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가장 큰 부자
김대희
오늘 마트에서 부추 한 단을 샀다. 처음에는 부추김치를 담글 생각이었다. 그런데 장바구니를 풀어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싱싱한 초록빛 줄기들이 식탁위에 한 아름 쏟아졌다. 한 끼 반찬으로는 다 먹기 어려울 것 같아서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만들었다. 부추를 듬뿍 넣고 팬에 기름을 두르고 한 국자 떠 올리니 , 곧 지글지글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부주전 냄새가 주방 가득 번졌다. 노릇하게 익은 전 한 장을 뒤집는 순간, 나는 오래전 우리 집 부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냄새 속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우리 집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자식은 셋이나 있었고, 들어오는 돈은 늘 빠듯했다. 어머니는 아끼고 또 아끼며 살림을 꾸려 나가셨다. 새 옷 한 벌 마음대로 사 입기 어려웠고, 반찬도 여러 가지 차려 먹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님이 오거나 제삿날이 되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소보다 상이 푸짐해졌고, 없는 살림에도 음식은 모자라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부엌에 서서 나물을 무치고 탕을 끓이며 전을 부치셨다. 잠시도 쉬지 못하고 종일 움직이셨다. 그중에서도 부추전은 빠지지 않았다. 친척들이 오면 내 놓기 좋고 푸짐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 늘 못마땅했다.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 먹을 것도 넉넉하지 않은데 제사 지내기도 전에 손님상부터 차리고, 친척들이 몰려와 북적거리면 시끄럽기만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손님이 온다는 소리만 들리면 부산해지곤 했다. “뭐하누, 얼른 들어오시라 해라. 부추전이라도 한 장 얼른 가져다 놓으면 된다.”그러고는 어머니가 부쳐 낸 전을 보며 흐뭇하게 웃으셨다. 친척들이 둘러 앉아 전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 얼굴은 만족스로은 기색이 번졌다. 손님들이 돌아갈 때면 어머니는 남은 음식을 봉지에 나누어 담아 보내셨다. 아버지께선 “저거도 좀 싸주지 .애들 먹게”하고 마치 우리 집에 넉넉한 것이 차고 넘치는 사람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 우리 식구는 다시 평소처럼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한동안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없는 집에서 저렇게 까지 체면을 세우려 하는지, 왜 우리 것을 덜어 다 내어주려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밤늦도록 설거지를 하다가 허리를 두드리던 어머니 모습까지 떠오르면 더 그랬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것은 체면이 아니었다. 사람의 도리였고, 함께 나누며 사는 마음이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움켜쥐기 쉽고 형편이 어려울수록 남을 외면하기 쉽다. 그런데 아버지는 늘 그 반대로 사셨다. 없어도 더 내어주고, 부족해도 함께 나누셨다. 번듯한 직업도, 넉넉한 재산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웃고,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 자기 몫을 덜어 보내 주셨다.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늘 부자였던 셈이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 내 집에 오면 먼저 냉장고 문을 연다. 뭐 하나라도 줄 것이 있는지 살피고, 돌아갈 때면 과일 하나라도 손에 쥐여 보내고 싶어진다. 그러고 나서야 나도 문득 깨닫는다. 나 또한 아버지를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을
저녁 식탁 위에 부주전 한 장이 놓여있다. 따뜻한 김이 오르고 고소한 냄새가 번진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재산을 남기지 못하셨다. 번듯한 집 한 채, 두툼한 통장 하나 남기지 못하셨다. 그러나 더 오래 가는 것을 남기셨다. 사람을 대하는 법, 함께 나누는 법, 그리고 빈손으로도 누구를 따뜻하게 맞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살아 보니 안다. 집을 넓히는 사람보다 마음을 넓히는 사람이 더 큰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부자는, 가난했던 내 아버지였다.
2026.4.24
첫댓글 세월이 지나고 보면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아버지는 늘 기둥이며 대들보 입니다.
아버지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글읿니다. 부추가 그냥 맛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생각이 나는 식재료네요. 잘 읽었습니다.
가진게 중요한 게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아버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부추전을 통해서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분을 추억하며, 물려받은 고귀한 내적 유산을 기술하셨군요.
넉넉한 마음을 물려 받았다는 내용에 아버님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