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락사와 석문봉

[이병헌]

일락사와 석문봉

  
  이른 아침 습관적으로 일어나 거실로 나선다. 거실 벽에 붙어있는 시계는 6시를 알린다. 창 밖을 보면서 세상이 온통 안개 속에 빠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해서 일기예보를 본다. 충남 지방의 비 올 확률이 40%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미소를 진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 지난 주 팔봉산에 오를 때도 비올 확률이 40%였다. 아파트 광장으로 나오면서 지난주하고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혹시 내릴 비에 대비해서 우산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아파트를 출발한다.
 
  예산을 출발해서 20분 정도 달리면 덕산에 닿는다. 덕산에 닿기 전에 내가 단골로 가는 주요소에서 주유를 한다. 그제야 안심이 된다. 안개는 더 짙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주저할 내가 아니다. 갑자기 배가 고파오는 것을 느낀다. 단골로 가는 해장국집으로 간다. 단골이라고 해야 일년에 너 댓 번 가는 정도이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그 정도면 단골과 다름이 없다. 그 집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앉을 자리가 거의 없다. 방은 꽉 차 있어 홀에서 겨우 자리 하나를 얻었다. 그것도 감지덕지하면서 테이블 위에 앉은 선지 해장국을 본다. 순간적으로 입맛이 동한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서 내가 돼지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맛이 있는 것은 맛이 있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에 식당 현관에서 만난 꽃들의 사진을 찍었다. 선인장, 자스민, 채송화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사진 찍은 후에 그 곳을 출발했다. 가야산을 더듬으면서 해미로 넘어가는 길엔 안개가 가득했다. 안개 등을 켠 후에 조심 운전을 해서 고개를 넘었다. 해미에 들어가기 전에 우측으로 이정표가 보인다. 해미읍내로 지나기 전에 다리를 건너 곧바로 우회전했다. 아파트 옆길로 난 길을 따라서 직진했다. 도로가 좁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그 곳을 달리는 자동차들은 이미 몸에 익은 것처럼 서로 잘 비켜갔다. 마을로 접어들면서 길은 마을 길고 같았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 였다. 반대쪽에서 자동차가 온다면 비켜가기가 쉽지 않을 정도 였다.
 
  저수지가 보인다. 이정표를 보니 황락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옆으로 난 임도를 따라서 잠시 달리자 좌측으로 일락사 가는 길이 나타난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안개사이 오른 쪽으로 계곡이 보인다.  안개에 젖은 일락사는 아직도 연등을 떼지 않고 있었다. 중간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소나무 길을 따라서 일락사로 향했다. 일락사는 안개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일락사는 신라의 문무왕대의 의현선사가 개창한 것으로 전하나 연혁은 구체적이지 않다고 한다. 사찰의 현황을 알 수 있는 기록을 통해 보면 이 사찰은 여러 번에 걸쳐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조선시대 중기인 해미읍성이 축성될 때 사찰도 함께 중수된 사실로 미루어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안개에 젖은 일락사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경내를 돌아다녔다.
 

  대웅전과 요사체로 현음당외에 요사를 합하여 3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건물은 지은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건물이 일정한 격식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락사는 일제시기에 크게 보수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사찰 내에는 각 형상이 그려진 탱화가 있었는데 1919년에 제작되었다고 한다. 일락사의 특이한 점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의 주존불이 석가여래임에도 불구하고 일락사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모셔두고 있다고 한다.
 
  일락사의 대웅전은 문화재자료 193호, 일락사 삼층석탑은 문화재자료 200호, 일락사 철불은 문화재자료 208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요사체에 들어가려 하자 하얀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한다.  그 개는 내가 일락사에 머무는 동안 나를 쫓아다니면서 길을 안내했다. 일락사 연못에서 수련을 보며 아쉽게 그 곳을 빠져나와 일락사 입구 오른쪽으로 난 등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곳은 임도로 개설이 되어있었고 거칠었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었다.
  석문봉을 향해서 오르는 길은 산책하는 것과 흡사했다. 등산이라는 느낌보다는 언덕을 오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임도의 끝에는 주차장이 있었고 자동차를 가지고 온 등산객이 주차한 자동차가 몇 대 있었다.

