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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여행 닷새째, 처음으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여행하는 날, 옥룡설산 등산, 남월곡 관광, 인상여강을 관람한다. 겨울옷을 가져오지 않아 봄옷을 여러 겹 입고 고산병약과 휴대용 산소통을 챙겨 여섯 시에 출발했다. 설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고산병약을 먹은 다음 가이드가 겪은 옥룡설산 나시족(納西族)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설산 아래에 있는 나시족 마을에 놀러 갔다고 했다.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마을 이장 집에서 숙박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보니 안주인은 벌써 배루(背簍)에 풀을 가득 지고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이장은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풀을 내려놓은 부인은 부엌의 가마솥에 죽을 끓여 돼지에게 주었다. 나시족 풍습에는 설날에 잡아먹을 돼지가 살이 찌지 않으면 여자가 게으르다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돼지죽을 끓인 가마솥을 깨끗하게 씻고 국수를 끓여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상을 물린 부인은 설거지를 마치고 배루를 둘러메고 밭으로 갔다. 아침을 먹은 이장은 담배를 피우고 나서 악기를 들고 마을 회관에 갔다. 그때는 빈둥거리는 이장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나시족을 공부하다 보니 이해된다고 했다.
나시족 남자는 마방(馬幇)에 소속되어 윈난성에서 나는 보이차나 특산물을 말이나 야크에 싣고 차마고도를 따라 티베트로 가서, 말과 특산물을 매매하고 돌아오는데 육 개월에서 일 년이 걸렸다고 했다. 그동안 아내는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설산에 기도하며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리장 나시족 사회를 “남자의 천국, 여자의 왕국”이라 부른다고 했다. 남자는 금기서화연주차(琴棋書畵煙酒茶) 즉, 악기와 바둑, 그림과 글씨, 담배와 술, 차를 잘 마시면 최고의 남자란 뜻이다.
나시족으로 분류되는 모소족(摩梭族)은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로 어머니가 가정을 이끌고 재산은 모계 혈통을 통해 여자에게 상속된다. 일부일처제나 결혼제도가 없고 성인이 된 남녀는 자유롭게 연애한다. 마음이 맞으면 남자는 밤에 여자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아침밥은 어머니 집에서 먹는 독특한 동거 풍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남성은 가정을 책임지지 않고 어머니나 누이 집에 동거하며 조카들을 양육한다고 했다. 이혼이 빈번한 현대사회와 비교해 볼 때 연구해 볼만한 이야기였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시간 남짓 걸려 설산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장까지 차량 정체가 심해 버스에서 내려 셔틀버스 주차장까지 걸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이십여 분을 달려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했다. 고도계의 3,356m란 숫자를 보니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케이블카를 탄 다음,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산소를 마실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고도가 높아지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눈으로 바뀌고 세상은 흰색으로 변했다.
십오 분 정도 걸려 케이블카는 종점에 도착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최초로 인간의 발자국을 찍었듯이 내 삶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발을 디디는 순간이었다. 구름 위를 걷듯이 살포시 내려 천천히 걸었다. 눈발은 점점 더 거세졌다.
해발고도 4,506m란 표지석이 보이고 4,680m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설산의 봉우리와 함께 희미하게 보였다. 사진을 찍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며 힘이 빠졌다. 아차 싶어 산소통을 꺼내어 심호흡하며 들이마셨다. 몇 모금의 산소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폭설로 통제된 등산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으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옥룡설산(玉龙雪山)은 해발 5,596m의 최고봉을 가진 만년 설산으로 13개의 봉우리가 마치 한 마리 옥빛 용이 누워있는 듯한 형상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나시족의 성산(聖山)으로 최고봉은 등산이 금지된 처녀봉이다.
빙천공원(冰川公园) 전망대에서 만년설과 빙하를 보려고 한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산소 한 캔을 사용한 다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길목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독특한 의상과 신비한 분위기에 끌려 산 기념품은 중국 모소족(摩梭族, 마사족) 문화와 관련된 기념우표를 주제로 만든 제품이었다. 기념품 뒷면에는 “중국 마지막 모계사회는 윈난성 리장 루구호 지역에 남아있다. 이곳은 세속과 떨어진 고요한 낙원과 같다. 그들의 풍습과 결혼관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하다. 이곳 사람들은 순수한 감정, 변함없는 사랑, 화목한 가족으로 유명한데 이는 모든 가정에 현명하고 너그럽고 사랑이 넘치는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쓰여있었다.
