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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婦山,면위산) 산행기
쪽빛하늘에 푸른솔가지를 심술궂게 태워 흩뿌려놓은 듯 춘삼월의 꽃대궐 산야는
백태 동자의 가뭇거림으로 흐릿하고 침울하여 본분을 망각한채 제법 심드렁하다.
연일 기상예보에서 빼놓지않고 수선을 피우는 황사의 미세먼지 탓일지도 모르겠고 봄맞이에
열과 성을 쏟는 삼라만상의 치열함이 기화라는 과정에서 보이는 자태일지도 모른다.
봄은 남해안을 거슬러 서서히 북상을 하면서 겨울의 끝자락을 시베리아 방면으로 밀어내고서야
비로서 제 모습을 갖춰나간다.썰물처럼 물러나갔던 세력들이 반격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텃세를 부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그들이고 짖궂은 황사는 그들에게
빌붙은 고약한 폭력배에 불과하다.계절을 여는 창조의 봄은 그래서 산통의 숙명을 안고 출발하는
아픔과 고난의 계절인 동시에 탄생의 신비와 환희의 열락을 함께하는 계절이라 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시베리아 지방의 기상변화에 따라 춤을 추는 한반도의 기후종속은 지형학적으로
숙명적인 태생의 한계로 벗어날 가망은 지금으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먼 산의 윤곽이 엷은 연무에 희미하다.주위는 온통 울긋불긋 봄꽃이 만발하여 꽃밭을 이루고 있다.
어제 내린 봄비로 이미 축축해진 대지위로 쏟아지는 봄볕의 따스함이 게으름을 부추긴다.
비록 주거지와 멀지않고 지근의 거리라지만 굴레를 벗어난 홀가분함과 자유스러움은
여행이 가져오는 소중한 가치중의 하나다.등산은 일종의 산 여행 중의 하나다.
굴레를 멀찌감치 벗어나지 못하고 언저리를 머뭇거리는 것이 소풍이라면 울을 훌쩍넘어서
우선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여유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 행위가 여행이라고 하면 맞을까 싶다.
그리고 그 곳이 낯선 곳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오늘 산행에는 다섯명이 모였다.
이를테면 독수리 오형제가 자연스레 이루어진 셈이다.
카니발 차량과 기사역할까지 책임을 맡은 바다,등반대장의 소임에 열정을 쏟는 청아 형,
부지런한 회장 신바람 형 그리고 최 연장자이신 회산 큰형님과 산객 이렇게 다섯의 오붓한
독수리들이 신갈을 출발지로 해서 산행지인 충주지역으로 향한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틀을 깬다는 의미이고 일탈의 유혹을 용이하게 수용할 수도
있겠지만 광증狂症에 빠진 산꾼들에게는 대개 이를 비켜가기 마련이다.
어쨋든 벗어제끼고 깨뜨린다는 행위는 억압되어있는 심신에는 활력이 솟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충주시외버스터미날 앞을 지나고 목행대교를 건너서,곧바로 만나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동량 쪽을 목표로 삼으면서 하천리 표지나 "한국코타"의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산행들머리인 하천리 하곡마을 입구에는 국보 17호 정토사지와 법경대사자등탑비가 소재하고 있다.
노선버스 회차장겸 주차장으로 사용 중인 넓은 공터 한구석에는 매점이 한가롭다.
길가를 빼꼭하게 채운 솟대가 우선 시선을 모으고 거대한 법경대사자등탑비와 정토사지 주위를
공원처럼 꾸며놓은 손길이 따사롭다.탑비를 수호하려는가? 수백년의 수령이 가늠이 되는
느티나무가 우뚝하고 노랑나비꽃들이 앙증을 부리고 제비꽃들이 새침을 떤다.
주차장 옆을 지나는 532번 지방도를 건너서면 마을진입로 입구 한켠에 등산안내도가
입산객들의 시선을 모은다.안내도 뒤로는 오늘 산행지인 부산(婦山)의 옥녀봉이 병풍을 두른 듯
활기차다.봄볕을 등에 가득지고 세멘 포장이 된 마을길로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파릇파릇
새순을 내밀며 가을 잔치를 준비하는 사과 과수원의 은밀한 함성을 엿들을 수 있다.
