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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도, 어떻게 하는가?(2)
뽑는기도와 대적기도
성성적적과 헤시카즘
넷째, 내 안의 연약함과 사악함의 기운을 뽑아내라
호흡기도를 통해 내 안의 나쁜 것은 뽑아내고 성령님의 좋은 것은 마신다.
주 예수여 (들이쉴 때)
불쌍히 여기소서(내실 때)
성령님 채우소서(들이쉴 때)
내 안의 죄악을 뽑습니다(내쉴 때)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을 하면서 숨을 쉬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기도의 내용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이 좋다.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채우고 성령을 마신다’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인 성령을 마신다?
성령은 Holy Spirit인데 Spirit의 히브리어는 ‘루악’이고 헬라어는 ‘프뉴마’이다. 루악이나 프뉴마에는 바람, 호흡, 기운, 돌풍이란 뜻이 있다. 성경에는 영이신 하나님이 바람, 호흡, 기운, 돌풍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신 적이 많다. 동의어로는 히브리어의 ‘네솨마’ ‘네페쉬’ 등이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하이 네솨마. The 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다 하나님의 입 기운(네솨마. The breath of God)에 멸망하고 그의 콧김에 사라지느니라”(욥 4:9).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네솨마)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어떤 사람들은 윗 구절이 말하는 ‘마신다’, ‘숨을 내신다’는 표현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지만 실제로 호흡기도를 해보면 이런 구절들이 영적 실재임을 알게 된다. 즉 세상 사람들이 호흡기도를 통해 대기의 기운을 마시듯 기독교 신자들이 호흡기도를 통해 성령의 기운을 마실 수 있다는 말이다.
호흡기도의 경우, 제대로 뽑아내야 제대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호흡기도의 핵심은 들숨이 아니라 날숨이다. 들숨을 뱃속 깊이 자연스럽게 쉬면서 날숨에 초점을 맞추어서 상처로 인한 연약함과 회개할 죄목을 집중적으로 뽑아낸다. ‘뽑아낸다’는 말은 내 안에 있는 연약함과 죄악의 기운을 뽑아낸다는 말이다.
호흡기도와 치유기도, 회개기도
왜 필자가 ‘기운을 뽑아낸다’고 하는가?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소원하는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기억됨은 물론 몸의 세포나 DNA에 저장되고 기억된다는 사실을 현대 물리학이나 의학이 밝히고 있다. 특히 양자역학(Quantum physics)은 이런 것들이 기운이나 에너지로 저장되어 있으며 유전자를 통해 결혼과 출산을 통해 후손에게 전이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자녀는 부모를 닮는데 부모의 좋은 것은 물론 나쁜 것도 대부분 닮는다. 부모가 술주정꾼이거나 음란했거나 혈기를 잘 부렸거나 마음이 약하여 늘 불안해 하거나 무기력한 증세가 있으면 자녀들도 대부분 닮는데 그 ‘원인’은 물론 전이 ‘방법’이 현대 과학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또한, 자녀가 임신하면 부모가 누군가에게 태아를 위해 빌 것인데-기도할 것인데-하나님께 비느냐, 우상에게 비느냐에 따라 태아는 그로 인한 기운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부모가 하나님께 빌었다면 그 자녀는 하나님의 기운(성령, Holy Spirit)을 받아 정서가 안정되고 권위자에게 순종을 잘 하는 착한 아이로 태어나기 쉽다. 그러나 우상에게 빌었다면 마귀(악령-evil spirit)의 기운을 받아 그 자녀는 고집 세고 까다롭고 권위에 반항하는 자녀로 태어나기 쉽다.