열 시에 람월곡에 도착해 자유시간을 가졌다. 람월곡(蓝月谷)은 설산의 빙하 녹은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 지대로 석회질 성분으로 인해 에메랄드빛을 띤다. 맑은 날에는 푸른 달이 계곡에 박혀 있는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낸다고 하는데 비가 오락가락하는 관계로 진한 남색으로 보였다. 해발 2,896m까지 내려온 터라 머리는 다시 맑아지고 몸은 가벼웠다.
람월곡 표지석까지 올라갔다가 옥액호(玉液湖), 경담호(镜潭湖), 남월호(蓝月湖), 청도호(听涛湖) 순으로 둘러봤다. 비가 내리는 중인데도 곳곳에서 전문 기사를 이용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보는 것은 순간이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은 영원하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옥룡설산 입구로 돌아왔다. 비를 맞아 축축하고 차가운 몸을 국수 한 그릇으로 녹였다. 공연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값은 매화회에서 잘 다녀오라고 준 돈으로 찬조했다.
비는 멈출 생각 없이 굵기만 달리하며 계속 내렸다. 이런 우중에도 야외에서 공연을 한다고 하니 색다르기도 하고 추위를 어떻게 견딜지 걱정되기도 했다. 인상여강(印象丽江)은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초대형 야외 공연물이다. 해발 3,100m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말 백여 마리, 리장에 사는 열 개 이상의 소수민족 오백여 명이 공연한다. 국립공원이라 낮에만 공연하므로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어도 자연이 조명이 되고 배경이 된다.
공연장에서 제공하는 우의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푸른색 우의를 입은 수천 명의 관중, 차마고도의 험난한 길을 나타내는 황토색의 무대, 옥룡설산을 감싸고 도는 비구름, 그칠 줄 모르는 비, 무대에서 울려 퍼지는 함성, 애잔한 노래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1부는 차마고도 마방의 기백과 애환을 나타내는 남자들의 군무로부터 시작해서 남자들이 떠난 뒤,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관중석 뒤를 돌아 공연장을 한 바퀴 도는 장면에서 차마고도를 걷은 말들과 상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2부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벌이는 술판을 경쾌한 탭댄스와 춤으로 이야기했다.
3부는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늘에서라도 이루기 위해 설산으로 떠나는 나시족 연인의 이야기였다. 젊은 남녀가 백마를 타고 설산을 가리키며 그곳을 향해 간다. 사랑하는 연인이 부모의 반대 때문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머나먼 설산 꼭대기 어딘가에 있다는 죽은 연인들의 낙원을 향해 떠나는 모습이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마치 다정한 연인이 산책하는 모습으로 보였지만 사실 나시족 연인의 슬픈 서사시의 한 장면이었다.
4부는 윈난성 소수민족 주민들이 자연을 경외하고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와 민속춤을 추며, 삶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5부는 설산에 제사를 지내는 이야기를 북춤으로 풀어내고, 6부는 관객과 함께 설산에 소원을 빌며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손이 시리고 몸이 떨려도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설산의 품에 안긴 인간들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우의를 입고 한 시간 넘게 공연을 보고 나니 온몸에 한기가 엄습하고 옷은 젖어 눅눅했다. 우의를 반납하고 서둘러 차에 올라 몸을 녹였다.
고성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친구 넷과 충의 야시장(忠义夜市)에 갔다. 고성의 사방가에 있던 시장을 옮겨 만들었다고 했다. 낮에는 농산물 재래시장으로 운영되고 밤에는 미식 노점들이 즐비한 먹거리 야시장으로 탈바꿈한다. 망고스틴을 사 먹으며 다양한 꼬치를 다리 맥주와 백주를 곁들여 먹었다. 꿈에도 그리던 옥룡설산에서 산소를 마셔가며 눈밭을 뒹굴던 뒷이야기로 밤을 이어갔다.
윈난성 여행 엿새째, 컨디션 회복을 위해 일정을 조정하여 열한 시 반에 가이드와 함께 백사고진과 속하고진을 관광하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여유 시간을 이용해 친구 셋과 고성 북문에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흑룡담에 갔다. 고성은 안개구름에 싸여 고즈넉하고 아침을 여는 나시족 여인의 부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흑룡담(黑龙潭)은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만들어진 호수공원으로 이 물은 옥하(玉河)를 거쳐 고성으로 흘러든다. 물과 나무, 산이 어우러진 호숫가를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행으로 긴장된 몸과 마음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호수에 비친 누각과 반월교, 구름에 묻힌 설산은 마음의 호수에서 하나가 되어 잔잔한 물결처럼 아롱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북문 건너편 시장에 들러 차마고도 여행에 필요한 웃옷과 바지를 샀다. 바지는 가까이 있는 수선집에서 몸에 맞도록 길이를 줄였다.
