이었다.
어느 날 시댁식구들이 왔다갔다. 남은 음식은 모조리 모아서 버렸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집에서 알면 당신은 쫓겨난다고 했다. 서점할 때 일이다. 큰 아이 낳고 어머니께서 왔다. 목이 마른지 새것이 옆에 있다고 했는데도 마셔버렸다. ''아니, 이것은 오줌이 아니냐.'' 고 했다. 밖에 뛰어놀다 들어오면 으례 쉬를 빈통에 누고 아이는 새 통에 우유를 뜯어 꿀꺽꿀꺽 마시고 또 밖으로 뛰쳐나갔던 것이다. 어머니는 환히 웃으며 ''환이 오줌이구나.'' 하고 퉤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손자 오줌을 맛보니 좋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선반위에 우리가 먹다 달아서 먹지 않은 크림만 남겨 올려 놓은것을 어느사이 먹어버린 적도 있다. ''어머니 가시면 설겆이도 하고 정리 할 테니 어서 가세요.'' 해도 ''아니다. 네가 한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내가 온 짐에 거두어 놓고 갈련다.'' 하고 반질반질 씻어 정리 해 놓았다. 작은 아들 낳았을 적에도 ''너 힘들다.'' 하고 큰 아이를 떼어 과수원으로 데려갔다. 시댁은 힘들것이다. 불편 할 것이다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친정어머니는 ''네 자식 네가 키우려므나. 너희들 키우는 것만 해도 힘들었다.'' 하고 가까이 있어도 아기 낳고 산간하는 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엄마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과수원에서 자란 배추에 생갈치 넣어 푸데기에 담아 김장철엔 배달해 주었다. 사과 수확때는 궤짝으로 사과를 부쳐 주었고 쌀가마로 쌀도 보내주셨다. 당연하게 받았던 마음. 괜한 남편과 시댁에 대한 선입견으로 오해를 했다. 소고기국을 끓이는데 물을 많이 붓지 않고 잘박하게 끓이느냐 한 시어머님. 생신 선물로 목이 긴 고급 겨울티셔츠를 백화점에서 사서 선물 했는데 이런 옷은 안입는다고 내민 아버님. 그 뒤론 절대 선물을 안샀다. ''당신이 돈을 드리든지 알아서 해요.'' 라고 딱 잘라서 남편에게 말했다. 사실은 아버님 옷에는 목티가 없었다. 목까지 오는 티는 아무리 추워도 답답해 안입었다는 사실은 후에야 알았다.
어머니 돌아가실 즈음 형님네 집에 갔을적 사진첩에 아버님 어머님 젊은시절 다소곳이 찍은 사진을 몰래 훔쳤다. ''어머니 이 사진 가지고 갈래요. 우리 집에는 어머님 아버님 사진이 없어요. 나중에 손자들 태어나면 보여 줄 겁니다.'' ''괜찮다. 여기 사진 많이 있잖아 더 뽑아가거라. 죽고나면 아무 소용없다. 마케 다 태워 버릴테니까.'' ''내가 사람이 그리웠는데 잘 낳았다. 얼른 아기 내 방에 뉘여라.'' 하곤 깨끗한 시트와 베게를 깔아 주어 마흔에 낳은 딸아이를 뉘게 한 어머님. 새생명인 파릇한 손녀의 숨소리를 떠난 뒤에 느끼며 잠을 청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탐을 내어 가져온 두 분의 젊은시절 사진이 기일이면 텔레비젼에 남편과 띄워놓고 연도하는 사진이 될 줄이야. 온전한 사랑을 주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시댁 식구들을 향한 나의 선입견이었다. 막연히 시댁이란 힘든 곳이다. 상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라고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편견이었다. (20230710)
첫댓글선입견(先入見)이 생겨야 편견(偏見)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제가 "선입견과 편견"으로 짝을 이룹니다. *선입견 : 애초부터 머리 속에 들어 가 있는 고정적인 관념 및 견해. *편견 :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침. 글 쓰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선입견(先入見)이 생겨야 편견(偏見)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제가 "선입견과 편견"으로 짝을 이룹니다.
*선입견 : 애초부터 머리 속에 들어 가 있는 고정적인 관념 및 견해.
*편견 : 공정하지 못하고 한 쪽으로 치우침.
글 쓰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카페지기.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