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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로 주고받은 사랑
임 형 선
시(詩)로 주고받은 사랑……. 왠지 운치 있지 않아?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했다는 것인데……. 물론 앞(‘평양에서의 하룻밤은 따뜻했어라’)에서 이야기한 백호 임제와 기녀 한우(寒雨)도 시(詩)로 주고받은 사랑이었지. 임제와 한우처럼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눈 사람이 있어. 조선 중기의 청치가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야.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작품들을 쏟아낸 대문장가이기도 하지.
고산 윤선도가 시조의 대가라면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라 할 수 있지. 필자가 말 안 해도 다들 이정도야 기본으로 알고 있지? 정철과 윤선도는 조선 문학에 쌍벽을 이루는 대가들이야. 정철 하면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속미인곡」 등의 가사문학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지. 학교에서 이미 배웠을 거야. 아직 중학생이 이 책을 읽는 거라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곧 배우게 돼. 정철은 가사문학뿐만이 아니라 시조도 무려 107수나 되는 작품을 남겼어.
고산 윤선도가 정치를 떠나 있을 때 많은 작품을 남겼듯, 정철 역시 정치에서 떠나 있을 때 작품을 많이 썼어. 쉬운 예를 들자면 「성산별곡」 같은 것도 정치를 떠나 있을 때 지은 거야.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정치가이면서도 요즘 말하는 소위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지.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즐기며 수없이 많은, 후대에 남을 문학 작품들을 쓴 사람들이야. 정철 이야기를 할 거면서 왜 윤선도 이야기도 함께 하냐고? 앞에서 말했잖아. 두 사람은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문학 작품들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조선시대에 쌍벽을 이루는 대문장가들이라고. 그러니 당연히 윤선도 이야기도 나올 수밖에.
정철이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속미인곡」 등의 가사문학을 남겼다고 했지? 여기에서 강원도 관찰사로 발령받았을 때에 쓴 것이 바로 「관동별곡」이야. 45살 때 발령 받았는데, 발령받자마자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등 관동팔경을 3개월 동안 두루 여행하면서 그 중에서 뛰어난 경치와 그에 따른 감흥을 표현한 작품이야. 물론 일을 해 가면서 여행했겠지. 요즘으로 치면 강원도 도지사인데 일도 하지 않고 싸돌아다니기만 했겠어? 더구나 백성을 무지 아끼는 정철인데. 백성들이 존경하는 사람인데. 정무 처리를 해가면서 틈틈이 여행을 했겠지. 정철이 무슨 임제인 줄 아나? 정철이 술을 좋아했고, 풍류를 즐겼고, 문학적 재질을 타고 났다고는 하나, 임제처럼 부임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술병이나 옆구리에 꿰어 차고 기녀의 무덤을 찾아가는 막무가내는 아니지.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발령 받았을 때 쓴 중요한 작품이 또 하나 있어. 자신이 직접 관할하는 강원도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지은 「훈민가」라는 시조야. 16수로 된 연시조인데 아주 유명한 시조야. 높은 고위직 공직에 있다고 강압적으로 백성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이 시조를 통해 백성들이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거야. 여기에 대해서는 이 책의 제일 마지막 장(章)인 <깨달음 ․ 교훈>이라는 장(章)에서 다루기로 할 거야. 그곳에서 찾아 읽어 봐. 몇 페이지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이런~. 게으름뱅이들. 책을 읽는 사람이 그 정도는 찾아서 읽는 정성은 들여야지. 직접 찾아 읽어 봐.
정철은 집안은 대단했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어. 고조할아버지부터 시작해서 모두 높은 고위직 공무원에 오른 집안에서 태어났어. 거기에 큰 누님은 임금의 후궁이었어. 임금 누구냐고? 이것도 직접 찾아보라고 할까? 하하하. 이건 알려 줄게. 정철의 큰 누님이 인종 임금의 후궁이었어. 그리고 막내 누이가 계림군의 부인이었고. 대단한 집안이지? 그래서 궁중에 자주 놀러갔어. 나중에 임금이 되는 명종과 동갑이라서 친구처럼 아주 친하게 지냈어. 궁중에서 함께 뛰어 놀며 지낸 거지.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에 자주 놀러가서 대통령 아들과 함께 놀았다는 거야. 그리고 이후에 그 대통령 아들이 대통령이 되는 거고. 대통령의 친구인 거지. 그렇다고 정철 집안에 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냐.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유배도 떠나는 등 고충도 있었어.
