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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용인시민주권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개마고원
그런 가운데 지난 11월 23일, 중국 공군은 새로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이 구역에는 우리나라의 해양과학기지인 이어도가 포함될 뿐만 아니라 중일간에 첨예하게 대립 중인 댜오위다오/센카구열도가 포함된다. 이어도는 국제법 상 암초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토로 볼 수 없어 외교적으로 풀면 가능한 문제로 보이지만 댜오위다오/센카쿠는 사정이 다르다. 무인도이긴 하나 7Km2인 실제 섬이다. 이 열도에 미사일 기지 등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설을 할 수 있으며, 현재 일본이 점령하고 있지만 중국과 불과 330Km 거리에 있으며 타이완과는 170Km에 불과하다. 일본 본토인 후쿠오카와는 거리가 너무 멀고, 유구국이 있던 오키나와로부터는 41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 댜오위다오/센카쿠 표기 ; 비겁하고 약싹빠른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센카쿠'라고 단독표기한다. 이렇게 표기하면 일본과 미국의 일방 주장을 동조하는 것이다.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하면 마구 성을 내면서 이웃의 고통에 대해 이처럼 무심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중일 양측의 표기를 병기하는 게 맞다. 그래서 '댜오위다오/센카쿠'라고 표기한다.
- 댜오위다오/센카쿠(빨간 원). 중일 패권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무효다
댜오위다오/센카쿠는 1895년 1월 14일, 청나라가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일본이 오키나와현에 편입시켜 버렸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일본이 점령 중이던 타이완을 반환하면서 이 섬은 반환하지 않았고, 일본을 점령한 미군 역시 이 섬을 오키나와현에 부속시켜 통치했다. 일본이 원자탄 두 발로 무조건 항복한 뒤 미군은 오키나와 현을 미국 땅으로 점거해왔는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때 중국과 타이완은 초대받지 못한 관계로 이들 두 나라는 오늘날 일본과 미국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참가하여 서명했으며,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되었다. 내용은 패전국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중국, 타이완 뿐만 아니라 전쟁 중이던 한국, 북한은 '승전국' 대우를 박탈하여 결과적으로 초대받지 못했고, 이후 두고두고 불씨가 된다. 일본이 댜오위다오와 독도에 대해 주장하는 근거가 바로 이 조약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요 내용. -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Dagelet(울릉도 등)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자격, 영유권을 포기한다. - 일본은 대만과 펑후 제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 -
일본은 쿠릴 열도와 사할린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 - 남태평양의 구 위임통치지역은 미국이 신탁통치하며, 오키나와와 오가사와라 제도는 미국의 신탁통치 예정지역으로 삼는다.
이런 중에 최근 국력이 부쩍 커진 중국이 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무력화시키고, 댜오위다오/센카쿠를 자국의 영토라고 선언하는 제스처로 항공식별구역이라는 걸 발표한 것이다.
- 중국이 2013년 11월 23일 발표한 항공식별구역. 아래 대만 위에 주황색 글씨로 돼 있는 섬이 댜오위다오/센카쿠로서 항공식별구역 내에 포함되어 있다. 1951년 미군과 함께 선포한 한국 방공식별구역에는 독도가 포함돼 있으나 이어도는 빠져 있다. 1969년에 선포된 일본 방공식별구역에는 독도가 들어가지 않는다.
즉 중국은 미국이 뒤에서 봐주고, 일본이 알짱거리는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에 대해 무력으로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중국의 늦은 대응이 문제가 되었지만, 일본 패망 당시 중국 역시 힘이 없었고, 국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당시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독도가 빠진 점을 중시하고, 육이오전쟁 중인 1952년 1월 18일 평화선(공식 명칭 ; 이승만 라인, 美 Syngman Rhee line, 中 李承晩線, 日 李承晩ライン)을 발표하고, 1953년 말에는 180톤급 경비정 6척을 보유한 해양경찰대로 하여금 일본 어선의 접근을 저지시켰다. 이러한 한국의 자주적이며 적극적인 영토 수호 노력에 비해 중국은 최근에 이르러서야 댜오위다오/센카쿠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국력을 바탕으로 일본에 무력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중국과 일본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 싸움에 미국이 일본을 거들고 나선다는 점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탄 두 발을 투척하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도시를 초토화시킨 적이지만 오늘날 이들은 국제사회에서 둘도 없는 맹방으로서 굳게 손을 잡고 있다. 여기에 한미일 공조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끼워넣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한미 공조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수 없을만큼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굳은 관계이지만. 한일관계는 미국이 뭐라 하든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원한관계가 명백히 자리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징용, 징병, 위안부, 자원 수탈 등의 문제에 대해 미국은 오직 일본을 지지하고 있으면서 대한민국더러 일본과 친하게 지내라고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일간에 일촉즉발의 군사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지금, 우리는 역사를 되짚어가며 처신을 바로하지 않으면 안될 위기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중국도 일본도 우리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과 일본 중에서 늘 일본을 편들어온 역사적인 사실이 명백하게 존재한다.