점심을 먹고 오후 한 시 반경에 백사고진에 도착했다. 바이샤구전(白沙古鎭, 백사고진)은 리장을 지배하던 나시족 목씨(木氏)의 발상지며 리장고성으로 중심지를 옮기기 전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리장 3대 고성 중 규모가 가장 작지만 고즈넉하고 옥룡설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백사벽화(白沙壁画)는 명·청 시대에 걸쳐 완성된 벽화로 불교, 도교, 나시족 동파교의 색채가 융합된 국보급 보물이라 했다. 자세히 보면 티베트 불교의 정교한 선, 한족 도교의 서사적 구도, 나시족의 토속적 색감이 어색하지 않게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전통의상을 빌려주는 집에 들러 소수민족의 옷을 구경하며 징검다리가 아름다운 정원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흙벽돌로 된 토속적인 건물이 특이해서 들어가 보니 자수 문화를 소개하고 발굴하는 백사 금수예술원이었다. 체험활동이 진행되고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안내문만 읽고 나왔다.
다음은 백사고진과 리장고성 사이에 있는 속하고진에 갔다. 수허구전(束河古镇, 속하고진)은 고대 차마고도의 핵심 거점 마을로, 번화하고 상업화된 리장고성에 비해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방가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자유시간을 가졌다. 물길과 전통가옥, 주변의 산이 어우러진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어디 가나 경치 좋은 곳에는 사진을 찍는 전통 복장의 젊은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통 복장으로 고성을 활보했으리라.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걷고 싶으면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아니겠는가.
물길 옆에는 삼안정(三眼井)이란 세 개의 우물이 계단식으로 이어져 있었다. 유목 시대에 나시족은 물을 생명의 원천으로 여기며 물과 풀을 따라가며 살았다. 농경 정착 시대에는 물을 마을로 끌어들여 사용했고 지금은 첫째 우물은 식수, 둘째 우물은 채소와 과일 세척용, 셋째 우물은 빨래나 청소용으로 사용한다.
물길 따라 걷다가 차마왕 고거(茶马王古居)에 갔다. 차마고도를 누비던 마방(马帮)의 우두머리 왕감(王鉴)의 생가이자 가문의 대저택으로 차마왕 고거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리장에서 가장 보존 상태가 좋고 규모가 큰 나시족 전통가옥이다. 여러 사진 중에 배루를 지고 있는 나시족 여인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고거와 가까이 있는 구정용담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내문에는 속하 서산에 아홉 개의 산봉우리가 있는데 모양이 마치 솥과 같고 산 아래에 못이 있어 구정용담(九鼎龙潭)이라 부른다고 한다. 만년설 녹은 물이 솟아오르는 연못으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청룡하(青龙河)의 수원지기도 하다.
연못 옆에 있는 용천차사(龙泉茶社)란 전통찻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전통차를 마셨다. 옛날에는 차마고도를 오가던 마방의 상인들이 모여 앉아 서로의 무용담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차를 마셨으리라.
물길을 따라 사방가로 돌아오던 중에 채소가 가득 담긴 배루를 지고 가는 두 명의 나시족 할머니를 만났다. 깊은 주름과 무심한 듯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미나리 보따리를 이고 시장으로 가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차마고도 박물관에서 고도의 역사와 상인들이 걸었던 길, 교역품인 가죽에 관한 역사, 대각궁 벽화에 있는 티베트 불교 양식의 불화 여섯 점을 봤다. 차마고도는 북송 때 차마사(茶馬司)를 설치하여 차마 거래를 전담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서남부의 고대 교통망이었다.
저녁은 가이드가 운영하는 백운정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한식이라 그런지 짜릿할 정도로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시내로 나가 발 마사지를 받고 돌아왔다.
앞으로의 일정은 강도가 더 세다. 호도협(虎跳峽)을 중심으로 왼쪽은 하바설산(哈巴雪山), 오른쪽은 옥룡설산이 있다. 도보 여행 경로는 하바설산 자락에 있는 나시객잔을 출발해서 차마고도 28 밴드와 차마객잔를 지나 중도객잔에서 숙박한다. 다음날 역시 차마고도를 따라 티나객잔까지 걷는다.
친구들의 고산병 증세와 감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자칫하면 도보 완주팀과 중간 합류팀으로 나누어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2026.5.2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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