농가 직전 갈랫길에서 우측의 계류를 건너 이동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다.오래 전 두 차례
등반한 이력이 있는 산객도 이쪽 저쪽을 재느라 갈피를 못잡은 걸 보면 어느 방면으로
진행을 해도 큰 불편없이 산길을 찾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봉농가를 뒤로하면 본격적인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농가 뒷편 산자락에는 보온덮개를 뒤집어 쓴
벌통 수십개가 열을 지어있고,수많은 벌들이 제 철을 만난 듯 분주한 모습으로 벌통 주변에서
부산을 피운다.연둣 빛 색깔의 작은 이파리가 반짝이는 참나무 숲길을 따르면 양갈랫길을 내놓으며
선택을 강요한다.우측으로는 통나무 계단으로 시작이 되는데 일행은 좌측으로 진행을
하기로 한다.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산행시간이 단축된다고 지레짐작을 한 탓이다.
오르막 산길은 의외로 가풀막지다.산길 이곳저곳 바위너설이 즐비하고 지난가을 쌓인
낙엽들과 축축해진 바위너설에는 푸른 이끼까지 한몫으로 산객의 헛점을 파고든다.
허연 PP고정로프가 가풀막진 산길을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다.험한 바위와 삐죽삐죽 내민
바위너설을 용케 피해가며 산길을 유도하는 고정로프가 믿음직 스럽기만 하다.
바위절벽 앞에 엉성한 작은 나무계단이 보이고 다리 밑으로는 한 사람 정도는 너끈하게
비상시 머무를 수 있는 바위굴도 눈에 띤다. 바위절벽 우회길을 벗어나도 가파른 산길은
변함이 없다.납작엎드린 높은 포복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헐떡이는 심장의 고동소리는
가쁜 숨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다.다행스러운 것은 고정로프가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발품을 덜어준다.옥녀봉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보기보다는 이렇게 땀과
노고가 필요하다.해발 675m의 고도에 불과하지만 산등성이가 가파른 몸매로 이루어져 있기에
작은 체구임에도 허투루 덤비다가는 낭패를 보기 쉬운 곳이다.두 손을 가지런히 마주하고
커다란 은구슬을 받쳐 든 형상의 옥녀봉 정상석이 이채롭고, 조금 떨어진 곳에 모(某)산악회가
세워놓은 자연석 작은 빗돌도 앙증맞기만 하다.이곳 옥녀봉 멧부리에서의 조망은 화려하다.
에메랄드 빛 충주호의 눈부신 화려함이 장관이고 호수건너 계명산과 금봉산으로 산여울을
이루는 마루금이 산객의 광증을 더욱 자극한다.
조금 전 삼거리 갈렛길을 지나서 좌측으로 희미한 산길을 거쳐 한국코타 방면으로 이어진 주능선을
밟으려고 고집(?)을 피우고 그 길로 나선 청아형의 행로가 궁금하다.
이제 나이도 있고하니 될 수 있으면 산행시간을 단축하고 거리도 줄여서 등반해야 되지 않겠나,
말이야 어디 흠잡을 곳이 없다.그러나 행동은 언행과 일치시키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성찬앞에서는 절제잃은 식탐이 반상飯床을 장악하게 마련이고,고산준봉의 화려한 산줄기의
장쾌함이 광증狂症 산객의 절제력을 단숨에 삼켜버리는 법이다.
옥녀봉을 뒤로하면 곧바로 "한국코타"뒷쪽 능선으로 연결된 산길을 만난다.이정표가 반듯하다.
청아형은 이 산길로 옥녀봉을 바라보고 지금 쯤 거친 숨을 토하고 있으리라.
얼추 따라붙은 모습을 확인하고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한 옥녀2봉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마른가지만 무성한 볼품없는 숲길에서 단연 눈길을 휘어잡는 것은 연분홍 진달래꽃이다.
무리지어 다복스럽고 흐드러진 연분홍빛의 진달래꽃은 전국 어디를 가리지 않고 산골짜기를
일찌감치 붉게 물들여 놓는다.옥녀1봉을 내려선 뒤 얼마 후에 오른 옥녀2봉에는 부산婦山정상을
알리는 검은색 빗돌이 세워져 있고 돌탑1기가 가지런하다.부산(면위산)의 최고봉은 이 곳에서
봉우리 두어 개를 넘어서야 만날 수 있는 멧부린데 세상인심은 이 곳 옥녀2봉을 정상(頂上)의
위치로 격상시켜버린 모양이다.하기야 위치상으로 중앙부위에 있고 주위조망은 여타 멧부리를
아우르는 품위가 남달라 보이고 높이도 그 정도면 최고위에 적당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충주소방서에서 설치한 위치표시 사각기둥(No,01)을 지나고 얼기설기 바위 틈사이를 비집고
자리한 노송 숲길을 벗어나면 두번 째 사각기둥이 또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마른나무 가지 사이로 몸을 잔뜩 비비꼬며 흐르는 구절양장의 주포천이 신비롭다.