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려면 한도 끝도 없고, 이제 여기서 정철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하지. 지금까지 참고하라고 쓴 건데 이정도면 충분할 거야. 지금은 정철의 사랑 이야기를 할 거니까.
송강 정철이 사랑한 여자는 황진이나 이매창, 홍랑처럼 유명한 기녀도 아냐. 그저 강계(江界)라고 하는 시골 촌구석에 묻혀 있는 아무도 모르는 기녀야.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옥(玉)이라고나 할까?
정철이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파직도 당하고, 스스로 사표도 쓰고, 유배 생활도 하고 그랬어. 정철이 강계(江界)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어.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곳에서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겠어. 아무리 글을 쓰고 하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다고는 하나, 어느 한 곳에 집중하는 자신만의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유배 생활은 어찌되었든 외롭고 적막하고 그런 거잖아. 술도 좋아하고 문학도 하고 스스로 자신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고적함을 달래기에는 힘든 나날들이지.
그런데 어느 날 밤이었어.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어. 갑자기 한 여자가 갑자기 방문을 활짝 열고 정철의 방에 들어온 거야.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어. 캄캄한 한밤중에. 바람 소리도 잠들은 깊은 한밤중에 말이야. 나뭇잎 소리조차 조심하여 조용한 한밤중에 말이야. 그것도 찾아올 이 없는 이 촌구석에, 그것도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처지에, 누가 한밤중에 찾아오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50대 중반의, 후반에 접어드는 정철로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지. 아무리 대범한 남자라 할지라도 캄캄한 한밤중에 갑자기 방문이 확~ 하니 열렸으니. 조선시대에 50대면 할아버지야. 지금 현대 사회의 50대를 생각하면 안 돼. 그래서 61살까지 살면 오래 장수했다고 해서 환갑잔치도 하고 난리법석을 떨었잖아. 이렇게 한게 불과 얼마 안 돼. 1980년대까지도 환갑잔치하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 환갑잔치해 봐. 욕 해. 지금은 100세 장수 시대잖아. 하지만 정철이 살았던 조선시대엔 50대, 그것도 중후반이면 완전 할아버지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은은하게 비치는 황촉불에 가만히 보니 앳된 소녀였어. 소녀는 다소곳이 겉에 걸치고 온 장옷을 벗었어. 그러자 중국의 서시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어. 정철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 강계(江界)라고 하는 그 촌구석에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니, 하고 말이야. 그것도 이팔청춘 나이 어린 소녀가 말이야. 앞에서도 말했지만 진흙 속에서 빛나는 옥을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야.
소녀는 정철에게, 선비님의 높은 학식을 평소에 듣고 사모하여, 선비님이 이곳 강계에 와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노라고, 아주 야무지게 말하는 거야. 그러면서 다소곳이 정철에게 절하는 거야. 그러고는 자신은 강계에 사는 기녀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어. 그리고 이름은 진옥(眞玉)이라고 밝혔어. ‘참 진’자에 ‘구슬 옥’……. 그리고 한시 한 수를 읊는 거야. 이 책이 고시조 책이므로 한시를 소개할 수 없음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치? 뭐라고 읊었을까 궁금하지? 뭐 뻔한 거 아냐? 정철의 마음을 슬슬 녹이는 내용이었겠지? 안 그래? 맞아. 정철의 고적한 유배 생활의 쓸쓸함을 마치 알기라도 하듯. 정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고적한 선비의 마음이 담긴 내용의 한시를 읊은 거야. 더구나 정치에서 쫓겨나 나라 걱정에 쌓인 정철의 마음을 노래한 거야. 유배 생활이란 게 얼마나 고통스러워. 이러할 때 나이 어린 진옥이라는 기녀가 나타나 자신의 고통스럽고 고적한 마음을 노래했으니. 거기에 미모는 서시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웠고. 자태며 학식까지도 갖추고 있었으니 정철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지. ‘이런 촌구석에 이렇게 미모가 뛰어나고 학식을 갖춘 기녀가 있다니…….’하고 정철은 감탄한 거야.