물론 그 자녀는 본인의 결단에 따라 그런 나쁜 기질을 완화시킬 수도 있고 강화시킬 수도 있지만 복중에서 형성된 기질이 생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때문에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태교를 중시해왔다. 복중의 1년이 생후 10년 보다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나쁜 기질이나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는 말로 회개기도하고 중보기도도 해야 하지만 나쁜 기운을 뽑아내는 유용한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호흡기도라는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호흡기도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산만하고 집중력이 약한 학생이 호흡기도 일주일 만에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얕은 흉식호흡을 오래하면 몸 속에 산소가 부족하여 각종 정신질환이나 질병에 쉽게 노출되는데 단전호흡을 통해 나쁜 기운을 뽑아내고 산소를 충분하게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사람들이 편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입으로 들숨을 들이쉴 때 나쁜 공기도 흡입하여 두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들숨을 코로 쉬는 훈련만 해도 머리가 맑아져서 집중력 높아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호흡기도만을 통해서 암과 같은 각종 고질병을 치유한 사례도 많다. 글의 처음에 허버트 벤슨 박사의 케이스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호흡기도를 통해 몸과 마음의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호흡기도를 통해 회개기도를 할 때는 코 보다는 입으로 숨을 내쉴 때가 많다. 내 안의 연약함, 추악함, 완악함 및 기타 여러 가지 죄악의 뿌리를 깊이 뽑는 회개기도를 할 때, 구멍이 작은 코 보다는 넓은 입으로 내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뽑는기도를 할 때는, 말로 하는 회개기도를 어느 정도 한 후에 회개할 죄목을 마음에 기억하면서 내 심령 깊숙한 곳에서 뽑는 기도를 한다. 때로는 한 가지 죄목을 회개하기 위해 한 번에 여러 시간 하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불안과 두려움의 기운을 뽑아내기 위해 어떤 때는 한 번에 2시간 이상 뽑아낸 적도 있다.
이렇게 한 3개월 정도 불안과 두려움의 기운을 뽑아낸 것이 거의 20년 전의 일이다. 이후부터, 어떠한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처해도, 겉으로는 조금 불안해 하지만 금방 내 안의 속사람이 불안과 염려를 몰아내는 것을 경험할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운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죄를 따르는 겉사람으로는 걱정을 하는데 성령을 따르는 속사람이 딱 막아 서서 기쁨과 평강을 주니 불안과 걱정이 금방 사라지고 마음에는 환경이나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주님의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것이다.
“아, 이것이 바로 속사람의 능력이구나.
사람들이 미움, 원망, 염려, 불안, 두려움 등에 휘말리는 것은 결국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능력 즉 나쁜 기운을 제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구나. 사람들이 자기 속의 연약함을 깨달아서 그런 기운을 뽑아내고 성령의 기운으로 채우면 환경이나 문제에 휘둘리지 않고 늘 주님이 주시는 사랑, 희락(기쁨) 평안을 누릴 수 있구나.”
필자는 이런 식으로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나쁜 성격이나 기질 등-을 지금도 하나씩 뽑아 나가고 있다.
어떤 집사님은 그 동안 모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렸는데 막상 나쁜 기운들을 하나씩 뽑아가다 보니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기가 막혔다고 한다.
‘기쁜 이유’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내서 해결해 가기 때문이고 ‘기가 막힌 이유’는 자기 인생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죄는 이처럼 당사자의 눈을 가려버려서 평생 속고 살게 만든다.
뽑는기도를 하다 보면 회개란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를 인용하면서 ‘죄를 한 번 회개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필자는 되묻는다.
“그렇게 한 번 회개했다고 해서 당신의 마음 속에 미움, 원망, 염려, 좌절의 기운이 완전히 없어졌습니까?”
“아, 그렇군요, 내 안에 있는 나쁜 기운-죄의 기운, 죄의 힘-을 모두 뽑아내야 되는군요.”
