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40) 회맹군(會盟軍)의 첫 출전
손견을 선봉장으로 하는 이십여 만 명의 동탁 토벌대가 낙양을 향해 진군하니, 그 소식이 승상부에 아니 들어갈 턱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이유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고 부리나케 승상부로 달려 들어갔다.
"승상 각하! 큰일 났습니다."
"아침부터 무슨 큰일인가?"
동탁은 비대한 몸을 바람벽에 기대 앉은 채 반문한다.
"승상, 이번에야 말로 큰일인가 봅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수집된 모든 정보를 동탁에게 고했다.
"음 .... 그러면 이번 일의 주모자는 조조와 원소란 말인가?"
"그 자들 뿐만이 아니옵니다. 이번에는 십팔 개 제후와 태수들이 한테 뭉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물론입지요. 저들은 원소를 총대장으로 떠받들고, 조조를 참모로, 손견을 선봉장으로 하여 진군해 오는데, 첫머리는 이미 <사수관>에 접근했다고 합니다."
"손견이라면, 장사 태수 말인가? 그자가 싸움을 잘하나?"
"자세히는 모르오나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자는 병학자로 유명한 손자(孫子)의 후손이니까요."
"허어.... 그자가 손자의 후손이던가?"
동탁은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이유의 보고를 그다지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승상, 손견은 결코 녹록치 않은 장수입니다."
이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동탁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손견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손견이 열일곱 되던 때, 그는 해적(海賊)이 들끓기로 유명한 전당(錢塘)이라는 항구에 아버지와 함께 놀러 갔던 일이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거리 구경을 다니고 있노라니까, 수십 명의 해적들이 바닷가에서 양민의 재물을 빼앗아 가지고 나누고 있었다.
손견은 비록 어린 나이었으나 그 꼴을 보고서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어서, 다짜고짜 칼을 뽑아 들고 해적의 무리 속에 뛰어들어, 두목으로 보이는 자의 목을 단 칼에 잘라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 해적들을 노려보며 이렇게 외쳤다.
"이놈들아! 썩 없어지지 못하겠느냐! 나는 이 해안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러자 해적들은 혼비백산으로 빼앗은 재물을 그대로 둔 채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리하여 손견은 재물을 빼앗긴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주게 되었다.
그중에서는 값진 보석도 있었으나, 손견은 사례도 받지 않고, 흔쾌히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 부근 일대에서는 손견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누구나 손견의 말이라면 모두 군말 없이 따르게 되었고 존경을 받게 된 것이었다.
동탁은 그 애기를 듣고 나서야 진진한 얼굴이 되었다.
"음 ... 그런 용맹을 가진 놈을 쳐부수려면, 우리 쪽에서도 걸출한 장수를 보내야 되겠구먼, 그러면 누가 좋을까?"
그러자 동탁의 옆에 시립하고 섰던 여포가 한걸음 나서며 말한다.
"아부(亞父)님! 걱정 마십시오. 조조니 원소니 손견이니 하는 것들도 제게는 초개(草芥)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저에게 군사 수천 명만 주시면, 제가 역도 두목들의 머리를 모조리 베어 오겠습니다."
"음 ... 믿은직스러운 애기로다. 그대가 있는 한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러자 이번에는 저만치 문밖에 서 있던 장수가 동탁의 앞으로 썩 나서며,
"여포 장군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닭을 잡느데 구태여 소잡는 칼을 쓸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소장(小將)이 나가서 역도의 머리를 베어 오겠습니다."
큰소리를 치고 나온 사람은 키가 구 척이나 되고 위풍이 늠름한 용장 화웅(勇將 華雄)이었다.
"오오, 화웅인가? 그러면 그대가 사수관으로 가서 역도들을 섬멸토록 하라!"
동탁은 즉석에서 화웅을 효기교위(驍騎校尉)로 삼아 병마 오만을 주면서 이숙,호진,조잠 등과 함께 밤을 새워 사수관으로 나가게 하였다.
이때, 동탁 토벌군 가운데 제북상 포신(濟北相 鮑信)은 시기심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선봉장으로 출전하는 손견에게 일등 공로(一等 功勞)를 빼앗길 것이 아쉬워서 속으로 은근히 안타까웠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의 동생인 포충(鮑忠)에게 병마 삼천을 주어, 손견의 부대보다도 지름길로 사수관에 달려가서 적과 싸움을 시작하도록 부추켰다.
이에 포충은 선발대 오백 명을 이끌고 험한 산을 넘어 손견의 부대 보다 앞서 사수관에 도착하였다.
사수관 성루에서 다가오는 포충의 군사를 발견한 화웅이 역시, 오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마주 달려나와 한바탕 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포충은 화웅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화웅이 휘두른 칼에 포충의 목이 떨어져버리고 말았으니, 싸움의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화웅이 포충의 머리를 승상부에 바치니,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화웅을 도독(都督)으로 삼았다.
한편, 선봉장 손견은 포충이 패전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심복 맹장인 정보, 황개, 한당, 조무등 네 명만을 거느리고 사수관 성문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성밖에서 큰소리로 외쳐댔다.
"역적 동탁을 돕는 필부야! 빨리 나와서 항복하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줄 것이다!"