이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정철이 요즘 말하는 소위 정계에 다시 복귀하기 전까지 오랜 동안 진옥과 시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거문고를 타며 지낸 거야. 정철은 자신의 본부인에게도 숨기지 않고, 기녀 진옥에 대한 이야기를 서찰에, 요즘의 편지에 적어서 보낸 거야. 아니지. 요즘은 편지도 우편으로 잘 안 쓰지. 이메일로 보낸 거야. 이메일을 받아 본 정철의 부인은 시기와 질투를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진옥으로 하여금 남편이 잘 있다는 것에 고마워했어. 그 고마워하는 마음을 남편인 정철에게도 보냈지만, 진옥에게도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로 보내곤 했지. 역시 정철의 부인이야. 정숙한 부인이야. 이렇게 이해심이 많은 여자를 얻은 걸 보면 정철이 참 여복이 있나 봐. 이해심 많은 부인에 아리땁고 고운, 귀품이 있는 기녀 진옥도 옆에 있으니. 진옥 때문에 정철은 심심하지 않게 귀양살이를 한 거지. 아무리 잘해 줘도 악처를 만나는 남편도 있는데.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오랜 세월을 지냈으니, 정이 들대로 다 들었겠지? 요즘 연인들 봐. 1년이 뭐야. 며칠만 만나도 금방 사귀고, 몸 주고 마음 주고 다 하잖아?
어느 날, 정철이 마음이 동(動)했나 봐. 왜 안 그렇겠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것도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둘이 만났으니. 아마도 그 날 뿐이 아니라 정철이 수시로 욕구가 생겼을 거야. 정철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남자인데. 더구나 총명하고 아름다운 나이 어린 소녀가 매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그런데 이건 기녀 진옥도 마찬가지야. 처음에 정철의 학문적 명성을 익히 알고 존경하는 마음에 찾아 왔노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런 남자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한 밤을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 왔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만나 정을 쌓았으니, 진옥인들 왜 마음이 동(動)하지 않았겠어. 두 사람의 사랑은 싹 뜬 거야. 아니, 처음에 진옥이 정철을 찾아 왔을 때 이미 그때부터 사랑이 싹 뜬 거야.
아무튼 어느 날, 정철이 진옥에게 말했어. ‘내가 시를 한 수 노래할 터이니 네가 화답가를 불러다오’라고 말이야. 진옥이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어. 이제 진옥의 시적 재능을 여러분이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왔어. 비록 시골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기녀이지만, 진옥의 진면목을 한번 느껴 봐.
정철이 진옥에게 시 한 수를 불렀어.
옥이 옥이라 하기에
가짜 옥으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구나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
옥(玉)이 옥(玉)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지 적실하다
내게 살송곳 있으니 뚤어 볼까 하노라
임제가 한우를 품기 위해 한우의 마음을 떠 보았듯이, 정철 역시 진옥을 품기 위해 이렇게 시 한 수를 노래했어. 그런데 임제가 한우에게 부른 시는 젊잖은 편이야. 정철이 부른 이 시는 아주 노골적이야. 좀 유식한 말로 이 시조를 분석해 볼까?
기녀의 이름이 ‘진옥(眞玉)’이잖아. ‘참 진’자에 ‘구슬 옥’. 가짜 옥이 아닌 진짜 옥이란 뜻이지.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점은, 정철과 진옥이 중의적 표현을 썼다는 거야. 다시 말해서 ‘진짜 옥’이라는 뜻도 되지만, 기녀 ‘진옥’을 가리키기도 해. 이런 것을 국문학적으로 전문적으로 표현해서 ‘중의적’ 기법이라고 해. 지금은 정철이 진옥에 대한 중의적 표현을 빌어 노래를 했지만, 이를 받아 화답한 진옥 역시 중의적 표현으로 화답을 하고 있어. 이에 대해서는 진옥의 화답가에서 다시 말하기로 하고. 아무튼 정철과 진옥이 주고받은 시를 상세히 이해하려면 이처럼 중의적 표현을 썼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돼.
자, 그럼 우선 초장을 보자. ‘옥이 옥이라 하기에 가짜 옥으로만 여겼더니’라고 했어. 기녀 진옥의 이름은 ‘진짜 옥’을 뜻하잖아? 그래서 ‘옥이라 하기에 가짜 옥인 줄 알았더니’라고 한 거야. 원문에서 ‘번옥(燔玉)’은 ‘돌가루를 구워 만든 옥’을 뜻해. 다시 말해서 ‘가짜 옥’이란 뜻이지.
이제 중장을 보면,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구나’라고 하고 있어. 어? 가짜 옥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진짜 옥이구나, 라고 노래한 것이지. 여기서 중의적 표현을 쓴 거야. 잡것이 석이지 않은 ‘진짜 옥’도 되고, 기녀 ‘진옥’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해되지? 그러니까 초장에서 가짜 옥인 ‘번옥(燔玉)’이라고 했다가, 중장에서 다시 진짜 옥인 ‘진옥(眞玉)’이라고 한 거야. 가까 옥인 줄 알았더니 진짜 옥이구나, 하고 말이야. 겉으로는 진짜 옥이냐, 가까 옥이냐 라고 한 것 같지만, 여기에서의 속뜻은, ‘한갓 기녀’로만 여겼는데, 다시 보니 ‘귀품이 있는,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규수’구나, 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시는 그 속뜻을 볼 줄 알아야 돼.