그렇다. 평생에 걸쳐 어떤 사람을 미워해 온 사람이, 미워한 죄 한 번 회개한다고 해서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미움이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면 단 번에 미움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주시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다른 모든 죄의 뿌리도 한 번에 모두 뽑아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두 번 그렇게 해주시는 것은 맛보기나 시범이고 나머지는 본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에 힘 입어 계속 죄의 기운을 뽑아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책임있는 반응
염려, 불안 없이 하루도 지낸 적이 없다는 어느 집사님이 소개로 찾아왔다. 필자는 몇 가지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 집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걸, 제가 해야 합니까?”
“그럼, 본인이 하지 않고 누가 합니까?”
“……………….”
이후 그 집사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의 많은 교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목회자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하고 의지한 나머지, 자기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의 은혜나 ‘불 받으라’는 목회자의 능력 한방으로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것은 예외이고 대부분은 자기가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에서 ‘회개하라, 미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각자에게 주시는 권면이나 명령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2).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내가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호흡기도와 대적기도
개인의 죄를 회개하고 가정, 교회, 이웃 및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고 나면 어떤 경우에는 그 죄를 타고 역사하는 영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그 영들을 대적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물론 통성기도, 명령기도 또는 방언기도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 영들이 순순히 잘 물러가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에 걸쳐 치열한 영적 전쟁 기도를 해야 한다. 이때 효과적인 기도 방법이 바로 숨을 내뿜으면서 밀어붙이는 대적기도이다.
필자가 ‘밀어붙이는 기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씨름 선수가 샅바를 잡고 힘을 쓸 때, 소리나 동작은 별로 없지만 엄청난 힘을 쓰는 모습이 팽팽한 근육과 불거진 핏줄을 통해 나타난다. 대적기도를 할 때에도 말이나 동작은 별로 없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때는 마음의 눈으로는 대적의 모습을 보면서 뱃속 깊이에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영의 기운을 뿜어내면서 대적과 한 판 승부를 벌인다. 필자가 잠시라도 멈추면 금방이라도 대적이 나를 물어뜯거나 공격할 것 같은 긴박한 순간인지라 잠시도 대적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내뿜는 기도로 힘있게 밀어붙여야 한다.
어떤 때는 이런 기도를 서너 시간 할 때도 있다. 대적이 제압되어 기도가 끝날 때쯤이면 기운이 빠져서 온 몸이 나른해지기도 한다. 기도 전에 아무리 잘 먹어도 기도가 끝나면 금방 배가 고파진다.
이런 영적 전쟁 기도를 하는 사람은 잘 먹어야 하는데 특히 육류를 정기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밀어붙이는 기도는 단 시간에 온 몸의 에너지를 뿜어내야 하므로 순발력과 지구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채식만으로는 힘들다.
요즈음 건강식이라고 하여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물론 건강이 좋지 않거나 육류 과다 섭취로 콜레스테롤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는 식이요업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에게 ‘채식만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 말씀에도 위배되고, 공부나 일을 왕성하게 해야 할 사람에게 영양 부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영적 전쟁을 치르는 사람에게는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채식주의는 범신론주의자들이나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기독교 신자들이 육류를 먹지 못하게 하여 영적 전쟁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려는 책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딤전 4:3).
넷째, 주님으로 채워라
호흡기도의 뽑는기도를 통해 나쁜 기운을 제대로 뽑고 나면 주님께 집중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쉬워진다. 호흡기도는 주님과의 임재기도를 도와주는 기도이다.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임재를 누리기 위한 과정으로 필요한 기도이다.
사람들은 임재기도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나와 주님 사이를 가로 막는 잡 생각, 상처나 죄악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임재기도를 하기 전에 치유기도, 회개기도, 호흡기도를 통해 뽑는기도를 먼저 한다. 철저하게 뽑고 나면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쉬워진다.
제대로 뽑고 난 후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주님, 주님의 성령으로 채워주시옵소서”라고 마음으로 말하면서 주님의 성령을 들이마신다. 몇 번 이렇게 하노라면 금방 성령으로 채워져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7:38-39).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에 유의하라.
