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군
[영양군의 지리적 위치]
영양군은 경상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인구 2만의 지역이다. 이곳은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릴
만큼 외진 고장임에 ‘브리태니커’ 백과에 기록되어 있다. 역시나 유랑족인 둥글이가 이곳 주
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폐쇄성이 꼭 단점과 불합리함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폐쇄성은
한편으로 무참한 '자본'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서 '공동체'가 결속하게 만들며 '전통을 지키
려'는 힘을 만들어낸다. 가령 어느 마을 밭에 우뚝 서 있는 고인돌의 흔적은 그 한사례라 할
수 있다.
여느 지역 같았으면 '농사짓는 것‘에 방해가 된다고 뽑아거리거나, 단순히 ’골재‘로만 인식하고
이를 취해서 강을 메우는데 사용했음직 하지만, 예전부터 선조들이 그 자리에 남겨 뒀던 그 자
연의 창조물을 그리 불편을 감수하고 그대로 놔둔 것은 참으로 ’자연친화적‘이고 '전통보존적'인
사고의 단편으로 느껴진다.
지역의 폐쇄적 특성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이곳 영양군
민들의 숙제이리라.
이곳은 고추와 잎담배의 생산 이 활발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군의 상징물도 고추가 되어 있다.
영양군 들어가는 도로와 나란히 작은 천이 하나 있는데, 언 듯 무슨 연밥 같은 것이 솟아올
랐나 했다.
[영양군 읍내 들어가는 진입로 / 우체국 앞 도로]
영양군 우체국에 가서 전단지 박스를 찾으러 들어갔더니, 집배원 아저씨 하나가 ‘고생하신
다.’면서 호기심 가득한 모습으로 이래 저래 물으시더니, ‘귀하가 저의 로망입니다.’고 부러
워하신다. 저렇게 가득한 관심을 가진 정착민들을 유랑족으로 ‘개족’ 시키는 것이 유랑족 전
도사 둥글이의 책무이다. 전단지를 나눠준다.
[점심 먹고 나서는 도서관 위쪽에 있는 작은 쉼터로 간다.]
[텐트를 말리려고 꺼내보니 새벽에 내린 서리가 아직 뭉쳐져 있다. 서리가 이리 내렸으면
상당히 추웠을 텐데, 꿈꾸는데 정신이 팔려서 추운 것을 눈치 채지 못 했는 듯하다.]
[장비를 널어 말리면서 한숨 거하게 잔다.]
[장비를 꾸리고 나서 아래쪽 천을 봤더니, 개구리 몇 마리가 겨울잠에서 일어나 물속에서
폴짝 거리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날 월요일은 도서관이 쉬는 날이어서 장비를 꾸려서 군청에 일지작업을 하러 갔다.
그런데 민원실 탁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전원코드를 빼서 콘센트에 꼽다가 벗겨진 전선 피
복에 손가락이 닿아 220V에 감전되었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둥글이의 실수였다. 원래 그 전
선코드는 민원인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민원실 내의 시설물에 전기를 공급하는 용
도였다. 그런데 둥글이가 노트북 밥주려고 굳이 잡아 빼다가 손가락 끝이 닿은 것이다. 6살 때
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감전 경험이었다. 더군다나 ‘실수로’ 감전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 말은 6살 때의 감전은 ‘자발적 감 전’이었다는 말이다.