- 아시아 공조를 서두르자
지난 해 이명박 대통령이 독보를 방문하고, 이어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진심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말한 뒤 당시 일본의 노다 총리 등이 침략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인기 급락으로 다급해진 노다 총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전범 중의 전범인 일왕에게 사과하라는 망언을 늘어놓았다. A급 전범으로서 진작에 교수형되었어야 마땅한 일왕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일왕 일족은 1945년 전범 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모조리 사라지고, 일 왕실 자체도 사라졌어야 했다.
그럼에도 아시아 시장이 필요했던 미군의 용서를 받아 그 알량한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일왕이며 일본인들이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비는 게 아니라 도리어 피해자인 우리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니, 이런 민족은 결단코 용서해서는 안된다. 일본은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죄를 깨닫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1945년 저 침략자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뒤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하게 되고, 오늘날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 일본과 점령국 미국과 더불어 <한미일 공조>라는 치욕스런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은 순전히 살아남고자 하는 일념 때문이었다. 또한 일본 뒤에 빅브라더인 초강대국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당하는 '한신의 굴욕' 같은 것이었다. 일본을 시장으로 삼아야 하는 미국의 간절한 이해관계가 한미일 공조라는 괴물을 만든 것이다. 미국이 우리보다 대여섯 배 경제력이 큰 일본을 중시하는 건 일견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을 재건시키기 위해 일제의 최대 피해국인 한국을 어떤 고려도 없이 무작정 일본의 먹이로 던져주었다. 그러기 위해 경찰, 군, 검찰, 법원을 친일파들로 채워주었다. 따라서 친일파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끌어왔고, 한미일 공조는 공고했다. 우리 한국은 일본이 재건하는데 꼭 필요한 시장이 돼주었고, 육이오전쟁으로 '망한 일본'을 일으켜세워주는 바보 짓을 했다.
- 항복선언문 낭독하는 특A급 전범 히로히토 일왕. 1945년 8월에 교수형시켰어야 했다.
백 번 양보하여, 적어도 20세기에는 한미일 공조가 일본과 한국에 유리했다고 인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그땐 중국이라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이젠 이 중국이 미국을 뒤쫓는 경제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2008년 이후 터진 글로벌 경제위기로 비틀거리는 사이 중국은 대약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체제 유지에 따른 불안감이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의 민족적 도덕적 불투명성보다는 더 나은 형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은 대한민국이 보유 중인 가장 큰 시장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중국과 갈등보다는 화합하여 공조하는 편이 훨씬 낫다.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훨씬 더 긴밀했으며, 서로간에 공유하는 문화의 폭이 넓다. 중국과 공조를 한다는 것은 중국의 맹방인 조선(북한)과 교류를 한다는 전제가 이뤄지는 것이며, 아울러 화교들이 주류사회를 이루고 있는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들과 시장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아시아의 국가들이다. 심지어 러시아, 인도까지 우리의 공조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중국과 대한민국이 유대를 강화할수록 남북의 긴장은 그만큼 풀릴 수가 있다. 하지만 일본과 아무리 가까워진들 남북 긴장 관계를 해소시킬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다.
따라서 120년 전부터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의 일원으로 살겠다(脫亞入歐)던 일본은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자. 그들은 어차피 미국, 영국, 독일 등과 같이 가기로 작정한 나라다. 아시아의 일원임을 부끄러워하는 민족이다. 굳이 아시아 공동의 적인 일본과 우리 대한민국이 어깨동무를 할 이유가 없다.
-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전세계에서 핵폭탄으로 응징당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 한미 공조는 하되 일본 손은 잡을 수 없다
다만 미국은 대한민국과 은원 관계에 있는 나라이니 그리 소홀하게 대할 수는 없다. 미국은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되던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미일 국가간 조약으로 승인함으로써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을 지지해준 나라다. 그뒤 해방되던 1945년 9월 9일, 해방된 지 벌써 25일째이건만 미군은 그제야 인천항으로 진입하면서 이미 항복해버린 일본군을 불러 질서유지를 맡겼다. 진작에 일본으로 떠났거나 무장해제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마땅한 패잔병 일본군이 미군의 앞잡이로 돌변하여 조선 인민들을 통제한 것이다.
이때 일본군은 미군을 환영하는 조선인들이 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발포, 조선인이 죽기도 했다. 하지만 무죄였다. 일본군은 미군의 앞잡이로서 총을 쏜 것이기 때문에 미군 앞에서 조선인쯤 아무나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방이 된 나라에서, 전범이 되어 총살형이 집행돼야 마땅할 일본군은 '점령국 미군'의 충실한 앞잡이가 되어 유유히 대한민국을 떠날 수 있었다. 미군은 군정을 실시하면서 일제와 다름없는 침략자 본성을 드러내어 지난 날 일제의 앞잡이로서 동포들을 괴롭혀온 조선인 출신 경찰, 검사, 판사, 군인을 불러내 미군의 앞잡이로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은 먹고살 길이 없어 그 미국에게 굽실거리고, 또 육이오전쟁 덕에 기사회생한 일본에게 또 굽실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는 일본 총독부가 배급하는 옥수수 깨묵을 먹으며 살았고, 그 아들 세대는 미군이 주는 강냉이죽을 먹고 살았다. 친일파들은 국회의원, 대통령, 장군, 판검사, 장관, 재벌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어쩔 수 없었다.