필자의 경험이나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의하면 제대로 뽑고 채우면 많은 경우 뱃속 깊은 곳에서 시원한 생수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목구멍을 통과하면 웃음으로 터져 나온다. 사람들은 이것을 ‘희락의 영’ (사 61:3) 또는 ‘거룩한 웃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웃음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주님의 기쁨, 주님의 임재이다.
어떤 사모님은 여러 가지 일로 너무나 좌절하고 낙심하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을 보아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집회에 참석하여 ‘희락의 영’이 강하게 터졌다. 그 동안 답답하고 울적했던 기분이 일시에 가시고 새로운 소망과 기대를 갖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기도해 보면 희락의 영이 가슴이나 목구멍까지 와있지만 밖으로 터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님의 경우, 희락의 영이 가슴까지 와 있군요. 본인도 그것을 느낍니까?”
“네.”
“그런데 지금 부끄러워하거나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시군요. 이런 때는 본인이 먼저 웃어서 마중물- 펌프에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위에서 붓는 소량의 물-역할을 하세요, 그러면 웃음이 강하게 터집니다.”
이렇게 해서 웃음이 터지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이런 웃음이 방정맞다고 한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교회에서 왜 그렇게 방정맞게 웃느냐는 것이다.
교회에서 웃는 것이 방정 맞다고? 그렇다면 교회에 오면 허구 헌 날 질질 짜야 하는가? 세상에서 질질 짜더라도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면 웃으면서 기뻐 날 뛰어야 하지 않는가? 죄인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기도 해야 하지만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기뻐 날뛰기도 해야 하지 않은가.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학 2:20).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시 68:3).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는 잘 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임재기도를 즐기다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된다.
다섯째, 주님을 즐겨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서 희락의 영이 임하고 거룩한 웃음이 터지는 것은 임재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더 깊은 임재에 들어가면 내 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주님의 기쁨, 달콤함, 평안에 잠기면서 주님과 하나됨을 누리게 된다.
쇠를 불로 달구면 나중에는 쇠가 불인지 불이 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연일체가 되듯, 이맘때 쯤이면 겉사람의 나는 간 곳 없고 온전히 속사람으로 주님과 하나되는 환희와 만족을 누리게 된다.
때로는 기쁨이 너무 강렬하여 황홀감에 젖기도 한다.
이런 상태를 심리학은 ‘의식 변형 상태’ 또는 ‘아하 상태’, 범신론에서는 ‘법열 체험’, ‘열반’이라 부르고, 요가에서는 ‘쿤달리니’ 체험, 기독교에서는 ‘정상 체험’, ‘성령 체험’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이런 상태에서는 강렬한 기쁨과 황홀 체험이 동반된다.
종교 유무와 상관 없이 사람들은 이런 체험을 추구한다.
사람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쾌감과 황홀감은 섹스나 마약을 통해서 오는데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도 이런 희열과 황홀감을 체험한다. 그러므로 희열과 황홀감을 체험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는가가 문제일 뿐이다. 물론 신자는 마약을 통한 희열 체험을 해서는 안되지만 부부간의 섹스나 하나님과의 경험적 연합에서 오는 기쁨이나 황홀 체험은 거부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잘 모르는 비판자들은 영적 황홀체험이라고 하면 금방 심리적 현상이나 유사 종교적 체험만을 떠올리면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신들이 체험하지 못하니까 다른 기독교인이 그런 체험을 하면 금방 의심의 눈길로 쳐다 본다. 결국 비판자들은 자기들의 무체험을 바탕으로 다른 신자들의 건전한 체험을 비판하는 것이다.
*성성적적의 상태
이때는 이전 단계보다 다소 조용한 기쁨과 평강의 단계이다.