6살 때의 전구를 빼낸 후에 그 안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이 텅 빈 공간이 전구의 불을 들어
오게 할 수 있지?’하고 의아해 했다. 이에 옆에 있던 형에게 ‘형? 여기 전기 들어와?’하고
물었다. 그러자 지금은 목사가 되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던 형님 왈
‘만져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이때 까지는 전기의 맛을 몰랐기에 전구 소켓 안에 손
가락을 집어 넣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비록 그 당시의 전기는 지금보다 한급 낮은 110v였지만, 손가락이 전구소켓에 닿자 뭔가
강력하게 빨아들 이는 듯 한 느낌과 함께 쥐어짜는 듯 한 충격이 몸을 전율케 했다. 아마
이때부터 ‘세상에 믿을 놈 없는’ 현실을 본격적으로 알아갔던 듯 했는데, 하여간 그 날의
경험 후로 처음으로 전기에 감전이 되자 감회가 새로웠다. (이 감회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싶으신 분은 자기집 콘센트를 나사로 풀러서 손가락을 대보시기를... 참고로 영양군청 민
원실 의자 뒤편의 콘센트 피복은 본 일지가 올라간 당일날 친절한 민원실 직원에 의해서
곧바로 수리가 된 이유로 '그곳 전기 맛'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음.)
하여간 얼얼한 손을 비비며 일지 작업을 하는데, 군청 민원실 직원 여자분 중의 한 분이 먹
을 것을 가지고 오신다. 둥글이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호기심 어린 질문을 건네셔서 전단지
를 하나 드리기까지 했다. 가는 길 곳곳 마다 먹을 것과 안 쓰는 잔돈과 헌 지폐 가져다주
는 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에는 체육관 뒤편의 공터에 자리 잡았다.
4월 5일
유랑 첫 1주일 동안 추위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선잠을 자던 습관이 몸이 배
인 듯 했다. 그래서인지 4월 들어서는 기온이 올라서 그럭저럭 잠을 잘만도 했는데, 자다가
눈이 깨보면 새벽 한시나 두시다. 다시 잠을 청해보면 한 두 시간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한
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맹한 정신으로 아침을 맞는다.]
[풍신 맞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다가 낯선 나그네의 발소리에 멀찌감치 몸
을 피한다.]
- 영양초등학교 캠페인 -
[영양초등학교 전경]
이곳 ‘육지 안의 섬’인 영양군이 낯선 것(유랑족)에 대한 남다른 반응을 표출했음은 앞서 거
론한 바 있다.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군민의 습성’은 그렇게 유랑자를 경찰에 거듭 신고하
는 일을 반복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초등학교 한쪽에 감시초소까지 세워놓는 결과를
만들어 낸 듯 했다.
전국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초등학교 한쪽에 외지인 통행 감시초소가 있는 것은 또 처음 접
한다. 그리고 실지로 그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앉아서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보
호하기위한 어른들의 따스한 배려심을 무어라 문제 삼을 수 있겠으나, 그러한 어른들의 관
심과 주의가 혹시나 아이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캠페인은 즐겁게 시작해서 즐겁게 끝낼 수 있었다. 얼굴이 수염이 난 아저씨가 “인간과 자
연을 사랑해주세요.”라고 하고 전단지를 건네자 종종 놀라해 하는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있
었지만 이내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지나는 선생님들도 친절히 인사해 주고, 교통정
리 하시는 어른들과도 말이 잘 통해서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출발? 신호에 달려오는 아이들]
개중에 전단지를 못 받고 들어간 아이들을 양팔에 끼고 데리고 와서 전단지를 받아가게 하
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등교시간이 거의 찰 무렵이 되자 뛰어노는 아이들 때문에 운동장은 떠들썩해진다.
캠페인을 끝내고 나서는 길 한쪽에 앉아서 떨어진 배낭 바느질 수리 좀 하다가...
고양이 똥 싸는 장면을 영상에 담고,
[감시와 배설기능을 한꺼번에...]
낮에는 밥 먹고 잔디밭에서 쉬다가 경찰의 출동을 영접한 후에~
밤에는 다시 체육관 뒤편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짐을 푼다.
[텐트를 쳐놓고 짐을 그 안에 쑤셔 넣으면 하루 일과 끝이다. ... 발각되어 쫓겨나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영양군에서 영덕군으로 이동하는 길은 상당히 험난할 듯하다. 길도 멀거니와 비까지 떨어진
다고 한다. 또 어떤 일이 둥글이를 기다릴지! 둥글이는 오늘도 걷는다.
-2011년 4월 6일 경상북도 영양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