- A급 전범 도조 히데키 재판 장면. 미군에 의해 처형되었다. 이런 놈들을 숭상하는 곳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다.
- 일본이 우리나라에 저지른 죄,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어
이제 때가 되었다. 일본은 천년이 가도 죄의식을 깨우치지 못하는 민족이다. 독도, 위안부, 징용, 징병, 731부대, 난징대학살 등 갖은 죄를 저질러놓고도 철면피 같이 미국의 등뒤에 버티고 있다. 아무리 요구해도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의 핏속에는 수천년 노략질을 업으로 삼은 왜구의 피가 흐른다. 왜구는 살인, 약탈이 직업이었다. 그러니 이제 한미일 공조라는 이름으로 잡았던 그들의 피묻은 손을 놓자. 먼저 일본을 놓고, 미국은 더 잡자. 미국은 현실이다. 오른손으로 미국 잡고, 왼손으로 중국을 잡으면 된다. 두 손 중 한 손이라도 놓는 순간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수라장으로 변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는 서해 너머 중국을 노리는 평택 땅에 미군 주둔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맹방이고, 중국은 우리의 적성국가란 의미다. 하지만 이것이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의 패권 경쟁이 심각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미국의 최전선을 자청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최전선은 규슈나 오키나와가 돼야 한다. 도쿄가 돼도 좋다. 중국의 최전선은 대만이나 복건성 등이 될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겨루기 위해 일본의 손을 굳게 잡을 것이다. 또 일본은 중국을 이기기 위해 미국을 등에 업을 것이다. 미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보다 일본의 손을 더 굳게 잡을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일본을 중시했고, 한국은 그 다음, 혹은 더 다음 차례였다. 미국은 우리 세대에 강냉이죽을 먹여주고 헌옷을 제공해준 고마운 나라로서 그 고마움은 별개로 잊지는 말아야겠다.
- 731부대 사령관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 마땅히 처형돼야 했지만 미군이 생체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살려주었다.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런 잔인한 범죄자마저 살려주고, 일본은 이런 자를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앞으로 우리는 일본과는 식민지 시절 위안부, 징용, 징병, 독도 문제 등으로 더 시끄러워도 좋다. 우리가 시끄럽게 대결해야 중국이 용기를 내어 일본과 싸울 것이다.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놓고 중국과 일본은 일전을 겨룰 수밖에 없다. 독도 문제는 그에 비하면 작은 싸움이다. 댜오위다오는 일본이 중국의 턱밑까지 다가가 군함을 배치할 수 있는 해상 전략 요충지다. 중국으로서는 다급한 안보 문제다.
중국과 일본이 싸우는 것은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만, 다만 한쪽이 승리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도록 방치함으로써 일본은 우리나라의 독도를 빼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감히 식민지로 삼을 용기를 얻고, 나아가 대만을 빼앗고, 만주까지 진출하였다. 또 일본이 지면 그 반대로 중국은 그 여세를 몰아 우리를 핍박하려 들 것이다. 중일 두 나라가 싸우되 누가 일방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그러니 중일간에 전쟁이 나든 싸움이 나든 끼여들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우리는 구경밖에 할 수 없는 철부지였다. 군대도 없고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변수가 될 힘은 충분히 갖고 있다. 그렇다면 중일은 으르렁거리며 서로 싸울 뿐 결정적인 전쟁 상황으로 치닫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이 비록 대국이라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일본을 시원하게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처단된 무솔리니(왼쪽 사진 중 키 큰 사람)와 히틀러(오른쪽 사진).
히로히토도 이렇게 처단되거나 총살되었어야 마땅했다.
결단의 시기는 멀지 않았다. 조선 처녀들을 붙잡아다 능욕하고, 조선 청년들을 붙잡아다 강제 노역을 시키거나 태평양 전쟁의 총알받이로 삼은 저 일본의 피묻은 손을 잡았던 우리의 손을 그만 거두자. 어차피 살아남기 위해 잡았던 원수의 더러운 손이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품에서 우리는 배고픈 어린 시절을 견딘 셈이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다 조상들이 흘린 피로 일군 것이다. 이제 우리의 묵은 분노를 마음껏 표시하고, 전범국 일본을 향해 할 말을 하자. 전쟁범죄국과는 더이상 손을 잡을 수 없노라고 당당히 말하자. 더이상 조상들을 죽이고 핍박한 원수의 손을 잡고 있을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그래서 일본과 정서적으로 결별하자. 한미일 공조를 버리고 한미 공조만 유지하자. 그러면서 한중, 한아시아 공조를 더 강화하자. 그러면서도 일본을 주시하자. 일본은 지난 1997년의 외환위기 때는 가장 먼저 돈을 빼가 우리나라의 금융위기를 가중시킨 나라다. 일본을 직시하되 결코 얕봐서는 안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그래야 우리 자손들이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