손견이 화웅을 향하여 그렇게 외쳐대자, 화웅은 큰소리로 웃는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이 무슨 개수작을 하고 있는 것이냐! ... 여봐라! 누가 나가서 저자의 목을 베어 공훈을 세워보겠느냐?"
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부장 호진(胡軫)이 달려나오며,
"제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장한지고! 어서 나가 저놈의 목을 베어 오라!"
관문이 활짝 열리며, 호진이 오천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 나온다.
그러자 손견의 심복인 정보가 마주 나가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울려 싸우기 시작한지 채 오 합이 못 되어, 정보는 호진의 머리를 땅에 그대로 떨어뜨렸다.
적장 화웅은 그 모양을 보자, 성문을 굳게 닫고, 성안에서 돌을 던지고 활을 쏘아대었다.
손견은 성안에서 농성중인 화웅군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보려고 하였으나, 적들은 꼼작도 하지 않는 바람에 일단 성문 근처에 진지를 구축하고 원소의 본진에 전승 보고를 올리는 동시에 군량을 빨리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원소는 군량을 책임지고 있는 원술에게 군량을 보내 주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원술의 부하로 손견에게 사원(私怨)을 가지고 있던 자가 원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손견은 강동(江東)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선봉으로 나서서 낙양을 함락하고 동탁을 죽인다 해도, 그것은 이리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입니다.
또한 손견은 의병을 일으켰다는 명분아래 천하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싶어 이번에 선봉을 자청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풀에 지쳐 철수하도록 군량을 대주지 말아야 합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군!"
원술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십팔 개 제후와 태수들이 모여든 이번 회맹 연합은 비록 한패이기도 하면서 내심으로는 호시탐탐 제각기 딴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 분명한 일이 아니겠나?
손견의 부대는 군량이 떨어졌다.
군량이 떨어지자 군심이 흉흉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도데체 총대장 원소는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주린 배를 움켜잡고 싸우란 말인가?"
손견은 벼락같이 화를 냈다.
날고뛴다는 손견이었지만, 적의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같은 편에서 계획적으로 식량 공급을 중단해서 곤경에 빠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탁의 부하 이숙(李肅)은 그런 정보를 듣고 화웅에게 말한다.
"오늘밤,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손견의 뒤에서 공격할 것이니, 장군은 군사를 거느리고 정면으로 공격해 주시오. 굶주린 병사들은 맥을 못 쓸 것이 분명하니까 ,우리가 공격만 하면 손견은 문제 없이 사로잡게 될 것이오."
화웅은 그 작전에 찬성하고 손견의 진지에서 소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날 밤, 달은 밝고 바람은 온화하였다.
이숙은 삼경(三更)이 되기를 기다려 손견의 진지를 후방에서 기습하였다.
손견의 군사들은 불시에 기습을 받아 크게 어지러웠다.
손견도 자다 말고 갑옷을 입으며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오는데, 고함을 치며 덤벼드는 장수가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적장 화웅이었다.
손견은 즉시 적을 맞아 싸웠다.
한참을 정신없이 싸우는데, 아군 진지에서 천지가 진동하며 불이 일어났다.
이숙이 불을 지른 것이었다.
손견은 전세가 불리하자 전군에 후퇴 명령을 내리고 자신도 말을 달려 적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군사들은 어찌된 일인지 뒤따라 오는 부하라곤, 조무(祖茂)하나 뿐이었다.
"이놈 손견아! 어딜 도망가느냐."
화웅이 소리를 지르며 급히 쫓아온다.
손견은 쫓기며 뒤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급히 쏘던 첫 번째 화살은 공중에 날았다.
두 번째 화살도 허탕이었다.
그나마 세번째 화살을 쏠 때에는 활시위를 어찌나 힘있게 잡아 당겼는지, 활이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손견이 부러진 활을 내던지고 급히 쫓기는데, 뒤따라오던 조무가 소리친다.
"주공! 머리에 쓴 붉은 두건이 표적이 되어 불리하니 그 두건을 제게 주십시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손견은 지금까지 모든 화살이 자기에게 집중된 까닭을 그제서야 깨닫고,
얼른 붉은 두건을 벗자, 조무가 다가와서 두건을 받아 쓰고 손견과는 다른 방향으로 도망을 가는 것이었다.
"아아, 조무! 안 돼!"
손견은 도망을 치면서 뒤돌아 보니 화웅의 군사들은 붉은 두건을 쓰고 달아나는 조무를 추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날 새벽, 손견은 흩어졌던 부하들을 모았다.
정보, 황개, 한당 등 세 장수는 무사히 돌아왔으나, 조무만은 암만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손견은 자기가 쓰던 두건을 벗어 받은 조무는 자기를 대신하여 죽은 것으로 믿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아, 조무는 나를 대신하여 죽었구나! 내 이 원수를 어찌해야 갚을꼬?..."
손견이 조무를 잃은 것을 크게 애통해 하니, 이를 지켜 보던 남은 군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
* 덧붙여..
얼마가 지난 뒤, 조무가 본진으로 부상을 심하게 당한 몸으로 돌아왔다.
그를 알아 본 손견은 놀라 춤을 추며 조무를 반겼다.
특히 손견의 대장인 황개(黃蓋), 정보(程普), 한당(韓當)은 돌아온 조무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