이전의 단계가 기뻐 날뛰는 단계라면 이 단계는 그윽하고 고요한 기쁨과 평강이 온 영혼과 몸을 부드럽고 깊게 어루만지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식이 잠재워지고 무의식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좌뇌적인 생각과 이성이 잠재워지고 우뇌적인 직관이 활성화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의식이 깨어있긴 하지만 나의 능동적인 의식이나 생각은 잠재워지고 수면 직전의 단계처럼 다소 몽롱한 단계이다.
이런 상태를 한자로는 성성적적(惺惺寂寂, awake but calm)의 상태 즉 ‘별빛처럼 또렷하게 의식이 깨어있으면서 동시에 마음이 고요하고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없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기독교 영성가들은 이런 상태를 영적 고요 즉 ‘이시키아’(헬라어)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헤시카즘이란 단어가 생겼는데, 헤시카즘의 전통은 3세기 북아프리카에서 은둔하며 수도 생활을 실천하던 사막의 교부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흡법 등을 통해 외면과 내면을 평온하게 한 상태로 기도와 묵상을 거듭하여 궁극적으로는 신과의 합일에 이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로마 제국 후반에는 그리스 북부의 아토스 산에서 수행하는 수사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묵상을 통해 신이 내뿜는 빛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헤시카즘을 통해 무정념(detachment), 무집착의 상태에 들어가서 심령천국을 누리면서 동시에 세상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의식이 깨어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죄로 물든 육신적 생각·욕망·감정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하나님의 성령이 일하시기가 어렵다. 한편, 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고요하기만 하면 금방 잠에 녹아 떨어진다. 훈련되지 않은 초보자는 이런 중간 상태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으므로 부지런히 치유하고 회개하여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속사람을 강건하게 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때는 ‘이성’과 ‘생각’이 잠재워지고 ‘감성’이 살아나는 순간이라고 표현하여 오해를 사기도 한다. 이성과 생각이 잠재워진다기 보다는 육신적이고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생각’과 ‘욕망’이 잠재워지고 그 대신 속사람의 ‘이성’과 ‘생각’이 순수하고 명료해져서 하나님과 성경 말씀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솟아나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부각되고, 내면은 조용한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알파파와 세로토닌 호르몬 방출
성성적적의 상태일 때 우리의 뇌에서는 알파파(alpha wave)와 세로토닌(serotonin) 호로몬이 가장 왕성하게 방출된다. 알파파가 방출될 때 기억력, 집중력이 좋아지고 창의력이 높아진다. 세로토닌 호르몬이 방출되면 부정적이고 공격성을 유발하는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과 활기차고 흥분 상태를 유발하는 도파민·베타 엔도르핀의 균형을 유지하여 마음이 고요하고 평상심을 유지하게 된다.
서양의 학자들이 인도나 티벳트의 구루들(guru. ‘스승’이란 뜻)의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명상을 통해 알파파가 다량 방출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기 때문이고 최근에는 명상의 상태에 돌입하면 세로토닌 호르몬도 많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세상에서는 학생이나 수험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알파파 방출을 돕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데 그중에서 범신론적 명상과 호흡기도, 단월드의 뇌호흡이 각광을 받고 있다.
물론 영 분별이 없이 무방비로 세상적이고 유사 종교적인 명상과 호흡기도에 노출되면 악령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는 이런 훈련 자체를 비판하고 금기시하지만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니까 상당수의 목사나 교회의 중직은 물론 영 분별력이 약한 신자들이 이런 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필자는 분명히 말한다.
기독교가 세상이나 유사 종교의 명상이나 호흡기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나 유사 종교가 원래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여 오남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그런 것도 탈환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됨
호흡기도, 임재기도의 목표는 내가 주님과 하나가 되는 만남을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는 이런 상태를 ‘몰입’(flow)이라 하고, 이전의 기독교 영성가들은 ‘합일’(unity with God)이라고 불렀다. 범신론에서는 이런 상태를 통해 존재가 서로 하나가 된다고 말하지만 기독교의 합일 체험은 창조주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드는 강한 중요한 동인은 무엇일까?