참나무와 노송들이 앞뒤없이 숲을 이루는 산길, 들쭉날쭉 엎드려있는 바위들 사이를 그들은
말없이 이어나간다.정중앙에 삼각점이 심어져있는 삼거리 봉우리, 이 곳에서 부산의 주봉은
좌측의 산길을 따라야 한다. 곧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부산의 정수리는 발끝을 곧추 세우고
산객을 부르는 듯하다.삼거리봉에서 면위산의 멧부리는 십여 분도 채 못돼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연신 화사하고 명랑한 낯빛의 진달래와 연두빛 어린싹을 내민 수목들이 산길을
메우고 있다.면위산의 정수리는 비좁은 자리에 삐죽하게 바위가 걸터앉아 그나마 옹색한 구석이
더욱 비좁은 자리가 되었다.최고봉이 누릴 수 있는 꾸밈이나 표식도 찾아볼 수가 없고
어느 산악회에서 마른 나무에 간신히 묶어놓은 표시기에 이 곳이 멧부리임을 알릴 뿐이다.
개인 차량을 이용한 산행이므로 차량을 세워놓은 장소로 하산을 할 수밖에 없다.
다시 오던 길을 되집어 삼거리봉으로 이동을 한 후 좌측 방향의 하산길을 따라야 한다.
하산지점을 어느정도 남겨 둔 길섶에서 허기 진 뱃속을 달랠 요량이다.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니
기력은 잦아들고 힘들일거리는 아직도 창창하기만 하니, 출출한 속을 방치하고는 전도前途가
순조롭고 편안한 행로를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대부분 배낭을 뒤적거리며 꺼내 든 양식은
포터블 수준의 행동식을 벗어나지 못한다.간신히 허기만 면해보자는 얄팍한 잔꾀가 잔뜩 묻어있는
종류가 태반이다.과일 한 두개,우유 한봉지,빵 한조각,김밥 한 두줄,손바닥 만한 떡 조각 등이 주 메뉴,
이들 중의 한 두가지를 양식이라고 내놓고 우물거리며 허기를 달래는 모습은 산길에서나
그나마 품격을 논 할 수 있을까,거리나 대처의 공원 등지에서 볼라치면 영락없는 노숙자가
틀림없고 거리를 배회하는 떠돌이 부랑배로 오인받을 행색이다.
그에게(청아) 배낭을 꾸릴 때 꼭 빼놓지 않고 챙기는 양식이 하나있다.
초록색 페트병의 막걸리,그 동안에 몇차례 마셨는지 절반으로 줄어든 페트병을 들고
음주희망자를 모은다. 주류파는 누구이고 비주류는 어느사내인지 애초에 들어나 있는 상황이니
불빛을 찾아드는 불나비처럼 주류들은 알콜내음의 유혹을 벗어나기란 쉽지않다.
하산길은 가파른 벼랑처럼 시작리 된다.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때죽나무 서어나무가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아직도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들 덕분에 가파른 내리막 길은
조심스럽기만하다.널찍하게 닦여있는 임도로 내려선다.산허리를 구불거리며 굽이도는 임도 길섶에는
노랑나비꽃이 앙징맞게 아양을 떠는 모습이고 분홍색 금낭화가 무리를 이루고 꽃대궐을 이룬다.
충주호의 고즈넉한 모습을 보이는 충주호를 시야 가득 모아가며 골짜기를 서서히
빠져나간다.희뿌연 화첩을 얼굴 가득 두드려 놓은 듯 뽀얀 피부를 드러낸 도토리 만한 사과 알갱이들이
다닥다닥 달린 과수원 밭을 지나고, 이제 막 농염의 진홍색 꽃망울을 터뜨리고 요염한 성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홍매화 곁을 지나면 노정은 법경대사 탑비가 있는 주차장으로 이르게 된다.
강구연월을 염원하는 모든 자연들의 소리없는 미래추구는 우리 인간들에 의한 이해타산 여하에 따라
저지를 당하기도 하고 부추김을 받아 가면서 창조의 새로움으로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해 나갈 것이다.
첫댓글 이제서야 댓글 들어가네요.희미한 추억!!..들춰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