이번엔 종장을 보자.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라고 하고 있어. ‘살송곳’이 뭐야? ‘살로 된 송곳’. 에이~. 알면서 시치미를 떼네. ‘남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 거잖아. 참으로 대단하지 않아? 우리나라 사대부 양반들이 쓴 시조에 이처럼 노골적으로 표현한 시조는 단 한 편도 없어. 더구나 평시조에서 양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처럼 노골적인 표현을 쓴 시조는 단 한 편도 없어.
이처럼 노골적인 성적 표현을 하려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감춰. 그리고 대부분 평시조에는 없고, 사설시조에서 쓰여 지고 있어. 작자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말이야. 그런데 정철은 아주 대담하게 자신의 이름을 건 시조에 요즘으로 치면 음담패설적인 표현을 직설적으로 쓰고 있는 거야. 정철이 정치적으로는 성품이 강직하였지만, 평소 성품은 자유분방하고,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었어. 오죽하면 정철의 작품에 ‘장진주사’라는 작품이 다 있어. 그 왜 있잖아. 술을 노래한 시조. ‘장진주사’ 다들 알지? 이렇게 풍류를 아는 선비였기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거야. 이처럼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고, 육담적인 표현을 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쓴 사람은 정철 오직 한 사람뿐이야.
정철은 진옥을 품기 위해 아주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게 그리고 대담하게 진옥의 마음을 떠 보고 있어. ‘나에게 살송곳이 있으니 뚫어’보겠다, 라고 하고 있어. 여자의 몸을, 다시 말해서 진옥의 몸 속으로 자신의 성기를 넣어 보겠노라고 아주 노골적이고 육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사설시조에서나, 그리고 작자의 이름이 없는 시조에서나 볼 수 있는 대담한 표현이야. 정철이 한 마디로 ‘너를 갖고 싶다’고 한 거지. 이 한 가지만 놓고 본다면 음담패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시 전체를 놓고 본다면, 여자를 갖고 싶은 마음을 한 차원 끌어 올려 시적으로, 문학적으로 표현한 거지.
자, 그런데 정철은 대학자요, 대문장가니까 이런 작품이 나왔다고 쳐. 그런데 진옥은 기녀잖아. 그것도 알려지지 않은 촌구석의 무명의 기녀. 정철이 이렇게 노래하자, 기녀 진옥이 바로 받아치는데 그 화답가가 정철을 뛰어넘는 수준이야. 그것도 며칠을 생각해서 받아친 게 아니라 정철의 시를 듣자마자 바로 받아친 거야. 또 그것도 아주 재치 있게 받아친 거야. 일개 촌구석의 무명의 기녀가 말이야.
정철이 노래한 초장, 중장, 종장에 대해 마치 하나하나 답변이라도 하듯. 문법적으로 말한다면 ‘대구법’이라고 해. 정철의 어조와 어구를 각각 초, 중, 종장마다 짝지어 받아치는 거야. 이는 기녀라기보다 시인이라고 하는 게 더 옳아. 그럼 어떻게 정철의 시에 화답가를 불렀는가 진옥의 시를 살펴볼까?
철이 철이라 하기에
가짜 철로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구나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 볼까 하노라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 볼까 하노라
참으로 기가 막힌 대구법이야. 정철이 초장에서 ‘옥이 옥이라 하기에 가짜 옥으로만 여겼더니’라고 하니까 진옥이 ‘철이 철이라 하기에 섭철로만 여겼더니’라고 해서 비슷한 어구로 짝지어서 화답을 하고 있잖아. 기녀의 이름이 ‘진옥’이라서 ‘옥이 옥이라 하기에’라고 하니까, 송강의 이름이 정철이니까 ‘철이 철이라 하기에’라고 똑같은 어구로 바로 받아치잖아.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것을 ‘대구법’이라고 해. 다음 중장을 볼까? 또 어떻게 같은 어구로 받아쳤는가? 정철이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일시 분명하구나’라고 하니까, 진옥이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일시 분명하구나’라고 역시 그대로 받아치고 있어. 대단한 재치야? 안 그래? 이제 종장을 보자. 정철이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라고 하니까, 진옥이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라고 하고 있어. 이렇게 즉흥적으로 받아치기 무지 힘든 거야. 역시 진옥은 기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던 거야. 물론 앞에서 백호 임제의 시를 받아친 한우도 대단한 재치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야.