돈? 두려움? 즐거움?
아마 즐거움일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과 만족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런 강렬한 기쁨이나 즐거움은 언제 오는가? 바로 나와 대상이 하나될 때 오는데 이것을 세상에서는 ‘몰입’이라고 부른다.
-몰입
몰입(flow) 연구의 대가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박사는, 몰입이란 ‘어떤 행위에 깊게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컫는 심리적 상태’라고 말한다. 몰입은 스키를 탈 때나, 악기를 연주할 때나, 글을 쓸 때나, TV를 재미있게 볼 때와 같이 여러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지고의 행복감을 누리고, 집중력 및 창의력이 고도로 개발된다.
일반적으로 나와 대상이 하나될 때 사람들은 몰입 체험을 한다.
• 나와 그것 : (하위) 도박, 중독 등. 그러나 후유증이 심하다
(중위), TV시청, 스포츠 관람,
(상위) 일, 학문, 예술 등
• 나와 사람 :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교제
• 나와 신(神) : 불교, 마음수련, 명상훈련, 참선, 뉴에이지 운동 등
• 나와 하나님 : 하나님과 예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체험
타 종교에서도 명상훈련을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나름대로 몰입체험을 하여 자기들의 신이나 대상과 하나되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기쁨 체험을 불교에서는 법열(法悅) 체험이라 하고, 요가에서는 ‘쿤달리니 각성체험’이라고 한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기쁨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신자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추구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신자라고 해서 허구 헌 날 십자가 고통만 말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외면해야 할까?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매일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삶을 원하신다.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삶은 무엇보다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을 말한다.
호흡기도를 통한 임재체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한다.
신자는 물론 신분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5).
그러나 주님과의 연합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살아가는가의 여부는 별개이다.
어떤 비판자는 우리는 연합으로 시작하는데 그들은 연합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물론 신자는 예수를 믿으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신분적으로 연합한다.
그러나 신분적 연합과 경험적 연합, 실존적 연합은 다른 것이다.
부부가 결혼하여 법적으로는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서로 아무런 교제도 하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명목상의 부부, 무늬만의 부부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자가 아무리 신분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이라도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연합의 삶을 실제로 누려가야 한다. 호흡기도와 임재기도는 신분적으로 연합된 주님과의 관계를 실제로 경험하고 누리게 하는 훈련이다.
물론 호흡기도 외의 방법으로 연합의 축복을 누릴 수도 있지만 호흡기도와 임재기도를 통한 방법이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하나됨을 누리면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서 의와 희락과 평강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됨이 너무나 좋고 보람 차고 영광스럽고 위엄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세상이 주는 그 어떤 명예, 부귀, 축복도 기꺼이 배설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9).
몰입이 주는 영적유익과 영적 깨달음
몰입체험을 제대로 하면 섬광처럼 빛나는 지혜와 깨달음이 임한다.
『Think Hard 인생을 바꾸는 자기 혁명-몰입』의 저자인 서울공대 황농문 박사는 몰입 체험을 통해 5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를 7년 만에 풀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몰입체험을 통해 ‘두뇌활동의 극대화와 지고의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했다’고 한다.
신자들도 이런 체험을 누릴 수 있다.
필자도 영적몰입 체험을 통해 지고의 즐거움을 누림은 물론 새로운 영적 깨달음을 수시로 체험한다.
또한 임재기도 중에,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나를 통해, 교회를 통해, 한국을 통해 하실 일을 깨닫게 해주실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도 한다.
세상의 몰입 체험, 타 종교의 명상체험이 주는 2대 유익은 내려놓음을 통한 기쁨과 자유 및 새로운 깨달음이다. 때로는 이 두 가지가 상승 작용을 하면서 동시에 임하기도 한다.
호흡기도, 임재기도를 제대로 하면 누구나 이런 체험을 쉽게 수시로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0-21).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막 8:17).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