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 (無我)
-- 다카하시 신지
무아(無我)의 마음에 비추어
자기자신을 본다.
팔정도의 올바름은
그 극점(極点)에 가면
무아(無我)의 마음으로 된다.
[해설] -- 호타 카즈나리
무아(無我)라고 하면 자기가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는 타(他)를 살린다고 하는
자기는 있는 것이다.
나의 의식이 점점 승화하여 신(神)의 의식에 가까이 가면,
인간의 눈에는 무아(無我)로 되어 보여진다.
무아(無我)는 아욕의 자기가 아니다.
자기편애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자연은 만물을 살리는 자비를 베풀고 차별도 하지 않는다.
선인(善人), 악인(惡人)을 불문하고,
생활에 필요한 환경을 주고 있다.
선인(善人)에게는 기쁨이,
악인(惡人)에게 괴로움이 동반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자의(恣意)가 있어서 자기편애가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뜻에 거스르고 반항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동반하는 것이다.
자연이 항상 평온하고 안정되어 있는 것은
자기보존의 자아가 없고, 만물을 살리는 자비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비(慈悲)의 마음을 무아(無我)라고 한다.
팔정도의 올바름은 무아(無我)의 심경에 철저할 때에,
진실로 살아난다.
올바름의 궁극(窮極)은,
대자연의 자비인 무아(無我)밖에 없다.
인간의 올바름에는 자의(恣意)가 있다.
인간에게는 세상사를 선택하는 자유가 있고,
본능적 욕망이 있고, 마음을 휘두르는 감정도 있다.
그때문에 세상사를 올바르게 보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마음을 정돈하고 자연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할 때는,
사람은 무아(無我)의 마음에 가까운 자연과 동행하도록 된다.
법(法)은 무아(無我)이다.
법에 내가 있으면 법이 아니게 된다.
법은 질서를 의미하고, 공평, 평등을 취지로 한다.
그런고로 내가 들어갈 여지가 없다.
내가 있는 법은 법이 아니다.
법은 공평을 취지로 하므로,
만물을 살리는 자비 자체이다.
무아의 마음이야말로 법이다.
출처: 다카하시신지님의실천!팔정도! 원문보기 글쓴이: 오로지팔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