자, 그럼 진옥이 노래한 시를 풀어헤쳐 볼까?
초장에서 ‘철’이라고 한 것은 ‘정철’의 ‘철’ 즉 사람 정철을 말한 것일 수도 있고, ‘쇠’ 즉 ‘쇳덩이’를 말하는 그 철일 수도 있어. 원문에서의 ‘섭철’이란 ‘잡것이 섞인 가짜 철’이란 뜻이야. 정철이 ‘가짜 옥’으로만 여겼더니, 하고 하니까 진옥이 ‘가짜 철’로 화답한 거야.
중장에서는 한 단어에 두 가지 이상의 뜻을 가진 중의법을 사용하고 있어. ‘정철일시 분명하구나’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철’은 ‘송강 정철’을 가리키기도 하고, ‘진짜 철’을 가리키기도 해.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의 속뜻은, ‘정말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분명하다, 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 정철이 진옥을 노래할 때 중장에서 겉으로는 진짜 옥이냐 가짜 옥이냐라고 한 것 같지만, 실제로 속뜻은 ‘한갓 기녀’로만 여겼는데, 다시 보니 ‘귀품이 있는, 학문과 재주가 뛰어난 규수’구나, 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야. 이 구절만 가지고도 두 사람이 서로의 학문과 예술적 재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지.
종장을 보자. 정철이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 볼까 하노라’라고 하고 있지? 그런데 진옥이 화답하기를 ‘나에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 볼까 하노라’라고 하고 있어. 자, 그렇다면 여기에서 ‘골풀무’란 무엇일까? ‘골풀무’란 다른 말로 ‘풍로’라고도 해. 풍로……. 아마 젊은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걸? 50대 이상에서나 알 수 있는 명칭일 거야. 1970년대까지도 이 풍로를 사용했어. 풍로가 무엇인고 하니,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불이 잘 붙으라고 손으로 바퀴를 돌려 바람을 일으켜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 넣는 기구야.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또는 톱밥 같은 것을 아궁이에 넣고 이 풍로를 돌리면 아궁이에 바람이 들어가면서 불이 더 활활 타올라. 왜 우리가 불을 붙일 때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이 붙게 하잖아. 그런 거야. 하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을 붙게 할 일도 없으니 이 말 자체도 이해를 못하겠네. 아무튼 ‘골풀무’란 ‘풍로’를 뜻하는 거야. 다시 말해서 남자의 성기(정철의 성기)를 여자의 성기(진옥의 성기)로 받아들여 녹여 보겠다, 고 하고 있어. 사랑을 불태워 보겠다, 하고 말하고 있는 거야. 정철이 살송곳으로 뚫어 보겠다는 말을 이처럼 역시 노골적이고 직설적이게, 대담하게 받아치고 있어. 시 한 수 전체를 놓고 볼 때, 조선조의 대학자요 문장가인 정철을 능가하는 화답가라 할 수 있어. 본래 처음에 먼저 시를 던지는 사람은 쉬워. 하지만 이것을 받은 시에 맞게 화답하기란 무지 어려운 거야. 그런데 진옥은 이처럼 정철 못지 않게 대담하게 즉흥적으로 곧바로 받아치고 있어. 기녀라기보다 수준 높은 대단한 시인이라고 말해도 좋을 여자야.
시골 촌구석에 묻혀 살던 기녀 진옥은, 이렇게 송강 정철을 만남으로 해서 한국문학사에 남는 작품을 남기고,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지. 그리고 기록에 ‘정철의 첩’으로 남아 있어. 기녀가 누구의 첩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진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최초의 기녀란 말이지.
선조 26년 58세의 나이로 강화에서 자연과 유유자적하며 생활하다가 정철은 죽게 돼. 진옥은 그 자리에 있었고, 흐느껴 울었어. 그리고는 어디론가 훌쩍 떠났고 그 이후로 진옥에 대한 소식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게 돼.
*** 이 글은 저작권이 있는 글입니다. 저작권은 필자인 임형선과, 채륜출판사에 있습니다.
따라서 무단 복제 및 표절할 시 법적 책임을 묻게 됩니다.
첫댓글 이많은글을 다~! 읽으라고..요점정리...
음~~! 아주좋아~~!!!
감동적이야....
이 많은 글을 쓴 사람도 있다. 다 읽어라...
이글은 쓴것이 아니야..........!!!
자판으로 친거지..!!1
골풀무에 녹고 싶은 1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