   
  나는 석문봉에 열 번은 올랐는데 사실 예산의 덕산쪽으로 거의 올랐고 서산 해미쪽으로는 첫 번째 였다. 물론 용현계곡으로 오른 적은 있었는데 그 때 바로 정류장에서 만났던 기억이 났다. 본격적인 등산길로 접어들자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한번 올랐던 길이라 문제는 없었다. 안개가 떼로 몰려들기도 하고 바람을 타고 사라지기도 했지만 산은 짙은 안개를 품고 있었다.
 

  제일 먼저 나에게 다가온 꽃은 까치수영이었다. 너무 흔한 꽃이지만 구슬처럼 매달린 꽃송이는 나로 하여금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잠시 오르자 원추리와 털중 나리가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오르면 오를수록 나리는 많아졌고 정상 거의 올랐을 큰 나리송이를 만나 한참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아직 피지 않은 송이가 피면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다. 엉겅퀴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을 만나며 안개를 헤치고 드디어 석문봉에 도착했다. 자동차를 주차시킨 곳에서 한 시간이 넘었고 본격적인 등산로에서 30분 정도가 걸렸다. 내가 제일 먼저 오른 줄 알았는데 이미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석문봉 정상을 두고 나머지는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한참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정상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는데 강한 바람에 온몸을 떠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으나 태극기를 보자 마음이 엄숙해졌다. 정상은 섬이 되었고 다른 곳은 바다가 되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눈을 감고 있다가 시원한 바람이 몰려와서 눈을 떴는데 눈앞에 돌양지꽃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웃음이 나를 반긴다. 나는 눈인사를 나눈 후에 산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올라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온몸에 배인 땀에 달려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 보다 시간이 덜 걸렸지만 등산의 끝에 느끼는 뻐근함이 찾아왔다.  
   

  일락사로 내려오니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도착하자 계곡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바로 황락계곡이었다. 이 계곡에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많은 피서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고 일락사로 이어지는 코스여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온다고 한다. 일락사 또한 가야산 등산코스의 첫 관문으로 연중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등산을 위해서 올라오는 차량과 좁은 길에서 만났는데 실수로 오른쪽 바퀴가 길에서 이탈했다. 트럭과 교차하면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데 마침 그 트럭 운전사와 그의 아들이 나를 좁기 위해서 왔다.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때 참 난감한데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다시 해미로 향했다. 해미로 가는 길은 올라갈 때 보다 온도가 올라가 있었고 안개는 이미 자신의 몸을 완전히 사리고 있었다.
 
  자동차의 창문을 내렸다. 시원한 바람이 몰려들어왔다. 마을에 들어서자 빨간 접시꽃이 나를 맞는다. 웃음으로 답하고 한참 달린 후 해미읍에 도착했고 일락사 관광과 가야산 석문봉 등산을 마쳤다. 비가 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을 나서 등산을 무사히 마친 것은 또 다른 행운이었다.
 
  2006. 07. 02

[생각]

등산을 즐기시는군요. 다양한 경험들은, 그것이 설령 등산과 같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작가에게는 엄청난 글쓰기의 질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비 맞지 않아서 다행이구요. 다니시다가 좋은 곳 있음 알려 주십시요.

[이병헌]

가는 곳이 모두 좋은 곳입니다. 어느 한 곳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꽃 한 송이를 보아서 그 것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그 일을 행하는 것의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이랍니다

[신석근]

이선생님 덕분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등산 잘 합니다. 꽃 구경 잘 하고...........

[임종본]

황락계곡 앞 마을에 저희 이모님이 사시는 곳이여서 적잖은 여름을 그 곳에서 지낼 수 있었답니다.. 다음에 또 가시면 해미읍 시장에 순대국밥을 꼭 드시고 오세요. 상호는 [시장순대국밥] 담백하기로 매우 유명한 집이예요