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기 두는 법
중국장기와 조선장기/류원무
중국장기든 조선장기든 장기만큼 민간에 보급된 놀이는 없다.
지지리 추운 겨울 한철에는 훈훈한 집안에 모여앉아서,
찔찔 끓는 여름철에는 서늘한 나무그늘밑에 모여앉아서
서로 치고 막아가며《장훈이야!》,《멍훈이야!》 소리치며 놀아주는 장기야말로 재미가 진진하다.
어디서건 쩡쩡 장기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만 하면
길가던 사람들도 발목이 잡혀 한참씩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다들 신명이 나서 손짓 발짓해가며 훈수를 들기도 한다.
장기수들 또한 물려달라거니 못물린다거니 하고
옥신각신 목대를 붉히기도 하고 심하면 장기판을 둘러엎기도 한다.
트럼프놀이, 화투치기는 무내기면 재미없어 놀지 못하지만
장기는 바둑과 더불어 무내기여도 재미가 난다.
장기야말로 서로간의 지혜의 비김이니 누군들 순순히 지려고 할가.
장기에 진것만큼 머쓱하고 분한 일이 없다.
그래서 한판 더, 한판 더하다보면 해구멍을 막기도 한다.
장기야말로 마력을 가진 놀이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가 즐기는 고상한 소일놀이이다.
전투식 휴식이요 휴식식 전투이다.
차가 달리고
말이 뛰고
상이 날고
서로 치고 막으며
장군을 치는 그 묘미, 그 즐거움, 그 즐거움속에서
지혜가 늘고 창발성이 늘고 심성이 닦아진다.
조선사람은 중국에서라도 중국장기보다는 아무래도 조선장기가 더 재미난다.
장기가 언제 어디서 생겨났을가?
조선장기가 중국에서 들어왔다는데 왜 서로 다를가?
오래전부터 궁금증을 느껴오던중
《중국장기대전》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중국장기가 아득히 먼 옛날 신농씨시절에 나졌다고 하는 설도 있고
주나라 주무왕이 주(紂)를 칠 때 나졌다는 설도 있지만
성행하기는 춘추전국시기부터라고 한다.
《목천자전(穆天子傳)》에 기재된데 의하면
그때 장기는《륙박기(六博棋)》라고 하였다.
기원전 970년 주목왕 만(滿)은 륙박기 애호가였고
한번은 정공(井公)과 맞붙어 사흘이나 두어서야 승부를 갈랐다고 한다.
1976년 봄, 고고학자들이 호북성 운몽 수호지역에서 발굴한
전국(戰國)말기의 고총에서 장기판이 나졌는데
목제품 장기판 길이는 38.5센치메터, 너비는 35센치메터,
장기쪽은 장방형 뼈로 된것이였다.
구당서(舊唐書)에는 당태종이《상경(象經)》을 읽었다는 기재가 있고
현경록(玄經錄)에 기재된 장기쪽명칭은 상장(上將), 치차(輜車), 천마(天馬), 졸(륙갑-六甲)이였다.
중국장기와 륙박기, 상경을 거쳐 근대장기로 정형(定型)된 시기는 북송말이다.
개봉에서 출토된 황동(黃銅) 장기쪽(북송말 휘종시기)은
지금의 장기쪽과 같이
장, 사, 차, 포, 말, 상, 졸, 도합 32쪽이다.
장기쪽 정면에는 한자로 명칭이 찍히고
뒤면에는 도안이 새겨져있다.
그 도안을 보면
1. 장(將). 머리에 사모를 쓰고 몸에 전포를 입고 허리에 장검을 차고
위풍이 당당하게 구궁(九宮) 복판에 앉아있다.
2. 사(士). 사는 무사도 아니고 모사도 아닌 녀사(女士)의 형상, 왕의 신변을 지키는 궁녀이다.
3. 상(象). 상의 도안은 큰 코끼리이다. 당나라때 금상장군, 상장은 코끼리를 타고 다녔을것이란다.
4. 차(車). 한사람이 외바퀴밀차에 식량을 나르는 도안이다. 말하자면 치중차이다.
5. 말(馬). 비마(飛馬), 뛰는 말이 찍혀있다.
6. 포(砲). 포석기(抛石機) 도안이다.
일설에 화약이 발명되고 진천뢰(震天雷)라는 포가 나지면서부터 장기에 가첨되였다고 한다.
7. 졸(卒). 손에 창이거나 극(戟-량지창)을 들고있다.
이와 같이 중국장기는 간단하던데로부터 복잡한데로
쉬운데로부터 어려운데로
초급적인데로부터 고급적인데로 변천되며 발전되여왔다.
