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반지
잃어버린 반지의 아름다움
신근식
사람마다 기념일 부여하는 의미가 모두 다르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연애를 시작하고 100일 단위를 하나하나 챙기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일주년 단위로 챙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의 특별한 날을 소중히 기념하려고 한다면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결혼기념일 중 10주년 단위는 더 특별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올해 11월이면 결혼 40주년을 맞는다. 대표적으로 보면 10년은 석혼식, 20년은 자기혼식, 30주년은 진주혼식, 40년은 벽옥혼식, 50주년은 금혼식이라고 부른다. 우리 부부가 맞이하는 40주년 벽옥혼식(碧玉婚式)은 푸를 벽, 구슬 옥, 혼인할 혼, 법 식을 사용한다. 다른 말로는 청옥혼식이라고도 하며 그 의미는 ‘성실과 덕망으로 맺어진 결혼생활’이라는 뜻이다. 이때는 ‘푸른 구슬’인 사파이어 반지나 사파이어 제품을 주로 선물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부부가 벽옥혼식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을 함께하였다는 것이다. 20대에 혼인하였다면 벌써 60대가 되었을 것이고, 30대에 혼인하였다면 70대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40년 동안 두 사람이 모두 별 탈 없이 함께 삶을 걸어왔다는 것은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다.
40년 전 청춘남녀가 만나 사귀어 일 년 못 되어서 1984년 11월 M예식장에서 혼인을 하였다. 결혼한다고 혼수와 예물을 준비했다. 남성은 시계를 사고 반지도 맞추며, 여성은 시계, 반지, 목걸이, 팔찌 등 남성보다 몇 가지 더 많다. 여행사를 찾아 신혼여행 갈 장소를 꼼꼼이 물색하여 결국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여행사에 일생 한번뿐인 신혼여행이기에 혹시라도 펑크가 나지 않도록 신신당부하였다. 그때는 외국에 신혼여행 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주로 경주, 부산, 부곡온천 등이었는데 그나마 제주도 가는 것은 퍽 잘 간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도 칼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겼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방이 빠지지 않아 숙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금방 준비된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방을 내어주지 않아 여행사에 그렇게 신신당부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어이가 없었다. 여행사 측에 거센 항의 끝에, 인근에 있는 그랜드호텔 디럭스(deluxe) 룸 배정해 준다고 하여 화가 조금 풀렸다. 이것도 인생 첫 출발에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과연 디럭스 룸은 달랐다. 우리가 예약했던 방보다 훨씬 넓고 화려하고 좋았다.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코스인 서귀포에 갔다. 택시 기사 안내로 관광지를 돌며 남들이 다 하는 멋들어진 신혼부부로 여행을 만끽했다. 특히 산방사에 화산 암석이 많아 다니는데 힘들었고 손과 손목에 있는 장신구에도 긁히기도 하였다. 식당에 와서 아내가 반지에 흠집이 많이 났다고 하여, 내 반지는 괜찮은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 끼고 있어야 할 반지가 없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성스러운 결혼반지인데 금액과 관계없이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가. 아내와 상의하여 남은 일정을 접어두고 택시를 타고 2시간 걸려 그랜드호텔에 도착하여 반지 분실을 프런트에서 이야기했다. 묵었던 방을 아무리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아찔하다. 분명히 반지를 뺐을 때는 세수할 때 거치적거려서 뺀 것 이외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미 없어진 물건을 찾기에는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하고 찾는 것을 포기하였다. 신혼여행의 중요한 일정이 있기때문에 찾으면 연락 달라 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서귀포로 돌아왔다.
나의 실수로 성스러운 반지 분실 때문에 신혼여행 기분이 잡쳤다. 아내는 그때 마음이 어떠했는지? 결혼반지는 결혼과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에 분실하게 되면 아내가 결혼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까 봐 조바심 났다. 다행히 아내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찾으면 연락 주기로 했고, 설사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 반지는 꼭 필요한 사람이 가져갔거니 생각하라고’ 했다. 이제 그 일을 잠시 잊고 남은 신혼여행을 더 돈독하게 보냈다. 오히려 반지 분실로 인하여 신혼여행에서 알 수 없는 끈끈한 정이 맺어졌다. 신혼여행에 돌아와서 사진을 찾아보니 호텔 침대 옆 협탁(俠卓) 위에 성스러운 반지는 누구 보란 듯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니 어디선가 영원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결혼이란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같이 가는 인생의 파트너이자 동지를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부부는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평행선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결혼 후 40년 동안 몸부림쳤지만,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가 보다. 지금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차곡차곡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수많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모두 털어버리는 것이다. 비움과 또 다른 채움을 실천할 때이다. 이제는 손주 녀석 재롱부리는 것 보는 연약한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반지도 끼고, 리마인드웨딩 촬영이라도 하여 새로운 신혼부부로 살아갈까싶다.
중년의 오후, 이제부터 인생이 주는 행복을 남김없이 누리기로 하겠다. 지금은 사파이어도 못 사주지만 50년 금혼식(金婚式)에는 최고의 다이아몬드 선물을 안겨줄지 누가 알겠는가? 고생 끝에 찾아온 달콤하고 아련한 행복 내 사람이라서 감사하다. 며칠 전 tvN 종영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여주인공 홍혜인의 묘비에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내 인생의 기적이었습니다.’ 로 아른거린다.
(20240430)
첫댓글 바깥의 제목을 수정 하십시오.
26.읽어버린 반지- 신비함 -> "잃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