장기판 선로는 종 9행, 횡 10행으로서 중간에《초한하계(楚漢河界)》가 표시되여있다.
말하자면 근대장기는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류방이
천하를 다툰 전쟁이야기를 본따서 설계한것이란다.
신라에는 중국장기가 남북조시기에 전해졌다고 한다.
신라의 장기 명수 박구(朴球)가 당나라에 와서 장기를 두었다는 기재가 있고
고려장기는 네가지 면에서 중국장기와 다르다는 력사기재가 있다.
장기판도 같고 장기쪽도 장, 사, 차, 포, 말, 상, 졸 다같이 32쪽인데도
포진(布陣)에 다른 점이 있고
장기쪽의 성능에 다른 점이 있고
보법(步法)에 다른 점이 있다.
왜 이렇게 되였을가? 왜 이렇게 받아들여졌을가?
무척 흥미가 있었다. 두고두고 생각해보았다.
중국장기와 조선장기의 차이점을 보자
첫째, 중국장기는
장이 구궁에서 직선으로 한걸음한걸음 다니게 되여있고
사는 사선으로만 다니게 되여있는것이
조선사람에게는 페단으로 여겨졌을것이다.
지고무상의 왕이 궁녀가 다니는 길로 다니지 못한다는 법은 없고
궁녀 역시 궁중에서 엄한 법도의 단속을 받고있기는 하지만
왕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조선사람의 자연적 자유로운 성정에도 맞지 않고
신바람나게 활달한 조선사람의 기질에도 맞지 않는다.
둘째, 조선장기는 상이야말로 신바람난다.
우선 포진(布陣)면에서 조선장기는 중국장기와 달리
상의 자리가 고정되여있지 않다.
상을 밭은상으로 놓을수도 있고 는
상으로 놓을수도 있고
기둥상으로 놓을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장기의 상은 강을 건느지 못하고 구궁만을 지키는데
다리도 짧아 밭전자(田)로 90개나 되는 넓은 밭에서
고작 7개의 밭으로밖에 다니지 못한다.
반면에 조선장기의 상은
다리도 길어 쓸용자(用)로 성큼성큼 강을 건너다니며 적을 습격한다.
셋째, 중국장기의 졸은
강을 건너기전에는 전진만하고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조선장기의 졸은 전진은 물론 자유자재로 좌우로 다닌다.
조선장기는 제1선에 놓인 졸들이 합졸이 되고 밭은상,
는상이 앞으로 뛰여나가 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보면 방어진이 철벽과 같다.
그것이 공격의 준비이기도 하지만 굳건한 방어진세이다.
조선장기는 졸을 해체시키기전에는 진공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병사의 역할이 충분히 현시되여있다.
넷째. 중국장기는 포도 차처럼 자유자재로 직행한다.
적을 잡을 때만이 임의의 장기쪽을 뛰여넘어야 하는데 포도 포를 칠수가 있다.
한편 조선장기의 포는 임의의 장기쪽을 뛰여넘어야 다닐수 있는데
포가 포를 뛰여넘을수 없고 포가 포를 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구궁앞에 면포, 귀포까지 걸어놓으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하여 조선장기는 적진으로 쳐들어가기 어렵고
왕을 사로잡는 통장을 치기가 어렵다.
한편 중국장기는 졸이 강을 건너기전에는 좌우로 다니지 못하고
상이 강을 건느지 못하고 포가 차처럼 직행할수가 있어
진공공간이 넓어 적진으로 쳐들어가기 쉽고
구궁안에 있는 장과 사가 자기 길로만 다니게 격식화되여 통수를 내기가 쉽다.
그리고 장도 대방의 장과 마주하면 잡히게 되여있어서 비기는 비률이 조선장기보다 퍼그나 적다.
이처럼 중국장기나 조선장기는 다른 점이 많다.
다른 점이 많은 가운데서도 핵심은 중국장기는 공격형인 반면
조선장기는 방어형이라는데 있지 않을가싶다.
필자는 조선장기에는
우리 한민족의 사유방식, 생존철학, 전략사상이 여실히 체현되여있다고 인정된다.
한마디로 조선장기는 조선사람의 구미에 맞고
조선사람의 기질, 사유방식, 전략사상, 생존철학에 맞는다.
그러한때문일가. 우리 조선족은 한세기 남짓
망망한 중국대륙에 모래알같이 섞여살면서도
중국장기에 끌리지 않고 조선장기를 고집하면서
장군이야 멍군이야, 삶의 지혜를 누리며 넉넉히 살아가고있다.
-《연변문학》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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